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인도(8) - 끝 없는 전도, 내재 된 심각성 : 주교의 열매로 돌아 본다.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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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1 18:35
(쏟아 지는 새 전도, 끝 없는 개척)
부산은 이 나라 최대의 항구 도시다. 바다가 높은 산을 끼고 있으면 항만이 형성 된다. 부산이라는 단어가 솥뚜껑이란 뜻이다.
같은 바닷가라도 해안선을 따라 산이 없고 그냥 넓게 퍼진 곳은 백사장으로 해수욕장이 되든, 갯펄이 되어 조개 잡는 곳이다.
바닷가에 산이 높으면 해안선을 따라 해수면 밑으로 골짜기가 깊어 지며 큰 배를 댈 수가 있다. 그 주변은 매립하여 발전 된다.
부산은 해안선을 따라 산이 높아 항만이 형성 되었고 전쟁으로 피난민의 판자촌이 형성 되어 주교 전도에 최적화를 설명했다.
인구도 국내 2 위, 해안선을 따라 산이 높고 꼭대기를 향해 고층 아파트처럼 촘촘하게 밀집한 판자촌은 주교에 이상적이었다.
부산의 대부분 교회가 성탄절과 여름성경학교 외에는 거의 전도를 하지 않았고 심방은 없던 시절이니 서부주교의 독무대다.
어디든 가면 한 골목에 몇십 명씩 홀린 듯이 따라 나오던 1970년대, 바로 이 그림 같은 장면이 주교의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
매주 8천 명의 학생이 항상 이어 지니 반사들의 전도에 대한 자신감은 당연한 듯했고 모두가 자신이 넘쳤다. 분명 은혜였다.
(끝까지 기르는 것이 주교인데)
서부주교의 엄청난 발전에 제도적 배경이 된 것은 한 반사가 한 학생을 맡으면 장년반에 올라 갈 때까지 반을 바꾸지 않는다.
이 것이 세계와 국내의 모든 주교가 지켜 온 고정 관념과 제도를 혁파했고 세계 최대의 주교가 되었다. 반을 바꾸지 않는다??
정말 그랬을까? 정말 그랬다. 몇 학 년의 누구를 데려 오던 전도한 반사가 맡는다는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옳은 제도다.
그런데 불신 가정 아이들은 결석할 때도 있다. 실은 많다. 결석이 길어 질 때도 있다. 결석이 길어 져도 놓치를 말아야 한다.
아이가 죽거나 다른 교회로 가기 전에는 자기 학생 이름을 평생 적어 놓고 기도한다. 잃은 양을 잊지 않는 것이 서부주교다.
이렇게 하려면 반사가 자기 학생들이 사는 지역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 심방을 계속 가려면 지역을 넓히거나 바꿀 수 없다.
한 반사가 한 지역에 가서 아이들을 몰아 오고 시간이 좀 지나면 그냥 따라 온 아이들은 떨어 지고 다니는 아이들만 남는다.
처음에는 한 골목에서 50 명을 데리고 나와도 몇 달이 지나면 1~20명만 남는다. 5 개 골목을 맡으면 50 ~ 100 명이 나온다.
한 번씩이라도 나와 본 학생은 2 ~ 300 명이 되거나 그 이상도 된다. 골목도 5 개가 아니라 10 개 될 수도 있고 다 다르다.
그런데 그 골목 그 지역을 매주 토요일 심방을 하고 주일에는 직접 가서 예배당으로 데리고 오는 일을 평생 반복해야 한다.
천주교나 다른 교회처럼 지역을 할당해서 맡기지 않고 모든 반사는 어디라도 원하는 대로 가면 된다. 간 곳이 자기 지역이다.
이미 다른 반사가 잘 가꾸는 골목은 들어 갈 여지도 없고 들어 갈 필요도 없다. 부산 전역에 널린 것이 판자촌 골목들이다.
그런데 한 번 들어 가고, 그 곳에서 출석이 시작하면 그 반사는 그 지역을 옮기지 못한다. 1 명 남아도 지켜 내야 할 곳이다.
이미 나왔던 아이들이 몇 달 뒤에 또는 몇 년 뒤에라도 다시 출석을 할 수 있다. 하게 해야 한다. 늘 방문을 해야 그렇게 된다.
