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 공유 - 교계의 목사 신임투표 사례
담당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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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4 10:28
(공회의 담임 목사 시무 결정)
공회의 담임 목사에 대한 시무 연장은 매 2 년마다 11월 마지막 주일에 참석한 중학생 1 학년 이상이 목회자의 시무 찬반을 표시하고 75%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퇴직금 없이' '합의금 요구 없이' '사택에서 방을 빼지 못한다며 이사비를 요구하지 않고' '지난 날 월급 계산에 빠진 돈을 달라는 요구'하지 않고 바로 이사를 간다. 이 약속을 하고 목회자로 선임하고 파송한다.
그러나 부산서부교회부터 백 목사님 사후 연이어 25% 이상의 불신임이 나왔으나 버티며 분쟁을 했다. 1990년의 첫 분쟁 때는 연구부 직원이 자료를 제시하고 바로 해결을 시켜 드렸다. 1992년의 불신임 때는 연구소가 더 이상 서부교회나 공회의 운영에 책임 질 수가 없어 지켜만 보고 있다. 평소는 목회자들이 온갖 큰 소리를 친다. 막상 문제가 되면 정치가들처럼 돌변한다.
공회는 1970년부터 꾸준히 이 제도를 발전 시켜 왔다. 발전이라는 표현에는 '변화'를 추구해 왔다. 그 변화의 추세는 공회의 3대원칙인 '규정 대신, 지난 날 처리한 사례'를 포함한다. 목회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불리하게 제도를 시행했다. 평소 설교 강단을 전담하는 담임 목회자란 교인에 비하여 너무 막강한 권리를 행사했다. 그렇다면 교인에게 2 년에 한 번은 최대한 '목회자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추세, 이 흐름에 필요한 변화는 언제나 가능하다. 목회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은 노선 이탈이 된다.
불신임을 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 교회의 목사가 아니다. 다만 후임을 모실 때까지 이전 목회자에게 '매 설교를 임시'로 부탁하는 상태로 대기할 수 있다. 남이 보면 별 일 없는 것과 같으나 내용으로는 그냥 외부 손님일 뿐이다.
(교계의 7 년 투표 제도)
분당우리교회가 7 년마다 신임투표를 이어 가고 있다면 반가운 소식이다.
그 분이 스스로 깨닫고 자기를 단속하기 위해 했다면 이 면으로는 우리와 '목회자의 자기 관리'가 같다. 미국 교회들의 미국식 방법을 참고했다면 공회와는 다르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 교회의 입장을 반영한다는 자체가 좋은 일이다. 성령이 한 분이므로 조금이라도 양심을 가진다면 저절로 하나가 되어 가는 법이다. 그 분이 만일 공회가 1970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알고 참고했다면 더욱 반가울 일이나 공회의 교훈과 제도는 그냥 앞에 서서 가는 것인지 시대의 빛이 되어 전파가 되고 있는 것인지 공회는 이런 것을 분석하려고 학술 논문으로 접근하지 않으니 세상에서는 전부 묻히고 있으나 공회가 느끼는 '감'이라는 것은 있다.
참고로, 시무투표의 기간을 7 년과 2 년은 단순히 숫자 차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미가 다를 만큼 그 내용이 다르다. 물론 기간 자체는 노선이 아니다.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그렇다고 2 년과 7 년으로 차이가 난다면 두 제도는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 또 세례 교인에게만 투표를 시키는 것과 중학생부터 투표를 하게 하는 것은 제도의 의미가 아주 달라 진다.
(공회의 서부교회 사례)
서부교회가 1992년 투표를 두고 철 없는 중학생에게 투표권을 준 것이 잘못이라고 어지간히 비판하고 목소리를 높였고 그 덕분에 당시 불신임 된 분이 90세를 바라 보도록 평생 현직을 고수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지금쯤은 본인 스스로 고개를 들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중학생에게도 투표권을 준다는 발상 때문에 공회는 90 세라도 현직을 맡을 수 있다는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중학생이 철 없어 투표를 할 수 없다면 65 세부터는 노쇠하여 은퇴를 해야 하고 70 세가 되면 교단이 강제로 쫓아 낸다는 정년 퇴직의 개념이 들어 가야 한다. 반대했다 하여 공회의 장년반 기준은 그렇게 비판을 하고, 또 평생을 설교하고 월급을 받게 해 줬다 하여 종신제는 슬그머니 챙긴다면, 요즘 세상 정치권에서 늘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들처럼 선별적 정의, 나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법체계로 혜택을 누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4.19 때 민주주의를 외친 분이 자기가 그 민주주의의 원수로 등극하는 셈이다.
무슨 소리인지 알고 서부교회의 간부로 앉아 있는지 그 교회 교인들을 이 곳은 이런 시각으로 지켜 보고 있다. 또 그 곳을 중심으로 모인 그 거룩하고 경건한 목사님들의 뒷 목에 걸린 목줄을 보면서 그 목줄이 보내면 노곡동 철문 앞에서 진리를 외치고 주변 구청과 등기소와 설계사들을 찾아 다니며 수도 없는 죄를 짓는다고 생각한다.
