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명백한 첫 고범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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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7 00:00
제일 확실하게 고의로 지은 첫 죄는 8세로 기억이 되는 주일학교 첫 해였습니다.
이 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저희 집의 위치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죄를 지을 때의 장소적 상황이 이 죄를 짓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선명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거창의 시내 제일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집에서 200 미터 내에 모든 관공서와 은행과 공공시설 거의 전부 그리고 병원과 시내의 중심 상가까지 다 밀집해 있었습니다. 출석하던 교회와 공립 초등학교도 그 거리 안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주일학교 입학도 정식으로 했고 주일학교를 다닌 지 몇 달이 되지 않았던 어느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주일은 온 집안과 주변 상황까지 웬만한 명절을 맞는 느낌으로 모든 환경이 바뀝니다. 신앙에 상관 없이 주일은 눈에 보이는 주일이었습니다. 여느 때 주일처럼 평일과 아주 다른 분위기에서 아침을 먹고 교회를 가기 위해 나서는 제 손에는 연보 1 원이 주어 졌던 것같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영화 관람비가 5원인데 학교 단체로 가면 3원이었고 초등학교 육성회비가 월 15원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주간에 무조건 손에 쥐어 주신 돈이 주일의 연보였고 그 외의 용돈은 집안의 박한 인심 때문에 거의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며 글이 눈에 들어 오게 되면서 제 눈을 가장 끌고 있었던 것은 만화 가게였습니다. 만화 가게 하나는 집의 대로가 맞은 편에서 50미터 정도 왼 쪽에 있었고 하나는 옆 문을 통해 1백 미터 정도 길이의 뒷골목을 나서면 바로 오른 쪽에 있었습니다. 1원은 그 만화 가게에 들어 가서 만화를 볼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어떻게 한 번 만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곳은 천국이었고 학교와 교회는 가라니까 가는 곳이었습니다. 그 날 아침 어머니께서 연보를 손에 쥐어 주시는데 그 순간 내 마음에는 만화방이 너무 강렬하게 보였습니다. 주일 아침에는 모두 일어 나면 씻고 아침을 먹고 옷을 차려 입으면 교회 가는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연보를 일일이 나눠 줍니다. 다른 때는 무심코 받았고 무심코 교회를 갔고 무심코 연보를 했는데 이 날만은 너무 강하게 만화방이 내 마음에 떠 올랐습니다. 연보를 받아 쥔 마루에서 바깥 대문까지 거리는 30 미터 정도였습니다. 집이 큰 편이어서 문이 2 개였고 바깥 문과 안 문의 거리가 20 미터입니다. 집 안에서 연보 돈을 손에 쥐고 첫 대문을 향해 걸어 가는 그 순간 내 마음에는 엄청 난 폭풍이 몰려 오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함께 가야 하는 형이 있는데 일단 미거적 거리며 먼저 가라고 따 돌렸고 눈치를 보며 조금 뒤에 나가면서 첫 문을 열고 나서니 바깥 대문과 첫 문 사이에는 저 밖에 없었습니다. 바깥 문을 열고 발을 딛는 순간 제 마음에는 이 돈으로 만화방에 가자는 억센 힘이 저를 낚아 채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 잠깐 양심에 큰 가책을 느꼈습니다. 태어 나고 처음 제대로 된 양심 가책, 죄책감이 각인 되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식간에 2 회 정도 갈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은 눈을 딱 감고 교회로 가야 할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고 만화방을 향해 왼 쪽으로 몸을 틀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에 제 마음 속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괜히 골이 났던 것입니다. 만화방을 향하는 데 제 마음을 가로 막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아는 것도 아니고 말한 것도 아니고 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혼자 몰래 빠져 나가는데 왜 괜히 분이 내 마음에 차 올랐을까!
제가 출석한 창동교회는 제 부모님이 개척했고 첫 예배가 저희 집 마루였고 넓은 마당 한 곳에 천막을 치고 예배당을 마련했고 이후 천막 대신에 벽돌을 찍어 20여 평 예배당도 바로 저희 집 안의 입구 쪽 마당에 건축 되어 졌습니다. 저희 집에서 4~5년 유지 되던 교회는 교인이 많아 지면서 집에서 200 미터 정도 떨어 진 저희 부친이 운영하던 양혜원이라는 나환자 마을이 사둔 땅으로 이전하였는데 현재 이 상황은 제가 그 이전한 예배당으로 가던 순간이었습니다. 주일학생도 30여 명이나 되었을까, 50 명이 넘지 않을 때였고 반사라고 해도 모두 집안 식구들이거나 그 비슷한 관계의 분들이었습니다.
교회로 가는 길의 반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총총 걸음으로 만화방을 향했는데 골목이 약간 휘어 져 있었기 때문에 30 미터는 가야 저희 집 대문 쪽에서 저를 보지 못합니다. 이 구간에 식구 중에 저를 봤다면 모른 척 하고 돌아 왔을 것인데 일단 30 미터를 벗어 나자 이제는 만화방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소망이 강하게 생겼습니다. 어린 나이여서 그 길은 짧지 않았고 죄를 지으러 가는 걸음이었으므로 그 짧은 거리는 평소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골목 끝이 보일 때쯤 이제 편한 마음으로 오늘 만화를 잘 보겠다고 안심이 되어 졌습니다. 만화 가게는 5 평은 더 될 것 같고 10 평은 되지 않은 작은 공간입니다. 연보돈을 꺼 내어 제일 안쪽의 책상에 앉아 있던 주인에게 건넸습니다. 그 시간에 처음 보는 아이였으니 주인도 이상했을 것이고 분명히 오지 말아야 할 상황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혼자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더 자세히 적으려면 정밀 묘사가 어느 정도 가능할 만큼 제 기억에 선명합니다. 1964년의 늦은 봄이었을 것입니다. 교회를 빼고 연보 돈으로 만화를 봤다면 저희 집에서는 강도 사건처럼 처리 될 일인데 이상하게 그 날 일은 문제가 되지 않고 넘어 갔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거나 그냥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지나 쳐 진 일이 되었습니다. 외부적으로 큰 문제는 되지 않았으나 그 날에 저는 범죄, 고범죄, 양심 가책, 죄를 짓는 순간에 내면에 일어 나는 심리 현상을 너무 생생하게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50 년 전의 그 때 죄를 가지고 이후 어떤 죄든 그 때의 상황을 잣대로 삼고 비교해 보면 같았습니다.
우선 어떻게 그렇게 시야가 좁혀 졌는지? 확실하게 죄였고 양심에 명백하게 틀렸고 죄를 짓고 나면 탄로 난다는 것은 너무 환했는데 제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죄에 붙들리면 그렇게까지 사람의 눈이 어두워 진다는 것을 체험한 후 세상 죄나 신앙의 죄 때문에 큰 사건이 들릴 때마다 저는 그 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대형 범죄라고 말하는 그 죄를 짓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 가서 그들과 동감하며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 날의 나는 향후 살인죄처럼 그 어떤 종류의 죄든지 제게는 어느 날 순식간에 다가 와서 저를 장악하고 주저 할 것 없이 바로 멸망의 끝 장에 던져 질 수 있음을 늘 실감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것이 싫고 그 경험을 가지고 이후에 착한 학생이 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회상은 훗날 신앙이 들었을 때 일이고 일단 그 날은 정말 큰 양심의 가책을 처음 느끼면서 순식간에 범죄 현장으로 일편단심 몰입하고 달려 갔고 그리고 범행을 마무리 하고 집에 돌아 왔던 그 모든 일들에 대한 기억과 당시 기준의 느낌을 오늘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