서부주교를 접해 보지 않은 동네와 그 골목에 서부 반사가 들어 가면 일거에 몰려 온다. 그리고 세월 속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기 결석자가 많아 져서 고생은 하지만 출석 총수가 너무 줄게 되면 반사는 지역을 바꿀 유혹을 받게 된다.
다른 교회는 반사를 임명할 때 비록 그 교회에서 최고는 아니나 어느 정도 신앙 있는 사람을 선발한다. 모두 괜찮은 편이다.
서부주교는 일반 교인 중에 최대치를 선발하고 투입한다. 반사의 자격과 실력은 현장을 뛰다 보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이 방법이 무모해 보이나 결과적으로는 보면 최적 최대 최상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천사 되지는 않는다. 어디나 마찬 가지다.
반사를 한 지 한두 달 만에 1백 명을 출석 시킨 반사가 몇 달 뒤에는 같은 노력을 유지하는데도 2~30 명만 출석을 하게 된다.
아주 흔한 경우다. 이런 반사는 부산 전역 어디에 던져 놓아도 비슷한 일이 반복이 된다. 이런 동네를 몇 개를 가지게 될까?
서부교회의 아마 현직일 듯한데 서문행 장로님은 50여 년 아미동 한 지역만 다닐 분이다. 30여 년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다.
처음 잘 나오다 몇 달 또는 몇 년을 나오지 않다 다시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 때문에 평생 지역을 고수해 왔다.
이 것이 백 목사님 뜻이고 이 것이 서부주교다. 그런데 6백 개 반의 반사를 모두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파악이 되지 않는다.
한 반사가 매일 보고 되는 자기의 출석 성적에 마음이 흔들리면 옆 골목 다른 동네로 지역을 확장한다. 당장 성적은 오른다.
한 반사가 자기 학생만 끝까지 맡는다는 원칙은 당연히 지켜 진다. 그런데 그 반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학생은 계속 바뀐다.
한 동네 안에서 이 학생과 저 학생이 교차하는 것은 자라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하나는 동 쪽 하나는 서 쪽이 되면 문제다.
서부주교 반사는 다른 반사가 아직 들어 가지 않는 밀집 지역을 가면 거의 대개 아이들을 엄청 끌어 올 수 있음을 잘 안다.
매주 오후 예배가 끝나면 6백 명 반사와 4백 명 보조 반사, 그리고 교회에 중요한 대부분 교인들이 반사회를 지켜 본다.
백 목사님이 예배 후 하강단에서 반사회를 인도하며 50 명 이상 출석한 반의 반사 이름과 숫자를 차례로 부르며 확인한다.
반사들은 이 한 순간의 감격은 한 주간의 노력이 보상 되고, 이 순간을 위해서는 학업이든 생업이든 뒤로 제쳐 둘 수가 있다.
그 현장의 열기는 상금도 상품도 아무 것도 주어 지는 것이 없으나 나로 인해 예배를 드린 학생을 떠 올리며 감격을 한다.
교회 전체를 인도하는 방향은 맞다. 반사들에게 물 한 컵도 주지 않는다. 오로지 1천 여 반사가 알아서 한 주간을 충성한다.
그리고 부산의 골목 곳곳에서 불신 가정 아이들을 8천 여 명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공회의 교훈을 요약해서 마음껏 외친다.
그렇게 전도했고 인도했고 가르친 그 주간의 자기 결산은 반사회에 호명 딱 한 순간인데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그렇지만 새로 들어 간 지역의 어떤 분위기 때문에 1백 명 출석이 2~30여 명으로 줄면 당장의 숫자를 위해 마음이 흔들린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최고 신앙가였지만 결국 흔들렸다. 다윗도 노년에 다시 흔들렸다. 열두 제자는 좌우 위치로 싸움도 했다.
서부교회 일반 교인이면 누구나 시작해 보는 반사직은 사울이나 다윗의 신앙이 아니라 그들 밑에 일반 군병 중 하나 정도다.
이들이 흔들리지 않을까? 요압은 다윗의 최고 군장이었으나 다윗이 죽으며 솔로몬에게 요압적 신앙은 죽여 없애라고 했다.
우리 속에 누구나 옛 사람은 있고 이 것은 서부주교에도 항상 안팎에서 활동을 하는 법이다. 모두가 다 흔들린 것은 아니다.
