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게 주는 4 가지 형편, 4 가지 단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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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8 21:28
식물은
(봄을 맞은 생명)
여름을 준비하며 땅 밑에서 또 나무의 둥치 안에서 생명의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밖으로 표시는 별로 나지 않는다. 나무 전체에 물이 오른다는 정도만 표시를 한다. 살아 있다는 증거만 보인다. 그리고 좀 있으면 움이 돋는다 하나의 희망이지 그 움만 가지고는 아직 무엇을 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한 겨울의 삭만한 들판에 '볼 것'을 늘어 놓는다. 봄이 되면 볼 것이 많아서 '봄'이라고 한다. 국어 사전에는 아니라고 해도 나의 사전에 봄이란 볼 것이 많아서 봄이다. 영어로는 땅 밑에서 솟아 오르는 것이 많아서 spring이라고 한다. 겨울 석 달을 눌러 놓아도 다시 원래 상태로 솟아 오른다. 그래서 볼 것이 많다.
공회의 역사로 보면 1960년대를 봄으로 보고 싶다. 주님과의 동행이 짙었다. 깊었다. 소리 없이 그러나 웅진의 진동이 있었다. 공회의 60년대는 깊고 깊고 깊은 기도와 경건과 주님 동행이 내적으로 엄청 쌓이고 있었다. 이 시기의 공회는 규모나 숫자는 보잘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특별한 표시는 이미 나오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 훗날을 기대하며 미리 압도가 되었고, 모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고 그냥 지나 갔다.
(여름을 맞은 생명)
봄이 지나면서 나무는 무성해 진다. 어느 덧 쑤욱 자라 버린다. 마구 뻗어 나간다. 녹음이 짙어 진다. 그리고 사방에 뭔가 둥근 것이 맺어 지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뭐이 열리기는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봤으나 어느 덧 덩치를 키우며 놀랍게도 그 나무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다. 그렇게 되면 열매가 될 것이 열린다고 '여름'이다. 영어로는 솟아 오르는 것이 절정을 향해 나아 가면 그 총량이 sum이 되고 그 계절은 summer라고 한다. 영어 사전의 원어는 몰라도 내 사전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여름에 열린 것만큼 열매가 되지 여름에 열리지 않은 것이 가을에 갑자기 열리지는 않는다. 여름은 열린다.
공회의 역사로 보면 1970년대는 봄을 막 지나면서 나무의 모든 면에서 가파른 성장, 무성하게 뻗어 가는 모습, 짙어 지는 색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자라 갔다. 양성원이 시작 되었고 주일학교가 1천 명에서 8천을 향해 경이롭게 올라 가고 있었으며 불신 가정에서 주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중간반 2천 명 예배로 한 자리에 앉혔다. 전국의 곳곳에 개척이 시작 되었다. 공회보다 훨씬 큰 교단들이 바짝 긴장했다. 한 순간에 그들을 넘어 설 정도였다.
(가을을 맞은 생명)
가을로 접어 들면 여름의 성장은 갑자기 멈춘다는 것을 느낀다. 나뭇잎의 색이 바래 진다. 열매까지 어느 날 색깔을 바꾼다. 아침 저녁의 기온이 달라 진다. 봄의 준비와 시작, 여름을 지나며 비록 땀은 흘리고 고생은 하지만 엄청난 기세로 자라 가는 것이 구름에까지 닿을 듯이 난리였는데 그 나무의 수종에 따라 새움이 올라 가는 높이와 굵기와 심지어 열매까지 정해 진 것이 있다. 이제 나무는 열매를 만든 잎도 그리고 심지어 열매까지 모두 겨울을 위해 갈 길을 가야 한다. 가는 것을 거두면 가을걷이라고 한다. 그래서 '갈 > 가을'이 된다. 영어는 떨어 지는 면을 보고 fall이라 한다. 내 사전에는 그렇다.
공회의 역사로 보면 1980년대는 가을이었다. 봄과 여름을 거치며 백영희의 이름으로 추수할 것이 너무 많았다. 헤아릴 수도 없어서 요셉이 풍년 7 년에 모아 들인 곡식을 나중에는 그냥 모아 둔 것과 같다. 설교 자료 10만 건에 교리의 정리, 노선의 요약, 그리고 이후에 닥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80년대는 추수 때였다.
