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록 깊이를 구경한 사람들이 조심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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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3 00:00
1.설교록과 신앙동지성
①설교록 은혜를 모르는 경우
이 노선 설교록을 알지 못하고 그 깊이를 모르는 사람과는
서로 다른 외국어로 대화하는 사람처럼 의사소통이 안 됩니다.
이 노선 설교록의 맛을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많은 말이 필요없이 그냥 바로 통합니다.
그래서 설교록의 은혜 세계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논쟁이나 분쟁을 최대한 피하고 있습니다. 귀는 막고 말만 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설교록을 접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입니다.
②설교록 세계를 맛 본 경우
설교록 은혜를 아는 분들끼리는
아무 말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나입니다.
자기의 손과 발은 또 귀와 입은 서로 말이 필요 없이 움직이듯이
설교록 은혜를 아는 분들과 대화를 하면 오랜 세월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 같습니다.
이런 면 때문에
총공회 신앙노선의 정체성 외부는 3대안 8개항의 행정노선과 공회 교리이지만
정체성의 내부는 설교록 은혜 세계에 대한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③설교록 관련 여러 층의 동지들
첫째
설교록을 엄청난 분량의 설교 재료라고만 상대하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10만페이지에 이르는 성경 해석 자료를 남긴 분은 역사에 없습니다.
주일학교 산집회 양성원 등 이 노선에는 세계 기록에 남길 특별한 결과가 많습니다.
둘째
설교록을 특별한 해석이 많다고 특별하게 상대하는 분들도 있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교리 교훈 해석 교회 운영 관련 특별한 원칙도 많습니다.
칼빈의 종교개혁에 이어 이제 기독교 내의 새로운 개혁에 사용할 차원이 많습니다.
셋째
설교록은 말세를 헤쳐나갈 성경 깨달음이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현 우리 시대만을 두고 말한다면 이 노선의 교훈과 행정은 이 시대를 감당할 차원이며
역사적으로는 정통노선의 중심을 가장 바로 잇고 있다는 면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이 노선에서 아직도 손님 정도로 대하는 분들입니다.
셋째를 단정한 분들을 이 홈은 신앙의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2.동지가 희귀한 시대, 동지들에 대한 안타까움
①자기만 깨달은 줄 알고 착각하는 분들
설교록으로 성경을 배우고 나면 그 감격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데
그 감격에서 즉시 떠나 더 나아갈 길로 매진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교만죄가 찾아와서 참으로 아까운 깨달음을 썩혀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이렇게 도취하면 자기 설교에 자기만 은혜를 받고 교인들은 겉돌게 됩니다.
만일 교인이 설교록을 혼자 안다고 착각하게 되면 말이 거꾸로 달리는 꼴이 나옵니다.
이 노선에 수도 없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있어 이 노선에 속하고 있는데
자기만 깨달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자꾸 떠들게 되어 들어주는 사람들의 고통이 심합니다.
②배워 깨닫게 된 사실을 잊고 벌로 날 뛰는 사람
설교록은 그 분량도 많지만 배우는 사람에게 도를 깨닫는 이치를 가르치기 때문에
자꾸 배우다 보면 배운 사실은 잊어버리고 자기의 독창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뉘게서 배운 것을 잊고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여 안타깝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목회자의 경우는 더 이상 배우고 자라가는 것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성장을 중단시키고
교인의 경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회를 나오거나 혼자 예배를 보게 됩니다.
신앙이 이 단계에 이르렀다면 정말 대단한데 귀신은 귀신 나름대로 길목을 지키는 재주가 있어
끓어오르는 신앙을 살짝 넘치게 하여 제 힘에 탈선하게 합니다.
③퍼뜩 생각이 떠오르면 영감이라고 하는 경우
첫째 단계의 착각신앙은 어느날 돌이키는 경우라도 있는데
둘째 단계에 이른 사람은 대개 중단하지 않고 그대로 셋째 단계로 진행합니다.
자기 생각에 자기가 취하고 자기 뱉은 말에 자기 눈과 귀가 즐거워 자꾸 말과 글을 적는데
그럴수록 주관이 주관을 낳고 더 깊어진 주관이 더 깊은 주관 속으로 자기를 밀쳐넣게 되어
나중에는 헤어나지 못하는 깊이로 들어갑니다.
성경과 설교록을 누구보다 많이 끌어다 붙이고 사용하는데 그 내부를 살피면
자기 주관에서 퍼뜩 나온 착상이 주인이고 성경과 설교록은 들러리만 섭니다.
이제 성구와 성구가 설교록의 이 내용과 저 내용이 실타래 얽히듯 서로 치고 받고 싸우게 됩니다.
이쯤 되어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겠는데
설교록을 깨닫지 못하는 어두운 심령은 어두우니 악령이 그냥 삼키고
설교록을 깨달아 크게 기쁘하는 이들은 악령이 제풀에 제가 넘어지게 더 밀어제쳐버립니다.
뒤로 넘어져 뒤꼭지가 깨지든 앞으로 넘어져 이마가 깨지든
머리가 상하면 그다음에는 제 정신 아닌 말을 자꾸 하게 됩니다.
3.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길을 사모하며
이 노선은 체질적으로 중립에 서거나 타협을 하지 못합니다.
동시에 이 노선은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진리 한 길을 곧 따라 가는 길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를 갖지 못하고 유행 따라 여론 따라 가는 것도 딱 싫고
깨닫기는 하되 자기 주관에 빠져 진리라는 객관의 길에서 이탈되는 것도 엄금합니다.
설교록의 가치를 모르고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신앙도 한탄스럽고
설교록의 가치를 알자 자기 주관에 빠져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는 동지들도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 홈의 모든 자료를 폐쇄할까
이 홈의 모든 글들을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홈의 자료를 가지고 조용히 새겨보고 연구하는 세월을 갖지 않고
조금 깨달은 것이 있다고 검색을 통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발언하는 분들
백목사님이 세계 신학을 정죄한다고 세계 신학도 모르면서 정죄부터 하고 보는 분들
백목사님이 소중하게 배운 세계신학의 정통이론까지도 전부 도륙부터 해놓고 보는 분들
자기 주관 착상마다 성령의 이름을 미리 자꾸 붙여놓아
남들이 지적조차 할 수 없도록 사전에 방어막을 쳐버리고
과거 어떤 말을 했는지조차 망각하고 말만 자꾸 내어놓고 흐리는 경우
개별 교회마다 이런 목회자 이런 교인들마다 모두들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들을 비판하는 이들은 그렇게 하는 착각자들을 비판하지 않고
그 착각의 정도가 심한 이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입에 담는 설교록을 비판하는 또 다른 죄를 짓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동지들!
그 깨달음에 이른 과정을 보면 조금만 더 배우고 노력하면 이 홈을 지도할 인재로 그릇으로
크게 기대를 했는데!
그래서 장차 이 홈의 스승이 될 가능성이 있어 미리 극진하게 모셨는데
되기도 전에 이미 다 되었다며 갑자기 돌변하고 이 노선과 다른 길을 따라오지 않는다고 자꾸 야단을 치니
이 또한 이 시대 우리 전부의 숙제요 자신을 돌아볼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