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행정 본성은 공개성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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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공회의 행정 본성은 공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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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총공회 신앙노선의 공개성

총공회 신앙노선은 만물과 만인 앞에 내놓고 무한 비판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을 행정적으로 파악할 때 그 본질은 옳은 것만을 목적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단 어느 교회인들 이런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만, 실제 옳은 것이면 제한없이 추구할 수 있도록 되어진 곳은 우리가 알기에는 총공회 신앙노선 뿐입니다. 모든 교회와 교단의 행정은 그 속성상 결국 다수결로 누르면 옳은 것이라도 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은 옳은 것만을 추구하되 말뿐이 아니고 실제로 옳은 것을 세울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행정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교회주의가 바로 옳은 것을 무제한으로 세울 수 있도록 하는 첫째 제도입니다. 그다음 개교회 간의 모든 결정은 전원일치로만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누구도 자기 양심에 맞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이나 다수에 의하여 강요 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한 가지를 더 말한다면 애당초부터 모든 것을 공개하는 철저한 공개주의로 옳은 것만을 찾을 수밖에 없는 기초를 만들고 있습니다.


2.물론 감추어 길러가야 할 때가 있고 또 교만이 두려워 숨을 때도 있습니다.

키워가고 길러가는 과정에서 사적인 것은 감추어야 할 때가 있고 또 교만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사적인 문제가 의논되어진 경우 또는 확정되지 않은 사항 또는 길러가고 키워가야 하는 어린 신앙의 특수한 경우에는 얼마든지 숨겨 가루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는 공개되어서는 안되며 젖먹이는 아직까지 바깥바람을 쐬일 때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소속 교회와 교인 전체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노선을 숨겨놓고 의논한다든지 소속 교회와 교인에게 지도부가 결정하면 북한처럼 무조건 따르기만 하라는 방침으로 외부 공개 자체를 막고 있다면, 그곳에는 빛의 반대인 어두움의 본질과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공회를 어디에서 개최하는지, 교역자회의에 참석하는 목회자와 공회에 가입한 교회가 어디인지, 교역자회의에서 의논된 일이 무엇인지 등 모든 면에서 얼마나 공개할 수 있고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느냐는 것은 모든 논란을 떠나서 일단 옳은 것을 목적하고 추구하고 있느냐는 것을 말해 주는 가장 확실한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노선을 파악할 수 있는 사안들, 노선이 규정되어질 수 있는 공회 행정들, 교리나 교훈의 본질을 변동시킬 수 있는 결정들, 이런 일까지 감추고 숨기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느 공회 어느 교회이든지 옳은 것을 목표로 하는 노선이 아니라 인간끼리 모여 공작하는 어두운 집단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3.이런 점에서 이곳에서는 각 공회에 이런 점을 지적합니다.

1)대구공회를 예로 든다면

대구공회가 보관하고 있는 삼봉산 집회 회의록 중 몇 장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을 한지 벌써 7년째이나 아직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공회가 공동의 역사로 가지고 있던 40년 전 집회 기록을 아직도 공개치 못하는 이상 대구공회는 옳은 것을 두고 나아간다는 말은 접어야 합니다. 대구공회에 어떤 변사 어떤 웅변가가 있더라도 이 공개적인 지적에 대변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대구공회가 자신들만이 총공회라는 주장을 아직도 하고 있지만, 이미 분열 초기 출발 때 총공회 모든 회의록을 단독으로 가지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선별적으로 복사하여 사용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이 대구공회가 무슨 논리로 변박하여도 결국 스스로 자신들을 어두움을 추구하고 빛 가운데로 나오기 싫어하는 단체로 만드는 본질적인 문제임을 아는지!

지난 7월 대구공회 소속의 청년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총연회'를 있는 그대로 소개한 것을 두고 그렇게 민감하게 큰 사건으로 반응함은 그리고 그 이후 그 단체의 활동을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스스로 차단함은 바로 대구공회의 한계, 즉 옳은 것을 참으로 찾는 곳이냐 아니면 이해득실을 따라 임시 모여진 사람의 모임이냐는 반론을 받게 된다고 봅니다.

