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미국의 대재앙을 보며 신앙인이 가질 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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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3 00:00
1.봤다고 본 것이 아닙니다. 봤으나 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않아서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보여주셨는데도 그것을 보는 인간이 엉뚱하게 보기 때문에 늘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능한 부모 때문에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겪은 고통 때문에 사회적 반감으로 평생 살고 교도소를 드나드는 사람도 있고, 그 시절 때문에 이를 악물고 출세하여 평생 좋은 세월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둘 다 자기들만큼 어린 시절의 고통을 잘 보고 겪은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의 경우는 어린 시절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의 고통을 말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보여 주시지만 인간은 보고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이런 경우를 당달봉사라고 합니다. 눈꺼풀은 떴는데 망막에 맺히는 것이 없습니다. 미국의 대재앙을 보면서 우리가 봐야 할 몇 가지 면들을 살펴봅니다.
2.미국의 대재앙에서
1)우선, 느꼈으면 합니다. 사실을 사실로, 그 자리에서 당한 사람의 실감으로
백목사님의 설교 내용에서는 세계를 비웃고 천하를 호령하며 노아 때 물에 빠져 죽은 천하 만민을 조롱하고 그 빠진 모습을 고소하다고 통쾌하게 표현하는 곳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설교에 은혜를 받고 그 말씀에 취하다 보니까 우리는 대형 참사나 비참한 이웃의 형편을 접하면서 아주 냉철한 비판자가 된 적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탁 치셨다' '봐라' 하는 식입니다. 그 표현 그런 설교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옳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되돌아 보셨으면 하는 것은, 죽고 다치고 깨진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기는 아는가? 내가 그렇게 당하게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실감하면서 그래도 당해야 옳다, 내가 그 속에 있다가 당했다 해도 주여 잘 했습니다 이 놈을 더 치십시오,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자기에게는 감기 하나만 주셔도 하나님이 착각한 것이 아니냐, 내가 예수를 잘 못 믿은 것이 아니냐, 별별 원망 불평을 수도 없이 하는 우리들인데 남에게 닥친 고통은 자기가 겪은 것 보다 몇 백 몇 천배가 크도 '회개 해!'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 주님 믿고 일어서면 되고 죄값에 두려움 알면 되지!'라고 냉정하고 결론 맺는 우리가 아닌가? 주로 우리 교역자가 짓는 죄이며, 교단으로 말하자면 공회 노선의 교인들에게 광범위하게 해당되는 죄목입니다.
주님은 체휼의 분입니다. 인간사 모든 고통 질고를 다 알고 다 겪고 당한 분입니다. 그러나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불쌍히 여길 것은 불쌍히 여기는 분입니다. 백목사님도 그 감정의 예민이 예사롭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풀 한 포기의 아픔을 절감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물의 이용권을 주셨기 때문에 그 풀 한 포기를 사용할 때는 서슴없이 잘라버렸던 분입니다.
원래 인정이 없고 본디 매정한 사람은 예수를 믿고 나서는 사랑과 자비를 먼저 배워야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체질이 맞지 않으니 생략해 버리고 그대신 자기 원래 체질에 맞고 취향에 맞는 말씀, 네 부모와 형제와 처자와 전토를 다 버리라는 말씀만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신앙을 주를 위해 아까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체질에 맞추어 성구를 악용하여 귀찮은 것들을 모조리 숙청한 사람으로 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볼 일이지만 두렵습니다. 가정 파괴범 가족 포기범인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아브라함의 자손인지!
2)우리는 일어나지 못할 사건이 없다는 것을 더욱 느낄 사람들입니다.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렇게 큰 규모로 그렇게 동시에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미국 심장부에서 일어날 줄은. 그래서 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세상은 세상의 지식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예측합니다. 인간이 인간의 상식 범위를 넘을 수는 없습니다. 만일 소설에서나 꾸몄을 이런 일을 미리 실감했다면 이런 일을 실제로 대비했을 것입니다. 실제 우려한 사람들은 사실 정신병자들일 것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은 소설은 소설로 생각하지 현실적으로 체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때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하나님의 우주 섭리 운영을 믿고 하나님의 대심판을 믿을 때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노아홍수도 재림의 불타는 우주도 믿는 사람에게는 자기 집에 화재가 날 수 있고 자기 동네에 홍수가 날 수 있는 일 정도로 날 수 있다고 알아야 하고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생각한다면 노아홍수는 만일 있었다 해도 몇 억분의 일로 발생할 일이기 때문에 그런 확률을 가지고 걱정하고 늘 대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그 능력과 그분의 섭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 하루에도 12번 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느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런 일의 만 분지 일이라도 느껴볼 수 있는 하나의 자연계시였습니다. 사람의 시체를 보고 하나님 없는 인생의 실상을 느껴 보듯이, 이 세상의 불행을 보며 미리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듯이, 하나님께서 하시면 손바닥 뒤집듯 일어날 일들인데, 그리고 그 일들이 우리에게 닥쳐질 때 우리가 당할 일들인데. 이번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우리에게는 6.25전쟁으로 3년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지 못하고도 그때 일을 다 잊었습니다. 보여주시는 것은 두 눈의 비디오 카메라로 녹화하여 늘 우리 머리속에 저장해 둘 수 있는 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보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안전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간 목회자들을 책망했던 설교말씀이 기억납니다.
