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병 - 자기 위치와 입장이 모세인 줄 안다

남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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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공회병 - 자기 위치와 입장이 모세인 줄 안다

담당1 0 4
(주변에 흔한 사고)
초등 1학년이 방학 중에 이용하는 공적 시설에서 20대 대학생의 등짝을 쳤다. 교인이 운영하고 교인들이 많은 곳이다. 이 아이는 목사의 손주다. 그 심리와 그 배경에 깔린 것은 단번에 모두가 느낄 것이다. 이 아이의 행동도 그 연장선이다. 이럴 때는 그 교회 그 목사 그 아이를 위해 즉각 최고 수준으로 대처를 해야 한다. 우선 파출소에 가는 문제가 없는 범위에서 이 아이가 두 번은 그러지 않아야 자기에게 확실히 좋을 것으로 각인을 시켜야 한다.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이 과정에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아이는 바로 파악을 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범죄 현장을 이탈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이 것이 두어 번 계속 되면 다시는 붙잡기 어려워 진다. 이렇게 하여 한 아이가 비리 불법 부랑아로 접어 든다.

아이의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그 말 하는 그 사람이 지금 이 아이를 부추겨 돌아 서지 못하게 하는 아동 탈선의 배후범이다. 이 참에 넘치게 눌러 버린다면 보복심이다. 이럴 때는 외과의사의 수술처럼 목표를 정하고 그 과정에 필요 불가결한 조처를 사정 없이 하고 나가야 한다. 속도, 눈치, 벌칙 등 모든 것은 아이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에 초점을 두면 좋다. 재발이 방지 되었다는 말은 벌도 댓가도 경험도 가해나 피해 전부에게 다 가장 교육적이고 인간적이며 은혜적이 된다. 20대 피해 청년에게는 부모가 몰래 용서를 빌고 요구하는 보상을 해야 된다.



(우선 우리 공회의 경우)
공회의 우리 경험으로 우선 목회자 가정들을 돌아 본다. 백 목사님은 참 모든 면에서 엄했고 훌륭했다. 그래서 7남매 중에 6남매는 통제를 했다. 그렇다면 B 학점이나 평균 80점대가 되는 것이지 A 학점이나 90점을 넘는 것은 아니다. 그럴까?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주변과 한국 교계에 위대한 분들 중에 자녀 문제를 두고 50점 넘는 경우를 찾아 보라. 나 알기에는 없다. 1 명이 문제가 된 것도 교회에 주력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하나의 말썽으로 목사님은 평생 이루어 놓은 것을 최소한 보이는 기준으로는 모두 날려 버렸다고 할 정도의 결과를 맺었다. 목회자의 자녀 통제가 그렇게 어렵다. 자녀만 주력하면 부작용을 대부분 막을 수 있는데 교회가 내버려 진다. 교회에 주력하면 자녀들이 대부분 엉망이 된다. 교회에 주력한 대신 자녀를 희생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아이 하나가 나중에 그 교회를 통째로 내려 앉힌 다음 목회자의 수고와 아이 때문에 망한 것을 비교해 보면 교회를 포기해도 자녀를 돌봐야 한다는 말이 흔하게 나온다. 그렇다 해도 목회자는 자기 선언 때문에 교회 우선으로 가야 한다.

