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공회(3)의 현황
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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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7 00:00
/초기화면/총공회/문답/318번, 04.10.15. '부산공회(3)의 개척교회' 관련 문답에서 오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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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질문
부공(3)은 교회 개척이 없는지요? 04.10.15.
부산공회(3) 교인입니다.
총공회 타 교단도 순수한 개척교회은 거의 없고 분열을 통한
개척이 대부분이고 부공(3)도 몇년전에 한 개척도 분열을 통한
개척입니다.
순수한 개척교회는 거의 없고 최근 수년동안에는 6개 교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척교회의 필요성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개척할만한 교인이나 여건이
되지 않아 개척을 하지 않은것인지 너무 오래동안 개척교회가 없어서
궁금해서 문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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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분란은 적은 편이나,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정도 04.10.15. yilee
1.교회의 정상적인 개척은, 사람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1세 아이나 20세 청년이나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20세 청년은 언제라도 결혼을 하게 되면 바로 생산하게 됩니다.
현재 30대 중반인데도 혼자 살고 있는 청년도 있으나
어떤 30대 중반은 21세에 결혼해서 지금 벌써 아이를 7명이나 낳은 분도 있습니다.
딱 잘라서 나이를 말할 수는 없으나 10대 초반이 아이를 낳으면 문제가 많습니다.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으나 30대를 넘겨서도 아이가 없으면 장애자일 것입니다.
사람의 출산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보통 진행되는 흐름이 있습니다.
교회의 개척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아주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큰 능력을 받지 못한다 해도 교회가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면 성장과 개척은 이어집니다.
열매로 나무 종류를 알듯, 교회의 외적성장과 개척실적은 교회의 내적 실력을 짐작케 합니다.
대충 이런 정도의 상식을 가지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교회가 원치 않지만, 개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질문자께서는 백목사님 사후 공회의 노선노선 갈등 때문에 개척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십니다.
겉으로는 '신앙노선문제'라고 했으나, 속으로는 자기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분들도 계셨을 것이고
분열은 원치 않았지만 '신앙노선' 때문에 개척을 나가고 또 내보낸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생각이 깊지 못하고 분위기에 열을 받다가 나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곳은 아무리 따지고 참고 노력해도 신앙노선 때문에 할 수 없이 나뉜다면 찬성입니다.
신앙노선 외의 문제로 나뉜다면 이곳은 극구 반대합니다. 어디가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교회가 정상적으로 자라가게 되어 자연스럽게 개척을 하는 경우가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부족하기 때문에 분열의 개척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분열의 개척은 적을수록 좋고 죄가 되는 일이고, 성장의 분가는 많을수록 좋은데
하나님께서는 분열의 개척까지도 유익되게 활용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분열의 개척을 주도한 당사자에게는 자자손손 큰 문제가 따릅니다.
3.부산공회(3)의 경우는, 숫자가 적어서 어디 뒤져볼 대상도 아니겠지만
신풍교회는 기성교회였고, 신앙노선 때문에 개척해 나간 분들이 계셨습니다.
서진교회는 개척교회였고, 서부교회와 신앙노선이 달라 개척으로 나왔습니다.
모덕교회는 개척교회인데, 성남교회를 거쳐 목회자로 출발한 경우입니다.
조례교회는 개척교회인데, 신풍교회를 거쳐 목회자로 출발한 경우입니다.
동천교회는 개척교회인데, 성남교회의 노선변경에 따라 개척나온 경우입니다.
강동교회는 개척교회인데, 서울에서 이 노선을 원하는 교인들을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6교회가 모인 것은 모여야 할 만큼 숫자가 있어서도 아니고 또 앞날에 교단으로서 성장해 나갈 가능성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부산공회(3)에 모여 있는 6교회는 백목사님의 생사에 상관없이 이 노선이 옳기 때문에 이 노선으로 가겠다는 원칙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이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을 전체 공회에서 제거를 하니까 부산공회라는 이름으로 모였던 것이고, 부산공회 내에서 또 다시 그런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아내니까 현재 부산공회(3)이라는 구석에 6교회가 웅성거리고 모여있는 것입니다.
