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부 출발 40년, 평생을 돌아 본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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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0 04:45
우리는 기념식이 없다. 주일만 날이고, 연중 행사는 5월과 8월만 머리 속에 있다. 8월 27일은 공회 역사일이어서 기억한다.
그 외의 날들은 기억에 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40년을 넘긴 '백영희 목회연구소의 연구부'까지 잊고 있었다.
10월 5일, 백영희 설교의 '연구'가 시작 되었다. 자료 모집은 그 전부터 있었고 설교를 위한 원고 노력도 있었다.
1982년 10월 5일, 백 목사님께 연구소의 향후 연구부가 될 허락을 받은 날이다.
만 40년을 항상 그 설교를 마음에 담고 모든 노력은 그 설교의 연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성경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연구소의 소장을 거쳐 간 사람도 많고 나름대로 설교의 전문가나 권위자 그리고 공로자들도 참 많았다.
그런데 40 년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인간의 한 때는 혼란스러웠으나 세월이라는 심판대가 설교록을 두고 모든 것을 판명했다.
평생, '백영희 설교 연구와 전파'를 두고만 말한다면 나는 최고는 아니고 독보도 아니지만 아마 1 등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도 그렇고 현금으로 여기 들이 부은 것도 제일 많을 듯하다. 백도광 장로님은 출발 때 구의남 장로님은 도중에 연보했다.
시세를 대입한다 해도 내 돈이 제일 많이 들어 간 듯하다. 그런데 도청에 신고 없이 입금했다고 전과자가 되었다.
제 아버지 앞에 설 때를 계산해 봤을까? 그랬다면 상을 주지 고발할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그는 그냥 불신자다.
나의 평생, 앞으로 100 세를 산다 하고 돌아 봐도 내 인생에 가장 보람 되고 가장 복 되게 가져 갈 것은 '백영희 설교 소개'다.
그 설교를 몰랐다면 역사에 그 많은 선배들이 혼선을 빚었던 그 길에서 벗어 나지 못했을 것같다. 이 설교에서 성경을 알았다.
내가 알았기 때문에 남들에게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어떤 소개, 어떤 신학, 어떤 교파, 어떤 설교보다 성경을 잘 소개했다.
주님 오실 때가 퍽 남아 있을지라도 백영희 설교를 넘어 서는 성경 안내는 없을 듯하다. 이 확신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리고 그 쏟은 세월과 노력과 돈과 모든 언행의 세세한 것이 갈수록 더 감사하고 더 보람 될 뿐이다. 그리고 자자손손에게 부탁하며 주변 모두에게 내가 할 말 하나는 '성경이 전부요 유일인데, 성경이 어렵고 애매하면 백영희 설교'에서 해결하라고 안내한다.
2. 설교록의 오늘 여파는
평생을 두고 목회적 노력의 제일 보람은 20세 결혼을 정착 시켰고 30세에 3-4명의 아이를 낳는 것이 평균이거나 당연한 분위기가 되게 한 것이다. 말세는 노아 때와 같이 7계명으로 절단 난다 했는데 이런 시대를 맞설 최소한이며 당연한 기본 대처는 2세 결혼에 30세에 3-4명, 그리고 30대를 거치면 4-5명을 낳게 되면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노아 때 홍수에 휩쓸려 간 무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런 것도 크게 보면 설교록 연구에 포함 되어 있다. 설교록을 통해 성경의 깊이도 또 역사의 난해절도 모두 해결이 되지만, 각자의 자기 시대와 자기 현실에 대한 해결도 성경 안에서 모두 찾게 해 준다.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연구소도 또 이 사이트도 운영이 되고 있다. 이미 세상을 읽는 사람들은 이 표현의 의미를 알 듯하다. 모두가 다 알게 될 때는 방주의 조립도 출입도 금지가 된다. 한 시대를 앞에 가고, 한 발을 앞에 간다고 표현하고자 한다. 이 외에 다른 면은 모두가 다 부족하다. 사람마다 한두 가지는 좀 나은 사안이 있을 듯하다. 나에게는 백영희 설교 연구와 안내, 그리고 20세의 결혼과 20대에 3-4명의 자녀 출산이 일반화 되는 상황이 나의 나은 점이다. 나머지는 모든 사람보다 모두 부족하다. 그런데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 모든 종류의 부족을 다 넉넉히 넘어 설 수 있을 듯하다. 굳이 하나를 더 더하라면 설교록 때문에 나는 세상 공부에 매달리는 청소년 교인들에게 마음 놓고 세상 공부에 얽매인 짐을 벗게 만들었다. 내 주변에 나의 안내를 받는 이들은 초등학교만 다니면 1-2년 독학을 하고 대학을 20세 전에 끝을 내고 직장을 다닌다. 백영희의 신앙 노선, 내가 알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세계다.
