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천국은 믿음으로, 천국의 상급은 노력으로'라는 총신대 발표문 하나를 대하며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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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자료실] '천국은 믿음으로, 천국의 상급은 노력으로'라는 총신대 발표문 하나를 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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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실/자료실/에 올린 다음 내용에 대한 글입니다. 바로갈 수 있도록 링크를 걸 수 있지만 직접 찾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그냥 목록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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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번,'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 총신대 정훈택교수 " 0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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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건설구원론이 한국교계에는 상식화가 되었다는 소식 한 가지


1.건설구원이 이제는 한국교회의 상식이랍니다.

'한국교계가 천국은 믿음으로, 천국의 상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총신대 신약학 중견교수 한 분이 건설구원에 대한 한국교회의 일반적 인식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천국의 '상'이라는 표현보다 일한 대가로 받는 '보상'이 더 낫지 않느냐고 발표하면서, 이미 건설구원론은 한국교계의 일반론이 되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 역시 건설구원에 대한 상식을 충분히 인지하고 수긍한다는 발언입니다. 다만 건설구원의 성격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규명하자는 제의입니다. 그 발표 내용은 건설구원을 '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고 노력한 대가로 주는 '보상'으로 보자는 것인데, 성경은 '상'이라는 면과 '보상'이라는 면을 동시에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연구와 발표가 반복되면 자연히 건설구원론 본류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2.반가운 발표 내용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있습니다.

①합동측 교단의 한국교회사적 행적

총신의 합동측 교단은 좌우로 갈라서는 길목에서 늘 교권에 관심을 가졌고 진리와 함께 고난 받는 데는 한 발을 뺐던 경력이 있습니다. 그래도 통합측과 다른 점은 합동측은 양심이 있고 또 정통보수 신학에 철저하기 때문에 그 어려운 고비에서는 몸을 사리지만 세월이 지나가고 위험이 없어지고 나면, 원래 자리로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수신앙의 기준으로 본다면, 통합은 오리새끼고 합동은 닭새끼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신학적으로 건설구원론을 이단이라 비판한 곳이 합동측

건설구원 교리만 두고 말씀을 드리자면, 합동측 교단은 1960년대에 백목사님의 건설구원을 이단으로 비판할 때 원고측에 섰고 고신측은 참고인으로 증언을 했으며 그들의 뒤에는 한국의 칼빈주의신학자 중 최고의 성경학자라고 인정받는 박윤선목사님이 신학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매듭짓기 위해 나선 단체는 합동측의 주력 노회인 경북노회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판의 절정은, 총신대 김 前총장님이 발간했던 '이단의 정체'라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발간 즉시 이 내용에 관련된 거짓이 있어 사과문을 발표하고 전국서점에서 일거에 회수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만, 교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합동측을 비롯한 한국교계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었습니다. 즉, 백영희의 건설구원교리는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보수 정통의 칼빈주의 신학에서는 단호하게 정죄할 수 있다는 점을 신학자들이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일련의 정죄와 비판은 세계 보수 정통 신학을 국내로 수입한 학자들에 의하여 주도되었기 때문에 한편으로 건설구원론은 세계신학의 정죄이기도 했습니다.

③입장 변화는 반갑지만, 과거 정죄는 따로 연구할 문제

이제, 2000년대로 들어선 지금 과거는 어찌 되었던 천국은 믿음으로 가고 천국의 상은 노력으로 얻게 된다는 백목사님의 건설구원론이 '이미 교계에서는 상식이 되었다'는 점을 신학계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총신과 합동측 교단은 자신들이 과거에 발표했던 정죄를 철회하고 회개하며 이제는 돌이켜 이 교리의 주장자가 되었다는 뜻인데, 이렇게 돌이킨다면 우리는 형제를 얻은 것이므로 반가울 뿐입니다.

