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과 무기력을 극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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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2 00:00
출처: /연구실/문의답변/165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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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방황....
벌써 2주가 넘게 방황하고 있어요.
매일 술에 친구에.. 아무생각 없이 돌아디니고
이건 예전에 엉망이었던 제 모습이에요.
제가 교회 다니기 전에 모습.
그냥 이젠 교회 나가기가 겁날정도.. 하나님 뵐 면목이 없어요..
내가 그리 좋아하던 기도도 할수가 없어요..
주님께 죄송해서.. 주님과에 대화가 끊어지고..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니고..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고..
모든게 엉망.. 주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가..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들고..주님을 느낄수가 없어요..
예배를 정말 드리고 싶은데.. 예배시간 조차 너무 힘이 들어요..
많은것들을 움직여 할수있는데..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요..
이런거.. 너무 싫은데..
답답해요.. 나는 주님을 너무 사랑하는데..
이런게 바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슬럼프 같은건가..
답답해요.. 목사님..
(답변)
신앙생활은 자전거와 같은 성질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달리면 달릴수록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1.예수님 믿기 전의 모습, 그 모습은 나타할 때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모습입니다.
믿는 집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혹 신앙으로 후퇴를 해도 술이나 담배는 쉽게 손대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주저 앉아 있다가 일어섭니다. 노름하던 사람이 믿으면, 모든 것을 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때 모습에서는 전혀 과거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주저 앉으면 바로 화투장에 손이 갈 수 있습니다. 술 먹던 사람도 예수님 믿고 술을 끊고 신앙생활을 하면 남들에게는 표가 나지 않으나 한번 주저 앉으면 바로 입에 술이 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잘 다니던 사람이 술을 다시 입에 대는 정도면 아주 많이 타락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 행동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는 그렇게 쉽습니다. 즉, 신앙생활을 할 때와 힘을 잃었을 때의 낙차가 크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일단, 안 믿을 때 또는 이전에 내려 앉았던 그런 자리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저 앉으면 쉽게 갈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아시고 만사에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2.신앙은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는 말씀을 특별히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자전거는 밟으면 밟을수록 속도가 납니다. 또 가속이 붙으면서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옆에서 여간 밀어도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도를 일단 줄이면 다시 속도를 내려 할 때 대단히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속도가 줄어들면 옆에서 밀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휘청거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제자리에 그냥 서 있지 못하고 힘없이 옆으로 턱 넘어져버립니다.
지금 질문자의 상태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저 먼곳을 가던 사람이 중간에서 속도를 낮추다가 다시 가속하려니까 힘이 들어 조금씩 힘을 뺀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자전거가 길 옆으로 넘어지면서 풀 밭에 나 앉은 것 같습니다. 달릴 때는 기분도 좋고 오히려 피곤을 느끼지 못하다가 이렇게 주저 앉아 보면 그동안 달려왔을 때 누적된 피로가 함께 몰려와서 털썩 주저 앉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계속 달리고 있는 모습만을 물끄러미 바라 볼 뿐입니다.
3.두말 할 것 없이 다시 자전거를 세우고 페달을 밟아야겠습니다.
처음 자전거에 다시 올라 속도를 올리려고 하면 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 않던 일을 다시 한다는 것 또는 중단했던 일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상태는 한번 주저 앉으면 양심에 가책은 되지만 눈에 당장 급할 일이 없기 때문에 대개 오래가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①사용하지 않은 근육은 급격하게 도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냥 세월만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으로 주저 앉은 상태는 그냥 양심에 가책만 될 정도로 지나가는 수가 많습니다. 신앙없는 상태에서 세월만 그냥 지나가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으로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에 하나로는 심각한 파괴가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다리를 다치고 깁스를 하는 분들은 대개 2-3개월 누워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근육이 급격하게 줄어서 장딴지가 팔뚝처럼 가느랗게 줄어들어버리고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퇴화된 다리를 이전처럼 되살리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생을 하는지 모릅니다.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평소 생각없이 움직이는 정도로 활동한 다리와 완전히 주저 앉힌 다리의 차이는 이렇게 크게 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태로 늘 계속하는 것이 좋지만 우리 평범한 사람들로 말한다면 그럴 때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 따라 약간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기복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이전처럼 힘이 나지 않고 열심을 내려고 해도 잘 안 될 때, 그때 특히 주의할 일은, 힘이 나지 않고 열심이 생기지 않는다 해도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 습관으로라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신앙에 관련된 기능들이 퇴화되지 않고 유지가 됩니다. 그렇게 유지가 되어지고 있으면 또 다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이전처럼 열심을 낼 수 있는 은혜를 주실 때, 마치 지금껏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분처럼 바로 뛰어갈 수가 있습니다.
