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현실을 맞으며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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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진보적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현실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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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수와 자유주의 신앙노선으로 양분되는 기독교

①교회는 세상 정치나 사회에 관계하면 안된다는 것이 원래 신앙입니다.

마22:21,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조국이 비록 로마제국 가이사 황제에게 식민지로 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세상사람들의 땅 따먹기 결과이니 교회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신 환경을 현실로만 생각하고 그 현실에서 말씀대로 사는 일에만 전력할 뿐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이름이나 복음의 이름으로 세상 정치나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으로 확실하게 금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본래 신앙은 세상일에 간여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②그러나 성경을 수정시켜서라도, 교회를 사회개량에 사용하고 싶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조국을 위해 병자와 약한 자를 돕고 또 당시 강자였던 집권세력에게 굴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다가 죽은 민중 지도자로 봐야 한다는 운동이 지난 20세기 동안 교회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대단히 폭넓게 확산되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다 살피게 되면 자신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단번에 드러나기 때문에 성경은 참고할 도서이지 그대로 다 믿어서는 안된다고 토를 달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자신들의 정치활동이나 사회활동에 필요하도록 재구성을 했으니 이들의 행동은 성경으로 믿는 원래 신앙이 아니라 '새로 제작한 신학'이기 때문에 '신신학(新神學)'이라고도 하며, 또 인간이 제 마음대로 살면 된다는 뜻으로 '자유주의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기독교를 사회개량에 사용하자는 것이므로 '기독교사회주의'라고도 이름을 붙입니다. 쉽게 말하면 여호와의 증인같은 신앙이니 아주 몹쓸 신앙입니다.


③교회는 천국용인가 세상용인가를 두고, 교계는 양분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결론은 아주 쉽게 나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나누어 바치면 됩니다. 세상은 세상으로 교회는 교회로 나누면 간단합니다. 세상은 두고 갈 세상 안에서 땅따먹기 밥그릇싸움 나눠먹기 등을 하면 되는 것이고, 교회는 천국 준비에만 매진하고 세상은 천국준비에 이용물로만 상대하면 그만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세상 운동에 사용하려는 자유주의는 불신자들이 가질 사상 중에 하나일 뿐이므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주 쉽게 판별이 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교회 안에서 학벌 경제 권력 실력 등 모든 면으로 대개 출중하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쉽게 자신들이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표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독교 자체가 자신들처럼 되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익숙하게 하기 때문에, 기독교 내에서 보수와 진보로 노선을 나눈다면 그 중에 이들의 주장은 진보에 속하는 것이라고 자신들의 입장을 홍보하여 현재 교계 안팎으로는 이런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앙은 19세기 말부터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였고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세계 교회를 거진 다 석권해 버렸습니다. 현재 이곳 홈에서 주장하는 신앙노선을 제외한다면 자유주의 신앙에 점령당하지 않은 곳이 없다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변에서 너무 흔히 만나고 접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기독교라고 하면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기독교가 기독교인 줄로 알 만큼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계로 말하면 이제 그런 자유주의 기독교 핵심들이 이 사회를 직접 운영하는 정권 내부 세력이 되었으므로 한번쯤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2.한국내 자유주의 신앙들의 활동

①선교초기, 미개한 나라를 전도하기 위해 교회는 사회사업을 동원했습니다.

한국의 선교역사는 보기 드물게 보수 신앙에 철저했기 때문에 그 시작은 어느 곳보다 건전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라는 것은 양이나 시기가 문제이지 완전히 없을 수는 없습니다. 초기 선교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기독교 내부에는 급격하게 보수신앙노선이 자유주의 신앙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유주의 신앙으로 변질됩니다.

