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기준이 이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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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8 00:00
오늘 이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용어사전/ 게시판에
'설교'의 정의를 소개하는 글이 올려졌습니다.
저는 이 홈을 중심으로 연구작업을 하고 있지만
저의 일차 업무는 설교를 맡은 목사입니다.
목사의 업무는 넓게 보면 교인을 살피는 일이지만
그 업무의 핵심은 설교입니다.
'설교란 무엇인가?'
매주 11번 강단에 서서 벌써 17년째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학생들을 상대로 설교한 햇수를 말한다면 31년째입니다.
저는 세상 말로 말하면 설교 전문가입니다.
설교로 먹고 사는 설교가입니다.
그런데, 오늘 '용어사전'에 올려진 설교의 정의는
설교란,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사람을 써서 말씀하심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로 이 문제가 출제되었다면
저는 이번 용어사전에서 설명한 내용대로 답을 골랐을 것입니다.
설교는 사람이 제 마음대로 제 생각을 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은 답안으로 고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설교는 주님이 말씀하시고, 사람은 그분에게 듣고 그분에게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답안을 정답으로 골랐을 것입니다.
오늘 '용어사전' 작업자가
1985년 1월 6일 주일 새벽 설교를 읽으면서 '설교'의 정의에 해당되는
내용을 뽑아서 '설교'란 이런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작업자가 적은 제목과 그 설명을 보는 순간
저는 너무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호통에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네 멋대로 네 입에서 나오는 네 소리를 해놓고 그것이 설교라고 하느냐!'
대책망이었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과연 지난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설교를 하면서
153장 찬송가 가사처럼
'순간 순간 주님으로 함께 호흡하고'
'일보 일보 주님으로 동행케 합소서'
그 심정으로 그 자세로 설교 중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그렇게 발성을 했느냐!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게 합니다.
'외치는 자 많건만 생명수는 말랐어라' 탄식한 그 성도의 탄식이
목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강의를 듣지 못해서 나온 소리가 아닐 것인데.
'외치는 자 많건만' 이라고 말한 것은 주로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적은 것 같습니다.
과연 주님이 이 시간 무엇을 말하라고 하시는가!
역사상 가장 많은 설교를 하고 갔을 백목사님은
그 설교 중 한 마디도 주님 없이 자신 혼자 발언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분은 진정한 이 시대 설교자였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저는 설교자가 아니었습니다.
교인들이 어떤 내용을 들으려고 하는가?
어떻게 해야 교인들을 듣게 만들까?
이 목적을 위해 목회자들의 연구와 노력과 수단과 방법은 마구 쏟아지고 있지만
주님이 말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라는 소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혹 그런 말 비슷한 소리가 있어 얼른 뒤져보면 역시 그 소리를 하나의 멋으로 써먹는 사람들의 멋있는 표현일 뿐이지 그런 세계에는 근방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오늘 수많은 설교 관련 출판물에서 찾고 있는 주제입니다.
교인들이 잘 듣게 하려면 어떤 예화를 사용해야 하는가?
교인들이 재미있게 듣게 하려면 내용 구성이 어찌 되어야 하는가?
이런 노력과 이런 자세를 가진 이들은 아예 설교라는 단어를 들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설교라는 단어는 들어봤습니다. 또 배우기도 했습니다.
남들에게 설명도 할 정도로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설교를 했느냐?
설교를 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그동안 받은 월급을 다 돌려드려야 담임하는 교회에 대하여 도리가 될 듯 합니다.
그러나 받은 대로 다 써버렸기 때문에 돌려 드릴 돈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교회에 짐덩이요 빚쟁이요 교회 덕에 먹고 사는
요즘 말로 캥거루족 목사입니다.
제 할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교회라는 좋은 직장에 따뜻하게 안주하여
주는 혜택만 받아 누리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해야 목사인데
설교가 목회의 가장 중심인데
설교를 하지도 않고 매월 월급을 받는 것은 한번도 빠져본 기억이 없습니다.
설교의 정의를 제 나름대로 다시 보충해봅니다.
목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전부 '설교'가 되느냐?
만일 그렇다면 평양총회에서 신사참배를 하라고 했던 지도부 목사님들의 그 발언도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목사 자격증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전부 설교라고 정의하는 정의는 제외해야겠습니다.
목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교회 강단 위에서 예배시간에 발언한 것은 전부 '설교'냐?
그렇다면 기장측 목사님들이 예배 때마다 중들하고 사이좋게 동업하자는 소리도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소리를 종교 강론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고 해야겠습니다.
설교는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성경에 있는 것을 그대로 소개하면 되느냐?
아마 이 정도로 정의를 내린다면 교계 중에서도 아주 케케묵은 보수라고 핀잔을 들을 것 같습니다. 설교를 그렇게 정의를 내려놓고 세상 상식 뉴스 코메디 별별 잡소리를 섞지 않게 되면 이론적으로는 그것이 설교가 될지 몰라도 그렇게 해서 예배당에 손님이 오겠느냐고 회의적일 것입니다.
만일 설교를 주님이 말씀하시고, 사람은 주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 한다면?
설교의 정의는 그렇게 내려야 틀림없이 맞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오늘 21세기 이 땅 위에 설교자를 찾아내는 일이 크나큰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노아 때, 설교자는 노아 1명이었습니다. 그래도 7명의 교인들만은 그 시대 하나 밖에 없는 진정한 설교가를 찾아냈고 그 설교가를 따랐습니다.
오늘 교계는 기독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아무래도 설교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며
온 지구 땅 끝까지 훑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대 혹 마지막 설교가일지 모른다고 생각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는 가끔 설교를 하시고 계시는구나 라고 느끼는 경우는 있지만
어느 한 사람을 두고 이 분은 설교자입니다 라고 소개할 정도의 설교자는 만나보지를 못했습니다.
이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녹음본설교/게시판의 음성설교를 통해
매번 설교 전체를 통해 자신이 말하지 않고 주님이 시키는 대로 발언을 일관했던 귀한 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