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의 구성으로 본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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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4 00:00
시골에 있다 보니 피할 수 없는 대화 중에 하나가 시골 교회의 교인 구성입니다. 노인들만 살고 있습니다. 젊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도시로 떠났습니다. 혹시 객지에서 자연을 벗 삼는 사람들이 새 집을 짓고 들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주변 시골을 그림으로 보지 자기 이웃으로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골 사람을 구경하듯 보고 지나 가고 시골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외국인 대하듯 합니다.
교회가 시골이지만 교통 요충지에 있고 또 이 곳의 연구 활동 등으로 인해 여러 종류의 목회자들을 만납니다. 교회의 교인 구성에 대해 질문이 많습니다. 다른 교회보다는 여건이 좋은 상태여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우나 대화가 진행 되다 보면 결국 해야 할 말은 다음과 같아 집니다.
1. '본교회주의' 원칙
이 노선은 본교회주의가 철저합니다. 신앙을 기본적으로 생명으로 봅니다. 남녀가 있고 부부로 가정을 이루며 세월이 좀 지나면 자녀가 나면서 가족들이 많아 집니다. 교회가 신앙을 입에 담으면서 사상처럼 정치처럼 기업처럼 놀이 동산처럼 담지 않고 진심으로 신앙이라는 말을 하려면 생명 있는 신앙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개인 교회, 가족들이 신앙으로 살면 가정 교회, 모두가 함께 하는 그냥 교회라고 합니다. 이 교회가 참으로 신앙으로 모였다면 그 교회는 마치 가정처럼 나누고 깨고 이합집산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회사는 옮길 수 있고, 학교는 다음 단계로 진학을 할 수 있고, 전공은 바꿀 수가 있으며, 심지어 국적을 바꾸어 조국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와 부모 자녀라는 가족은 살아 생전에는 바꾸지 않습니다. 멀리 가서 평생 보지 못하게 될지라도 가족으로 모인 가정이라는 개념은 나누기가 없고 쪼개기가 없고 대체가 없습니다. 교회는 회사나 학교나 사교 모임이나 다른 어떤 단체와 비교를 해도 가정으로 비교하는 것이 가장 가깝습니다.
2. 오늘 사회와 본교회주의
세상은 살아 가는 형태의 변화로 인해 시골 중심의 거주가 도심으로 대체 되어, 시골은 산 송장들이 으스렁거리는 유령의 동네로 바뀌고 도시는 과포화 상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세상이야 세상이니까 당연한 흐름이고 우리는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입니다. 교인들의 인식이 본교회주의 교회가 바른 교회라고 되어 있다면 사회의 탈 농촌 현상은 사회 문제가 될지라도 교회가 있는 곳은 교인들 때문에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이 술을 권한다고 교회가 술에 취하지 않고, 세상이 일요일을 여행하는 날이라고 생각해도 교인들은 그 날은 더욱 교회로 가는 날이라는 인식이 확실하면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다른,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것으로 나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란 교회끼리 한 몸이 되고 화평하고 복음 운동을 함께 하는 등에 앞 서 먼저 본교회주의가 토대가 되고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건전하고 출실할수록 국가가 바로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교회가 본교회주의를 정상적으로 지니고 있다면 시골교회라도 유지는 되어야 정상이고 도시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도심으로 몰려 오기 때문에 교회의 수와 교인의 수가 많아 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대형 마트에 몰리듯이 대형교회에 몰리고, 도심은 과포화가 되듯 도시 교회들은 교인들이 넘실 대고, 시골은 빈 동네가 되어 가는 그대로 시골교회도 빈 교회들이 되어 가고 있으니 이 것을 사회 현상이며 사회 탓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교회를 말하고 있다면 교회는 당연히 본교회주의를 돌아 봐야 할 것인가?
