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건설은 잠깐, 허물기는 끝을 향해 계속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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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13:01
(성전의 건축 역사)
성전의 건축은 열왕기상 5장과 역대하 3장부터 기록 된다. 구약의 성전은 BC 1000년 경을 살았던 다윗이 사무엘하 7, 8장과 역대상 28, 29장에서 미리 계획하고 자재와 설계까지 생전에 준비했다. 그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4 년에 공사를 시작했다. 출애굽한 지 480 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일단 공사를 시작하자 7 년만에 완료한다. 하나님을 모실 성전은 이스라엘이 정성과 자재를 최고 최상으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출애굽 때 성전은 이동용 성막으로 우선 대신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정식 성전을 가지기까지 480여 년을 소망했다. 준비와 자세와 모든 여건을 갖추는 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
(성전의 파괴 역사)
48여 년을 기다린 성전, 다윗의 생전에 총력을 기우려 마련한 자재와 설계에 따라 7 년에 걸쳐 이스라엘 전부와 주변 국이 총력을 기우려 완공 된 성전은 완공이 된 후 솔로몬 당대에 이미 그 앞 날이 훤하고 보이고 있었다. 솔로몬이 나이가 많아 지면서 왕비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성전에서 떼어 냈고 다른 신들을 좇게 만들어 버렸다. 솔로몬이 죽기도 전에 성전은 겉만 남고 속은 벌써 비어 지고 있었다. 솔로몬을 이은 르호보암은 성전을 향하던 12 지파 중에 10 개 지파를 북 쪽으로 분리 시켰고 10 개 지파는 예루살렘의 성전 대신 단과 벧엘에 세운 엉뚱한 단을 향했다.
오늘은 신약이니 구약의 모든 숫자와 장소를 무조건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해방 후 한국 교계가 남쪽의 소수와 북쪽의 절대 다수가 분리 되었고, 남 쪽의 부산 경남에는 교회가 당연히 지켜야 할 단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고신이 있었고, 북 쪽에는 북조 이스라엘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굳이 고소하기 보다 단과 벧엘에서 신사 참배를 해도 된다는 총회 측이 몰려 있었다. 남북의 의미가 중요하지 방위각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지도상의 방위까지 이렇게 같을까? 비록 10:2로 나뉜 것은 아니나 왜 이 수치가 그렇게 와 닿도록 분리가 되었을까?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지만 성경의 표현을 무조건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늘 살펴 봐야 한다.
(한국의 교회, 예배, 강단의 붕괴 역사)
불신자가 말하는 5천 년의 역사, 우리가 성경으로 헤아리는 4천 년의 역사를 통해 이 나라는 미신으로 어두운 시절을 보냈다. 그 시기 우리는 별별 빛이 있었으나 미신 귀신 잡신의 현혹이었다. 19세기 말, 드디어 참 빛이 한반도에 상륙을 했다. 그리고 50여 년의 준비를 거쳐 신사참배라는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은 북조처럼 단과 벧엘에 세운 단처럼 교회와 예배와 강단을 운영할지, 예루살렘 원래 성전의 단을 고수할지 선택할 기회를 주셨다. 50여 년의 준비가 있었고 이제 한국 교회는 선택할 기회를 받았을 때 극소수 외에는 모두 북조 이스라엘처럼 먼 곳의 예루살렘 성전의 정식 규정을 수정하여 평소 생활에 알맞고 편리하게 장소와 시간과 방법을 바꾼 단을 선택했다.
해방 후 고신과 총회, 오늘로 말하면 고신과 합동의 75 년 넘게 이어 지는 모든 갈등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세월과 자기 형편에 맞춰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즉 내 마음대로 섬기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고 정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를 놓고 벌어 지는 갈등이다. 그런데 세월 속에 남 쪽 유다도 북조 이스라엘처럼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제사의 법과 성전의 규정을 바꾸어 나갔고, 심지어 성전의 보물을 빼다가 세상에게 넘기기도 하고 마침내 성전의 기둥을 덮은 금도 뜯어 내고 단 옆에 있는 물두멍의 옆판을 떼고 옮기고, 그리고 세상에 떠도는 미신 우상 귀신을 섬기는 법과 모습을 성전 안으로 가져 들어 왔다. 2020년대 오늘 기준으로 고신과 총신, 고려파와 총회파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꼭 같다.
(공회의 단은 멀쩡한가?)
예배는 생명의 단일성이 있다. 한 예배를 1 부와 2 부로 분할을 해 버리면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 오는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참 편리하고 좋다. 제사장들도 명절 대목에 몰리는 순간을 둘로 나누면 좋은 면이 많을 듯하다. 예배의 순서나 모습을 두고 소위 개혁교회의 예배론은 천주교의 미사라는 주문식을 배제하고 별별 복잡한 것을 단순화 하며 말씀을 중심으로 감사의 찬송과 간구의 기도가 살아서 진행 되게 했다. 교계도 그러했으나 지금은 북조 이스라엘 식이 되어 버렸다. 공회는 그렇지 않았으나 이제 급격히 그렇게 닮아 가고 있다. 아직까지 예배를 1 부 2 부로 쪼개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그 것은 교인의 출석수가 적어서 그럴 뿐이다. 이미 내용적으로 그렇게 된 곳도 곳곳에 보인다.
