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옥] 만남 -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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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김병옥] 만남 -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김병옥 7 1

만남  -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일반적으로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아내를 잘 만나야 하며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도 아내도 스승도 어느 것 하나 내가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기 부모는 정해져 있듯이 아내도 스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손수 전도한 구역장과 구역원 사이 관계를 포함해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만남은 자기가 힘쓰거나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또는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그대로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과의 만남은 전적으로 신적 의지가 개입된 필연의 결과물이다.


양떼인 교인은 목자인 목회자를 잘 만나야 한다. 여기에 자기의 영원한 생명과 멸망이 결정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 있어 신앙의 부모는 내가 찾아 헤매어서 만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는 이 또한 정해져 있는 것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는 세상 가사처럼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절묘한 섭리 역사를 배우게 된다. 교인에게 있어 참된 복은 신앙의 지도자, 목회자를 잘 만나는 것이다. 모세, 엘리야, 바울 같은 이들은 당대의 시대를 잘 감당했고 앞으로 재림의 구원 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 시대의 선지자는 지금도 새롭게 존재한다.


2006년,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을까? 제대로 잘 믿어 볼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자정부터 새벽까지 경주 불국사 토함산을 오르내리며 주님께 또한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렇게 몇달, 주님의 응답은 고향 후배를 통해서였다. 2007년, 동천교회 첫 출석을 하던 날 모든 게 새로웠지만 한편으로 모든 게 친숙했다. 3년 후 2010년 1월, 서울로 왔고 올해로 햇수로만 14년째 서울생활이다. 그동안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고 그 속에서 총공회라는 주관과 외부라는 객관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성경 인물 중 마가는 처음에 사도 바울과 바나바 밑에서 배웠다. 그러다가 다툰 이후 베드로 밑에서 주님을 배웠다. 이후 다시 사도 바울과 동역한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그는 이후 어떤 목회를 이어갔을까?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그릇으로 택함 받은 바울 밑에서 또한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택함 받은 베드로 밑에서 두 사람의 장단점을 모두 배운 마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나는 1975년생이다. 하나님 없이 불신자로 19년을 살았고 이후 30년을 신자로 살고 있다. 그 30년 중에서 13년을 선교회에서, 17년을 총공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다. 그 동안 신앙의 스승을 여럿 만났다. 총공회에 없지만 선교회에 있는 좋은 면, 선교회는 없지만 총공회에 있는 좋은 면을 서로 서로 배울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성도간 교통은 없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일 뿐임을 먼저 밝힌다. 이는 어쩌면 내가 걷고 있는 걸음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는 양면의 선한 발자욱만 남기고 싶었으나 정신 나간 망령된 사람처럼 이렇게 민폐만 끼치고 있다. 잠시 멈추고 쟈숙해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당돌함과 오만 방자함은 극에 달해 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미치도록 만들었는가? 내계 집회 장소 소유권 분쟁 내지는 분할 소송을 접하며 점점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근본 원인은 소송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소송을 상대하는 내가 너무 쉽게 환경에 피동되고 있다는 사실, 결국 내 자신이 문제인 것이다. 잠시 신경 끄고 내 개인 신앙만 내 가정만 돌보면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기적으로 또한 폐쇄적으로 살면 아무 문제 없는데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초대교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새롭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만 있다면 나는 바울과 베드로 두 분 밑에서 다 배워 마가복음을 기록했던 마가의 인생과 많이 닮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바라는 소망일 뿐이다. 하늘 영광 다 맛보고 타락한 이 인생도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까?


사람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세상에서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 또는 악연을 구분짓지만 신앙인에게 있어 악연은 없다. 악연도 알고 보면 내 구원에 가장 유익한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악처가 나의 악습을 가장 많이 고쳐주는, 가장 고마운 사람인 것처럼 지나온 과거를 회상해 볼 때 지금 만나기가 좀 꺼려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내 구원 생명의 은인임을 확신할 때 수소문해서라도 만나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우리 만남은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 나는 우리가 되고 우리는 또 다시 내가 되어 역사를 반복한다. 그래서 우리 만남을 통해 사후 공회 역사를, 또한 말세지말의 교회사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이다. 결국 그 수많은 만남은 이 곳, 남단에서 그 결실을 맺고 있다. 그런고로 만남은 남단의 또 다른 이름이다.


거창하게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알알이 박힌 석류알처럼 담당님을 따라 닮아 자기가 걸어온 신앙 간증이라는 주관을 빌어 객관의 글로 바꾸어 주일학교 설교하듯 다같이 동참해서 표현할 수만 있다면 남단도 더 이상 주관이라는 한 개인의 사무실에 머물지 않고 주관을 뛰어 넘어 자립신앙을 기르는 객관의 장이 된다고 본다. 살아 생전에 가능할까?

