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징조', 세상의 '전조 증상'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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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성경의 '징조', 세상의 '전조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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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죽어 가는 과정)

* 세상 만사에는 전조 증상이 있다.
어느 날 식물 인간이나 반신 불수 또는 갑자기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 질병의 대표적인 것이 뇌졸중이다.
뇌혈관이 갑자기 막혀 순간 끝이 나거나 뇌혈관이 터져 버리면 대개 더 치명적이다. 그런데 사전 경보가 있다 한다.
손발의 끝이 저리거나 갑자기 말이 어눌하고 앞이 절반 가리거나 어지러운 경우 등이다. 하나님이 주신 조기 경보다.

국가가 망하려면 조세 제도가 붕괴가 된다. 지도자는 총체적으로 부패해 지고 국민들은 좌절하고 흩어 진다.
제국이 망할 때도 그런 전조 현상이 먼저 일어 난다. 역사를 통해 그런 사례를 모아 보면 사회학의 진리가 나온다.
인체와 국가가 붕괴 될 때는 전조 현상을 주신 하나님께서 교회와 우리의 신앙에는 전조 현상을 조지 않았을까?


* 성경은 전조 증상을 징조라 한다.
인체도 국가도 가정도 부부도 자라 가는 과정이 있고 내려 앉을 때는 경고가 있고 순서를 밟게 해 놓았다.
하물며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어느 날 덜컥 끝을 내지 않는다. 반드시 미리 알리고 준비할 기회를 넘치게 주신다.

교회가 붕괴 될 때는 이런 과정이 있다.
* 목회자, <지도자의 붕괴>가 먼저 있다. 구약에는 온 국민이 신약에는 온 교인이 부패해도 지도자가 건재하면 된다.
구약의 전 신하와 백성이 깨어 있고 신약에는 전 교인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지도자가 붕괴되면 끝이 난다.

* 목회자 붕괴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목회자의 <예배> 인도와 목회자의 <생활 붕괴>가 반드시 선행 된다.
예배의 횟수와 예배의 시간이 줄고 예배의 은혜가 식어 지며 목회자의 일상 생활이 흐트러 지면 징조가 된다.

* 한 교회의 예배가 붕괴 될 때는 반드시 예배의 겉 모습은 멀쩡한데 예배 안에 <말씀의 은혜>가 먼저 식어 진다.
말씀의 은혜가 식어 지는데 예배가 뜨거워 진다면 이는 불건전한 불파나 비성경적 세상 요소가 대신 한 것이다.

* 목회자 설교는 예전과 같아 보이나 목회자에게 긴장 조심 목회자의 <가정과 생활의 붕괴>가 오면 은혜가 떠난다.
경력으로 실력으로 선천적 말 솜씨로 아무리 강단을 치며 열변을 토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은혜가 없다.
교인을 만나지 않는 평소 생활에서 또 목회자가 처자식에 대한 가정 생활에서 후퇴가 오면 설교 은혜가 식는다.

* 목회자의 평소 마음 가짐과 목회자가 처자식과의 일상 생활에서 신앙이 식어 지는 것, 이 것은 알아 내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아주 감출 수는 없다. 이런 것은 콕 찍어서 말을 하지 못하나 어느 정도 감으로 느껴 지는 사안이다.
가족 사랑이 교인 사랑보다 앞 서는 경우, 가족을 위해 교인을 희생 시키는 경우, 알아 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목회자의 <평소 마음과 생활의 자세>가 예배 외의 평소에도 늘 긴장이 되어 있는지? 이 것도 알기는 어렵지 않다.

즉, 평소 일상 생활에서 목회자에게 늘 뜨거운 사명과 불 타는 열심이 있다면 '긴장'하며 '조심'하는 목회자이다.
'교회'를 맡았다는 위치와 사명 때문에 자기 가족과 교인이 맞설 때 교인을 우선하는 것은 모든 직업에서 상식이다.
이런 면이 어느 정도 깨어 있다면 이런 목회자는 가정이 조용할 날이 없다. 교인들에게 감출 수 없이 표시가 난다.
또 긴장하고 매사 조심하는 목회자는 옷 차림과 얼굴 빛과 그의 일정에서 걸음 걸이에서는 그냥 드러 나게 된다.



목회자가 깨어 있다면 그 목회자가 아무리 실수가 많고 어리고 탈을 낸다 해도 하나님께서 수습하며 길러 간다.
세월 속에 자꾸 좋게 변화 된다. 요16:21에서 신앙의 새로운 사람을 자기 속에 가지게 되면 고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고난 끝에 자기 속에 새로운 생명이 무사히 출발하게 되면 그 기쁨 때문에 그 동안의 고난을 잊게 된다.


설교의 횟수 시간 내용이 줄어 들면 이 때는 불신자라도 점검할 수 있을 정도다. 간경화가 얼굴에 나타난 정도다.
이미 이 설교자를 되 살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난 날을 전부 돌이 켜야 하는데, 대개는 거의 어렵다.
도덕 설교와 상식이나 전하고 시간이나 때우고 있는가? 뭔지 소리는 높아도 그 속에 말씀에 맺히는 것이 없는가..
간이나 신장이나 어느 내장이 나빠 진다 해도 초기에 얼른 대처하면 소리 없이 복구가 가능하다. 늦으면 곤란하다.

대형 교회의 목회자가 외부에 다녀야 할 일정 때문에 강단을 비우는가, 일정은 은혜로운데 내용도 은혜로운가?
교회의 경제와 시스템이 목회자를 잘 뒷받침하여 무대 위 공연을 위해 일사분란한데, 뭔가 연출에 그치지 않는가?
소형 교회의 환경이 열악하여 교인을 일일이 돌보고 예배당 운영에 손발이 닳다 보니 목 소리는 잠기고 있지만..
그의 활동과 얼굴 빛과 그 꺼져 가는 목 소리 안에 날카로운 진리의 구별과 주님을 향한 열정은 펄펄 살아 있는가?

이 글을 읽은 교인들이 이런 기준으로 자기를 판단할까 싶어 열정을 보이려고 애를 쓰면 해결이 될까?
뒤로 술을 퍼 마시고 아침에 간장약을 먹어 해독하면 해결이 될까? 되지 않을 듯 싶다.
이 글은 누가 어디에 해당한다는 것을 적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다 해당이 된다고 생각하면 적고 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해결이 될지를 위해 적었다. 목회자의 평소 생활과 마음의 자세, 여기에서 승패는 갈린다.


교인을 만나지 않는 평일의 하루, 가족과의 일상, 지도자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일정과 마음..
주님은 그 때 들여다 보신다. 교인이 직접 지켜 보는 주일이나 예배 시간에야 무슨 술 잔을 기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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