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나는 몇 가지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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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기억 나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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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목사님의 생전 마지막 방문지

1989.8.27. 순교하시기 2주 전인 8.11.금요일에 백목사님은 생애 최후 방문지를 찾게 됩니다. 8월집회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차를 거창읍 뒷산에 있는 주남선목사님 묘소로 가게 했습니다. 동행하던 연구소 차량도 함께 갔습니다. 아주 작은 개울을 건너야 했고 설교록 인쇄책임자 28세 청년 이선생님이 목사님을 업었습니다.

이 청년은 2주 후 목사님이 쓰러진 강단에 제일 먼저 올라가서 아직도 숨이 계셨던 목사님을 업고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최후 목소리와 상황을 귀속말로 듣게 됩니다. 최후 두 번을 업고 모시는 그에게 몇 마디 귀속말로 한 것이 씨가 되어 그 청년은 장례식 후 3년이 지나면서 개척을 하여 오늘 목사로 충성하며 이 홈에서도 출간작업을 맡고 있습니다.

오늘 글은, 그 청년 이야기가 아니고 백목사님의 생존 마지막 찾은 방문지가 주목사님 묘소였다는 것이며 어제는 아버지 주목사님이 그리울 때마다 백목사님을 아버지처럼 찾았던 주경순권사님 장례 때문에 몇 가지 연상되는 것이 있어 적습니다.


2.고신의 초기 양대 흐름

고신의 내부에는 현재 돼지파와 부곡파라는 양대세력이 오랜세월 교권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순수한 교권투쟁 파벌이지만, 고신 내부의 출발 시점에 진정한 고신의 양대 세력이 있었으니 하나는 한상동 송상석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정치력 중심의 고신세력이 있었고 또 하나는 주남선 백영희목사님으로 대표되는 하나님 동행의 신앙 중심의 고신 세력이 있었습니다.

4년 전 주남선목사님의 자녀 계통에서 유일하게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를 준비하던 분이 석사학위(Th.M) 논문을 내는 과정에서 주목사님 관련 자료가 너무 빈약하다고 이 홈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고신의 초기 비사를 논문 기초자료로 제공했고 아마 그 논문에 이곳 제공 내용이 전폭 담겨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신이 참 고신이었던 것은 고신의 덩치나 교계 발언권에 있지 않고 고신의 신앙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주남선 백영희로 내려오고 있었으나 주목사님이 1951년에 돌아가시자 주목사님으로 대표되는 순수한 신앙 계열을 정치력 중심의 교권세력측이 제거하고 고신은 그후 지금까지 하나의 교권투쟁 단체로만 내려오는 안타까운 역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고신 내부에서 정말 고신을 진지하게 연구하되 고신 신앙혈로를 들추고 싶은 후학이 있다면 이런 시각에서 집중 조명할 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마지막 방문지라는 점, 그 슬하에서 가장 신앙으로 살다 간 자녀분이 백목사님을 아버지로 찾아 노년에 그렇게 고거를 못잊어 했던 점, 주목사님 가정에서 신학을 하는 분이 주목사님의 신앙생애를 깊이있게 살피려 하자 관련 증언과 내용은 백영희신앙노선에 산재되어 있다는 점 등이 시사하는 점은 적지 않습니다.

2001년 봄, 고신대에서는 주목사님 가신 50주년 기념학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고신 출신으로 국내 굴지의 타 신학교 중심 학자가 되어 있는 분들이 초빙 되어 주남선의 신앙생애를 조명하는 자리였습니다. 고신대 총장의 인사말에 이어 4명 정도의 신학자들이 차례로 주목사님에 대한 세미나 주제 발표를 이어갔는데 한결같이 주목사님이 오늘의 고신을 통해 한국의 진리 운동에 가장 앞장 선 분이라며 그 위치와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고신 설립자 2명 이름에 첫 이름이 주남선입니다.

그런데 학술주제발표가 다 끝나고 일반 참석인을 상대로 질문을 받게 되자, 주목사님께 직접 신앙지도를 받고 주목사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목사님 평생 목회한 거창읍교회 교인들이 대거 목소리를 높이며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연단 위의 진행자는 해명에 바빴습니다. 주목사님의 신앙은 하나도 다루어지지 않고 아무 소용없고 은혜없는 내용으로 겉돌고 있다는 항의였습니다. 주최측인 고신 내부 교수님이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당황스런 분위기는 일단 잡혔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이번에 이렇게 진행된 것은 학자의 학적 연구의 본질 때문이니 이해를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신 내부에서 권위있는 교수님의 요청 때문에 모두들 불만은 있었으나 다음을 기약하고 모임은 끝이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신 내부에는 고신을 고신되게 하는 고신의 참 신앙 내면이 이미 1960년대 접어들면서 완전히 소탕이 되어버렸으므로 그 흔적을 찾는 것은 현 고신 내부인으로서는 아마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종된 고신의 진정한 신앙 내면을 회수하여 원 모습을 복구하려면, 총공회 백영희신앙노선에 그 답이 있다! 이것이 이 홈이 고신을 향해 가지는 근본 시각입니다. 한번씩 고신 내부의 의미있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당당하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반론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시인을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현 고신은 고신의 껍데기만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으므로 그들의 알맹이를 논하면 현 고신인으로서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조차 어려울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백영희신앙노선'은 고신의 출발 정신이 그대로 잘 지켜졌더라면 고신이 가졌어야 할 고신의 발전된 모습입니다. 1959년 백목사님의 제명 사건은 이런 점에서 단순히 지도부가 괴롭게 생각하는 유망한 목회자 하나를 제거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3.적다 보니

지금 당장 해야 할 작업들이 많아서 다음으로 미루어야겠습니다.
백목사님 전기 작업과 교리전권 작업이 끝나고 나면 언젠가 이런 제목들을 가지고 차례로 살펴볼 기회가 있을지? 기독교가 타락하면 천주교가 되고, 합동측이 타락하면 통합측의 모습을 닮고, 고신은 합동을, 공회가 타락하면 다른 곳보다는 고신을 가장 많이 닮을 것 같습니다. 이미 깊숙히 닮은 곳들도 많을 것입니다. 현재 공회 내부인들의 고신 진학이 활발하고 또 실제 공회의 은혜와 말씀 중심의 경건이 고신 수준의 형식적이며 행사적이며 교권적인 흐름으로 나가는 것이 너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 해 아래 새 것이 없음을 보이려고 그렇게까지 애를 쓰는가!
과거 이 말씀을 주셨으니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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