가장 앞장서서 이 교리를 반대하던 신학이 이 교리의 전면에서 이 교리를 증거하는 입장에 선 것은 반가운 발표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 것은, 과거에는 왜 그렇게 반대를 했던가 라는 점입니다. 회개하는 형제를 반갑게 맞는 일과 그 형제의 과거사를 기억하는 것과는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앞으로 또 그런 반복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훗날의 복음운동에 참고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의 세상 부끄러운 일은 전부 잊어버리는 줄로 알면 큰 오산입니다. 죄가 기억됨이 없도록 한다는 것은 죄 지은 사실 자체가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고 징계적 자료로 활용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3.어쨌든 이제 이곳의 표현도 변화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건설구원론을 두고 설명을 할 때, 이곳은 늘 교계는 이 교리를 모르고 있고 또 이단이라고 반대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역사적으로는 백목사님이 체계화 한 교리지만 현재는 한국교계에서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그 교리를 따르고 있다고 말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이곳 문답방에서 어느 분이 '합동측이나 일반 교계에서 건설구원론을 반대한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내용으로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마 일반 교계를 잘 아는 분이고 또 아는 목회자들에게 건설구원론을 질문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분이 알아본 바로는 총공회 외부 교단들도 모두들 건설구원교리를 알고 가르치고 있으며 반대하지 않는다고 파악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곳은 항상 교계가 반대하는 건설구원이라고 표현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백목사님의 건설구원론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완전히 한국교회 구원론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고 앞으로는 글을 적겠습니다. 이것이 이곳의 입장 변화입니다.


4.참고로, 이 교리로 들어서게 되면 여러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천국의 상급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쉬운 표현이고 너무도 성경적입니다. 마치 계란을 책상 위에 세우는 기술과 같아서 먼저 생각하지를 못해서 그렇지 듣고 나면 세살 먹은 아이들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건설구원의 가장 간단한 표현 한 마디를 입에 담고 나면, 앞으로는 수도 없이 헤쳐나가야 할 과제들이 신학자들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건설구원의 정통 교리 입장은 벌콥이나 박형룡 또는 칼빈 교리서들을 보면 그야말로 정통 교리가 얼마나 이 부분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는지 탄복이 될 정도입니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백목사님의 건설구원론을 대폭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건설구원론에 대한 내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첫 걸음에 해당되는 수준입니다.

아무리 초보적이며 근본 원리 차원에서 인정을 했다 하더라도, 일단 하늘에 간 성도들에게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는 성도들의 노력에 따라 다르다는 이 건설구원론의 입문에 들어서게 되면, 이제 사람의 구조가 이분이냐 삼분이냐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따라 가게 됩니다. 또 중생 후 영의 범죄 문제가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히말라야 산맥처럼 눈앞을 막아설 것입니다. 또 심심의 기능구원 면이 거론 될 것이고, 그리고 나면 바로 살지 못한 요소들의 처리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지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5.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진리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진리를 연구할 때는, 가장 조심할 것 중에 하나가 자기 자존심입니다. 내가 남을 가르쳐야 하고, 또 내가 남에게 배웠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없는 사람이 사실 없습니다. 특히 현재 직책이 높을수록 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수록 이 점을 극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점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백목사님의 장점은 주일학생이 말을 해도 옳으면 그 자리에서 스승으로 모시고 듣고 배우는 그 자세에 있습니다. 바로 이 자세가 초등학교 5학년으로 하여금 역사에 남을 이런 교리체계를 개척하게 했다는 것이 이곳의 시각입니다.

계란을 세우는 법은 초등학생이라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발견했다고 대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뒤에 배웠다고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백목사님의 교리체계는 초등학교 5학년 수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배우려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지 그의 학문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 초보자가 깨달아 체계화를 했기 때문에 이를 뒤에 듣고 배운 이들은 그들의 수준이 낮아서 늦게 아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을 하지 못했을 뿐이고 반대로 이것을 먼저 깨달은 백목사님은 우연히 발견을 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제라도 건설구원 교리로 들어서려면, 앞서 나간 이 교리 체계를 아무 선입관 없이 단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들어보면, 불과 며칠이면 전부를 다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학자들이 즐겨 하는 습관대로, 남이 말한 것들, 특히 자기만 못한 사람들이 앞서 깨달은 것을 뒤에 알게 되면 일부러 단어를 바꾸고 표현을 뱅뱅 돌려서 자기가 스스로 개척한 것처럼 만들어서 내놓고 싶은 그런 자세가 나온다면, 문제가 대단히 복잡해집니다. 이 교리체계는 이미 누구든지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차원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리체계를 일부러 우회해서 자기 이름으로 개척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해 다른 길을 택하게 되면 이 교리의 가장 중요한 지점 지점에서 하루만에 지나갈 문제를 가지고 몇 년 또는 평생을 체바퀴만 돌리고 있어야 하는 일들이 대량 발생할 것입니다.