70년대와 80년대를 집중적으로 비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70년대는 동네를 굳이 많이 옮길 필요가 없는 좋은 시기였다.
80년대가 되자 70년대보다 배나 더 노력을 해도 절반을 채우기 어려웠다. 결국 총수를 채우기 위해 지역을 옮기기 시작했다.
예배당 주변에서 활동하면 반사가 너무 많아서 1-20 명이 어렵다. 30 분 거리로 옮기면 바로 1백 명을 헤아리는 경우도 있다.
1976년경부터 이미 그런 현상은 있다 해도 멀리 가서 그 곳을 고수하는 편이었다. 80년대가 되자 옮기는 것이 예사가 됐다.
70년대를 맡은 책임자는 80년대를 맡은 책임자를 향해 인본이라고 지적할 만하다. 그러나 여건만 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역을 옮기는 문제는 당장에 총 출석수를 채우는 데는 쉽고 유리하나 한 사람을 평생을 통해 길러 가는 데는 아주 다르다.
타 교단과 공회의 근본 다른 점은, 공회는 한 번 교인을 전도하면 그 지속 집중 연속성이 정말 무섭다. 이단 소리가 나온다.
정통 교단 중에 한 번 출석하면 교회를 바뀌지 않는 비율에 있어 최고가 아닐까? 그런데 주교의 경우는 이 면이 아주 다르다.
부산 전역에 서부교회 다녀 보지 않은 학생은 없을 것 같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공회는 길러 가는 내면을 늘 중시했다.
그런데 주교 학생들에게는 이 원칙이 배제 된 느낌이다. 백 목사님의 교훈과 지도는 늘 길러 가는 면과 전도가 같이 나간다.
어린 반사들은 길러 가는 면이 무엇인지 사실 알기도 어렵고 그냥 충성만 하다 보니 출석수에 영향을 받고 그렇게 흘러 갔다.
그러다 80년대를 맡은 책임자가 주교 전체의 출석수가 현저히 낮아 질 조짐을 보이자 세상 말고 구역을 대규모로 조정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반사가 10여 명에 허덕이면 그 곳을 포기 시키고 직접 데리고 새로운 동네 새로운 구역을 맡겼다.
맡기는 방법은 출퇴근 버스를 교회가 빌려서 한 지역에 반사를 몇 명 투입한다. 그리고 한 달이면 버스에 150 명도 태운다.
그렇게 하여 반사가 힘을 얻고 그 반사가 차원이 다른 신앙으로 자란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지역의 고수를 알지도 못했다.
여기서 하다 안 되면 저리로 가고, 저기서 하다 안 되면 이 곳으로 옮기는 식이다. 경영만 남고 신앙은 소리 없이 사라 졌다.
(80년대 후반이 되면서 건의를 드렸다.)
목사님께 주교가 지역을 자주 바꾸는데 이 것이 하나의 주교 운영 방법론으로 발전이 되면서 폐해가 심하다고 말씀 드렸다.
목사님께서 모를 분인가? 한 반사의 개인 신앙도 보고, 그 지역에 버려 진 아이들도 알고 있다. 또 주교 전체도 보고 있었다.
교계가 서부교회를 지켜 보며 전국적으로 모두 힘을 쏟았고 그 숫자는 실로 엄청 난 정도였다. 이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글은 이 정도에서 그친다. 이 문제를 두고 좁게 넓게, 당장도 보고 훗날도 보고, 두루두루 살펴 보면 목사님 결정이 맞다.
또한 80년대 책임자는 처음부터 신앙을 보고 맡긴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앉힐 때부터 교계적 사명 때문에 선발을 했다.
그러니 그 책임자는 70년대보다 여러 배나 어려워 진 여건에서 70년대와 비교할 만큼 노력을 해야 했고 그는 충성을 했다.
오늘 나는 그 때를 다시 회상하며 오늘의 최근의 지나 간 환경과 지금 급변하는 환경을 비교하며 오늘의 문제를 집중한다.
결혼과 출산이 목회자 사택들부터 줄어 들고 없어 지고 있다. 공회조차 급격히 그런 현상이 보인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오늘의 주교 대책과 오늘의 개척과 교회 부흥은 사택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사택 자녀들의 교회 밖 진출을 보면 다 보인다.
