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 안팎을 거쳐 간 '극단주의' '신보수주의'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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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5 21:35
큰 소리를 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습관이 되면 'ㄱ ㅐ'가 된다. 짖으면 뭔가 개운하다. 떼로 모여 짖으면 더욱 개(운하)다.
만사 고함부터 지른다. 왜 짖었는지 정작 잘 모른다. 천국에 가지 못하는 계22:15의 개는 犬이 아니라 그런 언행을 말한다.
한 때 세상이 우로 치우쳐 발전만 하고 그리고 벌기만 하면 좋은 줄 알았다. 그 반발로 수십 년 동안 좌로 치우 쳐 왔었다.
요즘은 중앙의 정로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역사 발전을 놓고 보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치우 친 점이 많다.
공회는 일제 때 소리 없이 신사참배 6년을 이겼다. 전 교인이 모두 예배를 다 드리며 신사참배도 황거요배도 하지 않았다.
6.25 점령 기간에 공회의 교회들은 예배를 지켜 냈다. 자랑하지 않았고 알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공회 교회들만 그러했다.
교계에는 신사참배나 6.25 전쟁에서 나온 영웅담이 많았다. 손양원 주남선의 특별한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소리만 많았다.
승리를 했다는 소리가 전국에 많았으나 대부분은 그냥 짖어 대는 소리였다. 요즘은 실패한 이들이 승리했다고 난리들이다.
그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공회의 이야기는 영웅을 넘어 서고 전설을 넘어 서고 신화 수준이다. 세월 속에 우리는 침묵했다.
자라 나는 2 세와 3 세들 때문에 역사 기록을 해 봤다. 백 목사님 사후에야 가능했다. 생전에는 사실상 금지 조처가 있었다.
환란을 겪은 이야기, 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세월 속에 걸어 온 이야기.. 교계에는 흔하다. 넘친다. 공회와 비교는 못한다.
그래서 공회가 조용하니 모두가 소리를 내다가 공회와 접하게 되면 어느 교파 어느 인물 어느 신학자도 일단 입을 닫는다.
광기 수준의 순복음보다 공회는 더욱 이른 시기에 덕유산을 뒤흔던 불파였다. 신앙의 출발과 자라 가는 과정에 그러했다.
세계 개혁주의의 한국 제일 중심이라는 고신 안에서 가장 개혁주의 칼빈주의는 공회였다. 자라 가는 중간에 우리는 그랬다.
김현봉으로 유명한 한국의 경건주의가 60년대를 거치며 급격히 사라 질 때 공회의 경건은 도를 더했고 점점 깊어 갔었다.
순복음교회의 전도가 세계적일 때 공회는 장년반보다 더 어려운 주일학생을 상대로 장년반 예배를 드리며 기록을 세웠다.
우리는 우리를 몰랐다. 외부에서 이런저런 기회에 우리를 평가했고 비판했고 또는 소개했다. 외부에 의해서 알려 졌었다.
알려 진 공회 기록은 그 방면의 어디와 비교해도 강했고 깊었다. 각 방면에 센 노선과 접해 보면 상대방은 스러 져 버렸다.
개혁주의는 청교도를 외치며 그들의 신앙 첫 모습은 술 담배를 금하고 주일을 지키며 남녀 문제가 정결한 그런 모습이다.
이 분야의 최고의 지도 위치에 있는 유명 지도자들, 적지 않게 그들은 공회와 연관이 있었다. 그들은 주로 말로만 그렇다.
신사참배의 환란을 겪은 출옥성도들, 그들은 공회의 일반 교인들이 겪은 환란을 지켜 보며 교계에 이런 소식을 전했다.
박윤선의 초기 제일 강한 제자가 백영희다. 그리고 박윤선은 별세 직전에 백영희를 찾았다. 지난 날을 함께 회고 했다.
박윤선을 단순히 답습하는 이들은 모르는 세계다. 이인재의 문상문 사모님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이다. 국내 몇 손가락 꼽는 교회에 남겨 있는 역사다. 박윤선 이인재는 종신을 동행했다. 공회와 그런 사이다.
1 세대 백 목사님이 가신 뒤, 교인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연구소는 자료를 찾았고 정리했고 사이트에 그대로 모두 공개했다.
그 자료들 때문에 세계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국내의 여러 극보수 교회들이나 신앙 운동인들은 대부분 이 곳을 접해 왔었다.
