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신앙노선에서 천대받는 단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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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1 00:00
1.단어 하나로 짐작해 보는 신앙노선
단어가 모여 문장을 만듭니다. 사람의 사상은 여러 개의 문장을 배열시켜 밖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진심을 알려면 그 사람의 말이나 글을 많은 면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단 한 단어가 수많은 문장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또 한 단어가 그 사람의 사상과 평생을 요약하는 수도 있습니다.
공회 신앙노선에서는 특별히 천대받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이 단어들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공회 신앙노선의 역사와 성격 등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유물 파편 하나를 가지고 고고학자들은 한 시대의 역사와 당시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를 재구성해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면 때문에 박물관에는 넓다란 공간에 컵 하나를 진열해 두고 그렇게 음미를 하고 있습니다.
2.공회 신앙노선에서 배척받는 단어들, 총공회 신앙노선이 경계하는 위험물들
1)'대학'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이제는 대학을 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드리는 말씀의 기준은 1990년 이전 대학 진학이 어려울 때였습니다. '대학'이라는 단어는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탈선과 속화의 신앙'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백목사님의 설교록에 나오는 '대학'이란 이 의미를 포함하고 듣지 않으면 설교록을 읽고도 설교록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게 됩니다.
지금은 대학보다는 '취직'이나 '사법고시' 등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 할 형편입니다만 당시로서는 1980년대까지는 '대학'이란 모든 일반인들에게 항상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선망'이었고 '성취'였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작용되는 경우는 참으로 희귀했습니다. 하나님이 길러가시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멀어지는 교만이었고 탈선이었습니다.
'대학'이라는 단어가 1980년대까지 공회 신앙노선 상에서는 이런 의미였다면 오늘 2001년의 '대학'이라는 단어는 그때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고 보아야겠는가? 공회 내의 가장 경건한 분들은 그렇다는 입장입니다. 공회 내에서 일반 교단화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당시도 지금도 이런 논의 자체를 아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입장은 당시의 '대학'이 오늘의 '유학'이나 '박사' 또는 '교수'와 같은 의미라고 보고 있습니다.
2)'신학'
세상에 두루 통용되는 단어를 두고는 '대학'을 그리 경계했다면 신앙을 두고는 '신학'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총공회 내부에도 일반 신학대학원을 예사로 등록하고 다니고 있습니만 공회 신앙에서는 '신학대학원'을 '신신학'이나 '인본주의'와 함께 놓고 상대했습니다. 신학이란 사람들이 예수교를 무어라 하는고, 시대마다 교회마다 사람 생긴 대로 어찌들 말하는고를 살피는 것입니다.
신학이라 할 때는 '학문'의 의미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신학의 가는 마지막은 꼭 인본으로 구별없는 통일주의로 가게 됩니다. 마지막은 세상과의 통일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때 쯤 우리는 그 이름을 속화라고 붙입니다. 세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간판 떼라는 말입니다.
평양신학교가 해방 전, 고려신학교가 해방 후 한국의 보수계 거물을 거의 배출하였습니다만 초기 건전할 때만 보았던 근시안 때문에 지금도 신학을 바로만 가르치면 될 줄 아는 이론가들이 많습니다. 신학이란 그 속성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원려로 시작하여 초기에는 건전한 모습을 일시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곧 착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그 학교를 통해 형성된 이권이 있어 아는 사람은 알기 때문에 덮어버리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
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여기까지를 배우고 여기까지에 머무르야 한다는 것이 신학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15절에 이르게 되면 독선이 되고 편협이 되며 분리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시였고 오늘은 그때 보다 훨씬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니이다'
공회의 신앙노선은 남들이 말하는 것, 세상이 말하는 것, 천하가 말하는 모든 것은 흘려 보내라! 그 대신 너는 어찌 믿는가! 너는 네 생명과 네 인생을 참으로 다 바쳐 걸어갈 길이 무엇이라고 보느냐! 다 바쳐 갈 수 있는 그 길, 천하가 무어라 해도 흔들리지 않을 천하에 가장 옳고 바른 구원의 길, 너 혼자라도 끝까지 가야 할 그 길이 무엇인지를 찾으라! 그 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네 속에 영감을 통해 가르치실 것이라.
