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2.북한 교회사를 위해 잠깐 살펴보는 한국교회사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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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연구실] 2.북한 교회사를 위해 잠깐 살펴보는 한국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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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우리나라 복음역사는 북한이 중심이었으며 또한 앞서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신사참배를 거치면서 그 신앙의 중심이 평안도와 경남에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반대인사의 거의 대부분이 양쪽 지역의 교회에만 몰려 있었습니다. 경남은 외국선교부 중 제일 약했던 호주선교부에 의하여 개척이 되었으며 그 신앙의 중심은 오늘까지 한국교회의 중심이 되었으나 해방 이전 초기 한국교회사에서는 외부적으로 미미했습니다. 반면 평안도는 복음을 일찍 받았을 뿐 아니라 평양이 전국 교회의 중심이 되었고 전국의 단일 장로교신학교도 당연히 평양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교회가 남한교회에 비하여 현저하게 앞서 있었지만 그대신 북한교회는 그 속화 타락의 순서를 남한교회보다 앞서 밟아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려웠던 구한 말, 복음을 먼저 받은 북한 교회들은 경제적으로 복을 받고 또한 여러 걸출한 인물들이 양산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예수를 믿고 보이는 복을 먼저 받게 된 북한 교회는 보이는 복을 그 중심에 놓고 있었습니다. 아직 남한교회는 걸음마를 하는 단계였고 또한 그 주변 사회도 강한 유교와 불교 분위기에 막혀 믿는 사람들이 복은 고사하고라도 예수를 믿은 뒤 맞아 죽지 않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면 큰복을 받은 정도로 인식이 되고 있었습니다.


②북한 교회의 복음 선진화는 이런 면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원래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북한 땅은 중국으로 문물 교류나 교통의 관문이었기 때문에 일찍이 외국에 대한 눈을 뜨고 있었고 또한 체질적으로도 외래의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곳입니다. 따라서 선교 초기에 북한 땅은 복음을 적극적으로 접하며 교회가 크게 자리를 잡게 됩니다. 반면 충청 경상도로 내려오게 되면 아시아 전체 지도의 동쪽 끝 막다른 골목에서 꽉 막힌 생활을 하고 내려왔다는 점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거리에 나뒹굴던 낙엽들이 이리 저리 쓸려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막다른 골목에 수북하게 쌓여 썩혀지고 있는 것처럼 불교나 유교가 동쪽을 따라 전달되다가 대륙으로서는 막다른 골목에 수북하게 쌓여 오랜 세월 꼼짝하지 않고 썩어나던 곳이 바로 이 지역입니다. 따라서 초기 선교시절 복음에 대한 저항과 박해는 그 도가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고 북한에 비하여 현저하게 복음화가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양 지역의 이런 점은 이후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북한 교회는 단시일 내에 크게 선진화를 이루며 선진화 된 기독교 분위기로 나가고 있었으니 먼저 믿고 잘 된 사람들로 인해서 후속으로 믿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왕성해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녀서 사회적으로 인물이 된 사람, 사업에 크게 성공한 사람, 서양의 여러 선진문화를 습득하여 크게 앞질러 가는 사람들 때문에 뒤에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힘을 얻고 또 함께 믿던 사람들이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낼 수 있게 됩니다. 교회 부흥이 이런 상승작용에 의하여 더욱 흥왕되던 것이 북한 땅이었으나 남한 교회, 특히 경남지방의 교회들은 예수를 믿기 위해서 가정과 사회를 포기해야 하며 교회가 그 존립을 유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시기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③복음의 기회를 앞서 받은 북한 교회가 유물주의로 변질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북한 교회에는 예수 믿고 세상적으로 잘 된 이야기들이 중심에 서게 되고 세상 성공을 위해 예수를 믿는 방향으로 교회의 본질이 뒤바뀌기 시작합니다. 남한 교회의 경우는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보이게 되는 현상이 북한 교회에서는 4-50년 앞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에 주셨던 복음의 좋은 환경, 얼마든지 잘 믿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모든 기회가 지나갔고 선교 50여년이 지나던 시점에 신사참배가 닥치자 유물주의적 신앙에 물든 교회로 하나님 앞에 드러났고 이후 복음의 암흑기를 주게 됩니다. 회개할 기회를 다 흘려 보내고 결국 유물주의에서 돌이키지 않자 큰 유물주의 공산당에게 작은 유물주의가 된 북한 교회를 내 주셨습니다.