선교사들은 너무 선진국 출신들이고 이 나라는 너무 미개국이어서 학교, 병원, 구호사업 등을 벌이면 손쉽게 전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이런 사회 구호를 통해 교회는 극도로 폐쇄적이었던 한국사회를 열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한국사회와 친근하게 된 것이 복음에 유익이 되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이화여대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수없는 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나환자 병원 등을 통해 교회는 복음운동을 크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1900년대를 전후 한 초기 한국선교역사는 비록 복음의 수단으로 사회사업을 이용했다고 하지만 잘못하면 복음운동이 미개국의 사회개량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시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활동은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이 나라 전체의 개화를 주도했고 오늘 발전된 한국을 만드는 토대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초기 선교를 위해 교회가 사용한 사회활동은 거의 대부분이 그 도를 넘어버렸고 결국 사회홣동이 주인자리를 차지 하게 되고 교회는 머슴자리에 앉게 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②선교초기, 교회의 사회활동은 '독립운동'으로 급속히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사회사업을 벌인 것은 분명히 전도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주인이고 사회사업은 하나의 미끼였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사자새끼를 보여주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것을 기회로 전도를 하려고 했는데 사자새끼가 무럭무럭 자라게 되자 주인을 물어 죽이게 되는 일로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학교 병원 구제 등으로 사회사업을 벌일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나온 선교사들은 사회활동을 전도의 수단으로 쉽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사업에 의하여 교회를 알게 되고 교회를 통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특별히 우수한 인재들은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치는 이들이었고 그들은 기독교를 통해 대한독립이라는 단어를 주제로 삼게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 조만식장로를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런 부류였고 이들은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해방 후 한국사회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인물들이 됩니다.

3.1운동을 비롯하여 물산장려운동과 같은 국가적 초대형 독립운동에서 시작하여 마을마다 주일학교나 야학 등을 통해 소리없이 퍼져가던 작은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광범위하게 민족운동 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기독교 내부에서 이 문제를 두고 뚜렷하게 반대하거나 막고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고 할 만큼 됩니다.

이제 선교사들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회사업을 전도에 활용하겠다고 지극히 선한 목적에서 시작했던 보수측 선교사들은 그들이 이제는 통제할 수 없도록 커져버린 한국교회 교인들의 의식과 활동을 막고 나서기는 어려웠습니다. 한국교인들에게 교회에서는 독립과 민족부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선교사들에게 '대한독립'이란 사실 남의 나라 이야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까지 조선을 비교적 온화하게 통치할 때까지는, 선총독부와 교회내 민족운동의 분위기 사이에서 선교사들은 애매한 입장으로 오락가락하게 됩니다.


③해방후, 교회는 독립운동의 주체 세력으로서 마음껏 세상 권력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함태영부통령은 전직 목사였습니다. 이승만대통령은 일제 초기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될까 고민했던 독실한 교인이었습니다. 식민지 36년이 조선의 전통사회를 1차 허물었고, 그 기간에 교회는 독립운동의 중심에 섰었고, 이제 해방후 미국에 의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한국내부는 그야말로 기독교인 전성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건국은 모든 것이 서양식으로 바뀌는 것이었고 그 서양식의 기준은 미국이었고 미국이라는 기독교국가의 영향력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원도 한도 없이 한국내 주도 세력이 되도록 했습니다. 한국이 먹고사는 문제는 미국에서 제공하는 원조에 의한 것인데 그 원조에는 미국 교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고 또 그 원조를 받는 한국 내부 계통에서도 교회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 국민은 해방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나 기독교인들은 급박하게 전개될 앞날을 선도적으로 적응하고 주도할 수 있도록 이미 의식이 개조되었고 선교사들을 통해 모든 유리한 조건을 다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 이승만박사가 대통령이 되는 등 여건으로 한국 내 기독교는 정치와 사회에 깊숙히 빠져 들게 됩니다.

이런 현상에 극도로 불을 붙인 것은 6.25전쟁이었습니다. 한 순간 온 전국의 주거상황 가족관계 사회현상을 뿌리 채 흔들어버렸고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의 구원군이었습니다. 군대에 군목제도까지 생겨지게 됩니다. 전쟁 후 미군철수 문제가 생길 때는 전 국민과 함께 한국교회 가장 보수파라 하는 고신교단까지 미군철수 반대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이승만대통령이 4선에 도전할 때 쯤에는 교회가 초교파적으로 조직적 지지를 하고 나서고 있었습니다. 전국 각계 각층에 기독교계 인사들이 사회 주도세력으로 요직을 차지하였고 이제 하나님께서 한바탕 대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현재 살펴보고 있는 이 글의 제목에 의하면 이 모든 기독교의 사회 정치 활동은 전부 기독교 자유주의 신앙노선이 주도하는 것입니다. 그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이 너무 크고 그 영향력이 너무 막대했기 때문에 순수한 보수주의 신앙노선을 견지한다는 교단들도 이 사회활동 끝에 줄을 서서 얻어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너무 크고 지나치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백영희신앙노선 정도로 선을 그어두고 있지 않는다면. 고신교단도 이런 사회활동의 대세론에 따라 그것을 반대하는 백영희를 제거하게 됩니다. 닻을 끊어야 세상이라는 바다로 출항을 하기 때문입니다.