최소한 10 여 곳은 넘을 듯하다. 수십 곳까지는 자신이 없다. 남산 밑에 하도 유명한 곳이 있어 직접 찾아 가 본 적이 있었다.
마침 그 곳 대표가 계셨다. 연구소 직원이라며 대화를 청하자 황급히 자리를 떠 버렸다. 출간도 많이 했고 유명한 분이었다.
몇 번 이런 일을 겪고 나서는 상대에게 미안해서 어디에 아주 신앙적이고 철저하고 굉장하다는 곳이 있어도 찾지를 않았다.
그들은 이 곳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발 떨어 져 마음 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외부로 활동했고 우리는 조용했다.
그러다 사이트 운영 때문에 알려 지기 시작하자 어두움 속에 빛이 들어 가면서 동굴 내부가 갑자기 정리가 되는 모습이었다.
주일을 철저히 지킨다는 곳, 환란을 목숨 걸고 지킨다는 곳, 칼빈 신앙에 철저하다는 노선, 타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곳들..
모두 이 노선이 동지로 생각할 곳이어서 배울 것이 있을지 또는 우리와 얼마나 같은지가 궁금해서 찾아 나섰다가 말았다.
가장 깊이 느꼈고 감사한 곳이 지방교회였다. 이 분들은 양심이 있었고 우리와 모든 면에서 가장 가까왔다. 역사도 깊다.
다른 곳은 그냥 젊은 사람들이 한 번씩 대다 질러 본 셈이었다. 너무 강하게 외치는 분들, 요즘은 사이트로 파악이 된다.
WCC를 그처럼 비판한 곳치고 아직 WCC와 뒤로 연결을 하지 않은 곳을 보지 못했다. 뒤로는 손을 잡고 앞에서만 비판한다.
곳곳에 젊은 분들이, 주일도 지키지 않으면서 주일 성수를 너무 강하게 주장한다. 주장은 맞지만 자기들은 지키지도 않는데.
곳곳에 소장파 학자들이, 학자가 맞기는 맞는지도 모르겠다. 자기들은 WCC와 교류하면서 WCC를 그토록 비판하고 있다.
비판을 하려면 함께 하지를 말든지. 심지어 그들의 소속 교단은 WCC의 핵심인 통합 기장과 과거도 지금도 동업을 한다.
앞에서 강하게만 말하면 일단 솔깃하고 따르는 이들이 있다. 종교 장사에는 도움이 될 듯하다. 장사만 되면 되는 것인가?
1 년을 잘 믿을 수는 있다. 10 년을 그 길을 주장하고 그 길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몇십 년이 겹치게 되면 다 드러 난다.
3 일 춘향은 쉽다고 한다. 3 일 효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큰 소리! 강한 소리! 소리에 이끌리는 것이 안타깝다.
공회 안에도 서로 공회 노선을 지킨다고 모두들 말이 많았다. 그리고 세월이 열매를 통해 입증해 주고 있다. 소리뿐이었다.
이왕이면 옳은 말이 좋다. 이왕이면 옳은 주장을 강하게 외치면 더 좋다. 그러나 자기부터 그렇게 지켜 낼 것인지 봐야 한다.
길을 택할 때, 노선과 소속을 정할 때, 하루 팔고 사라 질 행상인가 장똘뱅인가 아니면 오랜 세월 거래 할 장사인지 봐야 한다.
유튜브까지 난무하며 호객을 한다. 호객이 심하다 보니 화면에 단 몇 분의 영상과 표현으로 마치 늘 그런 것처럼 흡인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수히 빨려 가니 더욱 가속이 붙는다. 이 신앙, 이 노선은 차분하게 지켜 본다. 조용히 따져 본다. 조용하게..
만사 고함부터 지른다. 왜 짖었는지 정작 잘 모른다. 천국에 가지 못하는 계22:15의 개는 犬이 아니라 그런 언행을 말한다.
한 때 세상이 우로 치우쳐 발전만 하고 그리고 벌기만 하면 좋은 줄 알았다. 그 반발로 수십 년 동안 좌로 치우 쳐 왔었다.
요즘은 중앙의 정로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역사 발전을 놓고 보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치우 친 점이 많다.
공회는 일제 때 소리 없이 신사참배 6년을 이겼다. 전 교인이 모두 예배를 다 드리며 신사참배도 황거요배도 하지 않았다.
6.25 점령 기간에 공회의 교회들은 예배를 지켜 냈다. 자랑하지 않았고 알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공회 교회들만 그러했다.