성전의 지성소를 손 대기 전, 성소의 떡상이나 등대를 손 대기 전, 뜰에 있는 단을 뜯어 내기 전, 그 단 주변에 있는 물두멍의 옆 판과 뒷 판과 바퀴는 그 자리에 붙어 있는가 혹시 성전 밖으로 뜯겨 져 나가지는 않은가? 많고 적은 차이지 공회들의 예배도 성한 곳이 없어 보인다. 원래 공회 예배는 너무 단순하여 손을 대면 바로 표시가 난다. 찬송 쪽이 가장 먼저 뜯겨 나갔고, 기도가 뒤를 따른다는 것이 너무 환하게 보인다. 설교라도 멀쩡했으면 좋겠다.
이제 성전의 밖에 있어야 할 사회 복지와 교인들의 신앙 외적 교제와 친목과 세상을 살아 가는 별별 협조와 활동이 교회 내를 아주 깊숙히 들어 와서 이제는 떼 놓을 수가 없어 보인다. 각종 신학은 이미 침투해서 영안을 밝히는 전기를 차단한 것이 너무 오래 된 듯하다. 현대전은 공군이 먼저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적진의 레이다를 모두 꺼 버린다. 그리고 공격기들이 손을 대폭 본다. 마지막에 지상군이 들어 간다. 공회의 설교록을 모조리 꺼 버려도 아픈 소리나 불편한 느낌조차 들리지 않는다. 신학이 먼저 들어 와서 눈을 감겨 놓고, 그 다음 사람의 마음이 끌리도록 잔잔하게 달래고 흔들면 아이는 잠이 들고 깨어 있던 심령은 취해 버린다. 다 가져 가도 모른다.
구약의 북조 이스라엘이 먼저 그렇게 되고, 남조 유다가 따라 간 길, 세계 교회사가 반복한 길을 한국 교계가 그렇게 했고, 고신을 이어 공회의 곳곳이 그렇게 되었다면 이 곳을 지키는 곳엔들 귀신이 청정 해역으로 그냥 둘까? 이미 2014년부터 대대적으로 손을 보고 있다. 그 말은 그 이전에 이미 사전 작업은 있었다. 현재 우리의 급한 일은 자기 내면 깊은 곳을 살펴 보는 것이다. 내가 살아야 남을 살린다.
성전의 건축은 열왕기상 5장과 역대하 3장부터 기록 된다. 구약의 성전은 BC 1000년 경을 살았던 다윗이 사무엘하 7, 8장과 역대상 28, 29장에서 미리 계획하고 자재와 설계까지 생전에 준비했다. 그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4 년에 공사를 시작했다. 출애굽한 지 480 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일단 공사를 시작하자 7 년만에 완료한다. 하나님을 모실 성전은 이스라엘이 정성과 자재를 최고 최상으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출애굽 때 성전은 이동용 성막으로 우선 대신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정식 성전을 가지기까지 480여 년을 소망했다. 준비와 자세와 모든 여건을 갖추는 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
(성전의 파괴 역사)
48여 년을 기다린 성전, 다윗의 생전에 총력을 기우려 마련한 자재와 설계에 따라 7 년에 걸쳐 이스라엘 전부와 주변 국이 총력을 기우려 완공 된 성전은 완공이 된 후 솔로몬 당대에 이미 그 앞 날이 훤하고 보이고 있었다. 솔로몬이 나이가 많아 지면서 왕비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성전에서 떼어 냈고 다른 신들을 좇게 만들어 버렸다. 솔로몬이 죽기도 전에 성전은 겉만 남고 속은 벌써 비어 지고 있었다. 솔로몬을 이은 르호보암은 성전을 향하던 12 지파 중에 10 개 지파를 북 쪽으로 분리 시켰고 10 개 지파는 예루살렘의 성전 대신 단과 벧엘에 세운 엉뚱한 단을 향했다.
오늘은 신약이니 구약의 모든 숫자와 장소를 무조건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해방 후 한국 교계가 남쪽의 소수와 북쪽의 절대 다수가 분리 되었고, 남 쪽의 부산 경남에는 교회가 당연히 지켜야 할 단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고신이 있었고, 북 쪽에는 북조 이스라엘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굳이 고소하기 보다 단과 벧엘에서 신사 참배를 해도 된다는 총회 측이 몰려 있었다. 남북의 의미가 중요하지 방위각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지도상의 방위까지 이렇게 같을까? 비록 10:2로 나뉜 것은 아니나 왜 이 수치가 그렇게 와 닿도록 분리가 되었을까?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지만 성경의 표현을 무조건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늘 살펴 봐야 한다.