사택 자녀부터 결혼이 늦어 지고 출산이 줄고 사택 자녀는 그 교회가 아닌 먼 곳에 가고 자기 교인에게는 이 교회를 지켜라!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이 교회를 지키자고 하려면 자기 아이들은 어떻게 했는지 교인들이 지켜 보고 계산하지 않겠는가?
목회자가 아이가 없는 시대라며 개탄을 하면 교인들은 사택의 결혼과 출산을 계산하지 않겠는가? 이 것은 자연의 양심이다.
전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은 이제 거의 여성들이다. 이들이 대거 결혼에 나서고 다산에 나서면 학교는 지켜 진다.
그 여성들이 비운 교직에 남성들을 앉히면 전국의 남성에게 취업이 열리고 그들이 주는 돈으로 여성은 인재를 기르면 된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알면서 저 버리고 모든 여성이 학교로 일선 직장으로 몰려 드니 인류가 줄고 국민이 줄어야 마땅하다.
미개하거나 바보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똑똑한 지성인이 실력이 있으면 그 반대가 된다. 교회는 지금 어떤 상황이겠는가?
부산은 이 나라 최대의 항구 도시다. 바다가 높은 산을 끼고 있으면 항만이 형성 된다. 부산이라는 단어가 솥뚜껑이란 뜻이다.
같은 바닷가라도 해안선을 따라 산이 없고 그냥 넓게 퍼진 곳은 백사장으로 해수욕장이 되든, 갯펄이 되어 조개 잡는 곳이다.
바닷가에 산이 높으면 해안선을 따라 해수면 밑으로 골짜기가 깊어 지며 큰 배를 댈 수가 있다. 그 주변은 매립하여 발전 된다.
부산은 해안선을 따라 산이 높아 항만이 형성 되었고 전쟁으로 피난민의 판자촌이 형성 되어 주교 전도에 최적화를 설명했다.
인구도 국내 2 위, 해안선을 따라 산이 높고 꼭대기를 향해 고층 아파트처럼 촘촘하게 밀집한 판자촌은 주교에 이상적이었다.
부산의 대부분 교회가 성탄절과 여름성경학교 외에는 거의 전도를 하지 않았고 심방은 없던 시절이니 서부주교의 독무대다.
어디든 가면 한 골목에 몇십 명씩 홀린 듯이 따라 나오던 1970년대, 바로 이 그림 같은 장면이 주교의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
매주 8천 명의 학생이 항상 이어 지니 반사들의 전도에 대한 자신감은 당연한 듯했고 모두가 자신이 넘쳤다. 분명 은혜였다.
(끝까지 기르는 것이 주교인데)
서부주교의 엄청난 발전에 제도적 배경이 된 것은 한 반사가 한 학생을 맡으면 장년반에 올라 갈 때까지 반을 바꾸지 않는다.
이 것이 세계와 국내의 모든 주교가 지켜 온 고정 관념과 제도를 혁파했고 세계 최대의 주교가 되었다. 반을 바꾸지 않는다??
정말 그랬을까? 정말 그랬다. 몇 학 년의 누구를 데려 오던 전도한 반사가 맡는다는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옳은 제도다.
그런데 불신 가정 아이들은 결석할 때도 있다. 실은 많다. 결석이 길어 질 때도 있다. 결석이 길어 져도 놓치를 말아야 한다.
아이가 죽거나 다른 교회로 가기 전에는 자기 학생 이름을 평생 적어 놓고 기도한다. 잃은 양을 잊지 않는 것이 서부주교다.
이렇게 하려면 반사가 자기 학생들이 사는 지역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 심방을 계속 가려면 지역을 넓히거나 바꿀 수 없다.
한 반사가 한 지역에 가서 아이들을 몰아 오고 시간이 좀 지나면 그냥 따라 온 아이들은 떨어 지고 다니는 아이들만 남는다.
처음에는 한 골목에서 50 명을 데리고 나와도 몇 달이 지나면 1~20명만 남는다. 5 개 골목을 맡으면 50 ~ 100 명이 나온다.
한 번씩이라도 나와 본 학생은 2 ~ 300 명이 되거나 그 이상도 된다. 골목도 5 개가 아니라 10 개 될 수도 있고 다 다르다.