2)부산공회(1)로 예를 든다면

현재 부산공회는 총공회 소속 모든 공회들의 공동재산을 단독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과연 경제운영의 실태를 공개할 수 있을까요? 없다면 경제사범에 준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초기 대구공회에게 숫적으로 열세가 되어 당했던 때에 부산공회는 모든 것을 공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지금은 가장 폐쇄적인 공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옳은 것은 원래부터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집회 재독을 왜 1988년 5월, 1989년 5월과 8월 내용만으로 10여년 했는가? 그 집회 내용이라야 백목사님의 설교를 인용하여 부산공회(2)를 주도하는 서목사님을 마구 공격할 수 있겠다고 본 것인데 그런 집회내용을 공회 집회의 내용으로 확정지을 때 누가 결정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공개적으로 밝힐 수가 있는가? 오히려 부산공회(2) 소속의 교역자들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정문을 막음으로 폐쇄적 회의를 지양하고 있음은 분명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해보자는 뜻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고 보겠습니다.

물론 폭행을 위해 들어오는 이들이라면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도 먼저 나서서 막겠습니다. 그러나 회의로만 의논으로만 토론으로만 상대하는 이들까지를 막았다면 이미 총공회 신앙노선의 본질은 잊은 사람들입니다.

3)부산공회(2)로 예를 든다면

대구공회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공회 행정은 공개되어야 한다고 했던 부산공회가 결국 대구공회에게 세력이 밀려서 당하게 되었는데 그 부산공회 내부에서 다시 교권을 쥐게 된 부산공회(1)에게 꼭같은 모습으로 당했던 것이 부산공회(2)입니다. 부산공회(1)에게 당할 때 부산공회(2)는 총공회 신앙노선이란 공개주의라는 주장으로 얼마나 오랜 세월 소위 진리투쟁을 하며 자신들은 옳은 것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조차 그리고 지금 부산공회의 다수가 된 현재도 부산공회(2)는 모든 것이 비공개주의입니다. 몇 교회가 집회를 참석했는지, 몇 교회가 따로 집회를 하는지, 몇 교역자가 소속을 했는지, 부산공회(1) 집회가 마귀집회라고 해놓고도 다시 그 밑에 동참죄를 짓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든 것은 다 가리워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떳떳히 밝히지 못한다면 분명 부산공회(2)는 옳은 것을 추구하는 단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총공회 신앙노선을 포기하고 일반 교회와 같이 이해득실에 따라 흘러가는 하나의 이권단체로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4.이렇게 제의합니다.

교회를 운영함에도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구공회이며 부산공회(2)입니다. 그렇다면 공회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세계와 만방 앞에 우리 공회는 무엇을 옳다고 보며 걸어온 역사는 왜 정통성이 있으며 현재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히 밝히는 것입니다. 부산공회(1)은 차라리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를 자기 공회를 지도하는 목사님 한 분을 중심으로 그분 위주로 그 목사님 인간을 따라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교회 홍보주의를 반대하고 실제로도 그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산공회(1)에는 홈페이지를 촉구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특히 대구공회와 부산공회(2)는 소속 교회 숫적으로는 이미 총공회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만큼 양대 공회가 되었으며 두 공회들의 움직임이 과거 총공회 전체 소속 교회와 교인들에게 눈으로 확인되는 총공회적 사안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비중도 있으며 또 스스로 세력을 많이 모으는 것이 의미있다고 하며 또한 홍보가 필요하다는 사상을 가진 공회들인데 '총공회'의 신앙노선에 관한 한 어떤 형태로든지 발표를 기피하고 총공회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는 소속 교인들까지도 모르도록 대부분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기이한 행태입니다.

이곳의 판단은, 수없이 노선을 바꾸었고 때를 따라 편리한 대로 신앙 성격을 교체하여 왔기 때문에 어린 교인이나 대외적으로 알도록까지 발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재도 비록 두 공회는 안정적 공회가 되었다 하나 앞으로 또 닥쳐올 어떤 현실에서든지 그때마다 이권을 위해 적절히 신앙과 노선 그리고 주장을 변경하고 변형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자기 공회는 어떤 신앙노선을 가졌는지조차도 밝히지 못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곳이 '총공회' 방에 있는 '남단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세계 교회의 어떤 역사 어떤 교계에 내놓고도 떳떳이 외칠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총공회의 신앙노선'을 오늘 작디 작은 현실의 이권에 매여 스스로 파묻고 옳은 것을 밝혀볼 수 있는 기회조차를 차단하는 오늘 공회의 위축된 자세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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