3. 시골교회와 본교회주의
만일 예전부터라도 본교회주의가 확실했다면 처음부터 시골교회 문제는 문제가 되지도 말았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본교회주의가 옳다면 시골교회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 됩니다. 문제는 시골이든 도시든 대형이든 소형 교회든 오늘 교회는 본교회주의라는 말을 알지도 못하고 그런 인식을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 교회를 전전하는 것이 자랑이고 이 교회와 저 교회로 쏠려 다니고 몰려 다니는 것을 과시까지 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없고, 목회자가 없고, 교인이 없는 시대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회는 주일이든 성경이든 연보든 생활이든 결혼이든 세상의 흐름과 상관 없이 늘 한갖 되이 내려 왔습니다. 본교회주의 역시 그렇습니다. 모든 교파 모든 교회들이 본교회주의에 철저할 때 공회도 그러했고 그들이 흐려 질 때도 우리는 철저했고 그들이 그 의식을 다 버린 지금도 공회 교회는 비록 전체는 아니라 해도 공회 노선에 제대로 선 교회들은 본교회 정신이 투철합니다. 신앙의 근본이며 교회를 출발하는 첫 순간부터 그런 분위기에 물이 들고 그렇게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이 친구 집에 어떻게 하다 보면 하루 잘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출장 때문에 집을 며칠 비울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친정을 간다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언제 조사를 해 봐도 집 밖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그럴 만한 사정이 특별한 것입니다. 수천 세대가 사는 아파트라 해서 퇴근하는 아버지가 아무 집 현관이나 열어 젖힌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만취를 해서 몇 년에 한 번 어떻게 실수를 하면 했을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 배우러 갈 수도 있고, 연합 집회를 개최하여 산 속에서 많은 교회가 함께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 나서 또는 처음 전도를 받아서 한 번 교회에 발을 딛으면 그 사람을 찾는 사람이 그 교회의 예배 시간에 갔을 때 100 번에 99 번 정도는 있어야 정상입니다. 이 것이 공회입니다. 이 것이 모든 교회들의 건전했던 예전의 모습들이었습니다.
4. 현대 교회의 교인 구성 문제
교인의 숫자가 줄고 있는 것도 걱정이고 시골 교회의 황폐화는 이미 돌이 킬 수 없이 진행이 되어 졌고 그나마 부흥이 되어 교인이 넘친다는 교회들도 그 교인들의 머리 숫자는 넘실 대지만 그 교인의 명단을 조사해 보면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철새들 뜨내기들 하루살이들로만 채워 져 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시골교회 문제가 낭떠러지 끝에 선 상태지만 이 상태를 바로 이어 따라 오는 후속 태풍은 도심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교회가 선진국 교회들처럼 가속도로 비어 갈 것입니다. 이미 그런 조짐은 곳곳에서 심각하게 발견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년 이상의 목회를 하는 이들은 그들 정년 퇴직 때까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 젊은 목회자나 앞으로 목회할 사람들은 지금 기독교 선진국들처럼 또는 한국의 불교계나 유교 종교인들처럼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골 교회의 교인 구성에 대해 수도 없는 연구와 대책이 나오지만 불신 사회와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노선에서 이 문제를 짚을 때는 먼저 본교회주의를 촉구합니다. 별스런 아이디어가 아니고 교회를 기괴하게 변형 시켜 대처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교회들의 예전에 가졌던 바른 신앙 하나만 찾아 놓으면 됩니다.
지금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타 교회 교인을 데려 올 때 그들에게 그들의 본교회가 있다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하지를 않습니다. 다른 교회 교인을 빼 오는 자기부터 현재 교회를 '본교회' '한교회' '평생교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교회 교인이 이 교회로 와야 하는 신앙의 절박한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이 교회 교인이 저 교회로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신앙 노선의 새로운 깨달음이나 전환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 단순히 사업점의 고객 모시기로 생각하고 교인을 데려 오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교인 유치를 잘하면 경쟁력이 있다고 표현을 하며 심지어 그런 양 도적의 행위를 전도라고 하니, 이 사고방식으로 부흥 된 교회는 그런 여파가 그 교회에 신앙의 본질들을 부패하게 만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 교인들을 많이 데려 오는 교회일수록 정작 자기 교회에 큰 멸망거리를 만들고 있으니 그 것은 곧 그 교회 교인들이 그들이 속한 자기 교회에 대해서 '본교회주의' 의식을 없애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 교인을 데려 오자니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고 본교회주의에 반대 되는 언행을 하게 되고, 그 반복을 통해 자기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본교회주의 신앙을 말살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자기 출석하는 교회에 교인을 채우되 실제로는 자기 교회에 본교회주의를 가진 교인과 그런 신앙을 박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좀 못 난 사람들은, 타 교회 교인을 데려 올 때는 오로지 시장경쟁의 선택권과 경쟁력과 보다 나은 여건의 제공이라는 개념으로만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교인이 다른 교회로 가게 되면 그 때는 교회 이동은 절대 금지 사항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이중의 행동은 자기 모순이고 외식이어서 하나님과 진리가 함께 할 수 없으니 실력으로 데려 온 교인은 더 큰 실력이 있는 교회가 있으면 뺏기는 것이 전제 되어 있고, 교회의 실력이란 늘 변동적이고 이제 말한 그런 교회는 그 실력이 인간적인 것이어서 자고 나면 바뀌고 변하는 것이니 교인들의 출입이 난잡스럽게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 교회 하나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전체 교회를 그렇게 만들고 이 것이 이 나라 교계 전체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5. 주일학교 반사 시절의 경험
수십 년 전 모든 교회들이 본교회주의를 철저히 지키던 시절, 그 때도 주일학교만은 본교회주의 원칙이 거의 통하지 않았습니다. 안 믿는 가정에서 놀기 삼아 나와 보는 철 없는 아이들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을 회고해 봅니다.
