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정예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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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소수 정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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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는 1979년부터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 되기 전까지는 늘 극소수의 정예 교인들로 이루어 졌습니다. 교계에 유명한 어떤 이단들도 공회 교인을 손 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공회의 일반 교인 한 명은 타 교단 목회자와 같이 봐야 할 경우가 흔했습니다. 우리는 타 교단의 교인 수를 숫자로 봤고 공회 교인 숫자는 교인으로 봤습니다. 그 때 공회 설교에는 '소수정예'를 뜻하는 내용이 늘 넘쳤습니다.

1979년의 언론 보도 이후에 우리는 원치 않게 타 교단과 한국교회의 일반 통계에 노출이 되었고 우리의 덩치가 적지 않음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서부교회의 예배 실내 공간의 규모가 국내 2 - 3위에 오를 정도였고, 주일학교와 중간반에서 쏟아 져 올라 가는 교인의 숫자에는 순복음교회까지 넋을 놓고 보는 정도였으며 서부교회는 이미 국내 5위에 세계 10위로 파악 되고 있었습니다. 이 외형의 수치에 내실을 더하면 세계 최고 제일의 교회라 하기에 주저할 것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부터 공회 설교에는 '양을 보면 질도 알 수 있다.'는 과거 부인적이면서 자기 모순적인 내용이 쏟아 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타 교단들의 논리와는 그 중심과 향방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모두가 은혜롭게 듣고 따라 갔지만 저처럼 역사와 교리를 두고 토씨 하나까지 정서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체질적으로 공회를 운동권이나 되는 줄 알았던 분들, 공회가 거지들을 위한 서민 교회인 줄 알고 좋아 하던 분들로부터는 강력한 반발도 제기 되었으나 공회의 중심 목적 방향 내용이 너무 정직하고 성경적이어서 외부로 불거 질 사건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세월이 다시 흘러, 현재로는 공회가 숫적 외형적 기준을 가지고는 어디를 향해서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백합화께서 과거 몇 번 말씀하셨던 황성 옛터를 거론해야 이해가 빠르고 우리의 상황이 명확해 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이 웹사이트에서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 문제며, 교인과 교회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교인다운 교인과 교회다운 교회가 문제라고 말한다면 평양 수준이라고 비판이 제기 될 상황입니다.



여러 번 망설이다가 1979년 이전에 소수를 강조하다 이후에 다수를 강조할 때처럼, 이 번에는 다시 소수를 강조해야 할 현실을 주셨다고 생각하여 모순이 없고, 번복이 아니며, 공회의 늘 일관 된 길에서 부르짖은 바로 소수정예의 뜻을 담은 주장을 합니다.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이 시는, 이 구호는, 이 설교 요약은 백 목사님 사후의 쇠약해 진 시기에 나온 것이 아니라 공회의 최고 절정기에 나왔던 공회의 내심이었습니다. 공회는 기대하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한국교회의 주도 상황을 받았고 세계교회의 주목을 받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때도 그 이전과 같았습니다.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계획이 없었으며 어떤 변경 사항도 없었습니다. 과거와 꼭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객관을 동원하여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1989년 이후의 쇠락한 외형 문제도 좁게 보면 우리들의 문제였고 우리의 자멸 자폭 자해로 인한 상황인데 넓게 보면 그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었음은 명백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주님은 외형과 분량을 주지 않고 내면과 생명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소수정예. 한 명이라도 교인다운 교인, 한 교회라도 교회다운 교회.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는 과거 경험상 천하 제일처럼 그렇게 거창한 목표는 당신이 주고자 할 때 바로 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소수정예. 1 명을 말하는가? 1 명이라도 당연히 우리 각자가 그 1 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1 명이 여러 명 있다면, 그런 여러 명이 더 많이 있어 300 명이 된다면 우리는 기드온의 3백 명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 혼자라도, 죽어도, 죽는 날까지, 최종까지 이 노선 그대로 간다는 사람. 바로 그들은 모여야 합니다. 그들이 흩어 진다면 그들의 그 주장은 허위입니다. 둘 중에 하나는 거짓이며, 10 명 중에 9 명은 거짓이며, 300 명이 있다면 그 중에 299 명은 거짓입니다.

결사대 몇 명이 세상의 역사를 바꾼 이야기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결사대까지 갈 것도 없이 한 사람의 수고로 그렇게 된 이야기도 많습니다.
왜 세상에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흩어 놓으셨을까? 주님의 개별 섭리의 향방이 무엇일까?

우리로서는, 이 노선의 우리 각자를 위한 촉구입니다.


공회의 목회자들, 그들만 결사대가 되어도 기드온 300 명은 우리가 확보합니다.
공회의 목회자 장로님 권사님 핵심 교인 중에 극히 일부만 모아도 우리는 300 명은 됩니다.
공회의 핵심 목회자 몇 명이 자기 자녀들만 좀 투입해도 그렇게 됩니다.

여러 복잡한 상황과
이 노선을 그래도 현 상황 정도라도 지킨 기둥이 무너 질까 곤궁한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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