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가능성 - 천주교가 묻히고, 퍼트리고 다닌 복음?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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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임진왜란의 가능성 - 천주교가 묻히고, 퍼트리고 다닌 복음?

연구 0 2
유대교 > 이슬람 > 천주교는 분리 된 역사가 다를 뿐이지 동급의 종교들이다. 돌아 올 수 있거나 대충 가다가 주저 앉을 정도일 때 우리는 이단이라 하고, 역사성을 가지고 아주 굳어 져 버리면 이종교라고 한다. 여호와의증인이나 안식교를 아직까지는 이단이라 하지만 이들의 추세는 이종교로 분류할 시점으로 보인다. 통일교나 신천지는 한 눈에 봐도 종교로 유지 될 상황은 아닌 듯하다.


천주교, 오늘의 천주교는 이종교가 되어 교회로 돌아 올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오늘의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바뀌는 것은 무종교나 타 종교에서 교회로 돌아 오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16세기의 종교개혁 당시까지 천주교는 이종교로 굳어 지기 전의 이단 상황이었다. 그래서 루터 칼빈까지 천주교에서 기독교를 재출발을 시켰다. 루터와 칼빈은 천주교 안에서 믿게 된 사람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가면서 오늘에 이르는 천주교는 불교와 같아 진 상태인데, 16세기는 여전히 천주교에서 벗어 나던 기독교가 서로 얽히며 싸우던 시기였다. 이런 혼란 혼동의 시기에는 별별 일이 많다.


이순신도 구원을 받지 못했던가? 이런 자극적인 주제가 가끔 제기 된다. 불신자들에게 이순신도 지옥을 갔다고 말했다가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라도, 내 부모라도 예수 없으면 지옥이라고 말을 한 다음에 말을 하면 분쟁은 막을 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만의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 것이 구원 문제일 때는 쉽게 닫아서는 안 된다. 복음이 들어 오기 전의 민족, 그 집안은 전부 지옥이라고 할 때 우리는 교리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가 예상치 않은 경로를 통할 수도 있으니 쉽게 아니라 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느 사람을 딱 찍어서 지옥이라고 할 때는 늘 조심해야 한다.


루터와 칼빈이 천주교에서 기독교를 재출발 시키던 혼동의 시기가 1500년대니 16세기다. 1517년을 우리는 루터의 종교 개혁 시작으로 적는다. 1936년 이후부터는 칼빈의 글이 온 유럽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임진왜라느 1592-1598년이었고, 왜군의 선봉이 고니시 유키나가 군인데 이들의 깃발은 십자가를 그려 넣었고 포르투칼에서 온 신부가 종군을 했다. 고니시는 아주 독한 신앙가였고 일본에서 천주교 박해기에 신부를 숨겨 주었으며 임진왜란의 무장들이 대거 세례를 받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애용했다. 고니스가 다스린 곳에는 기독교인이 절대 다수였던 적도 있었다. 이런 고니시가 임진왜란의 마지막이 되는 순천 왜성에서 일본으로 탈출하게 되고 이순신과 최후 결전을 여수에서 진행했다.


고니시를 따라 온 신부는 이미 16세기 내내 천주교를 뿌리채 뒤흔든 루터와 칼빈의 신앙을 알고 있었다. 그 신부 속에 들어 있는 사상을 우리는 알기 어렵다. 남은 기록만 가지고 파악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다. 공개가 되면 후과가 따른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당시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본국에서의 신앙과 신앙 고백, 그리고 선교지에 간 선교사들의 신앙과 실제 신앙의 행위는 많이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의 WCC 절대 반대자들이 미국에서 유학하거나 목회할 때는 WCC에 아주 철저했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다. 국내에만 들어오면 갑자기 WCC를 반대한다는 이들의 뒷조사를 해보면 참 기막히는 일이 많다. 천주교인들 다를까? 이미 1천년의 전통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시점, 본국에서 알 리가 없는 일본 땅에서 포루투칼의 그 신부가 이미 줏어 들은 루터나 칼빈의 이단설을 마음에 과제로 두고 마치 불국사 석굴암에 앉아 불교계의 최고 선생 노릇을 하던 사람이 이미 믿어 버린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던 상황처럼 되었다면? 그렇다면 포로를 통해 또는 이런 저런 접촉을 통해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듯 복음이 누구에게 어디까지 흘러 갔을지 우리는 쉽게 단정하지는 못한다.

물론 당시 여러 상황을 살펴 보고 또 씨앗이 뿌려 졌다면 그 뒤에 움이 돋은 흔적을 살피며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일본에 포로 되어 갔다 돌아 온 사람도 많다. 복음의 전파란 쉽게 그렇다 아니다 하기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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