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총공회 소속 각 공회에 드리는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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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7 00:00
①총공회 신앙노선에 있다면, 연 2차 정도의 깊은 말씀연구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꼭 1년 2차 집회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들의 우려처럼 이곳은 백영희 복사가게가 아닙니다. 그 장소 역시 꼭 대구와 거창 집회 장소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부산공회(1)(2), 대구공회, 서울공회와 달리 부산공회(3)은 처음부터 개 교회 기도처에서 단독으로 시작했습니다. 또한 집회 기간은 반드시 4박 5일이라야 한다는 법을 세워두고 있지 않습니다.
꼭 권하고 싶은 것은, 연 1-2차례 또는 2-3차례 깊은 말씀 연구의 기간은 필요하겠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몇 개 교회와 교인들의 집회라야 하느냐는 문제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 노선을 함께 하는 교회들이라면 함께 모여 집회하게 될 때 받게 되는 은혜가 있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집회 기간은 말씀 연구 중심이면 나머지 자세한 구체 일정은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백목사님 스스로도 평생에 집회 횟수 기간 장소 일정 등 일체를 그때마다 은혜 중심으로 변경해 왔습니다.
신약교회의 기본방향이 그러하지만 사실 천주교에서 개혁했다는 우리 기독교가 아직도 그 개혁의 의미를 잘 모르고 천주교에서 익혀진 잘못된 습성을 많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이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완벽하게 복구했다고 평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 있습니다. 은혜 중심의 말씀 운영에 그 기본 원칙을 세우고 나갈 뿐이지 그 외에 어떤 외형이나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집회도 말씀 은혜의 방향이 어느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그 운영방향은 폭넓게 정할 수 있습니다.
②우선, 이번 글의 주제는 총공회 재산문제와 관련된 집회 장소문제입니다.
1989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총공회 재산문제를 두고 벌여온 공회들간의 투쟁사를 약술했습니다.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려면 모든 일지와 문서를 검토해야 하지만 이곳은 그런 기술적인 수치보다 전반적인 방향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약술로 그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방향을 살펴본 것은 총공회 재산 문제 하나에만 초월하였더라도 우리 공회의 투쟁과 그로 인한 피해는 거의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었다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모든 그간 투쟁이 처음은 신앙 노선에 관련되어 시작되다가 그 도중에는 전부 재산문제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2002년 9월에 부산공회(3)에서 마련한 집회장소를 보며 이곳은 총공회 소속 각 공회가 더 이상 총공회 공동 재산에 염두를 두고 공회의 방향을 잡고 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청원을 드립니다. 공회들 중에 가장 약한 부산공회(3)의 경제력으로도 얼마든지 집회 장소를 확보하고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하물며 그 몇 배 그 수십배에 달하는 대형 공회들은 과거 거창과 대구기도원에 비교되지 않는 좋은 집회 장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짓지 않기 위해, 고요히 진정 말씀 연구를 위해 경제가 지출된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갚으시는 많은 면이 있다고 설교하지 않는 교역자 또 그런 말씀을 반대할 교인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 정치가가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것은 세상이고 정치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이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그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③이미 분열된 총공회 소속 공회들은, 이제는 조용히 서로를 비교할 때입니다.
세상 다른 집단 다른 인물 다른 곳에서와 또 일반 교계에까지는 이런 원리가 다 적용되지만 오직 한곳 총공회 신앙노선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백목사님 사후요 각 공회가 자신들의 양심으로 자신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다른 공회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때입니다. 만일 길이 같은데도 나뉘어 있다면 이는 왕되기 위한 지도자들이 짓는 죄가 되고 또 그들을 따르는 교인들도 동참죄가 될 것입니다.
재독 문제, 찬양하는 방법 문제, 찬송가 문제, 당회와 권찰회 선택 문제 등 수도 헤아릴 수 없도록 서로가 달리 생각하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회들은 합해서는 안되는 공회들입니다. 우선 왜 틀리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모든 상반된 깨달음들이 정리가 되고 나면 자연적으로 해결이 될 것입니다. 투쟁이 없으면 오해가 없을 것이고 그런 조용한 분위기에서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옳고 그른 것이 나올 것입니다. 또한 그 문제를 두고 진정 기도하고 연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나온 최종 결론이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노선이라면 무조건 합해야 하는 일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는 노선이라고 결론이 난다면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우리 총공회 일부에서 현안이 되고 있고 또 다른 공회들에게는 잠복된 지뢰와 같이 된 총공회 재산문제에 대하여 함께 초월해야 합니다.
