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C 프란시스와 비교해 본 백영희의 생애
잘 아는 성자 이야기입니다.
다시 소개하는 것은 좋게 출발을 했고 교계의 인정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조직화가 되었으나 내부 반란이 일어 납니다. 내부에서 반란이라 하지 않고 더 낫게 그리고 더 현실적으로 개혁을 하며 너무 무식하게 막 가게 되면 어지러워 지고 불행스럽게 이탈 되니 신학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프란시스의 개인 신앙은 일반인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빛을 남겼고, 그와 관련 된 조직은 모든 역사의 흐름 속에 그렇고 그런 조직으로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프란시스의 신앙과 내용은 빼고 그의 이름과 그의 겉 모습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오늘 '프란시스 수도원'은 13세기 프란시스와 당시 수도회와는 이름만 같지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역사의 교회들이 그러 했고 우리 주변도 현재 그러 하듯이 이 노선의 백영희 이름과 총공회라고 다를까? 신학을 강조하며... 프란시스가 좀 무식하게 고수한 것을 적당하게 고치면서 '개혁'이라고 합니다.
총공회와 우리를 돌아 보시도록 제공합니다.
서양과 동양, 기독교 수천 년의 사회와 이제 막 출발한 우리, 그리고 민족 역사 사회적으로 근본적 차이가 있는 로마 지역과 한반도 우리의 차이를 감안하면서 면밀히 공회 역사를 되짚어 보면, 역사의 살아 있는 가끔의 역사와 우리의 걸음이 겹쳐 보일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현재와 앞을 참고할 수 있고, 그래서 소개합니다.
출처 : https://youtu.be/F96Q6Krcv8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