곳곳의 '공회 설교들'이 반갑다. 그 것이 공회인데..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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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1 09:31
1985년이었을까? 전도사 시절의 백광진 목사님의 설교를 백영희 목사님의 가족이 대부분 함께 한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백 목사님 자녀들의 설교 평가는 그 기준이 굉장히 높다. 백태영의 설교도 쉽게 볼 정도였으나 아들 설교에는 모두 놀랐다.
30여 명이 함께 했을까? 모두가 감격스러웠다. 설교 외적 모습과 인품까지 목회자로서 갖추지 못한 것이 없다 할 정도였다.
공회의 앞 날에 아주 큰 인물의 등장이었고 잠실동교회와 그 주변 목회자나 교회들에게 공회 노선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교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건하고 산뜻하며 모두가 경청하게 만들면서 설교의 내용은 공회 말씀과 은혜를 참 잘 담고 있었다.
그의 부친 백태영 목사님은 힘 있게 끌고 나가는 면은 탁월하나 곳곳에 빈 곳이 많았다. 냉철한 지성인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 날 참석한 분 중에는 기장 출신의 유명한 학자도 있었다. 공회에 대단히 비판적이었으나 이 설교에는 감탄할 뿐이었다.
그가 설교의 원문으로 삼은 내용은 백영희 설교록이다. 그는 백영희 설교록을 가진 우리는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그 분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 그는 일반 신학의 기준으로 우수하지 못했다. 설교록 외 대안은 없는 분이다.
그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또는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 외 모든 면을 다 고려해도 이 노선 이 설교만 붙들 분이었다.
배경이 공회 핵심이면서 공회 밖에 모르는데 그가 외부에서 배울 것도 또 도입할 수 있는 것도 없다면 오직 이 길일 것이다.
좋든 싫든 나와는 온도 차이만 날 뿐이지 어떻게 하든 크게 보면 이 노선 안에서 서로의 위치는 다르나 함께 갈 것으로 봤다.
오늘 그 분은 공회 역사도 흔적도 안팎으로 완벽하게 지웠다. 그의 변신이 그렇게 뛰어 날 줄은 몰랐다. 역시 위대한 분이다.
20대의 그 분을 현재 60대까지 지켜 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목사님 사후에 나뉜 대구공회를 늘 그 분의 궤적에서 짐작했다.
전수 조사는 어려운 것이지만 인터넷이나 공회적 특별한 기회 때문에 아주 가끔 추세를 볼 수 있었으나 늘 같은 생각이었다.
최근 여러 사정으로 목사님 사후 대구공회가 되었거나 대구공회보다 더 멀리 간 분들의 설교를 접할 수 있었다. 은혜로웠다.
나뉘고 나면, 그 이후에 가속이 붙는 법이다. 신앙의 생명성 때문에 또 탈선의 배경에 악령의 끌어 가는 방식 때문에 그렇다.
바로 이런 이치 때문에 또 교회사를 주로 살피다 보니 교회사적 현상 때문에 나는 그들의 훗날을 굳이 보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최근 여러 기회로 접한 분들을 유튜브로 살필 수 있었다. 설교를 쉽게 접하면서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방향은 달리 잡았고 일하는 위치와 내용은 달라 보이지만 대구공회의 길에 선 분들 중에 자세와 내용이 좋은 분들이 계셨다.
부산공회들은 설교록을 문자 그대로 짚어 가며 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자세와 중심은 전적 동감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지금 부산공회 안에서는 더욱 발전을 했어야 하는데도 그런 경우를 거의 접할 수가 없다. 더 나은 방법 안에 안주를 했을까?
대구공회 범위는 전체 방향은 기본적으로 우려스럽다. 그러나 곳곳에 세월을 통해 이 노선의 이유를 지켜 내는 분들이 있다.
설교를 두고는 꼭 한 분을 소개하고 싶지만 그 분이 어색하게 생각할까 싶어 나의 주변 수십 명에게 개인적으로만 소개했다.
