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공회의 선교활동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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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1 00:00
1.'전도'와 '선교'는 활동범위를 기준으로 구별합니다.
선교는, 앞서 복음을 받은 이들과 일생토록 생활공간을 함께할 기회가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전도라는 것은 복음을 받은 사람이 자기 현실인 자기 생활공간에서 말씀대로 살면서 입으로 전하고, 말씀대로 사는 행동을 통하여 복음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살아온 생활 자체가 이웃들에게 복음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라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생활 속에서 접하는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과 생활을 통하여 필연적으로 전해지고 또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전도를 세상 업무와 같이 생각하여 전도라는 행위를 할 때는 특별히 말씀을 전하지만 전도라는 업무가 끝나고 자기 생활로 돌아오면 자기가 전했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경우를 허다하게 봅니다. 이런 경우는 앞으로 전도인이 되기 위해 자라가는 과정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현재 그 상태로는 전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도를 활동범위로 규정해 본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현실 생활 공간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를 그 활동범위로 특별하게 한번 규정해 보는 이유는 선교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선교는 전도입니다. 선교는, 전도의 활동범위가 전도자가 일생토록 자기 현실인 자기 생활공간에서 접할 수 없는 타처를 향할 때를 말합니다. 즉, 선교는 전도의 활동 범위를 두고 구별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2.선교가 참으로 귀한 이유는, '십자가 못박히는 고통' 때문입니다.
단순논리로 말한다면, 신앙이 들어가지 않은 국가를 향해 그 국경을 넘어서서 전도하는 경우를 선교라고 합니다. 국경이란 언어 문화 생활 종교 등 거의 모든 면으로 수백 수천년을 지나면서 뚜렷하게 나뉘어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으로서는 그 일생을 통해 자기 생활 공간으로는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예를 든다면 남부지방 사람이 북부지방으로 도를 전하는 것은 선교라 하지 않고 전도라고 합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동일 생활 거주 범위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거리가 멀 뿐인데, 그 거리도 국경선 안이라면 마음 먹기에 따라 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남부지방 사람이 북부지방 중에서도 만주 일대를 애매하게 접하고 있는 변방쪽으로 전도를 간다면, 전도가 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선교가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대략의 원칙을 위에서처럼 가지고 있다면 그 상황에 따라 붙이는 이름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역사가 교회 안에 일반적으로 소개되기 이전 시대에는 '선교'라는 의미는 십자가를 바로 눈 앞에 둔 제자들의 선택과 같았기 때문에 그 필요성과 사명감은 느끼지만 바로 발 밑에 떨어지는 견딜 수 없는 고난과 고통 때문에 전부 주저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3번이나 맹세를 하면서 부인하게 되는 두려운 상황이 신약시대로 말하면 과거 '선교'였습니다. 따라서 과거 교회사는, 선교라는 단어는 십자가를 그에게 매워 예수님 옆에 못박아 놓는 행위이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선교에 임했고 그 선교라는 십자가를 통하여 이 복음은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선교는 선교할 대상이 없고 선교할 지역이 없으며 선교할 오지가 없는 때입니다. 정상적으로 선교를 하려 한다면 선교지가 없어졌음을 발견해야 하고 이를 한탄하며 새로운 선교지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의 선교지는 이제 지구상에 남은 지역 중에서는 북한 한 곳밖에 없는 정도입니다. 오늘의 선교지는 오히려 지역적 개념보다 세대와 세대간에 형성되고 있는 인식의 국경선을 넘어야 할 시점입니다. 세대와 세대의 벽은 과거 국경선보다 뚫고 들어가기에 더 어려움이 많습니다.
