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분산 해체 시대를 맞아
담당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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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4 12:34
공회 교회의 광고 하나를 적으며 함께 새겨 봤으면 합니다.
교회의 예배는 각 예배가 전체 교인이 함께 하는 것이 정식이며 그렇게 해야 예배입니다. 하나의 예배가 여러 예배로 분리가 되면 한 사람의 인도라 해도 다른 예배가 됩니다. 한 교회가 이유 없이 분열 되는 것도 주의 몸을 나눈 죄가 되지만 한 예배를 교인의 편의와 교회 운영의 형편에 따라 나누면 이 것도 예배를 쪼갠 죄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교회 분열이 됩니다.
<주간 광고>
갈수록 '모이기'를 애쓰는 우리가 되었으면
(예배의 형태)
코로나 이후 한국 교회는 물론, 우리 주변의 교회들도 모두 모여 온 예배를 줄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보기는 별 달라 져 보이지 않으나 내용적으로 1부 2부로 쪼개고 찬양 예배 등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전체 예배는 유지가 되는 것 같으나 교인 별로는 예배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식사는 전문 식당이든 뷔페를 가도 되지만 예배가 뷔페식 주문식 선택식이 되면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의 본질)
예배란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인데, 신약에서는 나와 나의 현실을 인도하는 그 뜻을 살피는 것입니다.
나와 내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하실지 또 어떻게 해 오셨는지 여쭈면서 살피는 과정이 예배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기도와 찬송을 통해 나와 내 현실을 결정하시는 주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예배이므로
예배를 교인 좋은 대로 교인이 선택하고 편리하게 진행하면 예배의 단어와 기본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와 예배)
구약과 천주교는 남이 볼 때 절차나 모습이 그럴 듯하도록 했고 신약의 우리는 내용에 주력합니다.
예배의 시간도 순서도 순서 별 배정과 말씀의 내용과 흐름을 항상 주님의 뜻을 찾는데 주력합니다.
예배를 통해 느끼고 깨달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나머지는 저절로 실행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그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찬양으로 즐겁고 기도로 스트레스를 풀어도 예배는 아닙니다.
(좋은 교회, 좋은 예배란)
교인이 꼭 알아야 할 말씀을 잘 전하고, 그 말씀으로 찬송의 감사와 기도의 부탁이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마주 하고 있는 현실을 말씀으로 파악하고 교인들이 어떤 자세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오늘의 우리 현실을 잘 파악하고 설명하고 그 현실에서 각기 조심하고 주력해야 할 것을 전합니다.
매 예배가 이렇게 진행되고 그 다음에는 각 교인이 실제 그렇게 살도록 살핀다면 좋은 교회입니다.
문제는 목회자 강의력과 교회의 역량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여부는 자세 정성 노력을 살핍니다. 못 나도 마음에 들면 열어 주십니다.
훌륭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버려 둡니다. 인간의 필사적 노력이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예배의 장소, 시간, 진행을 사람 취향보다 하나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 역할)
예배가 줄고 흐려 지면 교회는 소리 없이 스러 져 갑니다. 예배의 모임은 교회의 기둥들과 같습니다.
예배의 조명과 순서는 화려해 지나 그 신앙의 은혜는 저녁을 지나 깊은 밤 중을 향하는 상황입니다.
시간에 맞춰 출석하는 습관 신앙 속에, 세상을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은혜를 받는 기회가 예배입니다.
세월 속에 예배를 참석하는 횟수만 더하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자라 가는 신앙이면 좋겠습니다.
집회를 앞 두면 집회의 안전과 은혜를 광고해 왔으나 현재 교계의 분위기가 너무 중대하여 적습니다.
예배 시간을 앞에 두고는 늘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기를 생각하고 자세와 시간을 조절하면 좋습니다.
예배가 흐려 지고 흩어 지면 교회와 신앙이 사라 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없어 집니다.
세상과 교계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니 더 긴장하고 조심하며 신앙에 매몰하도록 합시다.
먼 곳에서 신앙 노선 때문에 실시간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예배이며 출석보다 어려우나
생활 거리에 살며 실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자칫 예배를 아지 못하는 일이 되며 훼방이 될 수 있습니다.