또 공회의 주요 사안에 대한 자세와 처리 과정을 보면서도 참 귀하다, 참 진실하다. 그리고 인내로 계속한다며 인정이 된다.
다시 말하면 모든 공회들은 일부 장점과 일부 약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알고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그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가, 그 반대인가. 또는 그 기우는 추세가 어느 쪽을 향하는지 문제다. 서로 돌아 올 수는 있다.
1990년 가을, 대구공회의 백태영 이재순 두 흐름에 충돌을 접하고 나는 부산공회가 이재순 계와 하나 될 길을 찾자고 했다.
모두의 눈치는 뻔했다. 대구공회 일부가 돌아 올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대구공회 일부와 하나 되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엇다.
나는 지도부에게 평생 잊혀 지지 않을 표현을 던져 버렸다. 그런 언행 때문에 평생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가 돌아 올까 싶어 대문을 용접해 버리자는 심보! 나간 둘째가 집을 지킨 첫째보다 낫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떠들었다.
당시 내 눈에는 대구공회의 이재순 계열이 돌아 온다면 또는 부산공회와 하나가 된다면 호랑이 없는 골에 여우 꼴로 보였다.
백 목사님 사후 갑작스런 사태를 겪으며 교회의 분쟁과 분리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엉겁결에 대구공회에 선 분들이 많다.
그런데 신앙과 실력은 부산공회 대부분보다 나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실 부산공회에 선 분들의 대부분은 공회를 몰랐다.
서부교회 후임 이재순, 백 목사님의 큰 사위 최재현, 양성원에 서영호... 지도부조차 줄줄이 공회를 모르거나 싫은 분들이다.
김삼암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이 돌아 가셨고 그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백태영을 추종하겠다고 버텨 애를 태웠다.
지금 부공4는 모두 김삼암 추종 세력이다. 지금 부공2는 서영호의 제자들이다. 희귀종이 되었으나 부공1은 최재현 식이다.
이들로서 대구공회와 나뉘며 그들의 선배나 지도급 인사 대부분이 자기들 발로 대구공회가 되자 어느 날 횡재를 한 것이다.
갑자기 총공회장, 부총공회장, 노소원위원장, 위원, 양성원의 하다 못해 직원 한 자리까지 꿰 차게 되었다. 고기 맛을 봤다.
벽에 빈대도 남겨 놓지 않을 상황이다. 자기 교인은 몇 되지 않으나 '총공회'적 간판으로 설치는 일에 마치 프로가 된 듯했다.
대구공회 안에서도 부산공회와 기본 방향이 같은 분들이 들어 오거나 합하게 되면 부산공회 간부들은 모두 밀려 날 판이다.
이제는 공회라는 그 몇 되지 않는 교회들의, 그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간판, 몇 안 되는 형제를 좌우하는 그 초라한 권력..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그런 자리 다툼에 이미 맛 들이고 공을 들이고 벌써 계파 별로 세를 만들려 했으니 재회는 어려웠다.
대구공회인들 크게 다를까? 그 안에서 양심을 가지고 본 분들이면 대구공회가 더 심했다고 말을 해야 양심이 아니겠는가?
합동과 통합 교단처럼 전국에 1만 개 교회에 수백 만 명의 회원, 종합대학교 등을 놓고 싸우는 것은 세상이 봐도 판이 크다.
고신만 해도 뻔히 알 만한 사람들끼리 뒷골목 상권 다툼 밖에 되지 않는다. 공회는? 구멍가게조차 되지 않는 거지 좌판이다.
모이고 합해도 얻어 먹지 못하고 굶어 죽을 수준인데 '총공회' '위원장' 이런 간판에 눈이 가려 귀한 이 노선을 흩어 버렸다.
대구공회, 또는 그 곳으로 간 분들 중에 30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 노선의 귀한 자세와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감사하다.