쿠바나 중국은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이미 과거 개념의 선교지가 될 수 없습니다. 들어가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통신 신원보장 등 거의 모든 배려와 지원이 뒤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선교사 한 사람의 신변은 곧 세계 각국이 확대하여 주목하게 되고 또 국가간 외교문제로 비화됩니다. 이렇게 문제 사건이 되어지면 경력 관리와 여타 보이지 않는 수입이 많기 때문에 일부러 상대국가를 상대로 도발을 하도록 유도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3.선교할 지역이 없어진 오늘, 남아있는 바로 몇몇 곳이 우리 옆에 있습니다.
북한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중국의 경우는 삼자교회라는 존재와 북한정권이 순수 선교까지 오해하고 활동하는 위협 그리고 그 지역의 광활함 때문에 곳곳에 아직도 선교 대상지가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을 상대로 선교하는 이들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로는 선교보다는 다른 이권이나 수입이나 목적을 짐작케 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고, 중국을 상대로 선교하는 이들은 아직도 곳곳에 순수한 선교를 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고 봅니다. 현재, 이곳에서 소개하는 총공회 신앙노선 내부의 중국선교공회의 경우는 이 시대에 거의 남지 않은 마지막 몇 곳을 상대로 선교하는 분들이라는 점을 여러 소식에서 접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선교가 그 수많은 선교 중에서도 몇 되지 않는 진정한 선교라고 한다면 이는 내 몸의 저쪽에 있는 지체가 수고하는 것이므로 그 혜택과 영향이 한 몸 안에 있는 이쪽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오고갈 것이니 물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내 집 안의 우리 잔치상 보듯 해야 할 것입니다.
4.이곳은 표현에 오해가 많은 곳이나, 혹시 이곳의 입장이 참고되었으면 합니다.
중국선교공회에 대하여 호의적으로 또 건설적으로 보는 시각이라고 이해 하신다면, 이곳은 현재 진행중인 '중국선교공회'의 활동 중 몇 가지 문제점을 고려하실 때가 되었다고 의견을 드립니다. 중국선교공회가 좀더 온전해진다면 그것이 이곳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①우선 현 '중국선교공회'에서 제공하고 있는 사진 자료에 대하여 생각할 점입니다.
1984년, 나이지리아와 말라위에서 파송된 흑인 목사님들이 신학교에서 공부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신학교가 소속한 교단에서 선교전략 차원에서 특별히 모시다시피 하여 공부를 시킨 경우로, 귀국하게 되면 국가적 지도자들이 될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말라위에서 온 목사님은 자기 축도가 있어야 말라위 대통령은 취임식을 끝낸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던 분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에게 목회하던 교회나 가족 등 사진을 봤으면 좋겠다고 단순히 안부로 부탁을 하자 아주 얼굴색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험하게 사는 사진을 가지고 전부들 다른 곳에 사용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1986년, 부산에서 평생 선교사로 살았으며 동시에 고신대학원에서 신학교수로 활동했던 분이 잠깐 한국 선교 현지상황을 소개하려고 자기 본국으로 들어왔고 그 신학교에서는 그분을 장래 선교사를 지망하는 신학생들에게 사전 교육 차원으로 강의시간을 제공했습니다. 곧 세계 선교를 떠맡아 해외로 나갈 신학생들을 상대로 부산이 자기 선교지라면서 슬라이드 사진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이면 이미 부산과 같은 대도시는 과거 못살던 시대를 벗어났을 때인데도 어디서 찍었는지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몰라도 아연실색할 정도로 비참한 모습을 골라서 돌리고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육하는 식용품 개들도 쌀밥을 먹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선전용으로 찍어가려면 아직도 처참해서 볼 수 없는 곳은 많을 것입니다. 이런 점은 미국 뉴욕시 뒷골목에서도 찍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 이후에도 부산에서 얼마나 더 활동하다가 은퇴했습니다.