④군사정권 하에서, 기독교 사회주의는 반정부데모로 방향을 잡고 나옵니다.

초기 선교 시절에는 미개한 사람들에게 교육 의료 구호를 통해 전도를 하려는 정도였는데 이것이 독립운동 민족상향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고 해방 후 한국사회는 기독교 사회주의 선각자들이 사회를 주도하여 교회는 세상의 권력과 명예와 돈 맛을 단단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복음운동이 걸어갈 길이 아니었고 교회가 가이사를 상대로 싸우고 이제는 가이사의 자리에 앉아 가이사 대신 세상 맛을 즐기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밉게 보시고 지독한 불교세력에게 정권을 내어주며 교회를 용광로 속에 넣어 정화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맡길 것이니 그 가이사가 불교를 믿든 무신론을 믿든 교회가 상관할 바는 아닙니다. 박대통령 전대통령 노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한국사회는 완전히 불교국이 됩니다. 사월초파일이 국가공휴일이 되고 중들을 공식 호칭할 때는 '스님'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암흑기를 맞게 되었다면 과거 복음의 순수성을 잃고 교회가 자유주의 신앙에 내몰려 사회운동을 했기 때문인 줄 알고 그런 행동이 못된 짓으로 회개를 해야 할 것인데, 엉뚱하게도 반정부데모에 앞장서게 됩니다.

교회는 민주주의 인권주의라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을 원래대로 지켜온 보수신앙을 잊은 결과입니다. 세상정권이야 군인이 잡든 민간인이 잡든 유대인이 독립을 하든 로마제국이 식민지로 삼든 복음은 복음이면 되는데 교회를 사회개량의 수단으로 삼는 자유주의 기독교는 사회개량의 방법으로 선진국 교과서에 나오는 민주주의와 인권주의를 기준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반정부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소위 군사정권시절 이 나라의 노동운동 반정부운동 시민운동 학생운동 뒤에는 항상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이들이 교육을 시키고 연락을 맡고 인재를 공급하고 의식화를 시켜 전사로 만들고 심지어 투쟁 과정에 죽고 다치는 이들에게는 천국을 약속하고 또 그들의 고난이 십자가 고난이라고까지 추겨세우고 있었습니다.

이승만대통령 시절 정권에 빌붙어 얻어먹는 것에 여전히 익숙하여 군사정권에도 그런 식으로 붙어 있는 교회 절반, 교회가 사회개량운동용인 줄 알고 반정부 데모에 직간접으로 지원 응원하는 교회 절반, 이것이 1960-1990년까지 30여년 한국교회 구도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순수한 보수측 신앙노선은 그 종자도 찾아보기가 어려워 희귀종 또는 멸종이 되다시피 했고, 세상 정권이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 교회내의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그 활동의 방향을 정권의 하수인이나 반정부인사가 되어 최근까지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⑤김영삼 김대중 정권, 이제 노무현 정권까지 이어지며 기독교 사회주의는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은 국내 최대 교단인 합동교단의 장로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은 천주교 신자이고 부인인 이희호여사는 자유주의기독교의 중심에 있습니다. 김영삼대통령 시절에는 보수측 기독교라는 간판을 가진 합동측 등 교단들이 아주 특권을 누리게 되었으나 동시에 김대통령이 야당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그 주변에는 기독교 사회주의 인사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었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의 경우는 보수교단에 속한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자유주의 신앙노선에 있는 이들입니다.