현재 이곳 홈에서 총공회라는 이름 밑에
'대구공회'
'부산공회(1)'
'부산공회(2)'
'부산공회(3) '
'서울공회'
이렇게 공회별로 이름을 적다보니까 부산공회(3)도 총공회를 구성하는 다른 공회들과 나란히 어깨를 견주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만, 사실은 다른 공회들은 총공회를 구성하는 공회다운 공회들이고, 반면에 부산공회(3)은 그들 중에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를 않고 이전 총공회 노선을 지키려다가 노숙자 신세가 된 교회들인데 그들의 이름을 어떻게 표시할 수가 없어 '부산공회(3)'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대구공회라는 수정노선에 비교한다면 이전 노선을 지키려 했던 '부산공회'임이 틀림없고, 부산공회 내에서는 소송이나 교권 싸움 등으로 부산공회의 주도권을 다투는 부산공회(1)과 부산공회(2)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편리상 그냥 '부산공회(3)'이라고 했습니다.
4.물론 내심으로는 배짱이 있고 이 걸음을 걷게 하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다른 공회들과 달라서 공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과분하지만, 내심으로는 이 6개 교회의 걸어가는 길이 백목사님 생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그 길이라는 것을 자신합니다. 역사가 그렇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 6교회가 좀 나은 점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고 이 6교회는 현재 보다시피 공회 전체적으로 가장 미약하고 못났지만 이 6교회보다 나은 모든 교회들이 총공회 신앙노선을 차례대로 버리고 다른 길로 가버리고 나니까 마치 부모 떠난 집에 아이들이 집을 지키고 있듯이, 마치 온 마을이 다 서울로 이사를 가고 못난 농부 몇명만 시골을 지키듯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일찍 고향을 뜨서 서울로 올라간 사람들은 서울에서 서울사람이 되었고 오늘 한국의 중심부에 자랑스런 우수국민이 되었으며, 반대로 못나서 시골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그 신세 그 모양이므로 세상으로 말하면 사람이 나면 서울을 보내라는 말처럼 서울로 가는 것이 출세요 지혜입니다. 그러나 신앙문제는 세상과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외부에 어떻게 보일지라도 이 6교회는 그 자리를 지켰고, 다른 형제 200여 교회들은 앞서고 뒷서며 서울로 갔기 때문에 지금은 경제나 모든 수준에서 아주 몰라 볼 만큼 나아졌지만, 신앙의 본질로 말하면 이곳은 비록 못나도 바른 길에 서 있고, 다른 곳은 이곳보다 훨씬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속화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이렇게 장시간 설명을 먼저 드리는 이유는, 답변에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산공회(3)은 개척해서 교회들을 세워나갈 힘도 능력도 실력도 없습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현재 10년 이상 세월을 지켜보며 지난날의 결과를 보면 사실이 그러합니다. 다른 공회들처럼 일반 교계를 따라 타락하고 탈선하지 않겠다는 것만 관심이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정도가 부산공회(3)의 현 수준입니다.
그렇게 나가다가 한 교회만 남으면 한 교회로만 나갈 것이고 그 남은 한 교회도 만일 대부분 교인들이 다른 공회들을 따라 가겠다고 하면, 그때는 답변자 혼자서 지팡이를 짚고라도 끝까지 이 노선 이 신앙의 원래 길을 떠나지 않고 지킬 것입니다. 백목사님 장례 후에 그런 각오로 출발했는데 지금 6개 교회나 되었기 때문에 사실 너무 과분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더 주신다면 더 좋겠고, 개척도 더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게 주실 정도의 실력과 신앙이 되겠느냐는 것이 솔직한 자기 평가일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결혼할 나이가 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데도 눈이 높아서 결혼을 미루거나 귀찮다고 아이를 덜 낳는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산공회(3)이 더 개척을 해도 되는데 힘들다고 하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1998년 5월의 동천교회 개척 때 기존 4개 교회의 속 고생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동천교회는 하나에서 열까지 그 교회 앞선 집사님들이 완전히 수고를 다하시고 목회자 하나만 달랑 가면 되는데도 기존 4개 교회가 너무 못나고 부족했기 때문에 동천교회 목회자 하나를 결정하는 문제로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다. 목회자 하나를 추가해서 세월 여력도 여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서진교회 목회자가 동천교회로 가기로 했는데 그대신 서진교회는 향후 5년 이상 거의 교회를 비워두다 시피 해야 하는 정도였습니다. 부산공회(3)에는 그렇게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산공회(3)의 수준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개척을 생각하지도 못하는데 동천교회 설립 교인들이 먼저 앞장을 서고 목회자만 한 분을 요청했기 때문에 기존 4개 교회 중에 한 교회가 문을 닫을 생각을 하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서진교회는 거의 그렇게 될 뻔 했습니다.
