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희의 위기 2회, 다윗과 비교해 본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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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백영희의 위기 2회, 다윗과 비교해 본다

연구 0 1
(백영희, 그 생전과 사후)
백 목사님은, 세월이라는 심판을 늘 언급했다. 신앙 문제는 즉각 판별하기 어렵다. 자기가 옳다고 해 버리면 판단이 어렵다.
신앙뿐 아니라 세상 문제까지도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세월이라는 재판에 맡기는 것이 지혜롭다고 했다.

백 목사님이 가신 지 어느 덧 34년이 지나 가고 있다. 10 년이면 강산이 바뀌면서 속에 감추고 묻었던 것이 거의 드러 난다.
10 년씩 3 회 지났고 이제 4 회가 지나 가고 있다. 현재 내 눈에 백영희의 별세 후 그 생전의 것이 드러 나지 않은 것은 없다.

왜 그 분을 그 시점에 불러 갔을까? 그 분의 사후 서부교회와 공회는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가? 일일이 다 드러 났다.
백영희 장례 기간, 그리고 그 직후에는 수도 없는 예견, 희망, 단정, 약속, 판단이 난무했다. 나 역시 많은 말과 조처를 했었다.
백영희 생전에도 그런 기회들이 있었다. 사후에도 공회 별로 또는 서부교회도 자체적으로 별별 기회들이 있었고 드러 났다.
어떤 사건이나 고비라 해도, 그 전과 후와 그 당시를 두고 차분히 비교해 보면 사람에게는 지혜가 생긴다. 미래가 잘 보인다.
지적 성능이나 신앙의 고하를 일단 제쳐 놓고 비교를 하면 무조건 나아 진다. 그냥 잊고 앞으로 나가면 멸망할 짐승이 된다.



(다윗의 위기 2 차례)
* 공회의 압살롬 사건
압살롬에게 쫓긴 상황은 사울에게 쫓길 때와는 아주 다르다. 또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고 나설 때도 위기였다.
이 때 상황은 다른 실수나 사건이나 위기와 그 성격이 다르다. 압살롬 때는 다윗이 절정이었고 아도니야 때는 노년이었다.

백영희 절정기는 1970년대 말에서 1982년이다. 1979~1980년쯤으로 잡으면 좋아 보인다. 모든 면으로 공회는 절정이었다.
압살롬의 조직적 대대적 반발이 있었다. 목사님은 살해의 위협을 받았지만 정작 그는 시므아의 이간이라며 극구 부인했다.
압살롬은 압논을 처리하고 5 년간 다윗을 보지 못한다. 1982년에 시므아의 빼를 분질고 5 년간 백 목사님을 보지 아니했다.
역사는 이름과 사건의 일시와 모습이 같지 않다. 그러나 흐름과 방향과 내용을 보면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정확히 반복한다.
1982년경 교회의 수십 청년이 압살롬을 막기 위해 각목을 들고 밤새 다윗을 지켰다. 지목 된 분은 '홍위병'이라며 격노했다.

총공회록을 읽다 보면 1970년대 말, 갑자기 공회는 조직과 체계와 근본까지 마치 유신처럼 뒤집어 진다. 바로 이 시기였다.
서부교회도 또 총공회적으로 말 좀 한다 싶은 이들은 대대적으로 압살롬 쪽에 붙었다. 총공회의 오늘이 그 때 다 드러났다.
압살롬과 비견할 수 있는 거리, 관계, 실력, 청중의 환호.. 그리고 실제 진행 되는 위기 상황도 그렇게 험하게 진행 되었다.



* 아도니야의 사건
공회는 백영희 신앙 노선이다. 백영희 생사와 상관 없이 그 신앙 노선을 두고 백영희 노선에는 결국 후계 문제가 생겼다.
아도니야는 물 밑 작업을 집요하게 진행했다. 아비아달까지 그 쪽으로 붙어 버렸다. 이 노선의 법궤를 맡았던 인물이다.
백영희 가족들이 모두 뭉쳐 버렸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정도다. 목사님 사후에 이 노선 모든 자료를 맡은 이도 붙었다.
모두가 모여 백영희 후계자는 이 인물이라고 나팔을 불고 축제가 벌어 졌다. 대법원에서 공표까지 했으니 끝 난 줄 알았다.

솔로몬은 스스로 유약한 아들이라 했다. 압논 압살롬 아도니야 등등 다윗에게는 쟁쟁한 직계가 많다. 그야말로 인물들이다.
솔로몬은 모든 면에서 숨 쉬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다시 다윗의 신앙 계통은 그 유약한 것으로 흘러 갔다.
지금도 눈치가 없으면 소헬렛 돌 곁에서 일장춘몽에 빠져 웅얼거리는 분들이 보인다. 새 시대는 기혼에서 출발을 하는데..
어느 안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 진다. 붉은 안경으로 봤는지 파란 안경으로 봤는지, 이 노선의 조직과 외형으로 봤는지..
이 노선은 교훈과 흐름으로 존재한다는 말을 1989년부터 참으로 많이 했다. 그렇게 함께 부르짖던 이들도 지금은 딴소리다.


다시 한 해가 가고 있다.
2010 년부터 2020 년의 10 년을 돌아 본다. 2020 년대는 짧게 진행 되고 있어 일단 빼 놓는다.
2010 년, 이 노선의 모든 자료를 공개한 인물과 이 곳을 죽을 때까지 따른다고 약속한 인물 등등..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모두가 건물 하나씩을 미리 퇴직금으로 챙기는 것에 주력하는 듯하다. 목회자가 부동산 확보에 불편하면 모두 밀어 낸다.
염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목회자로 보냈는데 정작 자신들이 염소로 돌변을 하고 이제 염소 대장이 되어 사방을 내치고 있다.

서울 중심의 90년대 어느 장로님이 목회자 교체를 두고 한 말이다.
좋은 교회 하나 더 붙든다며 이동을 하면서도 밀려 날 때를 대비해서 심복을 자기 자리에 갖다 놓았는데
이 심복은 오자 말자 다시 밀고 들어 올 그 분을 오지 못하게 막으면서 앉을 자리를 부지런히 마련하더라.
그러면서도 이 심복은 자기가 밀려 날 때를 대비해서 그 이전 교회에 또 자기 심복을 앉혀 놓고 돌아 갈 때를 대비하더라.

이 분은 합정동교회의 백영익 목사님 건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아는 분이다. 공회뿐 아니라 고신과 합동까지 두려 섭렵했고
서대문구 정치권에서도 바닥 민심을 움직이며 역할을 하는 분이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해도 그냥 속으로는 이권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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