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양면, 안팎 - 공회의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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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0 10:09
공회에서 배운 것이 참 많다. 평생을 살며 그 어떤 것과 비교해도 늘 감사하다. 비교해 볼 때 그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 교리 요약, 교회사 안목, 그리고 교회의 운영 방향과 내용도 참으로 괜찮다. 아직까지 더 좋은 것은 보지 못했다.
최근 멀리 계신 분과 대화를 하며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일단 들어 드리는 것이 시작'이라는 안내를 드렸다. 참 좋은 지혜다.
내가 가진 지혜겠는가? 목사님을 가까이 모시며 겪어 왔기 때문에 아는 것이고 또 설교록에도 넘치게 적혀 있는 내용이다.
교회사를 살필 일이 있어 공회의 출발과 관련 된 교회들의 시작을 살핀 세월이 있었다. 설립자가 그렇게 많고 참 다양했다.
결론은 자기나 자기 가정이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정들이 여럿이고 그들이 제시하는 연대 차이가 너무 컸다.
공회의 시작이 되면 개명교회는 1939년 1월이다. 개명교회 교인 중에 이를 아는 분들은 없었다. 들어 본 적도 모두 없었다.
목사님도 모르셨으니 안다는 것이 우습다. 그런데 개명교회의 실제 시작은 장신석 목사님의 외증조부 박순명, 1905년이다.
목사님은 평생 자신이 1936년에 믿고 개명교회를 개척했다 말했다. 동시에 자기 앞에 박봉선 부친이 개척했다고 늘 밝혔다.
이런 것을 양심이라 한다. 이런 양심을 가진 경우를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심지어 공회의 현존 교회와 개척자들도 그렇다.
선교 초기는 물론 교회의 개척이 성공할 확신이 없는 경우는 지금도 개척의 실체가 혼란스럽다. 돈을 대 줘도 딱 잡아 뗀다.
그래야 돈이라도 챙기겠지. 어느 교회나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고 자리를 잡는 듯하면 교회의 연혁 문제는 어지러워 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출애굽기 22:11에 따라 다른 사람이 말하면 '그대로 믿을 것'을 부탁한다. 그 말이 다 옳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 말하고 그 사람이 단정을 해 버리면 하나님이 알려 주시기 전에 사람으로 달리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 알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내게 더 이상 살필 수 없다면 그렇게 들어 놓으면 된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알려 주신다.
어떤 교인이 어떤 말을 해도 목회자는 들어 주는 것이 맞다. 상대를 조사하여 밝히려고 들거나 논쟁으로 가는 것은 피한다.
나는 소신이 있는 편이다. 목사님께도 내 속에 든 것은 꼭 말씀을 드렸지 다른 직원들처럼 묻어 뒀다 뒷소리 하지는 않는다.
일단 아는 대로는 명확하게 이야기 한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그 자리가 내가 설 자리다. 과제로 남겨 둔다.
이런 것을 세월의 판정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어두운 세상에게 주신 자연의 빛이다. 세월이 지나면 다 밝혀 지게 해 놓았다.
진리로 보면 미리 안다. 성령으로 보면 명확하다. 그런데 성경은 해석이 달라 지고 성령은 모두가 팔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미주의 교회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했으며 어디 사람인지 함부로 묻지 않는다. 과거 미군 관련 분들이 많았을 때 이야기다.
일본 사람들은 평생 한 직장을 다니며 한 부서 옆 자리에서 함께 일을 해도 상대의 신상을 묻지 않고 또 알지 않는다 한다.
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남에게 신세를 지고 남의 속을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을 가진 것이다.
우리는 농경 사회에 가족으로 얽혀 있다 보니 온갖 것을 다 묻고 다 말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끝장을 보며 싸우게 된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고 시골에도 과거와 달리 남의 신상이나 개인 공간은 함부로 들여다 보지 않는다. 개선이 많이 됐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일단 들어 놓는다. 꼭 필요한 부분은 물을 수 있다. 아주 가까운 사이면 얼마든지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상대와 확실히 의견이 다르고 기억이 다르고 주장이 다르면, 그 자리에서 잠깐 멈춰 선다. 그리고 세월에 맡기면 된다.
백태영과 마지막 대면이 그렇게 되었다. 그 분은 오늘 밤에 요절을 내자고 했다. 나는 교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대구공회의 개혁, 개방, 변화론에 대해 서로 각자 원하는 대로 해 보고 그리고 비교해 보자고 했다. 그들은 요절을 내 버렸다.
부산공회의 보수, 고수, 수구론에 대해 자신들은 그렇게 하되 다른 교회와 다른 사람이 바꾸는 것은 좀 두고 보자고 했었다.
나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돌아 봐도 온건론자며 평화론자며 합리주의자며 신앙의 자유를 완벽히 주장을 했다고 본다.
단번에 요절을 내야 하는 성격, 우리네가 참 특이하다. 모두들 내가 가장 극단주의라고들 하는데 실은 그들의 실패를 감추는 핑계다.
지금 연구소의 공회도 그렇다.