④아직도 거처를 정하지 않고 떠돌고 있는 덩치큰 공회는 위협적입니다.
각자 하나님이 주시는 기간까지 고요히 각 공회별로 따로 집회하고 따로 모이고 따로 활동해야 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대구공회나 부산공회(1)은 특별히 거대한 도토리들입니다. 남이 보면 도토리 키재는 형편인데 우리 공회 내부에서는 거대한 공회들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야 무어라 하든 일단 훌륭한 집회 장소를 확보하여 공회적으로 그 중심지역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양 공회가 여기 저기를 떠돌아 다니고 있게 되면, 소위 동네가 불안하게 됩니다. 청년들이 결혼을 해서 가족을 먹여살리느라고 바쁘게 되면 동네가 평안해 집니다. 그러나 30대를 넘긴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가족 부담의 짐이 없게 되면 밤거리를 어슬렁거리고 배회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집집이 들어앉아 있다해도 동네 딸 가진 어른들은 불안하게 됩니다. 만일 그들이 돈벌이도 하지 않는다면 동네 재산 가진 사람들은 전부 불안하게 됩니다.
대구공회처럼 당장에 밀어닥치면 집회 장소를 접수할 수 있은 거대한 공회가 아직도 대구와 거창집회 장소 부근을 배회하며 자기 살 곳을 정하지 않은 모습은 그 모습 자체가 부산공회(1)에게는 위협이 됩니다. 그러니 부산공회(1)에서는 대구공회의 6.25남침 기습을 막기 위해서는 재산을 개인 명의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지을 사람들에게 가속도로 죄를 짓도록 하는 일입니다. 또한 부산공회의 정통과 전통을 가졌다는 부산공회(2)가 부산공회(1)이 개최하는 집회 강단 밑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부산공회(1)에서는 재산을 해외로 돌려놓자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⑤총공회 재산권 문제를 깨끗이 털어버리고,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릴 때입니다.
그동안 지은 죄만 해도 평생에 회개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동안 지은 죄들의 그 죄명만이라도 다 외울 수 있습니까? 그렇게 무수한 죄를 지었던 과거를 돌이켜 보고, 그 당시 그 당시는 대구공회 재산으로 영구 고착될 것 같았고 또 단일 부산공회 재산으로 고정될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섭리로 이리 되고 저리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총공회 전체 재산을 최종적으로 확정지워 줄 때까지는 각 공회가 여분의 재산을 마련하고 임시 거처에서 다음 인도를 기다렸으면 합니다. 유다를 바벨론에 넘길 때 유다 내에서는 이스라엘 회복 운동이 일어났으나 정작 미리 이 환란을 예언했던 예레미야는 이제는 바벨론에 잡혀간 이들로 하여금 거기서 집을 짓고 살아라고 했습니다. 70년 후에 돌아올 날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공회를 두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짧은 세월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부산공회(1) 지도부 중 단 2명만 천국을 가게 되면 해결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분들이 천국을 가도록 기다리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현 자연수명 최대치라고 하는 120세를 사실 수 있는 분들이며 반면에 기다리는 이들이 요절로 이름 붙은 단명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반대측이 빨리 하늘나라에 가야한다고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는 '살인죄'에 해당이 됩니다. 이 모든 안팎의 불합리와 어두움을 일거에 제거하려면 우선 거처를 마련하고 공회의 모든 분란에 대하여는 적어도 '접촉 사고'가 생기지는 않도록해야 할 것입니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죽는 날까지 할 일은 외부에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또한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어느 길이 옳은지를 살펴보고 꾸준히 비교 검토 토론해야 할 일입니다. 중국선교공회분들처럼 해외 선교가 급하니까 내부 비판 평가는 덮어버리자고 한다면, 선교 속에 들어있는 전도에 대하여는 받을 상이 크지만 선교 속에 들어있는 진리 무시에 대하여 받은 책임은 그 상을 지우고도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