혹, 속에서 열심이 나지 않는데 습관적으로 움직이면 바리새인과 같은 외식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된 상태를 잘 믿는 상태라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속에서 일어나는 열심이 없다고 하여 그냥 주저 앉게 되면 깁스한 다리처럼 하루가 다르게 그동안 쌓아놓았던 의의 기능들이 가속도로 축소되고 퇴화된다는 것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해 신앙행위를 습관으로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습관적 행위는 신앙의 퇴보이지 정상적인 행위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습관적으로라도 계속하는 것은 다시 은혜를 주시라는 몸부림입니다. 바리새인처럼 그 습관적 행위 자체를 의롭게 보고 자만하는 것과는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②신앙에 주저 앉은 세월이 오래되면, 하나님의 사랑의 매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의 우리들을 기르실 때는 보이는 면으로 즉각즉각 처리하는 일을 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는가 하고 찾아보면 없는 존재같아 보이고, 하나님이란 없는 존재인가 라고 생각하면 분명히 계심을 보이시는 식입니다. 이렇게 보일 듯 말 듯 나타나시고 역사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자유성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서도록 자립성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자립성을 가지고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도록 해야 하나님을 닮은 참된 인격자가 되고 그런 자유성의 존재가 가진 실력이라야 기계나 만물과 다른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 내가 열심히 신앙 생활할 때는 어떤 은혜를 받아서 그러했던가? 찾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나에게 내렸고 나는 열심을 냈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 나타해지고 이제는 주저 앉는 신앙이 되었는가? 나도 모르게 언젠가 그렇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를 주실 때는 거저 감사할 일입니다. 내가 잘난 것도 없고 또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어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문제는 이제 질문하신 것처럼 신앙이 내려 앉고 급기야 주저 앉는 정도가 되었을 때가 문제입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러합니다. 만일 눈에 딱 띄게 특별한 문제점이 있다면 회개도 쉽고 또 목표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달려갈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답으로 나누는 내용은 보통 믿는 분들이 믿다보면 어떻게 신앙의 힘이 떨어지며 슬슬 쳐지다가 급기야 내려 앉는 일반적인 경우를 두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힘이 날 때도 있고 또 힘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사시사철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일어설 때가 있고 쉴 때가 있으며 준비할 때도 있습니다. 하루를 놓고 봐도 8시간 정도는 잠자기 기능을 주셔서 강제로 눕혀버립니다. 피곤해서 지치는 것도 하나님께서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의심이 드는 것도 미리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싸워가며 크는 것이고 학생이 틀려가며 배우는 것입니다.
문제는 완전히 주저 앉는 것은 하나님께서 달리 보십니다. 물론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기간이 길어지면 매가 크집니다. 또 하나님이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매가 크집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께서는 자신에게 올 하나님의 매를 미리 한번 예상해 보실 수가 있습니다. 매 문제를 두고 또 하나 아실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매의 세기는 맞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아플 줄 알았더라면 일찍 일어설 것을! 하는 말이 입에서 자동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4.신앙은 자전거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달리고 계시는 분들은 어쨌든 게속하셨으면 합니다.
달리던 신앙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물론 힘이 들어도 그렇게 크게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원래 속도로 가속을 하려면 너무 힘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더라면 그때 조금 힘이 들어도 중단하지 말 것을!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달리던 신앙을 중단하고 쉬는 것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나중에 새로 일어나려면 몸이 천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겁습니다. 주저 앉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될 문제는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너무너무 간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저 앉은 사람이 잠깐 있다가 얼른 깨닫고 일어선다면 다행인데 만일 시간이 조금 더 지나가고 하나님께서 매를 들었다 하면 그때는 평생에 돌이키지 못할 상처가 남아서 평생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까지 하나님께서 조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그냥 주저 앉은 상태에서 계속 살아도 탈이 없게 버려두지는 않습니다.
꾸준하게, 그러나 조용히 간섭하는 하나님의 두렵고 사랑스러운 눈동자를 보면 일어서셨으면 합니다.
누가 옆에서 한번만 '영차!'하고 손을 확 당겨버리면 아무 문제도 없이 그냥 벌떡 일어서실 것인데! 이래서 가까운 주변에 호통치고 야단쳐 줄 수 있는 신앙의 선배나 스승을 모신 사람의 복이 정말로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주변에 그런 분이 없다면 자기가 자기에게 스승이 되고 선배가 되어 채찍을 드셔야 합니다. 일어나셔서 한 발만 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 처음 나올 때도 그러했습니다. 이미 다니는 분들이 보면 교회 한번 나오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막상 첫 출석을 하는 분에게는 그렇게 어렵습니다. 뒤에 교회를 다니고 보면 괜히 자기 혼자 그렇게 어려워서 스스로 묶은 줄에 매였던 것입니다. 현재 질문자의 입장도 그렇습니다.
5.사실 이번 질문과 같이 신앙 내면 속에서 발생한 이런 무기력에 대하여 힘이 되고 약이 되는 것은?
이곳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에서 제공하는 백영희목사님의 설교록 관련 문자와 음성 자료들이 가장 죄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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