세상정치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나 비교를 하는 것은 여기서는 필요없는 일이고 기독교의 사회활동 문제로만 말을 합니다. 이렇게 했든 저렇게 했든 두 사람에게 기독교는 사회활동의 한 수단이었습니다. 김영삼대통령에 의하여 보수측 교회가 김대중대통령에 의하여 자유주의측 교회들이 이승만대통령 시절만큼 사회활동 전면에 나오게 됩니다. 물론 해방 직후는 미개한 때여서 기독교 인사들이 사회 전반을 주도할 수 있었고 1990년대에는 이미 한국사회가 자체적으로 개발되어 있어 기독교 인사들이 사회전반을 좌우할 때는 아닙니다. 다만 교회가 교회 본연의 복음을 버리고 사회활동가로 나섰다는 정도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특히 보수교단 출신인 김영삼대통령은 5년 단임에 그쳤으나 그보다 훨씬 자유자의측 인사와 가까웠던 김대중대통령 5년은 자유주의 신앙들의 활동이 두드러졌고, 이어 김대중대통령보도 다 진보적인 노무현대통령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오늘입니다. 자연스럽게 진보주의 내에서도 아주 핵심적이고 깊숙히 앉아 있던 인사들까지도 이제 정치 사회의 최고 권력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3.자유주의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현실을 맞으며

①한국기독교 내의 자유주의 신앙노선은 크게 통합측과 기장측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원래 한국교회의 초기역사에서는 자유주의 신앙을 하나의 흐름 운동이나 흐름 정도로 파악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해방 후 급격하게 교단으로 형성될 정도로 구체화되었습니다. 해방 후 그냥 장로교 총회 내에서 산재해 있던 자유주의 노선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이들은 '한신대' 또는 '기독교장로교'로 1954년에 교단을 결성하고 한국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그보다 조금 온순한 자유주의 노선은 '장신대' 또는 '통합교단'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기장측은 그 교세가 군소 교단에 지나지 않지만 통합측은 그 교세가 한국 교회 양대 세력이라고 할 만큼 강대합니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 내에서 사회활동 위주의 운동이 이제 교단의 형태로 정식 출범하면서 이후 한국교회 내에 자유주의의 구심체가 됩니다. 따라서 자유주의 신앙노선의 제일 외곽에 가장 많은 지지계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통합교단'이고, 그 통합교단의 내부에는 기장교단이 있습니다.

기장측이 볼 때는 통합교단은 보수세력과 늘 타협하고 양쪽 사이에서 이권을 챙기며 몸조심을 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입니다. 그리고 한신대의 기장측은 그야말로 양심적 자유주의자들로 타협이 없고 진정한 기독교사회주의를 위한 핵심세력이라는 자부를 합니다.


②한국교회 내의 진정한 자유주의 노선이라는 기장측 내에는 또 하나의 핵심세력이 있습니다.

기장측은 통합측을 향해 너무 타협적이고 이권추구형이어서 자유주의라고 할 수도 없다는 정도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합측은 그 자체가 자유주의 신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둘의 관계는 누가 더 핵심이며 누가 더 변방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누가 봐도 기장측이 자유주의 신앙노선에서는 더욱 핵심적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살펴보고 싶은 것은, 현재 교단적으로만 파악한다면 가장 자유주의적인 교단이 기장측인데, 이 기장측 신앙노선에는 비록 교단으로 결성되지는 않았으나 기장측이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주의 신앙노선으로 소신껏 살아가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기장측은 교단으로 형성하고 활동하는데 반하여 이들은 교단으로 형성하는 것조차 자유주의 신앙노선답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자기 활동 범위에서 자기 단독으로 기독교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되 외부를 의식하지 않고 단지 진정한 자유주의 신앙노선을 구현하겠다는 가장 순수한 자유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 성향이 조직적인 단체로 활동하는 것보다 자기의 자유주의적인 신앙색채 자체에 만족하고 또 그런 활동을 통해 보이지 않게 한국교회 내에 자유주의 사상이 번져가기를 원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의 눈에는 기장측까지도 교권에 욕심을 가진 이들로 비쳐지며 비록 그들과 큰 범위에서는 동질감을 가지지만 구체적 사안에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이렇게 가장 양심적이고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앙노선을 가지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기장교단에게는 숨은 실력자나 재야에 묻혀 있는 진정한 양심세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평생 자기들이 생각한 어느 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독교사회활동을 매진하였기 때문에 보수측에서 볼 때는 어느 한 방면의 전문가처럼 보이지 그렇게 위협적인 기독교사회주의자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이들을 꼽으라면 풀무원의 원경선, 거창고교의 전영창 등입니다.