이것이 공회의 신앙노선이었습니다. 그 신앙의 성격이 이러하니 진짜 공회 신앙이라면 타협이 있을 수가 없고 눈치가 개입될 여지가 없으며 이합집산이란 말이 말로서 입에 올려질 수가 없는 곳이 원래의 공회입니다. 이 모든 교계 속화의 첫 걸음이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교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신학을 필수로 밟게 하니, 필수적으로 밟고 지나간 신학의 오염이 그들의 평생 목회걸음에서 언제 어디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3)'미국'
공회의 분위기는 항상 미국 간 사람은 타락한 사람, 미국 가서 공부한 사람은 변질 된 사람, 미국에 갔다 온 말만 해도 물든 사람입니다. 이 말이 살아있고 이 주장이 성경의 성구처럼 권위가 있어 거기 대하여 반론도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공회가 공회로서 존재하던 때입니다. 세계 최고의 교단이라는 표현은 바로 그 때의 그 신앙사상이 세계 최고라는 것입니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교단의 조상급인 고신, 그 교단에서도 미국이라는 단어는 성공한 목회자, 성공할 신학자를 뜻합니다. 미국을 어디에라도 붙인 사람은 부러움을 사게 되고 그것을 붙인 사람의 패기는 대단합니다. 초기에도 지금도 그렇습니다. 미국 땅을 밟아라도 보기 위해 신학생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정도는 천국 입성의 순간을 기다림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학 비자를 시도하지만 미국 대사관에서는 수십년간 신학 비자는 검토도 하지 않고 거부해 버립니다.
공회가 살아 있다는 표시는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온 목회자가 미국을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에 정도 이상으로 손해를 보고 지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두둔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 지적이 바른 지적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천하가 좋아하고 부러워하며 이상적인 곳으로 우르러 보는 것을 신앙의 잣대 하나만으로 비교 평가하여 이를 무시할 수 있는 신앙 중심의 그 시각, 여론과 세상을 능히 누를 수 있는 그 기개, 천국 유일의 순수함, 세상 어떤 유리함도 버릴 수 있는 그 소원이 있었습니다.
4)'교제'
일반 교회에서 그렇게 습관적으로 주고 받는 말이 '교제'입니다. 그러나 설교록 180권을 다 뒤져서 찾아볼 수 있는 단어 중 백목사님이 직접 사용하는 '교제'가 좋게 사용된 것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교제라는 말은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중국말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색하고 서툴어서 마치 처음 듣는 외국어를 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곳 홈페이지도 투쟁적이며 시비적인 글만으로 가득하다고 꾸중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 봅니다. 굳이 부인하지 않습니다. 사실 투쟁과 시비를 본업으로 삼는 인식이 있습니다. 방편을 조심하는 것이며 그 목적을 주의하는 것이며 그 기준을 두려워 할 뿐입니다. 다른 것이 있으니 따져 봐야겠고 생과 사가 있으니 대 봐야겠고 알면서 죽는 길로 따라 갈 수 없으니 투쟁은 신앙걸음에 있어 자연스런 현상으로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투쟁 일변도를 선호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빛과 어두움이 있어 둘이 섞이는 교제를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어둠에게 지지 않으려는 빛의 본성을 우리는 살아있는 신앙이며 참으로 순수한 신앙이라고 봅니다. 반면 어둠과 섞여 함께 어울리는 것은 자멸 전멸이라고 봅니다. 공회 신앙노선이 그토록 싫어하고 반대하는 '교제'란 바로 진리를 버린 교제, 진리를 잊은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속화며 타락이기 때문입니다.
3.공회의 장차 신앙노선과 단어
신학이라는 용어가 좋게 들리는 날, 미국이라는 것이 우월한 인생을 뜻하는 설교, 교제라는 것이 흔히 주고 받게 되는 교회. 이런 단어들이 어떻게 사용되느냐는 것을 두고 그 사람과 그 공회의 신앙을 평가해 본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이곳은, 이유와 핑게는 많아도 역시 가장 쉬운 평가법은 바로 사용하는 단어 몇 가지에서 충분히 짐작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속으로는 단정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