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발언, 심판은 안중에도 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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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5 00:00
86년 8월
당시 교계 가장 큰 뉴스 매체 중 하나였던 '크리스챤라이프'가 백목사님을 표지에 소개하고 전면 취재 보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화를 많이 남겼는데, 그 중 한 토막은 왜 서부교회와 집회기간에 외부 강사를 세우지 않고 백목사님 혼자 설교를 하느냐는 선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교계를 두루 다니는 기자로서는 당연히 의문스럽게 질문할 내용이었습니다. 어울리기 좋아하고 통일 연합 운동을 좋아하여 당시 교계는 좀 유력하다 싶으면 교단을 넘어서는 행사가 굉장할 때였습니다. 당시 기자는 백목사님에 대하여 극찬 기사를 실었지만 양심상 교계 분위기와 다른 형태에 대하여 솔직하게 질문했던 것입니다.
백목사님은
이 노선이 타협없이 이 길을 걷자 외부에서 질시 뿐 아니라 이단이라고 비판한 경우가 많았고 그들에게 충격을 받은 이들이 서부교회 강단에 서서 책임 못질 말만 하고 가버리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의 책임을 가지라는 뜻으로 강단교류를 공평하게 하자고 제의를 하자 단 1명도 강단교류에 응한 적이 없어 오늘까지 혼자 강단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금 입을 열기 시작한 사람은
조금 글을 적기 시작한 사람은
말만 하면 말인 줄 알고 자꾸 말을 하고 글을 적어 댑니다.
그 말 한 마디에 대한 책임이 훗날 하나님 앞에 어떻게 되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말을 하기 전에 앞뒤 전후를 조금 살펴볼 것이나
뱉으면 되는 줄 알고
뱉으면 남들보다 말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자꾸 말을 하기는 하는데
그 말에 대한 책임성이 걱정입니다.
1989년 12월 8일 금요일 밤예배가 끝날 무렵
총공회를 수정하자는 대구공회 교역자 4명과 집사님 1명이
예고도 없이 제가 목회하던 교회로 들어와서 제가 거짓말을 많이 했다며
교인들 앞에서 거짓말을 밝히겠다며 3명은 발언을 하고 2명은 보고 있었습니다.
서원균목사님 김학찬 이종출조사님 그리고 강집사님 등 4명은 호남공회 주변에 계시는 분들이었고 대구에서 목회하던 조수환조사님은 당시 대구공회의 수정노선을 위해 전국을 지원하며 다니던 열심가였습니다.
당시 마이크를 잡고 느닷없이 시작한 발언은
제가 편집실에서 판매하는 백영희목사님 사진을 교인들에게 팔았다는 죄목
제가 백목사님 허락도 없이 편집실과 교회목회 2가지를 겸하고 있는 것
제가 서부교회와 공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분란의 배경이라는 것 등 10가지가 넘습니다.
지금 기억에
10가지 넘는 죄목 중에서 그분들이 가장 마음에 두고 온 문제는
왜 시골목회자가 부산의 목회연구소 설교록 출간을 겸직하느냐는 문제였습니다.
백목사님이 겸직을 시켰을 리가 없다는 논리로 교인들에게 연구소 일을 하러 다니지 못하게 잡아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교인 일반교인들이 예배를 본 직후에 들이닥친 외부인들이고
그들이 서부교회와 총공회를 파탄에 빠뜨린 죄를 교인들 앞에서 바로 따지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들어온 상태였기 때문에 만일 발언을 하지 못하게 하면 예배당 안에 몸싸움도 벌어질 뿐 아니라 그들이 큰소리로 외친 내용이 교회 내에서 늘 불씨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하여
불시방문에도 불구하고
담임목회자로서 불청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발언은 얼마든지 하되 반드시 상대방에게 해명과 반론의 기회를 주며 발언할 것
둘째, 이 예배당에서 발언한 사람은 자기 목회하는 예배당에 저에게 같은 기회를 줄 것
예배당 안에서 교인 전체가 보는 가운데 목회자들이 약속한 내용입니다.
그날 발언에 나선 분들은 3명이고 조수환조사님이 주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날 수없이 많은 말을 했습니다.
주제가 되었던 10가지 넘는 방문객들의 비판은 말마다 전부 막히게 되자
자기들 사이의 말다툼으로 방향이 바뀌고 자기들끼리 싸우다 횡하니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습니다.
말 그까짓 거야
아무나 입만 열면 되는 것이고
말한 다음 문제가 되면 이 나라에서는 불신자들도 아는 것처럼 6개월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니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꾸 말만 하면 됩니다.
말을 해서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개는 도둑인지 아닌지 몰라도 일단 짖고 보는데
사람은 모든 말에 대하여 뒤를 계산하기 때문에 함부로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이 면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 뒷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불신자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믿는 우리는 하나님과 그 심판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판을 받게 됩니다.
89.12.8.금요일
그날은 우리 공회의 대외 관계에서도
과거를 기억하며 동일 선상에서 주목하고 기억할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이병규목사님이 백목사님 가족들을 만나러 서부교회를 방문합니다.
가족들은 그분이 누구인 줄 알고 그분의 과거 이 노선과 관계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분이 백목사님 생전에도 한번씩 서부교회와 공회를 살피고 있었던 것을 알며
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와 이 노선의 내부를 어떻게 들여다 보며 어떤 발언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날 그 가족을 만나러 온 것은 아주 우스운 일이라고 가족들은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까지 온 손님이지만 면담을 거절했습니다. 서부교회 심방목회자인 강목사님이 잠깐 대신 만난 정도였습니다.
말이 문제입니다.
말은 그냥 있지 못하고 어쨌든지 돌아다닙니다.
재갈을 물려 통제가 되는 말은 귀하게 사용됩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움직이는 말은 그 화가 적지 않습니다.
평생 그 발언 한 마디 그 표현 하나까지 재갈 물려 통제하던 백목사님이 그립습니다.
말의 실수는 없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줄이려 노력하고 잘못 되었을 때 사과하고 고치려 하는지
아니면, 지나간 말은 흔적이 남지 않으므로 그냥 돌아만 다니게 하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