(겨울을 맞은 생명)
겨울이 되면 봄과 여름과 가을의 분위기는 어디 갔는지 없다. 생존이 가능할까? 생존에만 주력하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저렇게까지 물도 없고 말라 빠진 나무가 과연 내년 봄에 다시 생명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현재 공회가 그런 모습이다. 알고 보면 교계도 그렇다. 한 곳에 온 추위가 이 곳에는 비록 늦을 수는 있지만 피할 수는 없다. 겨울이 되면 이제 찬 바람만 분다. 그래서 살아 남는다 해도 겨우 살아 남을 것이라 '겨울', 겨우내라고 한다. 영어로는 찬 바람이 모든 것을 쓸어 가 버리는 winter가 된 듯하다. 내 사전에는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모아 뒀다. 외래어가 아닌 생활어는 자연의 목격이 많다.
공회의 역사로 보면 1990년대부터 시작 된 겨울이, 2000년대면 다시 봄이 올 줄로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이 겨울이 장장 30 년을 계속 이어 가는 듯하다. 오히려.. 지금이 겨울의 절정인 듯하다. 소한 추위와 대한 추위 사이에 끼여 있는 듯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연구소와 연구소의 공회만을 놓고 내면으로 보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은 따로 진행 되며 여기까지 왔다. 이 글은 공회 전체와 교계를 함께 놓고 시대를 비교하고 있다.
겨울에 봄을 흉내 내면 다 죽는다.
봄인데 여름 흉내를 내면 말라 죽는다.
여름인데 가을 걷이에 들어 가면 남는 것이 없다.
겨울인데 봄인 줄 알면 피어 보지도 못하고 얼어 죽는다.
환경에 피동 되자는 말이 아니라
환경을 통해 주님이 인도하는 방향을 읽고 주님을 따르자는 이야기다.
요즘 이 문제로만 설교와 생각과 만사를 골몰하고 있다. 교회와 예배까지 없어 진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은 한 겨울이다.
내년 봄을 주실 때까지 생존에 주력하고자 한다.
살아만 남는다면 내년의 봄은 우리에게 소망이 될 것이다.
살아 남은 노선과 교회와 그 신앙에게 내년이란 독무대가 될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 왔다.
(봄을 맞은 생명)
여름을 준비하며 땅 밑에서 또 나무의 둥치 안에서 생명의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밖으로 표시는 별로 나지 않는다. 나무 전체에 물이 오른다는 정도만 표시를 한다. 살아 있다는 증거만 보인다. 그리고 좀 있으면 움이 돋는다 하나의 희망이지 그 움만 가지고는 아직 무엇을 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한 겨울의 삭만한 들판에 '볼 것'을 늘어 놓는다. 봄이 되면 볼 것이 많아서 '봄'이라고 한다. 국어 사전에는 아니라고 해도 나의 사전에 봄이란 볼 것이 많아서 봄이다. 영어로는 땅 밑에서 솟아 오르는 것이 많아서 spring이라고 한다. 겨울 석 달을 눌러 놓아도 다시 원래 상태로 솟아 오른다. 그래서 볼 것이 많다.
공회의 역사로 보면 1960년대를 봄으로 보고 싶다. 주님과의 동행이 짙었다. 깊었다. 소리 없이 그러나 웅진의 진동이 있었다. 공회의 60년대는 깊고 깊고 깊은 기도와 경건과 주님 동행이 내적으로 엄청 쌓이고 있었다. 이 시기의 공회는 규모나 숫자는 보잘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특별한 표시는 이미 나오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 훗날을 기대하며 미리 압도가 되었고, 모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고 그냥 지나 갔다.
(여름을 맞은 생명)
봄이 지나면서 나무는 무성해 진다. 어느 덧 쑤욱 자라 버린다. 마구 뻗어 나간다. 녹음이 짙어 진다. 그리고 사방에 뭔가 둥근 것이 맺어 지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뭐이 열리기는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봤으나 어느 덧 덩치를 키우며 놀랍게도 그 나무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다. 그렇게 되면 열매가 될 것이 열린다고 '여름'이다. 영어로는 솟아 오르는 것이 절정을 향해 나아 가면 그 총량이 sum이 되고 그 계절은 summer라고 한다. 영어 사전의 원어는 몰라도 내 사전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여름에 열린 것만큼 열매가 되지 여름에 열리지 않은 것이 가을에 갑자기 열리지는 않는다. 여름은 열린다.
