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현실 - 시간의 X선과 공간의 Y선이 만나면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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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14:16
공회 안에는 세상적으로 괜찮은 인물들이 더러 있다. 공회가 그러니 타 교단이야 더욱 그럴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어느 교단 어느 교회라 해도 내면으로 보면 역사적 인물이 될 소질과 요소를 두루 갖춘 이들이 있다. 이들이 전란에 던져 졌다면 구국의 영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이 대개 그 교회나 공회 안에서 제일 큰 귀신 노릇을 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하나님이 어느 시간과 어느 공간에 배정을 했는지, 이 것이 그들이 원래 가진 실력과 요소보다 더 중요하다. 욱! 하는 이들이 최전선에 있으면 적진을 돌파 하다 장렬하게 순국하는 용사가 되거나, 아니면 돌파를 하고도 죽지 않아서 살아 있는 전설이 된다. 그런데 이들에게 평화시 배울 기회를 주면 위를 치고 주변을 배반하며 후배를 지끈 밟아 버리는 착취범이 된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시편 1장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형편과 에베소서 1장의 예정과 섭리로 파악을 한다. 복 되게 예정 된 사람은 그에게 주어 진 시간이라는 X선의 진행에 그가 위치한 Y라는 공간이 만나는 좌표를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백영희는 1910년 7월생이다. 5천년이라고들 말하는 고대사회의 끝, 그리고 경험해 보지 못했고 그려 보지 못했던 일제 식민지가 시작 되는 순간에 태어 난다. 그의 연표와 공간을 맞춰 보면 주님의 인도가 나오고 그 인도가 1989년에 그치면서 그를 통해 주신 것의 다음 진행 방향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38선과 그 이북이라는 것이 2차 대전이 끝나면 소련 > 중공 > 이북으로 형성 되어 오늘의 저 모양이 되는 것은 이미 당대 국제정치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이미 읽고 있었다. 남쪽의 앞날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먹힐 것인지 생존할 것인지 대략 이 2 가지만 보였다. 그런데 생각 못한 6.25와 그 이후에 전개 된 생각 못한 상황이 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었다. 이 뒷 부분은 모두가 몰랐던 듯하다.
우리는 대개 자기나 어느 인물의 두뇌, 건강, 배경, 성격 등을 비교하며 고급 인물인가 평범한가 아니면 저급인지 따져 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인물이 시냇가에 심겼다면 이후 상황은 아주 달라 지고 이 인물이 물 없는 팍팍한 곳에 던져 지면 볼 장은 끝이 난다. 요즘은 기도하면서 역사와 세계의 흐름을 그리며 감사하고 또 복을 빌고 있다. 어떻게 하다 이 나라의 오늘을 살고 있는가? 주님의 복 된 예정에 감사할 뿐이다. 이 것은 나면서부터 타고 난 복이다. 남들이 흉내를 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피하려 한다고 피해 지는 것도 아니다. 한 시대에 한 공간을 살지만 정확한 자기 위치에 따라 각각 또 다르다. 그리고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가 자기만이 감사할 수 있는 좌표를 가지고 있다. 기 막히게 좋은 교리다. 아닐지라도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공회 안에 몇몇 인물을 두고 이야기를 하다 문득 이런 표현이 나왔다. 그 인간이 임진왜란 때 있었다면 순신 리의 좌우에서 한 인물 했을 것인데, 이 시대 이 노선 안에 던져 졌기에 저런 짓을 하고도 뒤로는 분을 참지 못해 오기로 끝장을 보고 있다.. 위해서 기도할 뿐이다.
독립운동가와 전쟁의 영웅들이 평화시에 태어 났으면 대개는 골목의 아저씨로 끝이 났을 것이다. 아주 희귀하게 독립운동가로서 해방 후 이 나라의 기틀을 잡은 이도 있지만 이 분은 다른 독립운동가와는 독립 운동의 과정이 남 달랐다. 이미 해방 후와 국제 정세를 폭넓게 읽고 있었다. 이런 인물 하나를 가지는 순간 그 민족은 횡재를 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알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소개 받을 때 그 인물에게 경탄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쓰시려고 맞춰 간 섭리를 읽는다. 전쟁의 영웅은 평화시에 태어 났다면 뒷골목에 주먹이 되거나 집안을 안에서 깨는 정도로 그치기 쉽다. 그런데 전시에는 전투와 전쟁에 최적화 된 인물로 봤는데 막상 평화시에 미개한 조국을 근대화 단계는 그냥 뛰어 넘고 선진화까지 이뤄 버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런 인물에 대해 소개를 받는 순간 불신자들은 그 인물을 민족의 횃불로 치켜 세우나 우리는 성경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인물을 미리 예비하고 사용해서 이 나라에 신세 지는 교회를 위해 울타리를 치고 기본 판을 깔아 준 것으로 생각하여 그 인물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만사 요런 식으로 보고 생각을 하면 그런 인식과 길을 총공회 백영희 신앙이라 한다. 서울 강남에 들어 앉아서도 이런 표현을 듣게 되면 문장 속에서 몇 글자만 뽑아 딴 문장을 만들어 놓고 혼자 길길이 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강남 ㅈ파라고 하고 안식일 고수파라고도 한다. 