이제 대구공회와 부산공회만은 다시 만나야 하지 않을까? 교회라 해 봐야 10명 수준이 대부분이고 많아야 겨우 몇 십이다.
그런데 본 교회를 떠나면 비록 다른 공회라도 공회 교회로 안내하면 좋겠는데 서로가 차라리 타 교단으로 밀어 내 버린다.
대구공회가 보면 부산공회가 총공회를 떠났다고 표현한다. 부산공회는 그 반대다. 누가 옳은지는 나중에 살펴 보면 안다.
부산공회 거의 전부가 가만히 넘어 온 분들이 아닌가? 현재 부산공회원치고 실명으로 그렇지 않다 할 분이 있을까? 없다.
이 노선 의미는 역사적이다. 이 것은 틀림 없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고 나라가 망해도 이스라엘만 이스라엘이다.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은 천하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삼켰다 해도 그들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회만 공회다.
부산공회 안에 있다 해도 공회적인 인물과 공회적 신앙과 공회적 요소만 공회다. 공회적이지 않은 부산공회는 교계 것이다.
대구공회 안에 있다고 대구공회는 총공회라고 걸어 놓고 있다. 대구공회 안에서도 공회적인 것만 공회다. 공회는 존재한다.
보이는 공회들이 자기 속에 있는 보이지 않은 공회를 인질로 잡고 있다. 잡히는 것도 바보지만 잡히는 줄 아는 것도 바보다.
타 교단은 이런 논리가 공리에 그친다. 공회는 바로 이런 논리가 공회가 되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 졌다. 참 보배롭다.
문제는 보석인지 자갈인지 모르고 발로 차 내는 지도부들이 안타깝다. 부산공회 안에서는 1990년부터 이렇게 말을 했다.
부공3이 부공1이나 2에게 배척 된 이유 중 하나는 대구공회에 대한 인식 문제다. 대구공회는 그 것도 모르고 이 쪽만 친다.
대구공회 쪽에, 또는 그 곳에서 더 멀리 간 듯 보이는 몇몇 분들의 설교를 접하며 이 글을 적지 않을 수 없었다.
백 목사님 자녀들의 설교 평가는 그 기준이 굉장히 높다. 백태영의 설교도 쉽게 볼 정도였으나 아들 설교에는 모두 놀랐다.
30여 명이 함께 했을까? 모두가 감격스러웠다. 설교 외적 모습과 인품까지 목회자로서 갖추지 못한 것이 없다 할 정도였다.
공회의 앞 날에 아주 큰 인물의 등장이었고 잠실동교회와 그 주변 목회자나 교회들에게 공회 노선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교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건하고 산뜻하며 모두가 경청하게 만들면서 설교의 내용은 공회 말씀과 은혜를 참 잘 담고 있었다.
그의 부친 백태영 목사님은 힘 있게 끌고 나가는 면은 탁월하나 곳곳에 빈 곳이 많았다. 냉철한 지성인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 날 참석한 분 중에는 기장 출신의 유명한 학자도 있었다. 공회에 대단히 비판적이었으나 이 설교에는 감탄할 뿐이었다.
그가 설교의 원문으로 삼은 내용은 백영희 설교록이다. 그는 백영희 설교록을 가진 우리는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그 분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 그는 일반 신학의 기준으로 우수하지 못했다. 설교록 외 대안은 없는 분이다.
그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또는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 외 모든 면을 다 고려해도 이 노선 이 설교만 붙들 분이었다.
배경이 공회 핵심이면서 공회 밖에 모르는데 그가 외부에서 배울 것도 또 도입할 수 있는 것도 없다면 오직 이 길일 것이다.
좋든 싫든 나와는 온도 차이만 날 뿐이지 어떻게 하든 크게 보면 이 노선 안에서 서로의 위치는 다르나 함께 갈 것으로 봤다.
오늘 그 분은 공회 역사도 흔적도 안팎으로 완벽하게 지웠다. 그의 변신이 그렇게 뛰어 날 줄은 몰랐다. 역시 위대한 분이다.