공회의 역사로 보면 1970년대는 봄을 막 지나면서 나무의 모든 면에서 가파른 성장, 무성하게 뻗어 가는 모습, 짙어 지는 색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자라 갔다. 양성원이 시작 되었고 주일학교가 1천 명에서 8천을 향해 경이롭게 올라 가고 있었으며 불신 가정에서 주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중간반 2천 명 예배로 한 자리에 앉혔다. 전국의 곳곳에 개척이 시작 되었다. 공회보다 훨씬 큰 교단들이 바짝 긴장했다. 한 순간에 그들을 넘어 설 정도였다.
(가을을 맞은 생명)
가을로 접어 들면 여름의 성장은 갑자기 멈춘다는 것을 느낀다. 나뭇잎의 색이 바래 진다. 열매까지 어느 날 색깔을 바꾼다. 아침 저녁의 기온이 달라 진다. 봄의 준비와 시작, 여름을 지나며 비록 땀은 흘리고 고생은 하지만 엄청난 기세로 자라 가는 것이 구름에까지 닿을 듯이 난리였는데 그 나무의 수종에 따라 새움이 올라 가는 높이와 굵기와 심지어 열매까지 정해 진 것이 있다. 이제 나무는 열매를 만든 잎도 그리고 심지어 열매까지 모두 겨울을 위해 갈 길을 가야 한다. 가는 것을 거두면 가을걷이라고 한다. 그래서 '갈 > 가을'이 된다. 영어는 떨어 지는 면을 보고 fall이라 한다. 내 사전에는 그렇다.
공회의 역사로 보면 1980년대는 가을이었다. 봄과 여름을 거치며 백영희의 이름으로 추수할 것이 너무 많았다. 헤아릴 수도 없어서 요셉이 풍년 7 년에 모아 들인 곡식을 나중에는 그냥 모아 둔 것과 같다. 설교 자료 10만 건에 교리의 정리, 노선의 요약, 그리고 이후에 닥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80년대는 추수 때였다.
(겨울을 맞은 생명)
겨울이 되면 봄과 여름과 가을의 분위기는 어디 갔는지 없다. 생존이 가능할까? 생존에만 주력하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저렇게까지 물도 없고 말라 빠진 나무가 과연 내년 봄에 다시 생명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현재 공회가 그런 모습이다. 알고 보면 교계도 그렇다. 한 곳에 온 추위가 이 곳에는 비록 늦을 수는 있지만 피할 수는 없다. 겨울이 되면 이제 찬 바람만 분다. 그래서 살아 남는다 해도 겨우 살아 남을 것이라 '겨울', 겨우내라고 한다. 영어로는 찬 바람이 모든 것을 쓸어 가 버리는 winter가 된 듯하다. 내 사전에는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모아 뒀다. 외래어가 아닌 생활어는 자연의 목격이 많다.
공회의 역사로 보면 1990년대부터 시작 된 겨울이, 2000년대면 다시 봄이 올 줄로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이 겨울이 장장 30 년을 계속 이어 가는 듯하다. 오히려.. 지금이 겨울의 절정인 듯하다. 소한 추위와 대한 추위 사이에 끼여 있는 듯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연구소와 연구소의 공회만을 놓고 내면으로 보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은 따로 진행 되며 여기까지 왔다. 이 글은 공회 전체와 교계를 함께 놓고 시대를 비교하고 있다.
겨울에 봄을 흉내 내면 다 죽는다.
봄인데 여름 흉내를 내면 말라 죽는다.
여름인데 가을 걷이에 들어 가면 남는 것이 없다.
겨울인데 봄인 줄 알면 피어 보지도 못하고 얼어 죽는다.
환경에 피동 되자는 말이 아니라
환경을 통해 주님이 인도하는 방향을 읽고 주님을 따르자는 이야기다.