그런데 그 골목 그 지역을 매주 토요일 심방을 하고 주일에는 직접 가서 예배당으로 데리고 오는 일을 평생 반복해야 한다.
천주교나 다른 교회처럼 지역을 할당해서 맡기지 않고 모든 반사는 어디라도 원하는 대로 가면 된다. 간 곳이 자기 지역이다.
이미 다른 반사가 잘 가꾸는 골목은 들어 갈 여지도 없고 들어 갈 필요도 없다. 부산 전역에 널린 것이 판자촌 골목들이다.
그런데 한 번 들어 가고, 그 곳에서 출석이 시작하면 그 반사는 그 지역을 옮기지 못한다. 1 명 남아도 지켜 내야 할 곳이다.
이미 나왔던 아이들이 몇 달 뒤에 또는 몇 년 뒤에라도 다시 출석을 할 수 있다. 하게 해야 한다. 늘 방문을 해야 그렇게 된다.
서부주교를 접해 보지 않은 동네와 그 골목에 서부 반사가 들어 가면 일거에 몰려 온다. 그리고 세월 속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기 결석자가 많아 져서 고생은 하지만 출석 총수가 너무 줄게 되면 반사는 지역을 바꿀 유혹을 받게 된다.
다른 교회는 반사를 임명할 때 비록 그 교회에서 최고는 아니나 어느 정도 신앙 있는 사람을 선발한다. 모두 괜찮은 편이다.
서부주교는 일반 교인 중에 최대치를 선발하고 투입한다. 반사의 자격과 실력은 현장을 뛰다 보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이 방법이 무모해 보이나 결과적으로는 보면 최적 최대 최상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천사 되지는 않는다. 어디나 마찬 가지다.
반사를 한 지 한두 달 만에 1백 명을 출석 시킨 반사가 몇 달 뒤에는 같은 노력을 유지하는데도 2~30 명만 출석을 하게 된다.
아주 흔한 경우다. 이런 반사는 부산 전역 어디에 던져 놓아도 비슷한 일이 반복이 된다. 이런 동네를 몇 개를 가지게 될까?
서부교회의 아마 현직일 듯한데 서문행 장로님은 50여 년 아미동 한 지역만 다닐 분이다. 30여 년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다.
처음 잘 나오다 몇 달 또는 몇 년을 나오지 않다 다시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 때문에 평생 지역을 고수해 왔다.
이 것이 백 목사님 뜻이고 이 것이 서부주교다. 그런데 6백 개 반의 반사를 모두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파악이 되지 않는다.
한 반사가 매일 보고 되는 자기의 출석 성적에 마음이 흔들리면 옆 골목 다른 동네로 지역을 확장한다. 당장 성적은 오른다.
한 반사가 자기 학생만 끝까지 맡는다는 원칙은 당연히 지켜 진다. 그런데 그 반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학생은 계속 바뀐다.
한 동네 안에서 이 학생과 저 학생이 교차하는 것은 자라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하나는 동 쪽 하나는 서 쪽이 되면 문제다.
서부주교 반사는 다른 반사가 아직 들어 가지 않는 밀집 지역을 가면 거의 대개 아이들을 엄청 끌어 올 수 있음을 잘 안다.
매주 오후 예배가 끝나면 6백 명 반사와 4백 명 보조 반사, 그리고 교회에 중요한 대부분 교인들이 반사회를 지켜 본다.
백 목사님이 예배 후 하강단에서 반사회를 인도하며 50 명 이상 출석한 반의 반사 이름과 숫자를 차례로 부르며 확인한다.
반사들은 이 한 순간의 감격은 한 주간의 노력이 보상 되고, 이 순간을 위해서는 학업이든 생업이든 뒤로 제쳐 둘 수가 있다.
그 현장의 열기는 상금도 상품도 아무 것도 주어 지는 것이 없으나 나로 인해 예배를 드린 학생을 떠 올리며 감격을 한다.
교회 전체를 인도하는 방향은 맞다. 반사들에게 물 한 컵도 주지 않는다. 오로지 1천 여 반사가 알아서 한 주간을 충성한다.
그리고 부산의 골목 곳곳에서 불신 가정 아이들을 8천 여 명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공회의 교훈을 요약해서 마음껏 외친다.