1998년 11월경, 강동교회를 다시 개척할 때도 우리는 경제도 사람도 없기 때문에 공회로서는 먼저 생각하지 않았으나, 서울지역에 있는 교인들 중에서 부산공회(3)의 신앙노선에 서겠다는 분들이 계셨고 그때는 마침 목회를 하실 수 있는 분이 동천교회에 계셨기 때문에 개척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강동교회도 스스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지만, 그래도 부산공회(3)은 연약하기 때문에 다른 5개 교회들은 전부 뒤로 휘청할 정도였습니다. 마치 자녀는 못난 부모 밑에 등록금 한번도 보조받지 못하고 스스로 벌어서 공부를 했는데 그 부모는 그 부모대로 자립해서 공부하는 그 자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 가지고도 힘에 겨워 고생을 했다고 표현하면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척을 하도록 인도를 하신다면 거부하지 않고 힘껏 순종하겠지만, 부산공회(3)의 신앙 수준이나 교회들의 실력이나 전체 목회자와 교인들이 개척 하나를 추가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앞으로 실력을 길러 그렇게 되기를 소원은 하지만 현재 자체 판단으로는 더 이상 내려앉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않느냐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힘이 없고 못난 자신들을 볼 때마다, 총공회 내에 그렇게 실력있고 탁월한 목회자들이 그립고 그분들이 아쉽습니다. 노선만 이 노선에 선다면 답변자와 부산공회(3) 목회자들은 그 밑에서 심부름이나 해야 할 그런 실력있는 분들이 노선문제로 길을 잘못 들어섰으니, 죽는 것이 쉽지 길이 잘못된 줄 알면서 따라 갈 수는 없습니다. 이것 하나만, 부산공회(3)의 전부입니다.
6.부산공회(3)에게도 다른 공회들과 같은 유혹은 있습니다.
목회자로서는 자기 교회에 교인들이 많아지고 경제가 넉넉해지기를 본능적으로 다 바랍니다. 비록 몇 개만 모였을지라도 교회들이 모이면 더 많은 목회자와 교회들이 모여져서 큰 교단이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노력합니다. 현재 부산공회(3) 목회자들이 근접도 할 수 없을 만큼 실력있는 다른 공회 유력한 목회자들이 다른 노선을 걷게 된 것은 교인들의 숫자와 교회의 경제 문제 그리고 함께 가는 교회와 교역자들의 숫자 때문에 원치 않지만 그렇게 된 것입니다.
현재 부산공회(3)이 걸어가는 길에도 이런 유혹이 따르고 있습니다. 조금만 넓히고 조금만 바꾸면 교인들도 많아지고 함께 가자는 목회자나 교회들의 숫자도 많아질 수 있는 제의나 그런 조짐이 뚜렷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좋아서 걸어왔던 이 신앙 이 노선에 전혀 손해가 없이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만일 이 신앙노선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있다면, 또 뒷감당이 어렵겠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좋은 제의나 기회가 와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습니다.
공회 내부적으로도 지금까지 좋은 제의가 많았으나 늘 신앙노선에서 꼭 지켜야 할 선을 양보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단호하게 거부했고, 이곳에서 홈을 운영하면서부터는 공회 외부로부터 너무 반갑게 받아들여야 할 좋은 인재들과 교회들이 있으나, 신중하고 있습니다. 현 부산공회(3)의 실력과 수준으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개척이 있다면 항상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만일 다른 공회나 외부 교단에서 우리의 이 원칙에 전적 따르는 제의가 있다면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총공회 원래의 신앙노선에 엄격하기 때문에 교회나 목회자의 가입을 늘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현 목회자들의 실력이 부족하여 길러서 내놓을 정도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7.지금 부산공회(3)의 인력과 경제력은 집회장소와 이곳 홈 운영에 쏟고 있습니다.
부산공회(3)은 1998년에는 2개 교회 개척에 주력을 했고, 그다음 6개교회가 집회를 하면서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다 보니까 2000년부터는 집회 장소를 고정할 필요를 느껴 지금까지 이 면으로 주력해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홈을 통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중요하여 목회를 나와도 될 만한 분들과 개척할 나머지 경제 여력은 이곳 홈 운영에 전부 다 쏟아왔습니다.
앞으로 이 노선에서 목회를 할 수 있는 분들이 계시거나 또 개척을 해야 할 여건을 주신다면 과거처럼 있는 힘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생각으로는 분열에 의한 개척은 공회 교회들이 너무 작아서 거의 그리 될 가능성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자라가면서 정상적으로 자녀를 기르듯 개척교회를 자연스럽게 길러가는 일들은 부산공회(3)의 현 수준에서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