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이유 - 알라스카의 사슴과 늑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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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8 00:00
1.마10:16,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본문입니다.
이리는 맹수 중에서도 양을 가장 즐겨 먹는 원수입니다. 성도를 유독 그냥 두지 못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에 섞여 그들과 어울리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면 갑자기 모든 환경은 돌변합니다.
양과 이리는 지을 때부터 양과 이리입니다. 양이 이리 되고 이리가 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이 가르치는 양과 이리는, 태어날 때부터 양이 따로 없고 태어날 때부터 이리가 따로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양이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면 이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리였다가 양이 되어, 이리떼 이빨 속에 그 평생을 살았던 분입니다. 사울은 양이었다가 이리로 돌변한 다음, 다윗같은 귀한 양을 삼키기 위해 남은 평생 진력했던 예가 됩니다.
2.왜 양을 이리 가운데 두셨는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①이 본문과 관련하여 우리가 늘 입에 달고 있는 해석들이 있습니다.
"양을 사랑해서 이리 속으로 보낸 것이다."
"마치 여러가지 시험을 통과시켜 온전한 인격을 만드려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 어려움 속에 던져 놓았다 해서 이리에게 먹어라고 던진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목자의 보호가 있다."
②그렇지만, 막상 당한 사람에게는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고민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들은 전부 진리입니다. 성경입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문제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그렇게 깨닫고 느끼느냐는 것입니다. 공연히 교회의 말장난 같다고 느끼기도 하고 또 말은 맞는 것 같지만 과연 실제 그렇겠느냐고 속으로 의심이 생긴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설교를 들을 때 복있는 사람은 귀가 확 열리면서 이전에 보지 못한 세계를 깨달아 기쁨과 감사로 충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과 말씀으로 깨닫는 사람이 가장 복있는 교인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이렇게 복된 귀를 가지지 못하여, 마치 제자들처럼 눈으로 봐야 비로소 느끼고 알게 됩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낙오되는 것보다는 보고라도 믿는 것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보지 않고 믿기를 노력해야 하겠고, 그런 신앙이 되지 않으면 보고라도 믿기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보고라도 믿겠다고 떼를 쓰면 한 두번은 귀엽게 봐 주시고 그렇게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습관이 되면 광야 40년 이스라엘의 길을 밟게 됩니다.
3.양이 이리 가운데 있어야 하는 예를 오늘 아침에 눈으로 보았습니다.
혹, 양이 왜 이리 가운데 있어야 하는지를 성경만 보고 믿는다면 가장 좋겠는데, 만일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여기 보고라도 믿을 수 있는 자료가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팔레스타인에 양과 이리가 있다면, 미국에는 사슴과 늑대가 있습니다. 양과 사슴이 그렇게 닮은 먹이감이고, 이리와 늑대가 그렇게 비슷한 맹수들입니다. 다음 자료를 '보고'라도 믿으신다면, 이 자료를 일컬어 우리는 '자연계시'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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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전 사슴과 늑대가 알래스카의 자연보호지역에서 함께 살았다.
그런데 당국은 사슴의 안전을 위해 늑대를 모조리 없애버렸다.
그후 절대적인 안전을 구가하던 사슴은 그 수가 10년 동안에 4,000 마리에서
무려 4만2000마리로 늘었다. 그러나 사슴의 편안하고 게으른 삶은 예기치 못
한 결과를 낳았다. 운동량의 감소는 체질의 약화를 가져와 생명을 재촉했다.
결국 4,000마리도 남지 않았다.
이 위기를 타개하려고 다시 늑대를 투입시켰다. 사슴은 늑대에게 희생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고, 사슴은 다시 건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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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타락이라는 것은 일반 교리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저진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일부러 타락을 시켰다고 단정하는 교리가 아직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되게 인간을 만들었으나 인간이 실수로 타락을 했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멀리 관람석에서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귀하게 만드시려고, 일부러 타락을 시켰습니다.
크게 말하면, 우리 택자들이 재세 기간 동안 마주치고 겪는 모든 어려움 모든 고통 모든 수고는 바로 이 자연계시를 통해 보여주는 그 원칙 때문입니다. 자녀를 기어코라도 바로 기르고 잘 기르기 위해 부모가 순간도 그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열정에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슴과 이리의 현상, 부모의 자녀 교육을 향한 열정, 이런 모습은 우연히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시려고 자연과 사회를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우리에게 참고하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