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누락시켰던 백목사님의 시들을 공개하며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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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연구실] 누락시켰던 백목사님의 시들을 공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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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목사님의 시 세계

①백목사님 자서전인 시

백목사님의 시 세계는, 그의 평생 신앙걸음과 교훈을 단 몇줄로 요약시킨 자서전입니다. 백목사님의 권당 600여페이지 182권에 이르는 설교세계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나면 비로소 이 시들은 그 182권의 요약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물론 백목사님의 그 설교 전부는 설교 시간 외에 움직였던 백목사님 심신의 활동 전부라는 것은 이미 아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②초기의 시들: 고난에서 소망까지

1955년, 백목사님은 첫 시였던 '샤론의 수선화'와 '천지만엽으로 찢긴 맘'에서 진리노선의 총합이라는 고신 내부에서 내몰렸던 그 심정을 표현하였고 이어 1957년에는 '덮은 눈속에 봄오고'와 '고요히 눈을 감고'라는 시로 이제 혼자 떠나갈 그 신앙노선의 앞날을 예고하였습니다. 1958년에서 '진리와 사랑' '영생하는 진리'라는 시로 이미 교계를 초월하고 벌써 주님과 진리에 하나되어 영원을 향해 걸어가는 상황을 느낄 수 있고, 드디어 1960년에 이르면 그는 천국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 주님께 뭇나이다' '...천국에서도 사랑하는 자를 위해 봉사할 길이 있음니가....' 영원토록 완전한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③중기의 시들: 맡게 된 시대의 사역 속에서

1960년, 다시 이 땅위 현실의 세계로 내려온 그는 암흑으로 가득찬 세상을 보게 되고 '암측에 빛찼고 눈밑에 봄왔다'는 외침으로 한국과 세계 교계를 향해 꺼내 보일 이 시대를 향한 이 교리 이 신조 이 행정의 신앙노선을 소개하며 1967년에 이르러는 '풍설에 늙은 바위 충절에 굿게 섯고'라는 시로 만 풍상 속에서 주님을 향한 목회자의 충성으로 굳게 걸어가며 이대로 순교의 마지막을 향하리라 기도합니다. 복잡한 땅 위에서도 고요한 한 때를 주시자 그는 금정산 70인 바위를 찾아 산속 '재미있는 모임'에 참석하고 큰 위로와 휴식을 가집니다. 아! 이런 휴식 이런 위로의 모임이 있었다니! 오늘 호텔에 현수막 내걸고 위로연 피로연을 거창하게 베푸는 교계가 이런 신령한 세계를 들으나 보았을까, 말해주면 또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정신혼란상태라고 정신과 입원을 거론하겠지요?

④마지막 시들: 가야할 너머를 보며

1976년, '깨끗하신 주님'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닮아 결국 완전자에 이르러야 하는 구원의 최종 목표를 두고 자라나는 신앙들을 향해 깊고 깊은 구원의 세계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로부터 10년은 구원의 본질과 성격이 과연 한이 없고 끝이 없음을 강론하고 있습니다. 1987년 평생을 통해 가르쳐 놓은 교인들에게 당신 없는 앞날의 시대적 폭풍과 폭우와 흑암 속에서 이 진리로 승리하라는 '폭풍아 불어라'는 시로 격려하고 1987.9.에 유언의 시를 설교 중에 남깁니다.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이 시가 오늘 이곳의 표어이며 평생 걸어갈 신앙노선입니다. 또한 총공회 신앙노선의 개교회주의를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2.백목사님의 또 다른 시들

①손양원목사님의 시 2편

1997년 백목사님 시집을 '고갈한 절벽에'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당시 백목사님의 시집에는 손양원목사님의 시 2편이 백목사님 시와 뒤섞여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이 시들은 한 눈에 백목사님이 표현하고 싶은 백목사님의 시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은혜가 있고, 하늘을 통해 간접으로 주시는 비와 같은 은혜도 있고, 부모과 같이 전달체가 자기 의사로 가감하며 전달해 주는 아침밥의 은혜도 있습니다. 직접 주시나 자연을 통해 단순히 전달해 주시나 부모를 통해 변형된 뜻처럼 전달해 주시나 상관이 없습니다. 몇 단계를 거쳐 내려온다 해도 결국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며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이 5계명의 본질문제입니다.

백목사님이 직접 내린 지시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 내려오는 지시나 다 백목사님의 지시입니다. 백목사님이 지은 시와 마찬가지로 백목사님이 직접 적고 보관하고 자기 시집이라고 적은 노트 안에 자기의 시와 함께 기록을 해 놓았다면 이는 백목사님의 시입니다. 위 /연구실/자료방/에 '손양원목사님의 시 2편'이라는 제목으로 자료를 올려놓겠습니다.