그 외의 날들은 기억에 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40년을 넘긴 '백영희 목회연구소의 연구부'까지 잊고 있었다.
10월 5일, 백영희 설교의 '연구'가 시작 되었다. 자료 모집은 그 전부터 있었고 설교를 위한 원고 노력도 있었다.
1982년 10월 5일, 백 목사님께 연구소의 향후 연구부가 될 허락을 받은 날이다.
만 40년을 항상 그 설교를 마음에 담고 모든 노력은 그 설교의 연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성경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연구소의 소장을 거쳐 간 사람도 많고 나름대로 설교의 전문가나 권위자 그리고 공로자들도 참 많았다.
그런데 40 년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인간의 한 때는 혼란스러웠으나 세월이라는 심판대가 설교록을 두고 모든 것을 판명했다.
평생, '백영희 설교 연구와 전파'를 두고만 말한다면 나는 최고는 아니고 독보도 아니지만 아마 1 등은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도 그렇고 현금으로 여기 들이 부은 것도 제일 많을 듯하다. 백도광 장로님은 출발 때 구의남 장로님은 도중에 연보했다.
시세를 대입한다 해도 내 돈이 제일 많이 들어 간 듯하다. 그런데 도청에 신고 없이 입금했다고 전과자가 되었다.
제 아버지 앞에 설 때를 계산해 봤을까? 그랬다면 상을 주지 고발할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그는 그냥 불신자다.
나의 평생, 앞으로 100 세를 산다 하고 돌아 봐도 내 인생에 가장 보람 되고 가장 복 되게 가져 갈 것은 '백영희 설교 소개'다.
그 설교를 몰랐다면 역사에 그 많은 선배들이 혼선을 빚었던 그 길에서 벗어 나지 못했을 것같다. 이 설교에서 성경을 알았다.
내가 알았기 때문에 남들에게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어떤 소개, 어떤 신학, 어떤 교파, 어떤 설교보다 성경을 잘 소개했다.
주님 오실 때가 퍽 남아 있을지라도 백영희 설교를 넘어 서는 성경 안내는 없을 듯하다. 이 확신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리고 그 쏟은 세월과 노력과 돈과 모든 언행의 세세한 것이 갈수록 더 감사하고 더 보람 될 뿐이다. 그리고 자자손손에게 부탁하며 주변 모두에게 내가 할 말 하나는 '성경이 전부요 유일인데, 성경이 어렵고 애매하면 백영희 설교'에서 해결하라고 안내한다.
2. 설교록의 오늘 여파는
평생을 두고 목회적 노력의 제일 보람은 20세 결혼을 정착 시켰고 30세에 3-4명의 아이를 낳는 것이 평균이거나 당연한 분위기가 되게 한 것이다. 말세는 노아 때와 같이 7계명으로 절단 난다 했는데 이런 시대를 맞설 최소한이며 당연한 기본 대처는 2세 결혼에 30세에 3-4명, 그리고 30대를 거치면 4-5명을 낳게 되면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노아 때 홍수에 휩쓸려 간 무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런 것도 크게 보면 설교록 연구에 포함 되어 있다. 설교록을 통해 성경의 깊이도 또 역사의 난해절도 모두 해결이 되지만, 각자의 자기 시대와 자기 현실에 대한 해결도 성경 안에서 모두 찾게 해 준다.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연구소도 또 이 사이트도 운영이 되고 있다. 이미 세상을 읽는 사람들은 이 표현의 의미를 알 듯하다. 모두가 다 알게 될 때는 방주의 조립도 출입도 금지가 된다. 한 시대를 앞에 가고, 한 발을 앞에 간다고 표현하고자 한다. 이 외에 다른 면은 모두가 다 부족하다. 사람마다 한두 가지는 좀 나은 사안이 있을 듯하다. 나에게는 백영희 설교 연구와 안내, 그리고 20세의 결혼과 20대에 3-4명의 자녀 출산이 일반화 되는 상황이 나의 나은 점이다. 나머지는 모든 사람보다 모두 부족하다. 그런데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 모든 종류의 부족을 다 넉넉히 넘어 설 수 있을 듯하다. 굳이 하나를 더 더하라면 설교록 때문에 나는 세상 공부에 매달리는 청소년 교인들에게 마음 놓고 세상 공부에 얽매인 짐을 벗게 만들었다. 내 주변에 나의 안내를 받는 이들은 초등학교만 다니면 1-2년 독학을 하고 대학을 20세 전에 끝을 내고 직장을 다닌다. 백영희의 신앙 노선, 내가 알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세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