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는 결국 머리 따라 간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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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8 09:26
(소속과 노선)
내가 신앙 생활에서는 노선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자 옆에 계신 분이 노선보다 소속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을 했다.
그 분은 사직동교회 출신으로 70년대에 '소속'이 가장 중요하다는 백 목사님 설교가 이해 되어 공회로 소속을 옮겼다고 한다.
학교 출석이 중요하다는 말과 수업 시간에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합해 놓아도 충돌은 없다. 순서에 따른 강조가 된다.
노선이 바로 된 교회에 소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속을 먼저 강조할 때는 이미 노선이 옳다는 전제 하에 말하는 것이다.
꼬리가 어디를 원하든 요동을 치고 버티든 꼬리의 마지막은 머리 가는 대로 간다. 천주교 교인은 항상 교황의 뒤를 따라 간다.
불교인은 돌부처 앞에 앉아 돌을 닮게 된다. 총공회 안에도 대략 5 가지 정도의 길이 있다. 소속에 따라 하나의 길을 가게 된다.
수십 년을 마음에 존경하고 부러운 마음으로 늘 담아 둔 분이 있다. 아무리 그 공회에 속하기는 해도 변치 않을 것을 기대했다.
대구의 기도원 철거 문제를 두고 정치 목사로 활동하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그냥 흉내나 내는 것이겠지 궁금했다.
어느 날 건축사 법무사 공무원을 통해 구체적으로 활동했던 이야기들이 전해 졌다. 꼬리는 머리를 벗어 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을 머리로 삼았다는 말도 포함되지만 그 교단 그 교회의 단체적 흐름과 그 성격을 머리로 삼아도 피할 수는 없는 원리다.
아직도 한 분은 30 년 그 공회에 속했으나 자기의 신앙 성향을 유지하는 분도 계신다. 그 공회 안에서 물에 뜬 기름과 같다.
같지 않으려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물과 기름이기 때문에 한 그릇에 들어 있지만 섞여 질 수가 없다. 결국 본질 문제가 된다.
(공회의 보배들)
교회의 규모를 기준으로 목회를 잘하고 못하는 평가도 보배라 할 수 있다. 기준에 따라 '보배'라는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
그 기준들 중에 가장 높은 것은 경건일 듯하다. 종교라면 그래야 할 것이고 기독교라면 당연하고 공회라면 피할 수가 없다.
경건이란 자기를 하나님 앞에 세워 놓고 조심하는 신앙, 그런 자세, 그런 목회, 그렇게 노력할 때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공회는 교단들 중에 그런 면이 확실히 많았고 공회 목회자들은 목사님 생전에 대부분 그렇게 보였다. 사후에도 더러 있었다.
그 중에 죽을 때까지 절대 변치 않을 듯하다는 이들이 모인 곳을 부공4라고 한다. 이 분들은 불과 한두 해만에 다 드러 났다.
경건의 분위기만 붙들고 있었지 이들 속에는 만사를 각목으로 해결하거나 검정 양복에 007 가방을 들고 위세로 해결했다.
그래도 더 오래 간 분들이 부공1에 드러 있었다. 세월 속에 이렇게 저렇게 만나거나 대화할 일이 있었다. 한 분도 남지 않았다.
부공3에는 몇 분을 기대했다. 최근 대구의 기도원 문제로 그들의 경건과 절대 신본주의라는 평소의 모습을 현재는 접었다.
대구공회에는 아직도 한 분이 계신다. 그런 듯했으나 아닌 듯해서 늘 애매했다. 그러나 30 년 세월을 통해 오직 주님뿐이다.
이렇게 주님뿐인 이들의 행동은 아예 보이지를 않거나 인본주의 정치 목사보다 더 날뛰는 듯한 때도 있으나 표시가 난다.
내가 아는 범위만 적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범위는 의외로 좀 많은 편이다. 레바논 산 꼭대기를 향해 우리는 올라 가고 있다.
발치에서는 모두가 힘 있게 자신만만하게 출발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가고 사건이 겹치게 되면 결국 속에 본색이 나온다.
없던 본색이 나오지는 않는다. 자기가 알았든 몰랐든 속에 있는 것이 나온다. 바람에 날라 와서 덮인 것은 쉽게 구별 된다.
요셉이 애굽까지 간 것은 유학의 꿈을 추진한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현실로 몰아 쳐 데리고 간 것이다.
남에게는 공회의 가장 강한 사람이나 알고 보면 가장 약할 수 있고, 가장 약해 보인 사람이 가장 많은 피를 흘렸을 수도 있다.
나는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 말을 내게 하신 분들은 사람을 아끼지 않았고 나는 아꼈다고 생각한다.
(꼬리는 머리 따라 간다)
어느 사상을 담아 둘 것인가, 그의 생애는 결국 그 사상이 담긴 그 머리를 따라 간다. 허송이 되든 복 된 열매를 맺든..
어느 교회를 머리로 삼고, 어떤 지도자를 머리로 삼을 것인가? 나는 백영희가 아니라 백영희 노선을 머리로 삼았다..
이 노선 이 사상이 주님을 머리로 삼고 성경으로만 걸어 간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면 표시가 날 때가 되었다.
속으로는 무엇이 나의 머리인지도 살피고, 한 편으로 세월과 사건들을 겹치고 지나 가면서 나의 머리는 옳은지도 살폈으면..