그렇게 전도했고 인도했고 가르친 그 주간의 자기 결산은 반사회에 호명 딱 한 순간인데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그렇지만 새로 들어 간 지역의 어떤 분위기 때문에 1백 명 출석이 2~30여 명으로 줄면 당장의 숫자를 위해 마음이 흔들린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최고 신앙가였지만 결국 흔들렸다. 다윗도 노년에 다시 흔들렸다. 열두 제자는 좌우 위치로 싸움도 했다.
서부교회 일반 교인이면 누구나 시작해 보는 반사직은 사울이나 다윗의 신앙이 아니라 그들 밑에 일반 군병 중 하나 정도다.
이들이 흔들리지 않을까? 요압은 다윗의 최고 군장이었으나 다윗이 죽으며 솔로몬에게 요압적 신앙은 죽여 없애라고 했다.
우리 속에 누구나 옛 사람은 있고 이 것은 서부주교에도 항상 안팎에서 활동을 하는 법이다. 모두가 다 흔들린 것은 아니다.
70년대와 80년대를 집중적으로 비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70년대는 동네를 굳이 많이 옮길 필요가 없는 좋은 시기였다.
80년대가 되자 70년대보다 배나 더 노력을 해도 절반을 채우기 어려웠다. 결국 총수를 채우기 위해 지역을 옮기기 시작했다.
예배당 주변에서 활동하면 반사가 너무 많아서 1-20 명이 어렵다. 30 분 거리로 옮기면 바로 1백 명을 헤아리는 경우도 있다.
1976년경부터 이미 그런 현상은 있다 해도 멀리 가서 그 곳을 고수하는 편이었다. 80년대가 되자 옮기는 것이 예사가 됐다.
70년대를 맡은 책임자는 80년대를 맡은 책임자를 향해 인본이라고 지적할 만하다. 그러나 여건만 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역을 옮기는 문제는 당장에 총 출석수를 채우는 데는 쉽고 유리하나 한 사람을 평생을 통해 길러 가는 데는 아주 다르다.
타 교단과 공회의 근본 다른 점은, 공회는 한 번 교인을 전도하면 그 지속 집중 연속성이 정말 무섭다. 이단 소리가 나온다.
정통 교단 중에 한 번 출석하면 교회를 바뀌지 않는 비율에 있어 최고가 아닐까? 그런데 주교의 경우는 이 면이 아주 다르다.
부산 전역에 서부교회 다녀 보지 않은 학생은 없을 것 같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공회는 길러 가는 내면을 늘 중시했다.
그런데 주교 학생들에게는 이 원칙이 배제 된 느낌이다. 백 목사님의 교훈과 지도는 늘 길러 가는 면과 전도가 같이 나간다.
어린 반사들은 길러 가는 면이 무엇인지 사실 알기도 어렵고 그냥 충성만 하다 보니 출석수에 영향을 받고 그렇게 흘러 갔다.
그러다 80년대를 맡은 책임자가 주교 전체의 출석수가 현저히 낮아 질 조짐을 보이자 세상 말고 구역을 대규모로 조정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반사가 10여 명에 허덕이면 그 곳을 포기 시키고 직접 데리고 새로운 동네 새로운 구역을 맡겼다.
맡기는 방법은 출퇴근 버스를 교회가 빌려서 한 지역에 반사를 몇 명 투입한다. 그리고 한 달이면 버스에 150 명도 태운다.
그렇게 하여 반사가 힘을 얻고 그 반사가 차원이 다른 신앙으로 자란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지역의 고수를 알지도 못했다.
여기서 하다 안 되면 저리로 가고, 저기서 하다 안 되면 이 곳으로 옮기는 식이다. 경영만 남고 신앙은 소리 없이 사라 졌다.
(80년대 후반이 되면서 건의를 드렸다.)
목사님께 주교가 지역을 자주 바꾸는데 이 것이 하나의 주교 운영 방법론으로 발전이 되면서 폐해가 심하다고 말씀 드렸다.
목사님께서 모를 분인가? 한 반사의 개인 신앙도 보고, 그 지역에 버려 진 아이들도 알고 있다. 또 주교 전체도 보고 있었다.
