АМ°ч ИЁАЗ ҪЕҫУілјұ ГКұвҝЎ °ЎАе Е©°Ф БцҝшЗЯҙш әРА» »э°ўЗПёз

남단에서 2      


e1e0ddd457e37c9a55be686de71c57a2_1734778424_6055.png

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АМ°ч ИЁАЗ ҪЕҫУілјұ ГКұвҝЎ °ЎАе Е©°Ф БцҝшЗЯҙш әРА» »э°ўЗПёз

" 0 0


'나인숙'권사님은 이곳 홈 운영의 배경에 너무도 많은 수고와 기도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분입니다. 이곳 홈 운영을 위해 기초 준비가 시작되던 1977년부터 이곳이 백영희신앙노선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람이 할 수 있는 지원은 아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거처하던 생활공간은 이곳을 향해 사무실 공간처럼 늘 제공되었으며, 1987년 경 백목사님을 모시며 평생 가지게 된 모든 자료를 이곳에 전부 주셨습니다. 그분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백목사님의 개인 기록을 맡았던 분입니다. 따라서 녹음 시절 이전 초기 백목사님 관련 중요한 자료들을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었으며 이 자료들 상당 부분은 복사본이 없는 자료들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대구공회와 부산공회가 분리될 때 나권사님과 이말출권사님 그리고 김현찬권사님이 이곳 입장을 전폭 지지하여 서부교회가 대구공회를 반대하고 부산공회에 서도록 했습니다. 이 3분의 결정이면 당시 서부교회 최고 핵심이며 서부교회의 만사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3분이 이곳의 의견을 전폭 지지하게 된 것은 나권사님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1991년 서부교회가 장차 부산공회(2)로 신앙노선을 결정할 기회를 만났을 때, 나권사님은 부산공회(2) 노선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이 일이 나권사님과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견을 달리한 사안입니다. 이후 이곳은 인간적으로는 나권사님을 육의 부모보다 더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신앙노선을 두고는 어떤 분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에 나권사님과 그동안의 모든 관계를 단 순간에 절연했고 이번 임종까지 그 관계는 계속되었습니다.

신앙노선이 나뉘지 않았다면 이번 장례는 이곳에서 일절 주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노선을 달리 한 이상, 이번 장례에는 그동안 백목사님을 제일 가까이에서 평생 모셨던 분이라는 의미 때문에 일반 예배 참석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하게 될 것 같습니다.
(1) 게시판 검색
(2) 통합 검색 설정에서 통합검색 게시판을 지정하세요.
번호제목이름날짜
  • 147
    최홍석
    2004-08-01
  • 146
    yilee
    2004-10-01
  • 145
    yilee
    2004-05-28
  • 144
    평신도
    2004-05-28
  • 143
    "
    2004-05-19
  • 142
    2004-05-22
  • 141
    yilee
    2004-05-22
  • 140
    ұЧіЙ
    2004-05-20
  • 열람중
    "
    2004-05-13
  • 138
    "
    2004-04-09
  • 137
    2004-04-05
  • 136
    "
    2004-07-11
  • 135
    yilee
    2004-04-08
  • 134
    "
    2004-03-20
  • 133
    "
    2004-03-17
  • 132
    "
    2004-04-30
  • 131
    성경1
    2012-05-21
  • 130
    "
    2004-04-30
  • 129
    "
    2004-03-12
  • 128
    "
    2004-02-11
State
  • 현재 접속자 191 명
  • 오늘 방문자 490 명
  • 어제 방문자 7,234 명
  • 최대 방문자 7,646 명
  • 전체 방문자 3,298,452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