교계에는 신사참배나 6.25 전쟁에서 나온 영웅담이 많았다. 손양원 주남선의 특별한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소리만 많았다.
승리를 했다는 소리가 전국에 많았으나 대부분은 그냥 짖어 대는 소리였다. 요즘은 실패한 이들이 승리했다고 난리들이다.
그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공회의 이야기는 영웅을 넘어 서고 전설을 넘어 서고 신화 수준이다. 세월 속에 우리는 침묵했다.
자라 나는 2 세와 3 세들 때문에 역사 기록을 해 봤다. 백 목사님 사후에야 가능했다. 생전에는 사실상 금지 조처가 있었다.
환란을 겪은 이야기, 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세월 속에 걸어 온 이야기.. 교계에는 흔하다. 넘친다. 공회와 비교는 못한다.
그래서 공회가 조용하니 모두가 소리를 내다가 공회와 접하게 되면 어느 교파 어느 인물 어느 신학자도 일단 입을 닫는다.
광기 수준의 순복음보다 공회는 더욱 이른 시기에 덕유산을 뒤흔던 불파였다. 신앙의 출발과 자라 가는 과정에 그러했다.
세계 개혁주의의 한국 제일 중심이라는 고신 안에서 가장 개혁주의 칼빈주의는 공회였다. 자라 가는 중간에 우리는 그랬다.
김현봉으로 유명한 한국의 경건주의가 60년대를 거치며 급격히 사라 질 때 공회의 경건은 도를 더했고 점점 깊어 갔었다.
순복음교회의 전도가 세계적일 때 공회는 장년반보다 더 어려운 주일학생을 상대로 장년반 예배를 드리며 기록을 세웠다.
우리는 우리를 몰랐다. 외부에서 이런저런 기회에 우리를 평가했고 비판했고 또는 소개했다. 외부에 의해서 알려 졌었다.
알려 진 공회 기록은 그 방면의 어디와 비교해도 강했고 깊었다. 각 방면에 센 노선과 접해 보면 상대방은 스러 져 버렸다.
개혁주의는 청교도를 외치며 그들의 신앙 첫 모습은 술 담배를 금하고 주일을 지키며 남녀 문제가 정결한 그런 모습이다.
이 분야의 최고의 지도 위치에 있는 유명 지도자들, 적지 않게 그들은 공회와 연관이 있었다. 그들은 주로 말로만 그렇다.
신사참배의 환란을 겪은 출옥성도들, 그들은 공회의 일반 교인들이 겪은 환란을 지켜 보며 교계에 이런 소식을 전했다.
박윤선의 초기 제일 강한 제자가 백영희다. 그리고 박윤선은 별세 직전에 백영희를 찾았다. 지난 날을 함께 회고 했다.
박윤선을 단순히 답습하는 이들은 모르는 세계다. 이인재의 문상문 사모님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이다. 국내 몇 손가락 꼽는 교회에 남겨 있는 역사다. 박윤선 이인재는 종신을 동행했다. 공회와 그런 사이다.
1 세대 백 목사님이 가신 뒤, 교인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연구소는 자료를 찾았고 정리했고 사이트에 그대로 모두 공개했다.
그 자료들 때문에 세계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국내의 여러 극보수 교회들이나 신앙 운동인들은 대부분 이 곳을 접해 왔었다.
최소한 10 여 곳은 넘을 듯하다. 수십 곳까지는 자신이 없다. 남산 밑에 하도 유명한 곳이 있어 직접 찾아 가 본 적이 있었다.
마침 그 곳 대표가 계셨다. 연구소 직원이라며 대화를 청하자 황급히 자리를 떠 버렸다. 출간도 많이 했고 유명한 분이었다.
몇 번 이런 일을 겪고 나서는 상대에게 미안해서 어디에 아주 신앙적이고 철저하고 굉장하다는 곳이 있어도 찾지를 않았다.
그들은 이 곳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발 떨어 져 마음 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외부로 활동했고 우리는 조용했다.
그러다 사이트 운영 때문에 알려 지기 시작하자 어두움 속에 빛이 들어 가면서 동굴 내부가 갑자기 정리가 되는 모습이었다.
주일을 철저히 지킨다는 곳, 환란을 목숨 걸고 지킨다는 곳, 칼빈 신앙에 철저하다는 노선, 타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곳들..
모두 이 노선이 동지로 생각할 곳이어서 배울 것이 있을지 또는 우리와 얼마나 같은지가 궁금해서 찾아 나섰다가 말았다.