우리 공회는 그래도 자녀에 대해 다른 공회들보다는 낫다고 본다. 곳곳에 문제는 있어 보인다. 그 문제는 가슴이 아프지만 비슷한 곳과 비교를 하면 위로는 된다. 그 위로 때문에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과거 목회자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자녀들이 곁길로 갔다. 생존이나 생계형 탈선이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더 나쁜 짓을 하기 위해 교회라는 무대를 악용한다. 교회의 규모에 상관 없이 또 교인의 내심과 상관 없이 사택의 아이들은 교인들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뭔가 자기는 공주나 왕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크게 받느냐 적게 받느냐는 것은 차이가 있지만 적다 해도 결과적 영향은 비슷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목회자는 자녀 문제가 하나로 드러 나면 열이나 되는 정도로 대해야 한다. 자녀 문제가 하나일 때 공정하게 하나로 상대하면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다. 눈 앞에서는 잘못을 알고 다시 그러지 않을 것처럼 온갖 표정을 짓는다. 속으로는 그 위기를 넘기면 다음에는 더 지능적이 된다. 각 목회자의 자기 처신에 따라 훗날 전 교인이 다 지켜 보게 된다. 그럴 때 목회자는 교인을 위해 수고하느라고 아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나쁜 일이 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하와를 지목했다. 하나님이 붙여 준 식구 때문이니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와는 뱀을 지목했다. 하나님이 만든 짐승 때문이니 하나님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죄는 이렇게 돌아 가면서 구제 불능이 되어 버린다. 자기 책임으로 통렬히 가슴을 쳐야 돌아 설 희망이 있다.




(공회병, 구조적 문제)
사택을 일일이 나열하고 비판했으니 이제 교인들을 향해 적어 본다. 공회의 오래 된 교인들에게는 자기가 교인이지만 일반 목회자보다는 낫다는 내심이 작용한다. 가르치려 든다. 실제 공회는 신학처럼 특별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교인 생활에서 목회자를 선발하기 때문에 목회자보다 선배가 되는 신앙인들이 많다. 문제는 자기가 어리게 생각한 사람이라도 목회자가 된다면, 교인으로서는 모세의 위치에 세웠다는 마23장을 기억해야 한다. 주기철 목사님을 가르친 조만식 선생은 산정현교회로 주 목사님을 모셨고 제일 앞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목회자로 모셨다. 이자익이라는 한국 교회 초기의 그 유명한 목사님이 조덕삼 장로님 댁에 말똥을 치우던 머슴이었다. 엄청난 부자였던 조 장로님은 집에서는 주인으로 교회에서는 머슴을 깍듯이 하나님의 종으로 섬겼다. 뭘 아는 사람들은 이런 면이 철저하다. 수준이 낮으면 뒷골목에서 나이 하나 많았다 해서 죽는 날까지 아랫 사람 대하듯 한다. 그 집안의 수준이 노예 출신일 때 일어 나는 현상이다.


백 목사님은 생전에 모든 목회자들을 아이들처럼 양떼처럼 인도했고 가르쳤고 길렀다. 모든 면으로 그러했다. 그 목사님이 백태영 막내 동생을 아주 아이처럼 대했다. 그러자 목사님의 식모 아이까지 자기 할아버지나 될 백태영 목사님을 우습게 알고 뭉개 버렸다. 모두가 존경하는 백 목사님, 그 분에게 배우면서 자기가 백 목사님 자리에 서서 백 목사님이 가르치는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상대하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서부교회 중고교생만 2천 명이 주일 8시 30분에 한 자리에 모일 때 제일 실력 있는 반사가 남자 아이를 어깨에 매고 지고 심방을 다녔다. 만나는 아이들 중에 결석한 아이는 선생님을 보면 뭔가 미안해 한다. 아빠는 '임마! 다음에는 빠지지마!' 예전이니 그런 식이었다. 어느 날 아빠 어깨에 매인 이 꼬마가 아빠 입에서 말이 나가기도 전에 뭔가 분위기가 비슷하면 '떼끼!' '임마!'라는 소리가 나왔다. 어리니 우리 모두 들으면서 웃었다. 이 것이 교회의 사택으로 가면 왕궁의 공주병 왕자병을 만든다. 교회에 지도자가 모두를 지도하는 위치가 되면 그 지도자와 특별한 관계를 가진 이들은 그 지도자에게만 배우고 나머지 목회자나 일반 교인들에게는 자기가 지도자가 된 착각에서 표현을 하게 된다. 이 것은 공회만의 병은 아니다. 어디나 은혜가 깊고 높으면 이런 그림자가 짙어 진다. 이 자체는 지도자가 존경 받고 정상이라는 표시다. 그러나 이런 착오가 밖으로 스며 나가면 통째로 무너 진다. 이 것이 권력으로 말하면 청와대 주변의 측근들 문제가 되고, 종교계에서는 지도자 주변의 관리 문제가 된다. 천주교 불교는 겉으로 가족이 없어 지도자의 전횡이 문제가 되나 교회는 결혼이 필수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괜찮으면 사택의 가족 문제가 1차 교회를 엄습한다. 가족 문제를 가까스로 막아 놓으면 교인들 중에 소위 목회자, 그 지도자와 직접 통하거나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낸다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온갖 겸손으로 자기를 낮추면서 속으로는 자기가 교회의 2인자임을 곳곳에 표시를 한다. 맹수가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것과 같다. 눈으로 표시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느낄 만큼 곳곳을 스쳐 놓는다.