5월, 8월의 집회도 공회 교인은 주일만큼 중요합니다. 방역 문제란 세상 문제지 신앙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의 예배는 각 예배가 전체 교인이 함께 하는 것이 정식이며 그렇게 해야 예배입니다. 하나의 예배가 여러 예배로 분리가 되면 한 사람의 인도라 해도 다른 예배가 됩니다. 한 교회가 이유 없이 분열 되는 것도 주의 몸을 나눈 죄가 되지만 한 예배를 교인의 편의와 교회 운영의 형편에 따라 나누면 이 것도 예배를 쪼갠 죄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교회 분열이 됩니다.
<주간 광고>
갈수록 '모이기'를 애쓰는 우리가 되었으면
(예배의 형태)
코로나 이후 한국 교회는 물론, 우리 주변의 교회들도 모두 모여 온 예배를 줄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보기는 별 달라 져 보이지 않으나 내용적으로 1부 2부로 쪼개고 찬양 예배 등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전체 예배는 유지가 되는 것 같으나 교인 별로는 예배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식사는 전문 식당이든 뷔페를 가도 되지만 예배가 뷔페식 주문식 선택식이 되면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의 본질)
예배란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인데, 신약에서는 나와 나의 현실을 인도하는 그 뜻을 살피는 것입니다.
나와 내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하실지 또 어떻게 해 오셨는지 여쭈면서 살피는 과정이 예배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기도와 찬송을 통해 나와 내 현실을 결정하시는 주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예배이므로
예배를 교인 좋은 대로 교인이 선택하고 편리하게 진행하면 예배의 단어와 기본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와 예배)
구약과 천주교는 남이 볼 때 절차나 모습이 그럴 듯하도록 했고 신약의 우리는 내용에 주력합니다.
예배의 시간도 순서도 순서 별 배정과 말씀의 내용과 흐름을 항상 주님의 뜻을 찾는데 주력합니다.
예배를 통해 느끼고 깨달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나머지는 저절로 실행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그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찬양으로 즐겁고 기도로 스트레스를 풀어도 예배는 아닙니다.
(좋은 교회, 좋은 예배란)
교인이 꼭 알아야 할 말씀을 잘 전하고, 그 말씀으로 찬송의 감사와 기도의 부탁이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마주 하고 있는 현실을 말씀으로 파악하고 교인들이 어떤 자세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오늘의 우리 현실을 잘 파악하고 설명하고 그 현실에서 각기 조심하고 주력해야 할 것을 전합니다.
매 예배가 이렇게 진행되고 그 다음에는 각 교인이 실제 그렇게 살도록 살핀다면 좋은 교회입니다.
문제는 목회자 강의력과 교회의 역량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여부는 자세 정성 노력을 살핍니다. 못 나도 마음에 들면 열어 주십니다.
훌륭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버려 둡니다. 인간의 필사적 노력이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예배의 장소, 시간, 진행을 사람 취향보다 하나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 역할)
예배가 줄고 흐려 지면 교회는 소리 없이 스러 져 갑니다. 예배의 모임은 교회의 기둥들과 같습니다.
예배의 조명과 순서는 화려해 지나 그 신앙의 은혜는 저녁을 지나 깊은 밤 중을 향하는 상황입니다.
시간에 맞춰 출석하는 습관 신앙 속에, 세상을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은혜를 받는 기회가 예배입니다.
세월 속에 예배를 참석하는 횟수만 더하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자라 가는 신앙이면 좋겠습니다.
집회를 앞 두면 집회의 안전과 은혜를 광고해 왔으나 현재 교계의 분위기가 너무 중대하여 적습니다.
예배 시간을 앞에 두고는 늘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기를 생각하고 자세와 시간을 조절하면 좋습니다.
예배가 흐려 지고 흩어 지면 교회와 신앙이 사라 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없어 집니다.
세상과 교계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니 더 긴장하고 조심하며 신앙에 매몰하도록 합시다.
먼 곳에서 신앙 노선 때문에 실시간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예배이며 출석보다 어려우나
생활 거리에 살며 실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자칫 예배를 아지 못하는 일이 되며 훼방이 될 수 있습니다.
5월, 8월의 집회도 공회 교인은 주일만큼 중요합니다. 방역 문제란 세상 문제지 신앙 문제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