요즘 이 문제로만 설교와 생각과 만사를 골몰하고 있다. 교회와 예배까지 없어 진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은 한 겨울이다.
내년 봄을 주실 때까지 생존에 주력하고자 한다.
살아만 남는다면 내년의 봄은 우리에게 소망이 될 것이다.
살아 남은 노선과 교회와 그 신앙에게 내년이란 독무대가 될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 왔다.

1936년에 믿고 3년을 10리 길의 농산교회로 다녔다. 이 때가 봄이었을 듯하다.
1939년에 개명교회를 시작한다. 신사참배 6년의 뜨거운 환란을 여름으로 본다.
1945년에 해방이 되며 백영희가 거두는 추수는 정말 대단했다. 마구 쏟아 졌다.
1950년의 6.25 전쟁은 모든 것을 다시 얼어 붙게 했으나 오히려 봄을 준비했다.
백영희의 신앙 첫 사계절은 달력으로 15년쯤 될까?
1952년에 부산의 서부교회로 오게 된다. 교계 중 고신의 중심에 섰다. 봄이었다.
1954년이 되자 고신 전체의 견제 핍박은, 일제를 넘어 섰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1959년에 고신은 제명을 했고 천리마는 마굿간에서 풀려 가을 들판을 질주했다.
1960년대가 되자 교계는 이단으로 몰았고, 공회는 교계가 눌러 죽은 듯 보였다.
이렇게 백영희의 사계절은 다시 10여 년을 보내고 있었다.
1960년대의 10년은 더 큰 다음 단계로 볼 때 여름을 준비하는 봄과 같아 보인다.
1970년대의 10년은 마구 자라는 여름의 풍성함이 맞을 듯하다. 엄청난 기세였다.
1980년대의 10년은 가을의 추수 중에서도 역사적이라 할 만한 결과가 쏟아 졌다.
1990년대의 10년은 서부교회도 공회도 전국 교회도, 재기가 불가할 혹한이었다.
이렇게 생전과 사후를 포함하는 사계절이 다시 지나 갔다.
1982년에 연구소가 시작을 했다. 첫 해부터 부공3의 주력이 주력 된 봄날이었다.
1989년에 공회는 목사님 사후의 전쟁 중이나, 연구소는 한여름처럼 뻗어 나갔다.
1998년에 연구소 자료가 인터넷에 공개가 되며 연구소는 줏어 담을 것이 넘쳤다.
2013년, 연구소 폐쇄를 노린 안팎의 고소가 일어났다. 모든 판결이 폐쇄하라였다.
백영희 사후 그 노선을 맡은 이 곳의 첫 사계절은 생전처럼 극적이었다.
2013년에 외부 고소가 시작 되자, 내부의 호응이 일어 났다. 연구소는 겨울이었다.
2018년에 대법원이 연구소 폐쇄를 결정하자 연구소에게는 또 다른 새봄이 되었다.
2022년이 지나 가고 있다. 지금 새봄이 여름 없이 시들지 여름으로 나갈지 궁금하다.
2022년, 코로나가 끝이 나며 문득 교계가 폐쇄 된 찬바람에 정신이 아찔하다. 평소 손꼽아 온 역사의 회전을 기대하며 다시 여름과 가을을 주실 줄 알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는데 사계절이 역주행을 하거나 한두 계절을 그냥 뛰어 넘을 판이다. 모든 계산을 중단하고 일단 생존이 가능한지 안팎을 살피느라고 정신이 없다. 이런 시대에도 과연 예배라는 것을 보존할 수 있을까? 지켜 낼 수 있을까? 이 것이 가능하다면 교계의 모든 예배를 침몰 시킨 홍수에서 다음 시대를 떠맡는 방주적 사명을 우리가 받은 것은 아닐까? 구약과 달리 신약에는 홍수와 방주와 방주 후의 역사가 단선의 시공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각자 자기 현실에서 모두가 그런 사명을 찾아 자기 현실 속에 쏟아 지는 홍수에 자기의 방주를 각자 마련하고 다음 시대를 다시 소망해야 한다. 이 곳은 이 곳을 이 노선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을 대표하여 우리의 기준으로 본 우리의 방주를 생각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