주일학교 반사로 활동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돌아 보면 학생들의 교회 변경은 참으로 흔했습니다. 인간적 사회적 한계가 있어 잘 붙들어 놓기는 어려우나 그 때도 서부교회 반사는 한 번 손을 잡으면 죽는 날까지 간다는 정신으로 반사를 합니다. 타 교회들은 매 년 반사를 교체합니다. 이 노선은 한 번 반사를 하면 죽을 때까지 하고, 한 번 반을 맡았으면 그 반에서 학생들을 졸업 시켜 장년반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실제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았으나 교회의 제도와 반사들의 노력만은 한교회 본교회 평생교회에 철저했습니다.
그 때도 타 교회들은 매년 연말이 되면 반사 교체와 반별 담임 교체와 각 반의 학생 배정이 일제히 바뀌었습니다. 임시 일시 해마다 형편 따라 교인의 자기 소속이 바뀌는 식입니다. 한교회주의로 길러 가도 어려운데 처음부터 입맛대로 해마다 수시로 바꾸도록 길러 놓았으니 오늘 교회가 믿는 사람은 많아도 자기 교회를 가진 사람은 극히 적어 지고 있는 상황은 어디서부터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할까?
교회는 생명 운동이요 그 생명은 모이면 가정처럼 가족 구성원의 관계로 발전 되고 계속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뜨내기들의 하룻밤 자고 가는 곳처럼 시내 유흥가의 노점처럼 한 번 앉았다 먹고 마시고 일어 서면 그만인 것처럼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6. 시골교회의 경우 - 본교회주의 신앙을 중심으로
다시 시골교회 교인 구성 문제로 돌아 옵니다. 시골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의식에는 그 교회에 출석하는 아이들이 있다 해도 아예 부모도 학생도 또 목회하는 사람도 반사도 이 아이들은 이 시골에 그대로 있을 리가 없다는 기본 인식으로 아이들을 대합니다. 초등학교는 부근에서 다녀도 그마저 형편이 나으면 바로 시내로 갈 것이고, 적어도 중고교라면 대부분 나갈 것이나 부모가 없어 조손 가정이나 특수 환경의 아동만 남게 되니 남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 때부터는 무조건 전국 어디든지 대학의 이름과 학과의 선호도만 보고 가지 그 속에 자기 교회, 자기 신앙, 자기 평생의 교회 생활을 염두에 두고 계산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도시도 마찬 가지입니다. 서울은 서울 안에 별별 대학이 다 있으니 자기 교회 존속률이 대학 진학 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을 수 있으나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할 실력이 되지 않으면 일단 주일 외에 그 학생을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서울은 전국에서 모여 드는 최고의 학생들이 분산 배치 되는 혜택을 누리며 교회들이 덩치를 가속도로 불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혜택과 부흥의 그 다음 여파를 생각한 교회들은 얼마나 될까? 전국 최우수 학생들이 그들 고향 교회를 본교회로 삼았다면 4 년의 공부 후에는 돌아 가야 하는데 4 년의 유학이 아니라 평생 서울인으로 살아 가며 서울에서 다니는 교회의 교인으로 서서히 바뀌어 갑니다. 이 바뀌어 가는 현상이 서울과 대도시 교회들로서는 교회 부흥의 최고 요소가 되는데, 바로 이 현상은 그 학생들이 졸업을 하면서 직장 문제가 나오면 일단 한 번 교회를 쉽게 바꾼 학생들이 또 바꾸는 것은 쉬우며 혹시 대학 시절에 잘 익혀 진 교회를 자기 교회로 삼아 평생 교인으로 바뀐 경우라 해도 이들이 그 교회를 다니다가 결혼이나 교회 내 분쟁이나 그 어떤 상황이라도 생기면 또 교회를 옮겨 버립니다.