가장 깊이 느꼈고 감사한 곳이 지방교회였다. 이 분들은 양심이 있었고 우리와 모든 면에서 가장 가까왔다. 역사도 깊다.
다른 곳은 그냥 젊은 사람들이 한 번씩 대다 질러 본 셈이었다. 너무 강하게 외치는 분들, 요즘은 사이트로 파악이 된다.
WCC를 그처럼 비판한 곳치고 아직 WCC와 뒤로 연결을 하지 않은 곳을 보지 못했다. 뒤로는 손을 잡고 앞에서만 비판한다.
곳곳에 젊은 분들이, 주일도 지키지 않으면서 주일 성수를 너무 강하게 주장한다. 주장은 맞지만 자기들은 지키지도 않는데.
곳곳에 소장파 학자들이, 학자가 맞기는 맞는지도 모르겠다. 자기들은 WCC와 교류하면서 WCC를 그토록 비판하고 있다.
비판을 하려면 함께 하지를 말든지. 심지어 그들의 소속 교단은 WCC의 핵심인 통합 기장과 과거도 지금도 동업을 한다.
앞에서 강하게만 말하면 일단 솔깃하고 따르는 이들이 있다. 종교 장사에는 도움이 될 듯하다. 장사만 되면 되는 것인가?
1 년을 잘 믿을 수는 있다. 10 년을 그 길을 주장하고 그 길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몇십 년이 겹치게 되면 다 드러 난다.
3 일 춘향은 쉽다고 한다. 3 일 효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큰 소리! 강한 소리! 소리에 이끌리는 것이 안타깝다.
공회 안에도 서로 공회 노선을 지킨다고 모두들 말이 많았다. 그리고 세월이 열매를 통해 입증해 주고 있다. 소리뿐이었다.
이왕이면 옳은 말이 좋다. 이왕이면 옳은 주장을 강하게 외치면 더 좋다. 그러나 자기부터 그렇게 지켜 낼 것인지 봐야 한다.
길을 택할 때, 노선과 소속을 정할 때, 하루 팔고 사라 질 행상인가 장똘뱅인가 아니면 오랜 세월 거래 할 장사인지 봐야 한다.
유튜브까지 난무하며 호객을 한다. 호객이 심하다 보니 화면에 단 몇 분의 영상과 표현으로 마치 늘 그런 것처럼 흡인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수히 빨려 가니 더욱 가속이 붙는다. 이 신앙, 이 노선은 차분하게 지켜 본다. 조용히 따져 본다. 조용하게..

독수리에게는 날개와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 발톱을 주셨고 사자는 강한 턱과 날카로운 이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각자 필요에 따라 분랑에 맞게 나눠 주셨습니다. 깨달음의 교리가 깊다면 하나님이 공회에 주지 않으신 것은 무엇일까? 너무 자고하지 말라고 안 주시는 대신 외부에서 배우라고 하신 영역은 무엇인가? 외부에서 내부로 유입되는 사람들의 장점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것이 곧 공회가 배우라고 또한 공회 약점을 보완하라고 주님이 보내어 주신 외부 초청 강사인 선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선도 결국 단일교회로 들어가기 위한 수단이다. 단일의 하나됨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을 가르쳐 나눠 주고 한편으로 내게 없는 것들을 외부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자세의 교차점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는 새출발하게 된다.
새생명의 탄생은 완전 다른 이성간의 접촉에서 시작된다. 공회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진영은 어디인가? 공회가 남자라면 신앙적으로 여자적인 성향의 노선은 어디인가? 하나님이 감춰 두시면 아무리 찾아도 알 수 없고 때가 되면 내가 안 찾아도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끼리끼리, 신앙적인 근친은 종족 보존의 최대 걸림돌이다. 앞으로 공회를 어떻게 흩어 뿌려 퍼지게 하실까? 인간의 불목까지 사용하시어 교리 전파에 선용하시는 주님,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싸움과 갈라섬이 결국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만든 주님의 역사인데 인간 계산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작품의 탄생이다.
나여, 총공회 우리들이여, 지금에 만족하거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도약하라.
나보다 우리보다 나은 자와 비교하고 경쟁하며 달려가라.
어떤 교인이 들어와도 비록 이단이라 할지라도 들어와서 공회에 흡수될 수 있도록 마음을 찢고 그릇의 용량을 넓혀라.
윗 글을 읽고 난 소감, 감사, 감동을 적어 봅니다.
돼지 뒷 발톱 같은 반론은 아니니 오해는 마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