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총공회와 계약신학원의 신앙노선상 차이점 몇 가지
"
0
2002.07.22 00:00
1.칼빈주의의 현대적 의미
백영희신앙노선인 총공회와 이병규목사님의 계약신학원은 교계에서 볼 때는 가장 가까운 교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내부로 들어와서 본다면 분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칼빈주의에 대한 시각입니다.
①칼빈주의를 역사적 정통노선으로 보는 총공회
우선 총공회 신앙노선은, 칼빈주의를 기독교 정통 역사 속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칼빈주의 신앙노선이란 천주교에서 개혁하여 출발한 현 기독교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임져 온 유일 정통의 신앙노선이지만, 이제 현재 이 시대를 기준으로 두고 말한다면 칼빈주의의 역사적 소임을 끝났다는 입장입니다. 이유는, 칼빈주의 내에서 발원한 백영희신앙노선이 칼빈주의를 일부 개정 수정 보완하는 칼빈주의 내 다른 신앙노선과는 달리 칼빈주의와 그 이름을 달리 할 수밖에 없는 정도로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거 시대를 칼빈주의가 감당했듯이 이제 이 시대와 이 후 시대를 두고는 칼빈주의에서 발원한 백영희신앙노선이 감당할 때라고 보고 있습니다.
②칼빈주의를 오늘도 교회가 지향할 목표치로 보는 계약신학원
반면, 계약신학원의 경우는 그 설립이념에서부터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칼빈주의에서 시작해서 칼빈주의 안에서 머물겠다는 신앙노선입니다. 이병규목사님의 계약신학원은 그 '신앙노선'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칼빈주의 지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교리나 신조나 행정노선이 부분적으로는 총공회와 유사한 점이 많지만, 칼빈주의의 부분 보완 내지는 개정을 통해 종국적으로는 완전한 칼빈주의를 목표할 뿐이라 하겠습니다. 즉, 오늘 시점에서 단면을 잘라 본다면, 총공회 신앙노선은 칼빈주의가 아닌 반면, 계약신학원은 칼빈주의라는 점에서 두 곳은 그 신앙노선이 아주 다른 교단이라고 하겠습니다.
2.복음운동 자체의 세상 귀속 여부
①교육부 인가된 정식 대학교를 보유했다는 의미
현재 이병규목사님의 계약신학대학원은 교육부에서 인가해 준 대학교입니다. 정식 대학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가장 높이 보는 학위 기관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 혜택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교단의 발전과 복음운동에 지대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고신이 오늘까지 존재하게 된 것은 고려신학교가 고신대학교로 인가를 받았기 때문이며 총신이 오늘 한국교계를 주도하게 된 것은 총신대학교가 서울에 위치하여 국내 보수성향의 인재를 전부 끌어모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세대학교는 세상사람들도 들어가고 싶어 갈망하는 명문이 되었기 때문에 비록 교회가 시작한 일이지만 오늘 우리 사회 전체를 두고 그 영향력과 막강한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계약신학원이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게 된 것도 이런 여러 상황에 대하여 깊이 계산한 결과입니다. 아마 한국교회 최후의 보수노선 보루를 확보하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큰 일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신학원은 백영희신앙노선에서 우려하는 한 가지 지적을 벗어나지 못하고 늘 마음 속에 짐으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학교가 되는 대신 교육부에 대학 설립에 관련된 모든 법령 일체를 다 맞추어야 하고 이후 운영도 그 법령에 의하여 관리 감독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세상 안 믿는 사람들의 지시와 규제와 관리 감독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남한 내 대공요원 양성소의 최종 관리 감독권을 만일 북한정권에 둔다면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어려울 것입니다.
②교단등록으로 대표되는, 교회의 세상 귀속 문제
차량등록이나 예배당 건축물 인허가 등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맡긴 업무이기 때문에 이 땅에 있는 동안 교회는 그 업무상 요구하는 세상 요건을 기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세상이 간여해서도 안 되는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복음 운동 자체에 대하여는 어떤 형태로든지 세상이 간여하는 것을 우리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가 스스로 세상 유익이나 편리를 위해서 자진해서 세상에게 복음운동의 내부를 맡아달라고 나서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총공회에서는 '교단 등록'이라는 대표단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단등록이란, 교단을 종교법인으로 문공부에 등록을 하게 되면 국가는 종교단체라 하여 그 교단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게 되는데, 그 혜택의 대가로 교단은 국가로부터 몇 가지 간섭을 받게 되는 문제를 말합니다. 이 교단등록은 교단 자체만의 등록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복음운동을 할 때 국가별로 시대에 따라 별별 제도가 있고 또 그 제도의 이름이 수도 없이 많은데 어떤 경우에라도 국가와 교회가 복음운동을 두고 서로 돕고 간섭할 수가 있는가 라는 문제를 폭넓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계약신학원이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대학교가 된 이상, 계약신학원은 신학교 최고 책임자를 임면하는 일부터 교육부의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만일 교육부가 이병규목사님을 반국가적 성향을 가진 종교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계약신학원 운영에서 배제시키려 한다면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총공회 양성원도 대학교 인가를 받게 된다면 백영희목사가 책임자로 선임되는 일을 두고 총공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최종 결정은 교육부가 하게 됩니다. 국가가 그냥 풀어두고 보려면 모른 척 할 수 있고, 만일 국가가 원한다면 계약신학원이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교육부에 맡겼기 때문에 교육부는 계약신학원의 요청에 의하여 계약신학원의 진로 등 모든 면을 결정하게 됩니다. 최근 고신대학교에서 실제로 발생되고 있는 일입니다.
