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도 주권이 주는 복 - 전과도 감사하게 하는 공회 교훈의 사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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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6 15:49
교계의 흔하고 흔한 소식 중에 하나는 '총회장이 되게 하신 감사..' '총회장으로 저를 세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이런 식이다.
공회의 흔하고 흔한 설교는 '회장이 되려 한 동기가 자기 중심의 악이 아닌가..' '나를 이렇게 세우면 복음에 지장만 되는데..'
빌립보교회는 말씀 때문에 붙들려 옥에서 갇혔으나 새기다 보니 저절로 감사가 폭발하며 옥문이 열리고 교회가 시작됐다..
2 계명을 지키려다 6 년을 평양 감옥에 갇혔고 6 년의 고난과 묵상이 쌓여 질 때 8.15 해방과 한국 교회가 다시 출발했다..
고신이 이렇게 출발을 했고 그 고신 안에서 진리를 고수하려다 해방 후 자유의 세계에서 또 내몰리고 출발한 것이 공회다..
공회 교인은 평생, 최소한 수십 년을 이런 말씀으로 새기고 새겨 왔다. 그러나 막상 경찰이 부른다 하자 모두 숨어 버렸다.
그리고 이 곳의 직원들은 숨어 버린 그들이 볼 때 어리섞고 어리다 했는데 무지하고 뭘 모르니 꼿꼿히 입장을 견지해 왔다.
내가 들어 좋은 말씀, 천하에 끝까지 전한다고 했다. 온 공회와 가족들이 위협해도 고수했다. 그 동안 떠든 것 때문에라도..
목사의 설교는 월급을 받고 주일 오전에 설교한 내용도 전부 그 목사의 사유 재산이어서 상속이 되고 자녀만의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원은 불신 세상이니 공중의 권세 잡은 영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발표할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이 세상답다.
그런 세상의 결정을 놓고 하나님의 교회가 순복해야 한다는 주장.. 공회까지도 그런 결정에 모두가 순종해야 한다는 고소..
어쨌든 연구소의 직원들은 1982년부터 가정과 가족과 자신과 생애를 모두 바쳐 이 말씀과 이 노선이 좋아서 전해 왔다.
1993년부터 설교록 출간을 금지했지만 1997년까지 기다리다 다시 전면 제공을 했다. 그 때도 10여 건으로 고소를 당했다.
무차별로 이 노선과 이 교훈을 전한 끝에 2018년에 대법원은 백영희의 유산권을 가진 모든 가족의 이름으로 금지를 했다.
이 순간, 이 연구소는 이 땅 위에서 '백영희!' 가장 존경하고 감사했던 그 이름이 직접 기록한 1 차 자료는 자녀들께 넘겼다.
그리고 백영희, 그의 이어 지는 이름과 활동을 이 곳이 다시 독점을 했다. 2018년 이전의 1 차 자료도 이 곳만 전했듯이..
2018년 이후 백영희의 2 차 자료화도 이 곳만 하고 있다. 아닌가? 100 %는 아닐 터이다. 어디라도 있으면 연락을 부탁한다.
우리가 알기로는 우리만 하고 있다. 우리 아닌 곳에서도 시도를 하는 경우는 있다. 우리와 달라서가 아니라 종류가 다르다.
이 노선의 방식으로 하는 곳은 아직은 보지 못했다. 베드로 바울 등도 결국 주님처럼 복음을 전한다 하여 전과자가 되었다.
주기철 주남선 손양원도 이 땅 위에서는 모두가 전과자였다. 죽으면 순교가 되고 죽지 않았을 때는 출옥 성도 순생자였다.
이 연구소는 '이 노선' '이 교훈'을 기준으로 보면 아직도 목숨은 바치지 못했다. 그러나 전과자의 반열에는 서게 되었다.
'이 노선!' '이 교훈' 때문에 전과자가 된 이들이 있을까? 이 연구소에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준 고소인들에게 참 감사한다.