내가 신앙 생활에서는 노선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자 옆에 계신 분이 노선보다 소속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을 했다.
그 분은 사직동교회 출신으로 70년대에 '소속'이 가장 중요하다는 백 목사님 설교가 이해 되어 공회로 소속을 옮겼다고 한다.
학교 출석이 중요하다는 말과 수업 시간에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합해 놓아도 충돌은 없다. 순서에 따른 강조가 된다.
노선이 바로 된 교회에 소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속을 먼저 강조할 때는 이미 노선이 옳다는 전제 하에 말하는 것이다.
꼬리가 어디를 원하든 요동을 치고 버티든 꼬리의 마지막은 머리 가는 대로 간다. 천주교 교인은 항상 교황의 뒤를 따라 간다.
불교인은 돌부처 앞에 앉아 돌을 닮게 된다. 총공회 안에도 대략 5 가지 정도의 길이 있다. 소속에 따라 하나의 길을 가게 된다.
수십 년을 마음에 존경하고 부러운 마음으로 늘 담아 둔 분이 있다. 아무리 그 공회에 속하기는 해도 변치 않을 것을 기대했다.
대구의 기도원 철거 문제를 두고 정치 목사로 활동하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그냥 흉내나 내는 것이겠지 궁금했다.
어느 날 건축사 법무사 공무원을 통해 구체적으로 활동했던 이야기들이 전해 졌다. 꼬리는 머리를 벗어 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을 머리로 삼았다는 말도 포함되지만 그 교단 그 교회의 단체적 흐름과 그 성격을 머리로 삼아도 피할 수는 없는 원리다.
아직도 한 분은 30 년 그 공회에 속했으나 자기의 신앙 성향을 유지하는 분도 계신다. 그 공회 안에서 물에 뜬 기름과 같다.
같지 않으려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물과 기름이기 때문에 한 그릇에 들어 있지만 섞여 질 수가 없다. 결국 본질 문제가 된다.
(공회의 보배들)
교회의 규모를 기준으로 목회를 잘하고 못하는 평가도 보배라 할 수 있다. 기준에 따라 '보배'라는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
그 기준들 중에 가장 높은 것은 경건일 듯하다. 종교라면 그래야 할 것이고 기독교라면 당연하고 공회라면 피할 수가 없다.
경건이란 자기를 하나님 앞에 세워 놓고 조심하는 신앙, 그런 자세, 그런 목회, 그렇게 노력할 때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공회는 교단들 중에 그런 면이 확실히 많았고 공회 목회자들은 목사님 생전에 대부분 그렇게 보였다. 사후에도 더러 있었다.
그 중에 죽을 때까지 절대 변치 않을 듯하다는 이들이 모인 곳을 부공4라고 한다. 이 분들은 불과 한두 해만에 다 드러 났다.
경건의 분위기만 붙들고 있었지 이들 속에는 만사를 각목으로 해결하거나 검정 양복에 007 가방을 들고 위세로 해결했다.
그래도 더 오래 간 분들이 부공1에 드러 있었다. 세월 속에 이렇게 저렇게 만나거나 대화할 일이 있었다. 한 분도 남지 않았다.
부공3에는 몇 분을 기대했다. 최근 대구의 기도원 문제로 그들의 경건과 절대 신본주의라는 평소의 모습을 현재는 접었다.
대구공회에는 아직도 한 분이 계신다. 그런 듯했으나 아닌 듯해서 늘 애매했다. 그러나 30 년 세월을 통해 오직 주님뿐이다.
이렇게 주님뿐인 이들의 행동은 아예 보이지를 않거나 인본주의 정치 목사보다 더 날뛰는 듯한 때도 있으나 표시가 난다.
내가 아는 범위만 적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범위는 의외로 좀 많은 편이다. 레바논 산 꼭대기를 향해 우리는 올라 가고 있다.
발치에서는 모두가 힘 있게 자신만만하게 출발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가고 사건이 겹치게 되면 결국 속에 본색이 나온다.
없던 본색이 나오지는 않는다. 자기가 알았든 몰랐든 속에 있는 것이 나온다. 바람에 날라 와서 덮인 것은 쉽게 구별 된다.
요셉이 애굽까지 간 것은 유학의 꿈을 추진한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현실로 몰아 쳐 데리고 간 것이다.
남에게는 공회의 가장 강한 사람이나 알고 보면 가장 약할 수 있고, 가장 약해 보인 사람이 가장 많은 피를 흘렸을 수도 있다.
나는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 말을 내게 하신 분들은 사람을 아끼지 않았고 나는 아꼈다고 생각한다.
(꼬리는 머리 따라 간다)
어느 사상을 담아 둘 것인가, 그의 생애는 결국 그 사상이 담긴 그 머리를 따라 간다. 허송이 되든 복 된 열매를 맺든..
어느 교회를 머리로 삼고, 어떤 지도자를 머리로 삼을 것인가? 나는 백영희가 아니라 백영희 노선을 머리로 삼았다..
이 노선 이 사상이 주님을 머리로 삼고 성경으로만 걸어 간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면 표시가 날 때가 되었다.
속으로는 무엇이 나의 머리인지도 살피고, 한 편으로 세월과 사건들을 겹치고 지나 가면서 나의 머리는 옳은지도 살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