1970년대 10여년은 우리 나라의 전쟁 위험이 가장 높을 때였습니다. 국내에서는 북한이 형제를 치겠냐는 철없는 학생 교수 소위 지식인들의 말잔치가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 국제 정세를 잘 아는 교계의 지도급 인사들, 미국내 실력자들과 유학 시절 등 여러 형태로 관련을 가진 이들은 풍전등화의 위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계 지도자들이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고 최고 지도급 인사들의 무슨 상징처럼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시절 서는 강단에서마다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믿지 못하고 강대국 미국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향해 가장 큰 책망을 했던 선지자는 바로 백영희목사님이었습니다. 오늘 북한의 대남 활동이 환하게 들어나고 수십년 전부터 활동해온 모든 세력들이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미 그때 이런 실상을 먼저 보고 한국교회의 재수난을 준비했던 이가 바로 그분입니다. 동시에 그런 위험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인간 피난처를 찾던 이들을 책망했습니다.
말은 맞지만, 안전은 그래도 하나님의 안보보다 미국의 안보체제가 낫다고 생각한 것이 거의 모든 사람의 인식이었습니다. 이번에 당한 곳은 세계에서 가장 잘난 사람들이 모인 미국, 그 안에서도 가장 잘난 사람들만 모인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전성이 가장 확보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그토록 무참한 일이 벌어질 때, 우리는 세상이 보듯 우리의 눈으로 뉴스를 보고 있으나 속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눈으로 인간의 허무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지키는 곳만 안전이며, 인간의 안전이란 인간의 안전에 그칠 수 밖에 없음을 봅니다.
4)소돔과 고모라를 말하며 나설 이단들이 많을 것입니다.
1992년 10월, 하늘로 올라간다며 흰옷 입고 준비하던 이들, 시계를 차면 무거워서 올라갈 때 지장이 된다며 버렸던 이들, 이런 부류의 이단들이 중심이 되어 이번 일을 수도 없이 써 먹을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써 먹을 것인데 그들이 써 먹은 것이라 이번 일을 두고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을 말하는데 주저하는 분들이 계실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나라, 우리처럼 믿고자 시작했던 고난의 조상을 가진 그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시려고 작은 시련을 주신 것입니까? 미국을 크게 기뻐하여 더 큰 복을 주기 위해 욥의 환란으로 더욱 깨끗게 하는 일입니까? 살필 것도 별로 없이 타락 한 나라, 타락한 교회, 주께 받은 축복으로 세상을 물질에 썩게 만든 심장부를 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진노로 일부 보이신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못나면 남이 한 말을 무조건 따라 갑니다.
사람이 못나면 남들이 말할까 봐 할 말을 못합니다.
사람이 못나면 않할 말을 합니다.
복음을 외치는 사람은 해야 할 말이면 합니다. 이단들이 먼저 해도 합니다. 한다고 그들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들이 밥을 먹는다고 우리가 죽을 먹을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잘나야 한다고 종종 권면하든 어느 한 선지자의 외침이 기억납니다.
5)목회설교록에는 많은 시사 사건들이 나타납니다.
백목사님은 설교만 하는 분입니다. 세상 이야기를 하는 분이 아닙니다.
백목사님은 설교만 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설교가 사용될 현실을 설교한 분입니다.
백목사님은 설교거리가 없고 교인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자 세상 소식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연계시로 보여주는 인간사는 정통했던 분입니다.
그분만큼 세상과 천하를 한 눈에 꿰뚫어보던 이 시대의 지혜자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계신다면, 오늘의 이 사건을 두고 세상사람들과 다른 목사님들이 수도 없이 반복할 판에 박은 소리와 달리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며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닿는 설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일을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일을 왜 일으켰는지, 왜 보여주셨는지를 이 시대의 선지자를 통해 알리셨을 것입니다.
6)세상의 언론과 모든 입들이 떠드는 소리를 그대로 듣다보면 길가밭이 됩니다.
이번 일은 TV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수도 없는 해설과 분석이 난무할 것입니다. 많이 듣다 보면 어느덧 듣는 사람은 최면에 걸리게 됩니다. 같은 소리의 반복은 그 사람의 구별 사리력을 마비시키고 그 사람의 모든 사고가 그 소리에만 붙들리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자기 최면에 걸리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이런 심리의 작용을 아득히 초월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지절거리는 소리를 그런 소리로 들을 수도 있어야겠고, 그 속에서도 자연계시로 배우고 건질 것이 있으며, 그런 속에서도 우리 믿는 사람은 성경으로 보고 아는 것이 있어 세상이 모르는 것을 보여주는 자기 속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있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