'끝도 가도 없난'이라는 이 시는 원래 12절로 되어 있으나 애양원교회에는 2절만 남아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수년전 앞동네에 있는 애양원교회를 방문하여 백목사님 집회 다녀간 기록을 조사하면서 그분들이 2절까지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12절까지를 복사해 드렸습니다. 애양원에는 그 2절까지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손양원목사님의 적통이며 대가'였습니다. 백목사님은 12절을 다 가지고 있는 생존 유일의 분이었으니 손양원목사님의 신앙노선은 바로 백목사님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한 면을 보여 준 것입니다. 손목사님 사모님이 손목사님 순교하던 해부터 애양원교회가 신사참배 찬성측으로 돌아서게 되고 이를 반대하여 개척한 교회가 바로 신풍교회이며 이 교회가 백목사님 노선으로 소속되도록 힘껏 도운 이가 바로 신풍교회 설립자인 손목사님 사모님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손양원목사님 전기의 출간되지 않은 그 후사입니다. 한국교계는 사랑의 원자탄 마지막 페이지까지만 알고 오늘 애양원교회를 찾아 손목사님의 신앙을 더듬지만 그 실제 신앙노선은 그의 사망 직후 애양원 길 건너 반대편으로 옮겨 오늘 백영희신앙노선에 있다는 사실. 이것도 한국교회사의 숨겨진 사실이며 백영희신앙노선이 한국교회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②백목사님의 또 다른 시, 세상사람이 세상을 보고 지은 세상시입니다.

백목사님이 직접 적은 시집에 올라간 시들이면, 바로 백목사님의 시입니다.
직접 적은 시와 마찬가지로 남들이 지은 시를 옮겨 적은 것도 그 시집 안에서는 당신의 시입니다. 백목사님 시집 뒷편에 적어놓은 시들은 놀랍게도 세상시입니다. 세상지식 세상에 속한 것을 그렇게 멀리했고 무시했던 분인데!

바로, 10원짜리 교계를 향해서는 10원짜리 세상시가 있었습니다.

10원짜리 세상시를 어디에다 쓰시려고?
10원짜리 한국교계를 위해, 10원짜리 세상시가 있었습니다.
한국교계를 향해 날리는 10원짜리 욕설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쓰레기통에 쳐박을 인격이 있다고 세상시가 욕한 것입니다.
세상의 최귀, 최상, 최고일지라도 어찌 교회 문턱 밑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 문 밖에 세워두면 모를까. 한데, 교회가 그 수준이었으니 세상 시로 욕을 할 수 밖에!

10원짜리 세상시가, 오늘 백영희신앙노선의 공회들을 향한 예언이기도 했습니다.

백목사님의 시들은 거의 다 1955-67년 사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기간 한국교계는 교단 간 법정소송과 예배당 무력점령을 위한 주먹다짐이 난무하였고 그러다 한 순간 재결합, 이후 재분열 등을 거치면서 그 숫자와 족보를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오늘 한국교계로 고착되던 절정기입니다. 이 기간에 백목사님은 고신과 합동 등 주요교단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으며 자신이 걸어갈 신앙노선 한 길에 대한 심정을 여러 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10원짜리 시를 자신의 시집 뒷편에 적어놓고, 교단들의 10원짜리 '신앙노선'을 개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한국교계가, 그리고 오늘은 백영희신앙노선의 공회들이 바로 그 개탄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10원짜리 '신앙노선'에 총공회 소속 공회들도 백목사님 사후부터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공회 소속 교역자들이 몇번이나 소속과 노선을 바꿔가며 오늘의 모습으로 변신 변화되어 왔는지 그 숫자와 과정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공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신하고 소속과 신앙노선을 교체하여 왔는지 현란하여 그 본질을 파악조차 하지 못하게 된 정도입니다. 교회를 목장으로 교인들을 양떼로 보되 이 목장과 양떼를 경제창출의 이용물로 보고 목회자와 공회들이 오늘까지 걸어왔다고 이곳이 단정을 한다면, 그 단정이 틀렸다고 반증할 분들이 계실까? 없습니다.

백목사님의 시집에 올려놓은 세상시 첫 대목입니다.

'가마귀 싸우는 골에'

한국교회가 까마귀떼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욕이 있겠습니까? '까마귀'라 했다면 육두문자욕설이 아닐까요? 이만하면 평생에 두번 다시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을 정도의 모욕으로 알아들어야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이곳은 이 시의 첫 대목을 보며, 총공회가 '가마귀 싸우는 골'이며 그 공회 안에서 뒤엉킨 이들을 '까마귀 떼'로 보고 있습니다. 신앙노선문제였기 때문에 이곳도 공회의 분립 투쟁에 제일 앞장을 섰던 것이 1989-1990년입니다. 당시는 백영희신앙노선의 계승이냐 수정이냐는 문제가 본질이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투쟁은 전부가 이권다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1990년 이후 노선싸움은 끝이나고 향후 이권다툼만 존재할 것이고 이런 교권싸움이 시작되었으므로 공회에 일절 관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다음 모든 공회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이때 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시가 바로 '가마귀 싸우는 골에'라는 백목사님의 시입니다. 물론 만나는 이들에게 이 시를 개인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이 시를 아지 못하여 교권싸움에 말려들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꾸준히 증거했으나, 이미 이권에 눈을 뜬 이들은 빈대를 남겨두지 않는 중들이었습니다.

이곳의 글이 또 격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의 이 시를 공개하고 이 시를 소개하면서 이런 격정과 울분이 없다면, 녹음기이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이곳의 외침으로 지난 날을 돌이키는 조용한 회개들이 있었으면, 이곳의 외침으로 앞날에는 이런 욕설을 얻어먹을까 좀 조심하는 후배들이 있었으면 하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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