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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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1 00:00
공회의 순교 정의는 3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선택 - 살 길이 있는데도
2. 말씀 - 말씀 순종 때문에
3. 죽임 - 죽여서 죽는 경우
백 목사님의 경우를 그냥 공연히 순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1. 다가 오는 살인자를 강단 위에서 목격했고 말 한 마디면 피할 수가 있는데
2. 주일 새벽 설교의 강단을 지키고 또 당시 전하는 내용을 중단할 수가 없어
3. 죽임을 당했습니다.
최근에 한국교회가 과거 미화를 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순교자를 대량 생산하였고, 이 과정에서 순교의 정의가 자연스럽게 제시 되었는데 고신의 이상규 목사님이 제시한 기준이 공회 기준과 흡사하며 인정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1번의 경우, 기독교를 반대하는 정권이 들어 서서 기회도 주지 않고 교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학살을 하는 경우는 피해자지 순교자는 아닙니다. 전향의 기회를 주고 살해를 위협하는데도 버티다가 죽어야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2번의 경우, 전쟁을 피하여 피난을 가다가 불신검문에 걸려 죽거나 양민 학살에 죽은 것도 순교자라 할 수 없습니다. 3번의 경우 순생으로 살다 죽는 분들은 아무리 순교자보다 더 위대하다 해도 순생이지 순교는 아닙니다.
이 번 주간에 출간 될 '호남의 신사참배 순교자 3 인' 중 한 분인 심봉한 순교집을 발간하게 되는데, 이 책을 본 연구소에서 출간하는 이유는 손양원 목사님의 신앙 노선이 백영희 신앙 노선으로 유입 되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남북 지역은 통합 교단의 안 마당과 같아서 원래 순교라는 이름조차 입에 잘 담지를 않습니다. 최근에는 지자체의 관광객 유치 전략과 지역 교회들의 지명도 제고를 위해 순교 기념관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으나, 그 기념하는 순교자들의 순교는 반세기 이전에 있었고 그 동안은 왜 버려 두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제가 제기하는 이런 의문을 제대로 답할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호남의 순교자 3 인은 이기풍, 양용근, 심봉한입니다. 이기풍은 평양 사람이며 선교나 오지 개척 때문에 왔던 분이므로 실제로는 호남의 순교자는 2 인으로 잡아야 합니다. 양용근에 대한 순교집이 2010년에야 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교집은 총공회 교리서나 주해서라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한 분 남은 심봉한은 지역 사회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이름에 관련한 자료를 찾다 보니까 의외로 이 노선에서 중요하게 참고할 자료들이었습니다.
겉보기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나, 이 노선에서 봐야 보이는 면들이 많았습니다. 순교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이 지역에서는 수십 수백 명의 순교자 명단이 '배출' '양산' '육성' 되고 있습니다. '순교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마치 '선교사'라는 이름처럼 그 이름에 담긴 뜻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머리 숙여 긍정적으로 받는 것이 필요하므로 비판적 표현은 여간 피합니다. 그렇다고 '예수' '성경' '복음'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다고 거짓 목자나 상품 판매에 호락호락 넘어 가는 것도 또 다른 종류의 죄가 되기 때문에 이 노선은 '선교'라는 단어를 마치 죄나 되는 것처럼 조심해 왔습니다. 순교라는 단어도 이 노선은 극히 조심스럽게 사용해 왔습니다. 대개는 '피해자' '순직자'입니다. 실제 순교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아침
순교를 소원하는 근방에도 가지 못하면서
남의 순교라도 부러워 하며 순교자를 영접하는 자리에는 꼭 앉고 싶은 심정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