공회의 담임 목사에 대한 시무 연장은 매 2 년마다 11월 마지막 주일에 참석한 중학생 1 학년 이상이 목회자의 시무 찬반을 표시하고 75%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퇴직금 없이' '합의금 요구 없이' '사택에서 방을 빼지 못한다며 이사비를 요구하지 않고' '지난 날 월급 계산에 빠진 돈을 달라는 요구'하지 않고 바로 이사를 간다. 이 약속을 하고 목회자로 선임하고 파송한다.
그러나 부산서부교회부터 백 목사님 사후 연이어 25% 이상의 불신임이 나왔으나 버티며 분쟁을 했다. 1990년의 첫 분쟁 때는 연구부 직원이 자료를 제시하고 바로 해결을 시켜 드렸다. 1992년의 불신임 때는 연구소가 더 이상 서부교회나 공회의 운영에 책임 질 수가 없어 지켜만 보고 있다. 평소는 목회자들이 온갖 큰 소리를 친다. 막상 문제가 되면 정치가들처럼 돌변한다.
공회는 1970년부터 꾸준히 이 제도를 발전 시켜 왔다. 발전이라는 표현에는 '변화'를 추구해 왔다. 그 변화의 추세는 공회의 3대원칙인 '규정 대신, 지난 날 처리한 사례'를 포함한다. 목회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불리하게 제도를 시행했다. 평소 설교 강단을 전담하는 담임 목회자란 교인에 비하여 너무 막강한 권리를 행사했다. 그렇다면 교인에게 2 년에 한 번은 최대한 '목회자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추세, 이 흐름에 필요한 변화는 언제나 가능하다. 목회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은 노선 이탈이 된다.
불신임을 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 교회의 목사가 아니다. 다만 후임을 모실 때까지 이전 목회자에게 '매 설교를 임시'로 부탁하는 상태로 대기할 수 있다. 남이 보면 별 일 없는 것과 같으나 내용으로는 그냥 외부 손님일 뿐이다.
(교계의 7 년 투표 제도)
분당우리교회가 7 년마다 신임투표를 이어 가고 있다면 반가운 소식이다.
그 분이 스스로 깨닫고 자기를 단속하기 위해 했다면 이 면으로는 우리와 '목회자의 자기 관리'가 같다. 미국 교회들의 미국식 방법을 참고했다면 공회와는 다르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 교회의 입장을 반영한다는 자체가 좋은 일이다. 성령이 한 분이므로 조금이라도 양심을 가진다면 저절로 하나가 되어 가는 법이다. 그 분이 만일 공회가 1970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알고 참고했다면 더욱 반가울 일이나 공회의 교훈과 제도는 그냥 앞에 서서 가는 것인지 시대의 빛이 되어 전파가 되고 있는 것인지 공회는 이런 것을 분석하려고 학술 논문으로 접근하지 않으니 세상에서는 전부 묻히고 있으나 공회가 느끼는 '감'이라는 것은 있다.
참고로, 시무투표의 기간을 7 년과 2 년은 단순히 숫자 차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미가 다를 만큼 그 내용이 다르다. 물론 기간 자체는 노선이 아니다.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그렇다고 2 년과 7 년으로 차이가 난다면 두 제도는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 또 세례 교인에게만 투표를 시키는 것과 중학생부터 투표를 하게 하는 것은 제도의 의미가 아주 달라 진다.
(공회의 서부교회 사례)
서부교회가 1992년 투표를 두고 철 없는 중학생에게 투표권을 준 것이 잘못이라고 어지간히 비판하고 목소리를 높였고 그 덕분에 당시 불신임 된 분이 90세를 바라 보도록 평생 현직을 고수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지금쯤은 본인 스스로 고개를 들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중학생에게도 투표권을 준다는 발상 때문에 공회는 90 세라도 현직을 맡을 수 있다는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중학생이 철 없어 투표를 할 수 없다면 65 세부터는 노쇠하여 은퇴를 해야 하고 70 세가 되면 교단이 강제로 쫓아 낸다는 정년 퇴직의 개념이 들어 가야 한다. 반대했다 하여 공회의 장년반 기준은 그렇게 비판을 하고, 또 평생을 설교하고 월급을 받게 해 줬다 하여 종신제는 슬그머니 챙긴다면, 요즘 세상 정치권에서 늘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들처럼 선별적 정의, 나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법체계로 혜택을 누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4.19 때 민주주의를 외친 분이 자기가 그 민주주의의 원수로 등극하는 셈이다.
무슨 소리인지 알고 서부교회의 간부로 앉아 있는지 그 교회 교인들을 이 곳은 이런 시각으로 지켜 보고 있다. 또 그 곳을 중심으로 모인 그 거룩하고 경건한 목사님들의 뒷 목에 걸린 목줄을 보면서 그 목줄이 보내면 노곡동 철문 앞에서 진리를 외치고 주변 구청과 등기소와 설계사들을 찾아 다니며 수도 없는 죄를 짓는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