(한국의 교회, 예배, 강단의 붕괴 역사)
불신자가 말하는 5천 년의 역사, 우리가 성경으로 헤아리는 4천 년의 역사를 통해 이 나라는 미신으로 어두운 시절을 보냈다. 그 시기 우리는 별별 빛이 있었으나 미신 귀신 잡신의 현혹이었다. 19세기 말, 드디어 참 빛이 한반도에 상륙을 했다. 그리고 50여 년의 준비를 거쳐 신사참배라는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은 북조처럼 단과 벧엘에 세운 단처럼 교회와 예배와 강단을 운영할지, 예루살렘 원래 성전의 단을 고수할지 선택할 기회를 주셨다. 50여 년의 준비가 있었고 이제 한국 교회는 선택할 기회를 받았을 때 극소수 외에는 모두 북조 이스라엘처럼 먼 곳의 예루살렘 성전의 정식 규정을 수정하여 평소 생활에 알맞고 편리하게 장소와 시간과 방법을 바꾼 단을 선택했다.
해방 후 고신과 총회, 오늘로 말하면 고신과 합동의 75 년 넘게 이어 지는 모든 갈등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세월과 자기 형편에 맞춰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즉 내 마음대로 섬기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고 정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를 놓고 벌어 지는 갈등이다. 그런데 세월 속에 남 쪽 유다도 북조 이스라엘처럼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제사의 법과 성전의 규정을 바꾸어 나갔고, 심지어 성전의 보물을 빼다가 세상에게 넘기기도 하고 마침내 성전의 기둥을 덮은 금도 뜯어 내고 단 옆에 있는 물두멍의 옆판을 떼고 옮기고, 그리고 세상에 떠도는 미신 우상 귀신을 섬기는 법과 모습을 성전 안으로 가져 들어 왔다. 2020년대 오늘 기준으로 고신과 총신, 고려파와 총회파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꼭 같다.
(공회의 단은 멀쩡한가?)
예배는 생명의 단일성이 있다. 한 예배를 1 부와 2 부로 분할을 해 버리면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 오는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참 편리하고 좋다. 제사장들도 명절 대목에 몰리는 순간을 둘로 나누면 좋은 면이 많을 듯하다. 예배의 순서나 모습을 두고 소위 개혁교회의 예배론은 천주교의 미사라는 주문식을 배제하고 별별 복잡한 것을 단순화 하며 말씀을 중심으로 감사의 찬송과 간구의 기도가 살아서 진행 되게 했다. 교계도 그러했으나 지금은 북조 이스라엘 식이 되어 버렸다. 공회는 그렇지 않았으나 이제 급격히 그렇게 닮아 가고 있다. 아직까지 예배를 1 부 2 부로 쪼개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그 것은 교인의 출석수가 적어서 그럴 뿐이다. 이미 내용적으로 그렇게 된 곳도 곳곳에 보인다.
성전의 지성소를 손 대기 전, 성소의 떡상이나 등대를 손 대기 전, 뜰에 있는 단을 뜯어 내기 전, 그 단 주변에 있는 물두멍의 옆 판과 뒷 판과 바퀴는 그 자리에 붙어 있는가 혹시 성전 밖으로 뜯겨 져 나가지는 않은가? 많고 적은 차이지 공회들의 예배도 성한 곳이 없어 보인다. 원래 공회 예배는 너무 단순하여 손을 대면 바로 표시가 난다. 찬송 쪽이 가장 먼저 뜯겨 나갔고, 기도가 뒤를 따른다는 것이 너무 환하게 보인다. 설교라도 멀쩡했으면 좋겠다.
이제 성전의 밖에 있어야 할 사회 복지와 교인들의 신앙 외적 교제와 친목과 세상을 살아 가는 별별 협조와 활동이 교회 내를 아주 깊숙히 들어 와서 이제는 떼 놓을 수가 없어 보인다. 각종 신학은 이미 침투해서 영안을 밝히는 전기를 차단한 것이 너무 오래 된 듯하다. 현대전은 공군이 먼저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적진의 레이다를 모두 꺼 버린다. 그리고 공격기들이 손을 대폭 본다. 마지막에 지상군이 들어 간다. 공회의 설교록을 모조리 꺼 버려도 아픈 소리나 불편한 느낌조차 들리지 않는다. 신학이 먼저 들어 와서 눈을 감겨 놓고, 그 다음 사람의 마음이 끌리도록 잔잔하게 달래고 흔들면 아이는 잠이 들고 깨어 있던 심령은 취해 버린다. 다 가져 가도 모른다.
구약의 북조 이스라엘이 먼저 그렇게 되고, 남조 유다가 따라 간 길, 세계 교회사가 반복한 길을 한국 교계가 그렇게 했고, 고신을 이어 공회의 곳곳이 그렇게 되었다면 이 곳을 지키는 곳엔들 귀신이 청정 해역으로 그냥 둘까? 이미 2014년부터 대대적으로 손을 보고 있다. 그 말은 그 이전에 이미 사전 작업은 있었다. 현재 우리의 급한 일은 자기 내면 깊은 곳을 살펴 보는 것이다. 내가 살아야 남을 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