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지도자를 가지는 방법
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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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9 12:32
(좋은 지도자의 기준)
좋은 지도자란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정말 좋은 지도자를 말하지만, 남들은 뭐라 해도 자기에게만 좋은 지도자도 있다.
공회의 백 목사님은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좋은 지도자이나 공회의 일반 목회자들은 거의 대개 좋은 지도자가 아니지만,
어느 교인에게나 어느 한 교회에게 어떤 어중간한 지도자가 심지어 백 목사님보다 낫다는 평가와 실제 그럴 일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이해도 동의도 하지 않으나 7~80년대 창북교회 청년들 중에는 김정웅 목사님을 백 목사님과 나란히 놓았고
서전교회는 이동화 목사님을 그렇게 고평가 했으나 서전보다 더 나아 보이는 남산교회 등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재순 목사님은 신풍교회에서 백 목사님을 넘어 섰다. 신풍 외 전국 교회 중 이재순 목사님을 호평하는 곳은 없는 듯하다.
김명재 목사님처럼 가는 곳마다 권위 있게 목회한 분도 있으나 홍순철 목사님은 청량리에서 아마 배척까지 받았던 듯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백 목사님은 그 많은 양 떼들 중에 자기 목자라는 것은 객관적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주어 진다고 했다.
나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다! 이 말은 객관적으로는 거의 다 틀렸지만 가정 별로는 거의 다 맞는다.
(좋은 지도자를 가진 교인)
어느 교회 어느 교인이라도, 자기에게 좋은 지도자는 따로 가질 수 있다. 그가 정말 좋은 지도자인지는 따지지 말자.
좋은 지도자를 가지는 순간 이 땅 위에서 가장 큰 횡재를 했다. 따라만 가면 풀이 있고 물이 있고 보호와 평안이 있다.
문제는 그 지도자가 영생하지는 않는다. 모세가 120세까지 건강했으나 때가 되니 불러 가 버리셨다. 끝이 있는 법이다.
불러 가는 때를 알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지도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자세가 필요하다.
백 목사님은 1989년 8월 27일에 가셨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순교로 갔다. 갑자기 가셨고 여러 현상이 나타 났다.
평소 목사님께 가장 많이 여쭙고 지도 받고 매달려 살던 사람들은 목사님이 가시자 좋은 일만 오늘까지 수없이 있었다.
계실 때 투덜대거나 대충 믿거나 곤란하게 행동한 분들은 그 분이 가시자 그야 말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폭망이었다.
어느 날 백 목사님이 가시면 저렇게 총애 받던 사람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는 말을 참으로 많이 들었다. 그 반대였다.
백 목사님만 데려 가면 이런 소신 저런 기술 다양한 실력으로 교회를 부흥 시키고 자기는 날개를 단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교회와 인물마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딱 폭망이다. 영육 간에, 교회의 외면 내면, 목회자와 교인까지 전부 끝장이다.
왜 그럴까? 누가 봐도 좋은 지도자라 해도 손양원 백영희라 해도 자기의 부족과 배워야 하는 자세를 모르면 헛일이다.
남들이 볼 때 지도자라 말조차 할 수 없다 해도 자기의 부족을 배우고 감사하게 순종하다 보면 내가 자라 가는 법이다.
나중 된 사람이든 먼저 된 사람이든 자기 앞에 지도자가 있고 이 지도자를 언제 불러 갈지 모른다 생각하고 배우게 되면
어느 못 난 지도자 밑에 어떤 못 난 교인이라 해도 기독교 범위 안에서, 성경으로 연구하고 실행해 보려고 노력만 한다면
오르지 못할 나무가 없지 싶다. 넘어 서지 못할 한계는 없지 싶다. 지난 날의 경험이다. 내가 못하면 능력이 대신 해 준다.
좋은 지도자란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정말 좋은 지도자를 말하지만, 남들은 뭐라 해도 자기에게만 좋은 지도자도 있다.
공회의 백 목사님은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좋은 지도자이나 공회의 일반 목회자들은 거의 대개 좋은 지도자가 아니지만,
어느 교인에게나 어느 한 교회에게 어떤 어중간한 지도자가 심지어 백 목사님보다 낫다는 평가와 실제 그럴 일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이해도 동의도 하지 않으나 7~80년대 창북교회 청년들 중에는 김정웅 목사님을 백 목사님과 나란히 놓았고
서전교회는 이동화 목사님을 그렇게 고평가 했으나 서전보다 더 나아 보이는 남산교회 등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재순 목사님은 신풍교회에서 백 목사님을 넘어 섰다. 신풍 외 전국 교회 중 이재순 목사님을 호평하는 곳은 없는 듯하다.
김명재 목사님처럼 가는 곳마다 권위 있게 목회한 분도 있으나 홍순철 목사님은 청량리에서 아마 배척까지 받았던 듯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백 목사님은 그 많은 양 떼들 중에 자기 목자라는 것은 객관적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주어 진다고 했다.
나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다! 이 말은 객관적으로는 거의 다 틀렸지만 가정 별로는 거의 다 맞는다.
(좋은 지도자를 가진 교인)
어느 교회 어느 교인이라도, 자기에게 좋은 지도자는 따로 가질 수 있다. 그가 정말 좋은 지도자인지는 따지지 말자.
좋은 지도자를 가지는 순간 이 땅 위에서 가장 큰 횡재를 했다. 따라만 가면 풀이 있고 물이 있고 보호와 평안이 있다.
문제는 그 지도자가 영생하지는 않는다. 모세가 120세까지 건강했으나 때가 되니 불러 가 버리셨다. 끝이 있는 법이다.
불러 가는 때를 알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지도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자세가 필요하다.
백 목사님은 1989년 8월 27일에 가셨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순교로 갔다. 갑자기 가셨고 여러 현상이 나타 났다.
평소 목사님께 가장 많이 여쭙고 지도 받고 매달려 살던 사람들은 목사님이 가시자 좋은 일만 오늘까지 수없이 있었다.
계실 때 투덜대거나 대충 믿거나 곤란하게 행동한 분들은 그 분이 가시자 그야 말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폭망이었다.
어느 날 백 목사님이 가시면 저렇게 총애 받던 사람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는 말을 참으로 많이 들었다. 그 반대였다.
백 목사님만 데려 가면 이런 소신 저런 기술 다양한 실력으로 교회를 부흥 시키고 자기는 날개를 단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교회와 인물마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딱 폭망이다. 영육 간에, 교회의 외면 내면, 목회자와 교인까지 전부 끝장이다.
왜 그럴까? 누가 봐도 좋은 지도자라 해도 손양원 백영희라 해도 자기의 부족과 배워야 하는 자세를 모르면 헛일이다.
남들이 볼 때 지도자라 말조차 할 수 없다 해도 자기의 부족을 배우고 감사하게 순종하다 보면 내가 자라 가는 법이다.
나중 된 사람이든 먼저 된 사람이든 자기 앞에 지도자가 있고 이 지도자를 언제 불러 갈지 모른다 생각하고 배우게 되면
어느 못 난 지도자 밑에 어떤 못 난 교인이라 해도 기독교 범위 안에서, 성경으로 연구하고 실행해 보려고 노력만 한다면
오르지 못할 나무가 없지 싶다. 넘어 서지 못할 한계는 없지 싶다. 지난 날의 경험이다. 내가 못하면 능력이 대신 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