6.이런 점을 우려해서 백목사님은, 그 마지막 노년에 이 교리를 쟁점화 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1960년대 이 교리를 처음 체계화 할 때는 불같이 이 교리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이미 교계의 대세가 이 교리체계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고 백목사님은 얼른 그 표현법을 바꾸게 됩니다. 이 교리 발표자가 너무 부각이 되면 유명한 학자들 교수들 박사들 교계 지도자들이 나중에 따라 오고 싶어도 백목사 뒤를 따른다는 소리를 들을까 해서 마음은 있어도 이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는 나서지 못할까 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이런 백목사님의 지혜와 분별력은 그대로 적중하여, 지금 한국교회는 천국은 믿음으로 그리고 천국의 상급은 자기 노력으로 얻는다는 것이 어느 분의 말씀처럼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백목사님이 아니라 백목사님 후시대를 살며 이 노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교훈을 앞서 낸 분은 겸손하고 또 이 교리를 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향해 품는 사랑을 베풀었지만, 이곳은 그 교리를 배워서 알게 된 사람이므로 이곳이 이 노선에 관련된 내용을 말할 때는 말끝마다 그 원 저작자, 그 원 작곡자, 그 원 저술가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르친 사람은 가르치고 나서 자기를 숨기는 것이 여러모로 지혜있고 복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배운 사람은 가르친 사람을 힘껏 드러내고 높이고 감사하고 그 내용에 제작회사 로고를 붙여 원산지 표시를 하는 것이 양심이라는 뜻입니다.

벤츠같은 고급차량들이나 고급회사제품들은 그 부속품 하나에까지 자기 회사 마크를 붙여 그 품질과 그 출처를 자신있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개발하고 생산했던 모든 교리와 신앙노선을 현재 이곳은 배워서 써먹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모든 사람에 제일 앞장서서 이 노선은 백목사님의 몇 년도 작품이고 이 교리는 그분이 무엇을 근거로 제시한 것이라는 식으로 말 마디 자꾸 거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7.이런 행동을 두고, 눈쌀을 찌푸리면 미개인이고, 너무 당연하다 하면 문화인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하나 발명되면 선진국에서는 그 수고하고 애쓴 사람의 이름을 붙여 길이 기념을 해줍니다. 그 기술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달리 감사할 수 없고 그 이름으로 우선 감사를 표시한 다음, 그다음에는 사용료를 정당하게 지불을 하고 자기들에게 필요품으로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미개한 곳에서는 남이 평생 수고한 기술을 몰래 빼먹고도 모자라서 자기 이름으로 발표를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교수들의 학위 논문이나 연구 논문을 실제로 파악해보면 이런 일은 습관처럼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제자 논문까지 제 것으로 삼는 사람까지.


백목사님은 하늘의 사람이므로 자기 이름을 스스로 빼고 어떤 교계적 활동도 다 피하고 자기 목회지의 양떼들을 상대로 가르치다가 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 교리가 만일 이단설이라면 한국교회는 그 교리에 백목사님 이름을 붙여 마치 펠라기우스처럼 또 아리우스처럼 또 알미니우스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 교리가 교회가 가질 바른 것이라면 '칼비니스트(Calvinst)' '루터란(Lutheran)' '어거스티니언(Augustinian)' 처럼 백목사님의 교리와 그 그 교리를 따르는 그룹들을 '패이키스트(Paikist)' 또는 '패이키언(Paikia)' 또는 이곳처럼 '피키스트(Pkist)라는 애칭 또는 약칭으로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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