이제 이런 극단적인 경우로 형제에게 한 말씀 올리는 것은 충고나 지적이나 교훈 차원이 아니라, 혹 참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하시라는 의견제시입니다. 현재 수고하고 활동 중인 그분들의 형편을 우리가 시각적으로 본다면 이는 분명 지원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그분들의 사진을 대하는 우리가 그분들에 대하여 어떤 의식과 인식을 가지는지, 또한 어떤 선입관이 그들에게 남아있게 될런지를 알게 된다면, 산성빗장을 채우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은,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분들을 상대로 활동할 때는 어떤 경우에도 그 표시를 내지 않습니다. 첫째는 수고하는 우리의 자세 때문이고 둘째는 그들의 깊은 마음 속에 그들 자신도 모르는 심리상태를 미리 보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②선교 활동을 비공개로 해야 한다면, 현재 선교회는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노출시켰습니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중국선교공회는 선교사 등의 신변 관련 모든 활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익명으로 공개 관리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어떤 이들은 떳떳치 못한 비양심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수도 있으나 이곳은 그렇게 비판하는 이들의 양심은 성경을 모르는 불신자의 감상주의라고 비판합니다. 감추어 두도록 하시는 현실도 있고 드러내어 외치도록 주시는 현실도 있기 때문입니다.
활동의 공개와 비공개는 오로지 현재 현지 선교를 담당하시는 분들의 기도와 영감에 따라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결정될 일이지만, 여기 있는 우리는 들리는 소식에 반갑고 또 선교활동에 대한 여러 신상이 알려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아주 조심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사진 자료 등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만일 그토록 염려하는 중국공안이 만일 선교공회를 단속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중국선교공회의 홈과 사진자료를 입수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으며, 특히 중국내 한국 선교활동에 최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북한과 및 북한 지원 국내세력이 체크를 한다면 중국선교공회의 활동은 현재 스스로 전부 노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거기다 현지 사진이 그 정도로 게재된다면 현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아무리 중국의 변방이 낙후되어 방치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리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중국의 선교 탄압은 북한을 의식한 일시 발표용 행동에 불과합니다. 또한 중국내 체제 유지를 위해서 선교사들을 제재하는 것도 몇몇 본보기를 향해 계획적으로 손을 대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선교공회 관련 선교활동도 파악은 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어느 선교활동을 언제 필요하여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는 인간적으로는 중국 공안의 마음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결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다행히 처리 대상에서 제외될 미미한 선교로 보이든지 아니면 순수 선교활동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분위기만 냉각시키는 불편에서 그친다면 지나치게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모른척하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세상이 말하는 대로 단속 사례 중 하나로 올려진다면, 다른 교단 다른 선교활동과는 달리 너무도 귀하고 너무도 특별한 이 복음 전파에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조심하셔야겠다는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실제적으로는 그 활동을 공개하면서 다른 분들에게는 비밀을 요청하게 되면 다른 선교회들과 같이 그 활동을 지원받도록 정치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상인 점도 고려하셔야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순수한 중심과 현실적인 고난과 그런 중에서 조심할 것과 충성할 것을 구별하여 부디 모든 선교회와 다른 특별한 이 복음 선상의 선교가 되도록 원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이라고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교파의 중국 선교활동은 중국의 문이 열리기 이전 1970년대의 경우도 몇몇 접하여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1980년대 초반에는 중국 당국에서 국가 관리 유학생들을 상대로 미국내 신학교가 그들을 선교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자유화가 보장되어 물밀듯이 선교활동이 중국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본다면, 여기서 소개드리는 중국선교공회 외에는 아는 대로는 건전하여 참 수고한다고 인정될 만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정할 만한 가능성이 있다면 총공회 신앙노선상에서 움직이는 중국선교공회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대구공회나 서울공회가 1990년대에 이미 중국과 구소련 등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시작이 성령에 충만하여도 뒤가 흐려지는 법인데 그 시작부터가 참으로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좁게 보면 중국선교공회라는 한 단체의 한 두 가지 행동에 대한 의견이지만, 넓게 보면 우리가 평상의 신앙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점들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는 우리 전체가 모든 면에서 생각할 점 중에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