신사참배가 닥쳤을 때에도 남한 교회는 어린 때였고, 아직도 모두들 고난 중에 예수를 믿느라고 가정과 이웃 사회의 박해가 더 컸던 때였습니다. 남한 교회를 향해서는 아직도 자라갈 때를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시는 때였는데도 신사참배 환란에서는 교세나 교회의 여러 형편에 비해서는 북한 교회보다 살아 있는 종들이 훨씬 많았고 또 강했습니다. 이는 해방 후 남한 교회를 한국교회의 앞날을 위해 남겨두게 되는 원인이 되고, 북한 교회는 충분히 기회를 주었으나 그 신앙의 수준으로 봐서는 마땅히 대책를 받을 만큼 실패하게 됩니다. 북한 지역 전체에 교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공산화의 기간을 주시고 이를 통해 남한 교회와 한국교회 전체를 향해 늘 깨어 살고 죽기까지 복음만을 위해 사는 교회가 되라는 경계로 주시게 됩니다.


④해방 전 앞서 걸어간 북한 교회를 그대로 따르는, 해방 후 남한 교회의 형편입니다.

북한 교회는 1945년 해방이 되고 이후 공산당이 완전 북한을 장악하기까지는 약간의 신앙 자유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사참배로 완전 더럽혀진 교회가 해방이 되지 독립에 취한 나머지 애국과 애족이라는 민족주의와 바로 눈앞에 나타난 공산주의 국가 소련군의 점령치하를 맞게 되어 신사참배 회개문제는 거론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오늘 북한 체제로 편입됩니다.

그러나 본격적 숙청이 시작되기 직전 해방직후 틈새와 이후 6.25전란을 통해 북한 교회는 그 모든 지도자가 교회를 버리고 자신들만 남한으로 피난을 하게 됩니다. 물론 남은 몇 명은 숙청되어 북한 교회는 대외 공식적으로 소멸하게 됩니다. 북한 교회와 교인을 공산당에게 내어주고 자기 목숨만 챙겨 내려온 북한 교계의 지도급 인물들은 월남한 이후 한국교회를 거의 주도하게 되면서 해방 후 남한 교회는 해방 전 북한 교회를 닮아갈 새로운 기관차를 탑재한 형편이 됩니다.

원래 남한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은 북한 교회 출신의 지도급 인물들에 비하여는 어렸고 또 미미했습니다. 순수 신앙을 사수하는 신앙의 정조면을 제외한다면 비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월등한 이력과 실력과 대중 장악력을 가진 북한 교회 지도급 인물들을 중심으로 먼저 피난 와 있던 북한 출신교인들이 모여들면서 단시일 내에 대형교회로 성장할 수 있는 기본 요소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위치만 남한으로 옮겼을 뿐이지 3.8선 또는 휴전선을 넘으며 사선을 초월하고 찾아온 곳에서 다시 북한식 신앙행태로 교회를 운영하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남한 교계의 대형 지도자들로 전면에 등장하게 되면서 남한 교회는 곧 북한 교회의 옛모습을 그대로 남한 내에 만들게 되었고 남한 내 목회자들이 이런 모습을 하나의 모델로 뒤따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한국 교계적 지도자로 부상되면서 불과 20여년만인 1970년대가 되면 남한 교회는 옛날 북한 교회의 복사판이 됩니다.

원래 순수했던 신앙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버티던 고신마저도 교단 이름만 오늘까지 지키고 있을 뿐이지 그 모든 운영 방향과 자세는 결국 그들과 다를 바 없게 되면서 한국 교회에는 해방 이전 신사참배를 거치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지켜 나온 신앙은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에서나 발견될 정도로 끝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그 죄목을 거명하자면, 한국교회의 반일 애국 애족주의, 정부 정권과 유착되어 교회가 정부를 지지하고 그 대가로 여러 혜택을 받는 정교관계, 물질중심의 세속주의, 학벌 학력 지식주의, 교회의 사회혼합 혼성주의, 교단의 교권 중심주의 운영 등입니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대통령 앞에 기독교 대표로 불려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신학교를 대학교로 만들어 세상 명예 지식주의로 나가고, 교단 운영을 위해 소속 목회자들을 상대로 세를 형성하되 현재 국회의원 숫자 확보에 사활을 거는 정치권과 꼭같은 상황을 만들어 놓았고, 결국 교회와 교단을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한국교회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오늘은 적어도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교회 정치꾼들의 돈놀음 교권놀음 명예놀음에 완전 장악되어졌다고 하겠습니다. 1980년대까지 한국교회 주요 지도자의 이력을 훑어보면 금방 이해가 될 문제일 것입니다.

북한 교회를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교회사의 개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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