③예배당 소송문제와도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문제
이 교단등록 문제는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교회의 진리 문제나 신앙노선의 시비를 불신 판사에게 그 최종판단을 맡겨놓고 순종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입니다. 교단등록이나 소송문제는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입니다. 교회가 교회만이 판단하고 결정하고 교회만이 움직여야 하는 일을 안 믿는 세상에게 맡겨 그들이 복음운동을 판단하고 교회가 걸어갈 신앙길을 지도할 수 있느냐는 문제라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계약신학원은 그 설립연혁에서부터 밝히는 바와 같이 과거 고신이 성경이 금하는 예배당소송을 강행함으로 이에 반대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배당소송을 성경에서 금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한 국가의 사법제도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신앙문제를 불신 세상에게 결정을 맡기는 근본적인 문제를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록 소송문제와는 그 모습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신학교 운영을 신학교가 스스로 세상에게 맡겨 그 결정을 해 달라고 해야 설립이 가능한 것이 대학설립이니 이는 교회의 복음 운동을 세상에게 그 결정을 맡긴 대학교 설립 행위는 본질적으로 교단등록이나 예배당소송문제와 한 뿌리의 다른 가지일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는 교회끼리 예배당소송이 엉망으로 전개되어 세상언론까지 나서서 이를 사회악이라고 비난하고 또 법원은 예배당소송에 대하여는 특별한 경우로 분류하여 그 판례를 면밀하게 살피게 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예배당소송의 본질적인 문제는 세상에게 교회의 신앙노선에 대한 판단을 맡길 수 있는냐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오늘 일반 교계에 인식된 것은 표면에 나타난 사건에 대한 비판 뿐입니다. 어떻게 예배당을 두고 소송으로 해결할 수가 있는가 라는 감정적 비판만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일반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예배당소송'이라는 표현을 앞세우되 그 의미는 예배당소송과 함께 교회가 교회 내부 신앙문제를 불신자에게 맡기는 모든 포괄적인 행위 일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병규목사님의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의 설립 유지는, 백영희신앙노선과는 너무도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총공회나 계약신학원이나 서로가 군소교단으로 앞서고 뒤서며 대학 인가나 소속 교회수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안 믿는 세상에게 교회 내부의 진리 운동에 대한 결정을 맡길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두고 서로의 입장은 정반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총공회 소속 교회들은 현재 명시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계약신학원과 같이 장차 목회자양성원도 정규 대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는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3.학문으로서의 '신학'에 대한 시각
①신학교육에 대한 근본적 입장 차이
현재 계약신학원은 그 교육과정과 교수진 일체를 세계 모든 신학교들이 갖추고 있는 기준에서 완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수들은 비록 자체 교단에서 다 배출하지는 못했으나 교계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분들로 채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반 교계가 말하는 기준의 '신학교육'을 정식으로 채택하고 이런 교육을 통해 목회자를 기르겠다는 계약신학원의 노선입니다. 이에 비하여, 백영희신앙노선은 일반 신학교에서 말하는 신학교육을 전면 배제하고 있습니다. 비록 성경을 연구할지라도 그것이 성경공부에 그치지 않고 만일 학문으로서의 '신학'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면 이를 기독교이단과 같은 차원에서 경계하고 이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 백영희신앙노선입니다.
이런 발상은 극단적인 사이비 이단종파가 아니라면 찾아 볼 수 없는 신앙노선이며 특히 정통 보수주의 기독교계에서는 이단들이 일시 유행으로 사람들을 쉽게 몰아가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학을 깊이 하게 되면 이단에 쉽게 물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어쨌든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총공회의 신앙은 목사를 신학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노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병규목사님의 계약신학대학원은 철저한 신학위주의 신학교육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약신학원의 원래 신앙노선상으로 볼 때는 잘하는 것이겠고 또 일반 교계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 신학교는 신학대학원으로 인가를 받은 후부터는 건전한 목회자양성기관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총공회 내부에 있던 사람이 이런 신학교육체제 신학교를 지향한다면 단언하고 타락이며 탈선이라고 해버립니다.