눈 앞에 이익 하나를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요절을 낸다. 일도양단을 낸다. 그들의 휘두르는 것이 뭔지 알기는 할까?
성경 해석, 교리 요약, 교회사 안목, 그리고 교회의 운영 방향과 내용도 참으로 괜찮다. 아직까지 더 좋은 것은 보지 못했다.
최근 멀리 계신 분과 대화를 하며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일단 들어 드리는 것이 시작'이라는 안내를 드렸다. 참 좋은 지혜다.
내가 가진 지혜겠는가? 목사님을 가까이 모시며 겪어 왔기 때문에 아는 것이고 또 설교록에도 넘치게 적혀 있는 내용이다.
교회사를 살필 일이 있어 공회의 출발과 관련 된 교회들의 시작을 살핀 세월이 있었다. 설립자가 그렇게 많고 참 다양했다.
결론은 자기나 자기 가정이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정들이 여럿이고 그들이 제시하는 연대 차이가 너무 컸다.
공회의 시작이 되면 개명교회는 1939년 1월이다. 개명교회 교인 중에 이를 아는 분들은 없었다. 들어 본 적도 모두 없었다.
목사님도 모르셨으니 안다는 것이 우습다. 그런데 개명교회의 실제 시작은 장신석 목사님의 외증조부 박순명, 1905년이다.
목사님은 평생 자신이 1936년에 믿고 개명교회를 개척했다 말했다. 동시에 자기 앞에 박봉선 부친이 개척했다고 늘 밝혔다.
이런 것을 양심이라 한다. 이런 양심을 가진 경우를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심지어 공회의 현존 교회와 개척자들도 그렇다.
선교 초기는 물론 교회의 개척이 성공할 확신이 없는 경우는 지금도 개척의 실체가 혼란스럽다. 돈을 대 줘도 딱 잡아 뗀다.
그래야 돈이라도 챙기겠지. 어느 교회나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고 자리를 잡는 듯하면 교회의 연혁 문제는 어지러워 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출애굽기 22:11에 따라 다른 사람이 말하면 '그대로 믿을 것'을 부탁한다. 그 말이 다 옳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 말하고 그 사람이 단정을 해 버리면 하나님이 알려 주시기 전에 사람으로 달리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 알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내게 더 이상 살필 수 없다면 그렇게 들어 놓으면 된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알려 주신다.
어떤 교인이 어떤 말을 해도 목회자는 들어 주는 것이 맞다. 상대를 조사하여 밝히려고 들거나 논쟁으로 가는 것은 피한다.
나는 소신이 있는 편이다. 목사님께도 내 속에 든 것은 꼭 말씀을 드렸지 다른 직원들처럼 묻어 뒀다 뒷소리 하지는 않는다.
일단 아는 대로는 명확하게 이야기 한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그 자리가 내가 설 자리다. 과제로 남겨 둔다.
이런 것을 세월의 판정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어두운 세상에게 주신 자연의 빛이다. 세월이 지나면 다 밝혀 지게 해 놓았다.
진리로 보면 미리 안다. 성령으로 보면 명확하다. 그런데 성경은 해석이 달라 지고 성령은 모두가 팔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미주의 교회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했으며 어디 사람인지 함부로 묻지 않는다. 과거 미군 관련 분들이 많았을 때 이야기다.
일본 사람들은 평생 한 직장을 다니며 한 부서 옆 자리에서 함께 일을 해도 상대의 신상을 묻지 않고 또 알지 않는다 한다.
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남에게 신세를 지고 남의 속을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을 가진 것이다.
우리는 농경 사회에 가족으로 얽혀 있다 보니 온갖 것을 다 묻고 다 말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끝장을 보며 싸우게 된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고 시골에도 과거와 달리 남의 신상이나 개인 공간은 함부로 들여다 보지 않는다. 개선이 많이 됐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일단 들어 놓는다. 꼭 필요한 부분은 물을 수 있다. 아주 가까운 사이면 얼마든지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상대와 확실히 의견이 다르고 기억이 다르고 주장이 다르면, 그 자리에서 잠깐 멈춰 선다. 그리고 세월에 맡기면 된다.
백태영과 마지막 대면이 그렇게 되었다. 그 분은 오늘 밤에 요절을 내자고 했다. 나는 교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대구공회의 개혁, 개방, 변화론에 대해 서로 각자 원하는 대로 해 보고 그리고 비교해 보자고 했다. 그들은 요절을 내 버렸다.
부산공회의 보수, 고수, 수구론에 대해 자신들은 그렇게 하되 다른 교회와 다른 사람이 바꾸는 것은 좀 두고 보자고 했었다.
나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돌아 봐도 온건론자며 평화론자며 합리주의자며 신앙의 자유를 완벽히 주장을 했다고 본다.
단번에 요절을 내야 하는 성격, 우리네가 참 특이하다. 모두들 내가 가장 극단주의라고들 하는데 실은 그들의 실패를 감추는 핑계다.
지금 연구소의 공회도 그렇다.
눈 앞에 이익 하나를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요절을 낸다. 일도양단을 낸다. 그들의 휘두르는 것이 뭔지 알기는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