풀무원이 현재 유기농법 등으로 식료품 시장에서 가장 깨끗하고 양심적인 이미지로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풀무원이라는 식품회사 뒤에는 풀무원의 창시자가 되는 원경선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풀무원을 풀무원 되도록 배경에서 순수하게 활동하는 인물입니다. 사업으로 성공한 풀무원 배후에서 그 정신과 활동 방향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무공해 식료품을 찾게 되면서 풀무원의 이름이 유명하게 되었지만 실은 풀무원 운동은 벌써 40년 이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며 경제 성공의 욕심과 무관하게 순수한 기독교 사회활동의 정신으로 시작했던 운동입니다. 풀무원 창시자의 아들이 원혜영 부천시장이며 노무현대통령과는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또 풀무원의 원경선이 이사장으로 있는 거창고교는 고신교단의 청년 조직인 SFC와 고신대학병원의 창설자인 전영창교장으로 대표되는 곳입니다. 기독교를 사회 개량에 사용하되 풀무원은 농사와 근로를 통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면 거창고는 기독교 교육사업을 통해 사회개량을 시도하겠다는 곳입니다. 이미 전국적 명성과 선망을 받고 있는 곳이 되었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사회사업으로 취급할 뿐입니다. 자유주의 신앙노선에서 기독교가 사회사업을 하게 되면 어떤 폐단과 어떤 속화로 결말이 나게 되는지를 대표적으로 살필 수 있는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예를 들고 있습니다.


③문제는 이런 자유주의 신앙노선의 최 핵심부가 이번 정권에서부터는 전면에 나선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이곳 신앙노선에 관련있는 문제만 살피고 있습니다. 이곳 신앙노선과 직접 관련이 없다면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별 상관치 않고 있습니다. 창세 이후로 이단도 많았고 자유주의 신앙노선도 많았으니 그들을 다 연구할 수도 없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하면 그만일 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기장교단은 장로교 교회 분열사에 중요한 교단이었기 때문에 신신학으로 나가는 교단이 1954년 분리되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은 반정부활동을 한다는 세상 뉴스에서나 한번씩 볼 일이었지 그들과 직접 상대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별로 언급할 가치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마치 열대지방과 남극지방만큼이나 서로의 경계가 멀리 있었고 접촉할 여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노무현정권의 출발과정에서 자유주의 신앙노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순수한 양심가들이 앞으로 한국사회를 중요하게 움직여 나갈 자리로 진출하거나 아니면 영향력을 대단히 크게 행사하게 되어 있다는 점을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기독교 사상에 철저한 이들이 정권에 직접 관계를 하게 되면 한국사회 전체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너무 다원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일사분란하게 되도록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소리없이 가랑비 옷 젖는 줄 모르게 스며들어오게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과거 전대통령 시절, 신학 배경이 있었던 인사가 문교부장관을 지내고 그 관련 업무를 관장하게 되었을 때 들고 나온 것이 교단 통폐합이었습니다. 교단들의 분열과 신학교의 난립에 대하여 평소 대단히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던 그 인사가 교육 행정의 실력자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벌어졌던 일입니다. 물론 이런 일은 당시 사회적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종교계 내부의 조처 중 하나로만 보았을 것이나 한국교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지극히 컸습니다.


④이곳 신앙노선은 세상이 어찌 바뀌고 교계 분위기가 어찌 바뀌던 상관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알 만한 것이 눈에 보일 때는 파악은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진보주의 신앙노선의 최 핵심부가 하필이면 우리 공회 신앙노선과는 대단히 많은 면으로 비교가 되고 또 역사적으로도 살펴봐야 할 요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 주제에서 살피기로 하고, 우선 이번 글에서 살필 일은 이번 정권은 해방 후 가장 진보적이고 자유적인 특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권 내부에는 뚜렷하게 우리 신앙노선과 아주 정반대로 나가는 기독교 사회주의가 곳곳에 중요하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 이 사회에서 아무도 귀를 귀울이지 않는 독백이나 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 환경을 대단히 심각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위치로 급부상하며 우리 현실의 변화를 알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여러 현실보다 더욱 더 심각한 면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정책으로 그렇게 못한다면 그들의 성공사례는 그것만으로도 기독교 전체를 사회사업용으로 인식시키는 일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알고 보면 많은 면이 보일 것이고, 모르면 그냥 세상 정치가들 중에 자유로운 사람에 의하여 변화되는 정도에 그칠 것입니다. 알고 보면 기독교 내부에 대한 흐름보다 세상 변화에 대한 흐름에서 더욱 많은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부가 우리에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둘러싸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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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종웅
    200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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