한 사람이 잘 믿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잘 믿게 되면 교만 때문에 무너 진다. 또 온갖 고등 시험이 따라 온다. 이 고비를 다 넘기고 나면 그 다음에는 교회의 기둥이 되어 있고 목회자의 측근이거나 목회자와 직접 통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복이며 잘 믿은 결과이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그 다음 닥치는 시험은 자기도 모르게 목회자와의 특별한 별도 관계를 인식하면서 그 인식을 자기 고치는 데 더 노력하는 경우는 드물고, 주변에 대놓고 과시를 하거나 아니면 감추는 듯해도 뒤로는 확인도 하고 써먹기도 한다. 이 글을 적는 사람이 목사님 생전에 다 해 봤던 일이다. 그 때는 어느 정도 느끼기도 했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런 귀신 운동을 했다. 바로 그 여파 때문에 내가 걸어 가는 길이 옳은 것은 틀림이 없는데 내가 꼴 보기가 싫어 차라리 지옥을 가지 공회의 바른 길에는 서지 않겠다는 오기들이 온 공회를 휩쓸었다. 그 것이 이 공회의 규모가 적은 이유다. 백 목사님은 고신 시절 조금만 조심했으면 고신이 다 따라 왔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서 고신에서 나올 때 혼자 나왔다고 한다. 고신의 1세대는 공회가 고신 중에 고신인 줄 안다. 그런데 칼날이 너무 날카롭고 따라 가려면 힘이 없고 그런데 젊은 것이 큰 소리를 치니 오기 때문에 따르지 못하거나 얻어 먹을 것이 없을 듯하여 포기를 했다. 물론 그들이 훗날에는 다 후회를 했으나 목사님은 자신의 그 시절을 교만했다고 회고하며 평생 조심을 했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도 나는 또 그렇게 걸어 갔다. 그리고 늘 후회하고 있다. 겸손해야 할 그 때 알아 차리고 겸손했어야 한다. 지금이야 다 알게 되고 이제는 겸손하려 해도 효과가 없다. 회개도 때가 있는 법이다.



공회 안에서 공회의 노선을 근본적으로 이탈한 교회들, 그 곳에 소위 지도자라는 분들의 공통점은 사택에 문제를 교인들에게 그대로 노출을 시킨 것이다. 사모를 아끼고 자녀를 사랑한 나머지 교인들 앞에 목회자가 대놓고 사택 우선이었다. 그 결과는 현재 그 교회들의 상태다. 전국의 수 많은 공회 교회들 중에 최고들이 모였지만 사택이라는 하나에 매여 최종 순간에 실패한 이들을 보며 참 안타깝다. 사택의 고비를 넘겨야 사택의 식구들도 좋아 지고 교회도 좋아 지는데 마지막 순간에 목회자가 교회와 교인들 앞에 사택 식구를 살폈다. 그리고 한결 같이 사모님들의 영향이 목회 자체를 흔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더 이상 답은 없다. 우리도 그러할까? 항상 그럴 수 있어 조심에 조심을 더한다. 그렇게 할 때마다 사택 식구들의 비명이 들린다. 그렇다 해도 할 수 없다. 알고 감사하면 함께 복이 되는 것이고, 사택이 비명을 지른다면 교인을 사택 식구 앞에 꿇려 놓아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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