20대의 그 분을 현재 60대까지 지켜 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목사님 사후에 나뉜 대구공회를 늘 그 분의 궤적에서 짐작했다.
전수 조사는 어려운 것이지만 인터넷이나 공회적 특별한 기회 때문에 아주 가끔 추세를 볼 수 있었으나 늘 같은 생각이었다.
최근 여러 사정으로 목사님 사후 대구공회가 되었거나 대구공회보다 더 멀리 간 분들의 설교를 접할 수 있었다. 은혜로웠다.
나뉘고 나면, 그 이후에 가속이 붙는 법이다. 신앙의 생명성 때문에 또 탈선의 배경에 악령의 끌어 가는 방식 때문에 그렇다.
바로 이런 이치 때문에 또 교회사를 주로 살피다 보니 교회사적 현상 때문에 나는 그들의 훗날을 굳이 보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최근 여러 기회로 접한 분들을 유튜브로 살필 수 있었다. 설교를 쉽게 접하면서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방향은 달리 잡았고 일하는 위치와 내용은 달라 보이지만 대구공회의 길에 선 분들 중에 자세와 내용이 좋은 분들이 계셨다.
부산공회들은 설교록을 문자 그대로 짚어 가며 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자세와 중심은 전적 동감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지금 부산공회 안에서는 더욱 발전을 했어야 하는데도 그런 경우를 거의 접할 수가 없다. 더 나은 방법 안에 안주를 했을까?
대구공회 범위는 전체 방향은 기본적으로 우려스럽다. 그러나 곳곳에 세월을 통해 이 노선의 이유를 지켜 내는 분들이 있다.
설교를 두고는 꼭 한 분을 소개하고 싶지만 그 분이 어색하게 생각할까 싶어 나의 주변 수십 명에게 개인적으로만 소개했다.
또 공회의 주요 사안에 대한 자세와 처리 과정을 보면서도 참 귀하다, 참 진실하다. 그리고 인내로 계속한다며 인정이 된다.
다시 말하면 모든 공회들은 일부 장점과 일부 약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알고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그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가, 그 반대인가. 또는 그 기우는 추세가 어느 쪽을 향하는지 문제다. 서로 돌아 올 수는 있다.
1990년 가을, 대구공회의 백태영 이재순 두 흐름에 충돌을 접하고 나는 부산공회가 이재순 계와 하나 될 길을 찾자고 했다.
모두의 눈치는 뻔했다. 대구공회 일부가 돌아 올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대구공회 일부와 하나 되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엇다.
나는 지도부에게 평생 잊혀 지지 않을 표현을 던져 버렸다. 그런 언행 때문에 평생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가 돌아 올까 싶어 대문을 용접해 버리자는 심보! 나간 둘째가 집을 지킨 첫째보다 낫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떠들었다.
당시 내 눈에는 대구공회의 이재순 계열이 돌아 온다면 또는 부산공회와 하나가 된다면 호랑이 없는 골에 여우 꼴로 보였다.
백 목사님 사후 갑작스런 사태를 겪으며 교회의 분쟁과 분리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엉겁결에 대구공회에 선 분들이 많다.
그런데 신앙과 실력은 부산공회 대부분보다 나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실 부산공회에 선 분들의 대부분은 공회를 몰랐다.
서부교회 후임 이재순, 백 목사님의 큰 사위 최재현, 양성원에 서영호... 지도부조차 줄줄이 공회를 모르거나 싫은 분들이다.
김삼암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이 돌아 가셨고 그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백태영을 추종하겠다고 버텨 애를 태웠다.
지금 부공4는 모두 김삼암 추종 세력이다. 지금 부공2는 서영호의 제자들이다. 희귀종이 되었으나 부공1은 최재현 식이다.