교계가 서부교회를 지켜 보며 전국적으로 모두 힘을 쏟았고 그 숫자는 실로 엄청 난 정도였다. 이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글은 이 정도에서 그친다. 이 문제를 두고 좁게 넓게, 당장도 보고 훗날도 보고, 두루두루 살펴 보면 목사님 결정이 맞다.
또한 80년대 책임자는 처음부터 신앙을 보고 맡긴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앉힐 때부터 교계적 사명 때문에 선발을 했다.
그러니 그 책임자는 70년대보다 여러 배나 어려워 진 여건에서 70년대와 비교할 만큼 노력을 해야 했고 그는 충성을 했다.
오늘 나는 그 때를 다시 회상하며 오늘의 최근의 지나 간 환경과 지금 급변하는 환경을 비교하며 오늘의 문제를 집중한다.
결혼과 출산이 목회자 사택들부터 줄어 들고 없어 지고 있다. 공회조차 급격히 그런 현상이 보인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오늘의 주교 대책과 오늘의 개척과 교회 부흥은 사택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사택 자녀들의 교회 밖 진출을 보면 다 보인다.
사택 자녀부터 결혼이 늦어 지고 출산이 줄고 사택 자녀는 그 교회가 아닌 먼 곳에 가고 자기 교인에게는 이 교회를 지켜라!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이 교회를 지키자고 하려면 자기 아이들은 어떻게 했는지 교인들이 지켜 보고 계산하지 않겠는가?
목회자가 아이가 없는 시대라며 개탄을 하면 교인들은 사택의 결혼과 출산을 계산하지 않겠는가? 이 것은 자연의 양심이다.
전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은 이제 거의 여성들이다. 이들이 대거 결혼에 나서고 다산에 나서면 학교는 지켜 진다.
그 여성들이 비운 교직에 남성들을 앉히면 전국의 남성에게 취업이 열리고 그들이 주는 돈으로 여성은 인재를 기르면 된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알면서 저 버리고 모든 여성이 학교로 일선 직장으로 몰려 드니 인류가 줄고 국민이 줄어야 마땅하다.
미개하거나 바보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똑똑한 지성인이 실력이 있으면 그 반대가 된다. 교회는 지금 어떤 상황이겠는가?
세부목록
- 시대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1) - 교계와 비교 : 주교 같은 오늘의 공회 대책
- 시대적 인도(2) - 공회 역사로 오늘을 본다 : 30년 단위의 전환점
- 시대적 인도(3) - 교회와 예배가 없어 졌다 : 그 대책은?
- 시대적 인도(4) - 서부주교의 불편한 진실 : 평정심을 잃게 한 대규모 견학
- 시대적 인도(5) - 서부주교의 80년대, 그 힘겨운 상황 : 도심 개발과 이주
- 시대적 인도(6) - 사회 발전과 국가 정책 : 과외 금지, 만화 방영의 파괴력
- 시대적 인도(7) - 80년대 서부주교의 비상 대책들 : 선을 넘고 있었다.
- 시대적 인도(8) - 끝 없는 전도, 내재 된 심각성 : 주교의 열매로 돌아 본다.
- 시대적 인도(9) - 20대의 주교 대형 버스 : 발전인가 후퇴인가
- 시대적 인도(10) - 개간과 길바닥 : 분교로 마무리 했으나

가끔 주변 골목을 새로 개척하지만 첫 발을 딛은 곳이 눈 밖으로 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전체 지역을 살핀다.
먼저 시작한 곳에 학생이 갈수록 적어 지고 새로운 지역의 학생이 출석의 주를 이루어도 원 지역은 고수한다.
첫 지역 학생이 아주 적어 질 때 즈음, 그 곳에서 중간반이 된 온 학생들이 생기며 그 곳을 챙길 때 도와 준다.
이 중간반이 어느 덧 장년반이 되는 결실도 보면서 또 그 주변에 지켜만 보던 학생의 부모가 이제 출석 한다.
출석에 상관 없이 1 년 토요 심방만은 빠지지 않는다. 그러다 가정에 일이 생기면? 가정 전도로 바뀌게 된다.
오래 된 지역에서 중간반과 장년반이 생기고, 이들 때문에 이 지역은 항상 눈에 떼지 않을 때 생기는 열매다.
지역을 넓혀도 조금만 신중하면 결과적으로 이런 식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마음이 급하다. 우리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