②총공회에서 '신학'과 '신학자'의 위치
물론 총공회의 외형만을 본 사람이면 이런 주장을 선뜻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총공회의 양성원 과정은 그 학사일정이 거의 일반 신학교와 같고 그 교수진 역시 정규 신학과정을 밟아 국내 어느 대학에서도 강의할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계약신학원이 대학교 인가를 받기 전의 상황이 바로 총공회의 목회자양성원의 현재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맞을 것이고, 계약신학원은 최근 대학교 인가를 받고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재출발을 하고 있다고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총공회 양성원의 신학과목들은 그 과목들을 배우기 위해 개설된 것이 아니라 신학은 이렇게 방향을 잘못 잡고 배우고 있다는 것을 공동 관람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신학과목들을 맡은 교수들은 그 학문적 배경이 미국에 있는 유력한 보수주의 신학교 정규과정이지만, 교수들의 신학과정도 그 교수들이 미국의 신학교에서 배우고 훈련을 받아 교수가 되고 그곳에서 쌓은 실력으로 한국에 있는 총공회 양성원에서 또 다른 후배들을 가르치고 그렇게 양육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수들이 미국 신학교를 거치는 것은, 현대 최고의 신학계를 방문하여 그곳의 형편을 먼저 둘러본 다음 이후 양성원에서 강의할 때는 신학교육은 왜 잘못되었으며 신학교육은 어떤 면을 어떻게 조심해서 상대해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위치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총공회에는 목회자 양성과정에서 신학과 신학자의 존재는 일반 신학교 기준에서 본다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됩니다. 또한 양성원 내에서도 옳은 것을 가르치고 길러가는 양육의 기능이 아니라 넘어가면 안되는 울타리를 지키는 초병의 위치가 전부입니다. 이런 점에서 계약신학원은 신학교수가 자기 신학으로 신학생을 양육하겠다는 기본을 가지고 있음으로 총공회와는 그 신앙노선이 아주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4.일반 보수교회들의 노선 표방
①언제 들어도 좋은 신앙 노선들
일반 보수교회들이 흔히들 표방하는 노선에는 '칼빈주의, 개혁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가 항상 등장하게 됩니다. '칼빈주의'란 칼빈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노선을 견지한다는 뜻이며, '개혁주의'란 천주교식 부패를 재현치 않겠다는 뜻이며, '보수주의'는 세속 타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복음주의'는 복된 소식이 되도록 전하기를 힘쓰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선을 표방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지 이를 시비할 소지는 없습니다. 일반 교계에서는 칼빈주의 개혁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라는 이 표현을 거부하거나 회피한다면 두 말할 것 없이 아주 몹쓸 교회라는 말이 됩니다.
②언급할 필요도 없는 총공회 노선
그러나 이런 정통교회의 노선들은 다시 입에 담지 않아도 이미 체질 속에 넣어둔 것이어서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는 신앙노선이 바로 총공회 신앙노선입니다. 총공회 신앙노선이란 위에서 말하는 이런 문제는 시비의 대상에 오를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반 불교'를 제 일선에 내걸지 않는다고 문제가 되는 교파가 있다면 그 교파는 지금 불교와 기독교를 혼동하여 어디로 길을 정할까라는 수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계약신학원을 포함한 모든 정통 교회들이 위에서 말한 4가지 문제를 두고 그 반대쪽이 옳은지 혼란 속에 있습니다. 총공회는 이 4가지 문제를 두고는 몰라서 질문하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이 4가지 문제를 두고 그 반대쪽을 택할지 혼돈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원래 총공회 소속이었던 교역자나 교인이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탈선하게 되면, 그 첫째 모습이 '칼빈주의' '개혁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 등을 표방하고 나섭니다. 덧붙여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도 유달리 강조하고, 더 나아가 급기야 '성경중심' '하나님중심'까지를 내걸게 되는데, 이는 총공회를 제외한 모든 다른 교파에서는 바로 믿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총공회 내부에 있었던 분들이 이런 구호를 앞세우고 나가면 이미 이전에 거쳐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 내려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고 또 이번 설명의 제일 앞에 두는 이유는, 이 단계까지는 그 내걸고 있는 구호들이 너무도 옳고 바른 것이어서 아무도 그 다음 나갈 길을 예측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총공회 교회가 그 표어 앞에다가 갑자기 '하나님 중심'을 걸고 나옵니다. 그것도 교회나 공회의 공식 첫째 표어로.
③총공회 노선에서 이탈되면 갑자기 급증하는 표현들
백목사님 사후 1차 분리가 있었던 1990년 3월 이후, 수정노선으로 방향을 잡은 대구공회는 그 주보 등 대외 발표에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개혁주의' '보수주의' 등등을 전면에 걸게 됩니다. 그러나 대구공회보다 더 보수적인 부산공회는 이런 단어들에 대하여 설교 중에 하나씩 따로 떼어 분석하고 연구하기를 수도 없이 했지만, 정작 교회가 걸어갈 대표적인 신앙노선의 첫 단어로 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이라는 것을 대외에 선포할 필요도 없었던 공회가 이제 그것을 제1의 논제로 삼아야 하는 차원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뜻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날부터 갑자기 이마에 '인간'이라는 푯말을 붙이고 다닌다면 너무도 우습다는 뜻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