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목사님 장례 때 감출 수 없었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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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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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목사님
그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잊혀지지 않고 우리 공회 교인들에게 떠 오르는 모습은, '아' 소리 하나에도 착오없이 백목사님의 설교를 반복하던 그 붉은 얼굴일 것입니다.
1977년, 어느 월요일 새벽 일찍 홍목사님의 육신은 남천에서 출발하여 김해 장유에 있는 서부교회 교역자 묘지의 하관 예배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남해고속도로가 교회 묘지 산 중턱을 지나고 있으나 당시는 산 제일 발치에서부터 묘지 마지막까지 전부가 묘역이어서 운구 거리가 상당히 멀었습니다. 또한 서부교회에서 묘지로 가는 길이 구포 옛길로 돌아 김해 구시가지 중심을 지나 장유면을 통과하여 묘지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전국 교회 교역자 교인들, 새벽 일찍부터 곡괭이를 들고 홍목사님 육신을 안장할 묘역을 파고 있던 청년방 목회 준비 청년들, 그들을 지휘하며 가장 수고를 많이 하던 양진근집사님, 막 도착한 관을 붙들고 전부들 전율하던 순간들은 오늘 공회가 광야같이 될 형편의 과정이었습니다. 그 홍목사님의 상여를 목회자들이 매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는 참으로 야릇한, 참으로 믿기 어려운, 그러나 필연적인 전조(前兆)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첫 자리에 있었던 홍목사님의 사망이 진급과 진출의 희망으로 와 닿던 이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홍목사님을 잃고는 비통하기 이를 데 없어 그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 비할 수가 없었던 전성수목사님도 바로 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후 만 10년만인 1987년, 공회는 공회의 마지막 인물이었던 서영준목사님을 또 보내게 됩니다. 이때도 상여를 따르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즐기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89년 백목사님의 장례에서는 아주 웃음을 펴놓게 되는 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지금 서울과 대구공회의 주도 인물들이었습니다. 부산공회(2)에도 적지 않습니다. 이분들에게 다시 한번 보여드리고 싶은 분으로 홍목사님이 그렇게 간절하게 그립습니다. '백목사님'이라는 말만 들어도 옷을 추스르며 벌벌 떨던 홍목사님, 그런데 그와 함께 하던 성령의 펄펄 끓는 불이 있어 그의 앞에 서게 되면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던 바로 이런 능력의 종들이 있었더라면 이 공회 신앙노선을 흉내내고 따라가지 못해서 모두들 안타까워 했을 것입니다.
백목사님을 우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먼저 발성을 해버리는 탈선과 수정의 길을 걷는 분들. 이렇게 상대를 한번 말로 잡아버리고 나면 밑져야 본전입니다. 대개는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 통계입니다. 666의 세상 혈육전에서는 이를 심리전으로 분류합니다. (이런 분들의 표현에 의하면 ')백목사님을 우상으로 받들고 평생을 한치 오차없이 나간(') 분이라고 한다면, 홍목사님 이상이 없습니다. 그에게 역사했던 성령의 불길은 그를 본 이들에게 안심하고 따라가라는 외침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인물이 없기에 비정상이 정상으로 공회 안을 배회하는 때를 보고 있습니다.
공회는, 공회 신앙노선으로 충만해야 공회다운 것입니다.
공회에, 공회 밖의 신앙노선이 충만하고 공회 신앙노선은 발본색원을 당하는 형편.
이런 때에 홍목사님 같은 분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데려가시고 그런 분을 주지 않으시는 뜻은? 우리는 설교록에서 그 답을 알기 때문에 오늘과 내일은 우리가 걸어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