이들로서 대구공회와 나뉘며 그들의 선배나 지도급 인사 대부분이 자기들 발로 대구공회가 되자 어느 날 횡재를 한 것이다.
갑자기 총공회장, 부총공회장, 노소원위원장, 위원, 양성원의 하다 못해 직원 한 자리까지 꿰 차게 되었다. 고기 맛을 봤다.
벽에 빈대도 남겨 놓지 않을 상황이다. 자기 교인은 몇 되지 않으나 '총공회'적 간판으로 설치는 일에 마치 프로가 된 듯했다.
대구공회 안에서도 부산공회와 기본 방향이 같은 분들이 들어 오거나 합하게 되면 부산공회 간부들은 모두 밀려 날 판이다.
이제는 공회라는 그 몇 되지 않는 교회들의, 그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간판, 몇 안 되는 형제를 좌우하는 그 초라한 권력..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그런 자리 다툼에 이미 맛 들이고 공을 들이고 벌써 계파 별로 세를 만들려 했으니 재회는 어려웠다.
대구공회인들 크게 다를까? 그 안에서 양심을 가지고 본 분들이면 대구공회가 더 심했다고 말을 해야 양심이 아니겠는가?
합동과 통합 교단처럼 전국에 1만 개 교회에 수백 만 명의 회원, 종합대학교 등을 놓고 싸우는 것은 세상이 봐도 판이 크다.
고신만 해도 뻔히 알 만한 사람들끼리 뒷골목 상권 다툼 밖에 되지 않는다. 공회는? 구멍가게조차 되지 않는 거지 좌판이다.
모이고 합해도 얻어 먹지 못하고 굶어 죽을 수준인데 '총공회' '위원장' 이런 간판에 눈이 가려 귀한 이 노선을 흩어 버렸다.
대구공회, 또는 그 곳으로 간 분들 중에 30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 노선의 귀한 자세와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감사하다.
이제 대구공회와 부산공회만은 다시 만나야 하지 않을까? 교회라 해 봐야 10명 수준이 대부분이고 많아야 겨우 몇 십이다.
그런데 본 교회를 떠나면 비록 다른 공회라도 공회 교회로 안내하면 좋겠는데 서로가 차라리 타 교단으로 밀어 내 버린다.
대구공회가 보면 부산공회가 총공회를 떠났다고 표현한다. 부산공회는 그 반대다. 누가 옳은지는 나중에 살펴 보면 안다.
부산공회 거의 전부가 가만히 넘어 온 분들이 아닌가? 현재 부산공회원치고 실명으로 그렇지 않다 할 분이 있을까? 없다.
이 노선 의미는 역사적이다. 이 것은 틀림 없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고 나라가 망해도 이스라엘만 이스라엘이다.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은 천하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삼켰다 해도 그들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회만 공회다.
부산공회 안에 있다 해도 공회적인 인물과 공회적 신앙과 공회적 요소만 공회다. 공회적이지 않은 부산공회는 교계 것이다.
대구공회 안에 있다고 대구공회는 총공회라고 걸어 놓고 있다. 대구공회 안에서도 공회적인 것만 공회다. 공회는 존재한다.
보이는 공회들이 자기 속에 있는 보이지 않은 공회를 인질로 잡고 있다. 잡히는 것도 바보지만 잡히는 줄 아는 것도 바보다.
타 교단은 이런 논리가 공리에 그친다. 공회는 바로 이런 논리가 공회가 되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 졌다. 참 보배롭다.
문제는 보석인지 자갈인지 모르고 발로 차 내는 지도부들이 안타깝다. 부산공회 안에서는 1990년부터 이렇게 말을 했다.
부공3이 부공1이나 2에게 배척 된 이유 중 하나는 대구공회에 대한 인식 문제다. 대구공회는 그 것도 모르고 이 쪽만 친다.
대구공회 쪽에, 또는 그 곳에서 더 멀리 간 듯 보이는 몇몇 분들의 설교를 접하며 이 글을 적지 않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