그러나 가시면류관을 씌운 이들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백영희 설교를 전했다 하여 전과자가 된 분의 집행유예 종료일에...
공회의 흔하고 흔한 설교는 '회장이 되려 한 동기가 자기 중심의 악이 아닌가..' '나를 이렇게 세우면 복음에 지장만 되는데..'
빌립보교회는 말씀 때문에 붙들려 옥에서 갇혔으나 새기다 보니 저절로 감사가 폭발하며 옥문이 열리고 교회가 시작됐다..
2 계명을 지키려다 6 년을 평양 감옥에 갇혔고 6 년의 고난과 묵상이 쌓여 질 때 8.15 해방과 한국 교회가 다시 출발했다..
고신이 이렇게 출발을 했고 그 고신 안에서 진리를 고수하려다 해방 후 자유의 세계에서 또 내몰리고 출발한 것이 공회다..
공회 교인은 평생, 최소한 수십 년을 이런 말씀으로 새기고 새겨 왔다. 그러나 막상 경찰이 부른다 하자 모두 숨어 버렸다.
그리고 이 곳의 직원들은 숨어 버린 그들이 볼 때 어리섞고 어리다 했는데 무지하고 뭘 모르니 꼿꼿히 입장을 견지해 왔다.
내가 들어 좋은 말씀, 천하에 끝까지 전한다고 했다. 온 공회와 가족들이 위협해도 고수했다. 그 동안 떠든 것 때문에라도..
목사의 설교는 월급을 받고 주일 오전에 설교한 내용도 전부 그 목사의 사유 재산이어서 상속이 되고 자녀만의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원은 불신 세상이니 공중의 권세 잡은 영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발표할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이 세상답다.
그런 세상의 결정을 놓고 하나님의 교회가 순복해야 한다는 주장.. 공회까지도 그런 결정에 모두가 순종해야 한다는 고소..
어쨌든 연구소의 직원들은 1982년부터 가정과 가족과 자신과 생애를 모두 바쳐 이 말씀과 이 노선이 좋아서 전해 왔다.
1993년부터 설교록 출간을 금지했지만 1997년까지 기다리다 다시 전면 제공을 했다. 그 때도 10여 건으로 고소를 당했다.
무차별로 이 노선과 이 교훈을 전한 끝에 2018년에 대법원은 백영희의 유산권을 가진 모든 가족의 이름으로 금지를 했다.
이 순간, 이 연구소는 이 땅 위에서 '백영희!' 가장 존경하고 감사했던 그 이름이 직접 기록한 1 차 자료는 자녀들께 넘겼다.
그리고 백영희, 그의 이어 지는 이름과 활동을 이 곳이 다시 독점을 했다. 2018년 이전의 1 차 자료도 이 곳만 전했듯이..
2018년 이후 백영희의 2 차 자료화도 이 곳만 하고 있다. 아닌가? 100 %는 아닐 터이다. 어디라도 있으면 연락을 부탁한다.
우리가 알기로는 우리만 하고 있다. 우리 아닌 곳에서도 시도를 하는 경우는 있다. 우리와 달라서가 아니라 종류가 다르다.
이 노선의 방식으로 하는 곳은 아직은 보지 못했다. 베드로 바울 등도 결국 주님처럼 복음을 전한다 하여 전과자가 되었다.
주기철 주남선 손양원도 이 땅 위에서는 모두가 전과자였다. 죽으면 순교가 되고 죽지 않았을 때는 출옥 성도 순생자였다.
이 연구소는 '이 노선' '이 교훈'을 기준으로 보면 아직도 목숨은 바치지 못했다. 그러나 전과자의 반열에는 서게 되었다.
'이 노선!' '이 교훈' 때문에 전과자가 된 이들이 있을까? 이 연구소에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준 고소인들에게 참 감사한다.
그러나 가시면류관을 씌운 이들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백영희 설교를 전했다 하여 전과자가 된 분의 집행유예 종료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