총공회 내 가장 공회다운 곳의 가장 큰 어른이라는 이들 중에도 있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속에 든 것이 호랑이면 무엇을 먹어도 호랑이로만 자라 간다. 속에 든 것이 사자면 무엇을 먹어도 사자성만 가진다. 속에 든 것이 가룟 유다면 주님을 은 30에 저당 잡고 은행에서 대출할 인성이다. 이 곳을 방문하지 않는 척해도 직접이든 간접이든 또는 접하지 않아도 이 곳의 성향이 그런 줄 알고 미리 자기의 양심이 괴로워 할까 싶어 약을 먹여 재우거나 취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시편 1장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형편과 에베소서 1장의 예정과 섭리로 파악을 한다. 복 되게 예정 된 사람은 그에게 주어 진 시간이라는 X선의 진행에 그가 위치한 Y라는 공간이 만나는 좌표를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백영희는 1910년 7월생이다. 5천년이라고들 말하는 고대사회의 끝, 그리고 경험해 보지 못했고 그려 보지 못했던 일제 식민지가 시작 되는 순간에 태어 난다. 그의 연표와 공간을 맞춰 보면 주님의 인도가 나오고 그 인도가 1989년에 그치면서 그를 통해 주신 것의 다음 진행 방향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38선과 그 이북이라는 것이 2차 대전이 끝나면 소련 > 중공 > 이북으로 형성 되어 오늘의 저 모양이 되는 것은 이미 당대 국제정치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이미 읽고 있었다. 남쪽의 앞날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먹힐 것인지 생존할 것인지 대략 이 2 가지만 보였다. 그런데 생각 못한 6.25와 그 이후에 전개 된 생각 못한 상황이 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었다. 이 뒷 부분은 모두가 몰랐던 듯하다.
우리는 대개 자기나 어느 인물의 두뇌, 건강, 배경, 성격 등을 비교하며 고급 인물인가 평범한가 아니면 저급인지 따져 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인물이 시냇가에 심겼다면 이후 상황은 아주 달라 지고 이 인물이 물 없는 팍팍한 곳에 던져 지면 볼 장은 끝이 난다. 요즘은 기도하면서 역사와 세계의 흐름을 그리며 감사하고 또 복을 빌고 있다. 어떻게 하다 이 나라의 오늘을 살고 있는가? 주님의 복 된 예정에 감사할 뿐이다. 이 것은 나면서부터 타고 난 복이다. 남들이 흉내를 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피하려 한다고 피해 지는 것도 아니다. 한 시대에 한 공간을 살지만 정확한 자기 위치에 따라 각각 또 다르다. 그리고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가 자기만이 감사할 수 있는 좌표를 가지고 있다. 기 막히게 좋은 교리다. 아닐지라도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공회 안에 몇몇 인물을 두고 이야기를 하다 문득 이런 표현이 나왔다. 그 인간이 임진왜란 때 있었다면 순신 리의 좌우에서 한 인물 했을 것인데, 이 시대 이 노선 안에 던져 졌기에 저런 짓을 하고도 뒤로는 분을 참지 못해 오기로 끝장을 보고 있다.. 위해서 기도할 뿐이다.
독립운동가와 전쟁의 영웅들이 평화시에 태어 났으면 대개는 골목의 아저씨로 끝이 났을 것이다. 아주 희귀하게 독립운동가로서 해방 후 이 나라의 기틀을 잡은 이도 있지만 이 분은 다른 독립운동가와는 독립 운동의 과정이 남 달랐다. 이미 해방 후와 국제 정세를 폭넓게 읽고 있었다. 이런 인물 하나를 가지는 순간 그 민족은 횡재를 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알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소개 받을 때 그 인물에게 경탄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쓰시려고 맞춰 간 섭리를 읽는다. 전쟁의 영웅은 평화시에 태어 났다면 뒷골목에 주먹이 되거나 집안을 안에서 깨는 정도로 그치기 쉽다. 그런데 전시에는 전투와 전쟁에 최적화 된 인물로 봤는데 막상 평화시에 미개한 조국을 근대화 단계는 그냥 뛰어 넘고 선진화까지 이뤄 버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런 인물에 대해 소개를 받는 순간 불신자들은 그 인물을 민족의 횃불로 치켜 세우나 우리는 성경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인물을 미리 예비하고 사용해서 이 나라에 신세 지는 교회를 위해 울타리를 치고 기본 판을 깔아 준 것으로 생각하여 그 인물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만사 요런 식으로 보고 생각을 하면 그런 인식과 길을 총공회 백영희 신앙이라 한다. 서울 강남에 들어 앉아서도 이런 표현을 듣게 되면 문장 속에서 몇 글자만 뽑아 딴 문장을 만들어 놓고 혼자 길길이 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강남 ㅈ파라고 하고 안식일 고수파라고도 한다. 총공회 내 가장 공회다운 곳의 가장 큰 어른이라는 이들 중에도 있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속에 든 것이 호랑이면 무엇을 먹어도 호랑이로만 자라 간다. 속에 든 것이 사자면 무엇을 먹어도 사자성만 가진다. 속에 든 것이 가룟 유다면 주님을 은 30에 저당 잡고 은행에서 대출할 인성이다. 이 곳을 방문하지 않는 척해도 직접이든 간접이든 또는 접하지 않아도 이 곳의 성향이 그런 줄 알고 미리 자기의 양심이 괴로워 할까 싶어 약을 먹여 재우거나 취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