목회자가 아닌 일반 교인으로서 자기 평생의 자기 교회로 살아 온 교인들의 구성 비율을 생각해 봅니다. 물론 교회를 일반 출석으로 다니지 않고 신앙의 노선과 본질을 앞에 두고 생각하다 보면 한교회주의를 지키고자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특별히 진리 노선에 엄한 교단에나 해당이 되고 그 교단에 근본 문제가 생길 때나 그렇습니다. 보통 교인들은 유행 따라 철 따라 바람 따라 피고 지는 꽃들처럼 흘러 가는 물결처럼 철새처럼 이 나라 정치가들의 소속과 신조처럼 그 어디에라도 지조나 사상은 없고 오로지 한 순간의 만족이나 편리만을 기준으로 교회를 떠 돕니다.
7. 목 놓아 불러 봐야 할 구호, 한교회주의! 본교회주의! 평생교회주의!
공부하러 외국에도 갈 수 있으나 교인으로서는 늘 내 교회라는 개념은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요셉처럼 죽어 해골이 되면 아무 쓸모가 없으나 쓸모 없는 말라 빠진 해골이라도 애굽에 두고 싶지 않아 가나안으로 가져 가라고 유언을 하듯 마음은 자기 교회 정신에 철저해야 합니다. 그렇게 심지를 견고하게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필요하여 사명 때문에 옮기든지 또는 자기를 고치게 하기 위해 옮기든지 하나님께서 현실 인도를 통해 데려 가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고, 자기로서는 한 교회 평생 교회주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학생과 교인 하나를 처음 대할 때부터 이 면에 철저해야 합니다. 부흥에 목이 마른 목회자나 전도에 애 터지는 중심 교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고 오로지 교인 하나가 올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것은 그렇게 두고, 우리는 한교회주의라는 것은 마치 유교 사회에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열녀불사이부(烈女不事二夫)가 엄청 난 영향력으로 조선 사회를 지배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맡긴 가정과 교회를 그렇게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불충이며 잘못이지 시대 탓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평생 이 교회 교인, 장년반이면 죽어 이 교회에서 초상을 치는 교인으로 대하고
학생들의 공부는 성적과 적성과 진로에 따라 진학을 고려하기 앞 서 우선 교회를 생각하고
출장과 출타와 유학은 있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본교회 신앙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고
주일학교도 장년반의 구역도 한 번 정하면 자기로서는 끝까지 간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최근 설교하는 강단에서 볼 때 주전 주후 수야 저녁 예배는 그렇지 않은데 새벽 예배에는 눈 앞에 20대와 30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10대와 20대는 공부 때문에, 20대와 30대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육아 때문입니다. 왜 공부를 하는가? 왜 아이를 기르는가? 자기 구원에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벽예배를 빠지는가? 숙제 하느라고 수업을 빼 먹는 학생이 있는가? 처자식 먹여 살리려 나간 가장이 저녁에 집에 돌아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 번 5월의 집회 말씀의 3번째 시간에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시골 교회의 교인 구성을 생각하다가 잠깐 적어 보았습니다. 탄식과 함께 해결하는 기본 자세를 스스로 다져 봅니다. 시골이어서 늘 접하는 시골의 인구와 교인 문제를 함께 놓고 살펴 보았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 잘 배웠기 때문에 일단 인식이라도 이렇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상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이 말하는 대로, 뉴스가 말하는 대로, 다른 목회자들처럼 그렇게 말하고 탄식했을 터인데. 굳이 생존법을 찾는다면 시골 농산물을 도시 교회와 연결 시켜 판매하여 현재 교인을 돕고, 은퇴 교인들을 유치하고 도시 생활에 염증 난 젊은이들에게 귀농을 권유하는 것으로 타개책을 삼았을 터인데. 그 방법들이 교회 파괴 운동인 줄은 모르고 그 것이 의로운 목회인 줄 알고 열심히 헛 일이나 했을 터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