김희락 2023.01.20 09:22  
담당을 대신할만한,
모두를 가르치고 모두가 그 가르침에 공감할 수 있는 공회적인 글이라면
이곳 남단에 개별 이름을 표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담당'이라는 이름도 써도 됩니다.
'다른 몸이나 한 몸과 같은' 이것이 공회가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내 글을 쏟아놓기 전에 먼저 배워야 합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먼저 내 주관을 닫고 남의 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논리와 해석과 방향에 내 주관을 꺽고 거기에 나를 맞춘 후에, 그리고 나서 자기 글을 쓴다면, 그것은 전체 방향과 해석에서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연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현방식과 어투는 달라도 그런 공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런 가장 공회적인 글을 기대하는 곳이 '남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글은 내용은 개인 간증의 완전히 사적 내용인데, 말의 표현과 어투는 따라 했습니다. 담당의 경험과 글이라고 큰 착각과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글입니다. 담당의 경험은 '공회의 목격'으로 개별 간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리자께 글 제목에 작성자의 이름을 따로 표시해달라 부탁드려 조처하였습니다. 계속 혼란이 이어질 경우, 글의 이동도 건의 하고자 합니다.
김병옥 2023.01.20 12:22  
위 글은 아래 설교를 듣고 느낀 점을 적었습니다.
처음으로 남단의 취지에 맞게 글을 적다 보니 부족한 점도 많고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흉내나 모방을 통해 스승을 닮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혼란이 계속된다면 김희락 님이 말씀하신대로 따르겠습니다.

https://youtu.be/KDXkp8HHbQw
공회 2023.01.21 18:35  
선생님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의 말처럼 혼란이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 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병옥 2023.01.21 19:32  
그러겠습니다.
공회원 2023.01.20 18:27  
남한 좌파가 평양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고 행동에 나서지 않습니다.
남한 진보가 남한만을 상대로 먼지 하나까지 털고 나섭니다.
이들을 향해 소탐대실이라 합니다. 이들이 평양에서 김씨를 향해 소리를 낼 때, 그 순간 양심이 되고 애국이 됩니다. 계신 곳에서 어떤 언행으로 전체를 향해 질타하셨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이 곳은 그렇게 적지 않아도 모두가 공개하며 늘 통회자복합니다.
김병옥 2023.01.21 17:38  
남북 관계에 있어 물타기가 어떤 면인지 잘 모르겠지만,


주일은 안 지켜도 된다는 논리와 신앙적으로 좌파 논리를 가진 교회 집단을 비판한다고 해서 본 연구소가 지양하고 지향해야 하는 건의 사항들을 멈출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북한 간첩이 남한 정부를 와해시키고 붕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끊임없이 내뱉는 발언이라면 어린 신앙을 위해서라도 강력하게 차단시켜야 하겠지만 탈북자가 남한에 와서 북한과는 상관없이, 남한이 보완하면 좋을 것 같은 점들을 표현할 길이 없어 외람되나 지난 주일 오후 신풍교회 권찰회 표현을 빌려서, '피 토하는 심정'으로 적었다고 한다면 이 또한 신앙 양심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때 커피숍은 마스크 벗고 마실 것 다 마시고 먹을 것 다 먹으면서 왜 교회는 주일 예배 후 점심 때 식사를 못하게 하는가? 불신 세상인 커피숍과 똑같은 대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커피숍이 문 닫으면 교회도 주일성수를 포기하고 교회 문을 닫을 것인가? 커피숍은 생계 문제일 뿐이고 교회는 영원성의 영생이라는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현상만을 가지고 똑같은 성질의 문제라며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고 하신 말씀, 지난 신풍 권찰회 때 이런 교훈들을 접하며 회개를 많이 했었습니다.


교회를 커피숍과 동일하게 동급으로 대우할 수 없듯이 신앙 좌파와 본 연구소는 질적으로나 신앙급적으로 더더욱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한쪽은 소 귀에 경 읽기고 (잠언9:8) 한쪽은 지혜를 나누는 장이라 (잠언9:9) 제 개인적으로는 판단하는데 지금 있는 곳에서 신앙 좌파는 비판 안하면서 이 곳만 비판하는 것은, 신앙 양심적으로 볼 때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주장이 이치적으로 맞다면 질타만 일삼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참정 발언권이 없어야 연구소의 올바른 행정적 처리가 된다 생각합니다.


공회원님 글에 대한 쓸데 없는 변론이 아니라 각자, 서로 오해하고 있다면 제 글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변명을 한 것이니 널리 이해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일의 은혜를 사모하고 준비하는 오늘의 범사에 감사드리며,
사무실 2023.01.23 15:45  
남단은 연구소의 내부 직원들이 연구소 차원의 성향과 내용을 염두에 두고 알아서 적습니다.
이 규정은 무조건 지켜야 할 사안은 아니므로 취지를 이해하며 적을 만한 분은 적어도 됩니다.

그런데 애매한 글이 많아지면 전체 방향에 곤란할 수 있어 어느 날 이동을 부탁할 수 있습니다.
한 번쯤 위치가 잘못 되거나 내용과 성향이 곤란한 글도 등재가 되면 오히려 나을 수 있습니다.
군대나 기계나 천주교처럼 만사가 너무 규칙적이면 신앙의 세계에서 뭔가 불편한 모습입니다.

글의 위치 때문에 이의하신 분도 연구소의 과거 안내를 참고하면 이렇게 적지는 않아야 합니다.
남단이나 소식 게시판에 과거 등재가 애매할 때 연구소는 안내해 온 표현과 흐름이 있었습니다.
일반 회원이 남단에 올린 것도 또 이를 지적한 것도 표현과 위치와 내용을 돌아 봤으면 합니다.


이 게시판은 이 연구소 직원들만 올리려고 했으나 무조건 내부 직원만 올린다는 정도는 아닙니다.
이후 발언/연구에 올려 주시고, 연구소 서기는 글의 내용이 남단에 해당 되면 이 쪽으로 이동하면 좋겠습니다.
이 번 글과 댓글은 그냥 그대로 두면서 앞으로 같은 일이 있을 때 서로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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