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현실을 왜 기뻐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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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2 00:00
출처: /연구실/문의답변/302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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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성경은 (1.어려운 현실이란 2.왜 기쁘게 여겨야 하는지 - 관)
1.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왜 기쁘게 여겨야 하나요?
2. 성경은 우리들에게 인내를 요구하시는데 우리가 인내 하여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 주세요?
3. 현실이 왜 중요합니까?
4. 어려운 현실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느뇨?
(답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합니다. 아버지라는 표현을 잘 생각해 보셨으면 (*자료 첨부)
1.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현실이란, 훈련소의 군인과 공부하는 학생을 두고 생각하셨으면
고교 3년을 쉽게만 공부하고 편하게만 놀다가 보내는 실업계 학생과 입시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일류 인문고교 학생을 비교해 보셨으면 합니다. 실업계 학생들에게는 숙제도 별로 없고 영어나 수학도 어렵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놀러 다니기 좋고 연애하기도 좋습니다. 그래서 상고나 공고를 졸업한 학생들에게는 고교 3년의 추억을 항상 간직하고 싶어 그 졸업생들 방에는 심방을 가보면 별별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류 인문고교 졸업생 방에는 고교시절 추억을 담아놓은 사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칠 것입니다. 또 사진을 찍을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일류 인문고교를 입학할 수 있는 학생이 10대 청소년 시절을 마음껏 놀고 싶어서 실업계 고교로 진학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놀기가 싫어서 그럴까요, 공부가 노는 것보다 더 재미가 있어서 그럴까요? 훗날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군인들의 평소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6.25전쟁 직전에 군기가 빠진 남한은 사력을 다해 준비한 북한에게 전쟁 3일만에 서울을 내주고 불과 2개월 정도기간에 낙동강까지 밀려내려 갔습니다.
2.현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드십니다. 아버지의 집념은 도저히 꺾을 수가 없습니다.
①사력을 다해 준비하도록 환경을 조절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천국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뿐입니다. 이 기간에 준비한 것으로 우리의 영원한 천국 생활은 결정이 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기어코 우리 믿는 사람을 이 세상 준비 기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 훈련을 잘 받아 실력있는 군인을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고교생에게 초등학교 문제집만 사주게 된다면 우선은 좋겠지만 시험을 쳐야 할 학생으로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고교생에게 그 학생으로서는 있는 힘을 다해야 풀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를 가진 문제집을 사 준다면 아주 이상적일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도 풀 수 없는 문제는 역효과가 나타납니다. 쉬운 문제는 실력을 늘리지 못합니다.
군인이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피땀을 흘렸을 때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너무 무리하면 꺾입니다. 너무 쉬우면 훈련이 아니라 노는 것입니다. 이런 고통을 넘어선 사람과 이런 고통을 한번도 겪지 않은 온실 속의 화초는 이후에 태풍이 불어보면 천지차이가 있습니다.
②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부러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계십니다.
미운 자식 고통이나 받으라는 뜻으로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체육시간만 있으면 좋은데 하필이면 영어나 수학시간을 많이 잡는 이유도 그 학교 학생들 기합을 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자꾸 더 배우고 더 익히고 더 알아서 더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 아버지를 뒤이어 아버지의 것을 다 맡기려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어려운 현실을 만들어 자꾸만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3.질문 내용에 집중하겠습니다.
①어려운 시험을 만나면 왜 기뻐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를 많이 풀어 봐야 실력이 늘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늘면 실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 되면 아버지께서 자기 사업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맡기게 됩니다. 실력 없는 아들에게 회사를 맡겨놓으면 금방 다 팔아먹고 망하게 됩니다. 돈만 날라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집니다.
②성경이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단 한번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준비를 다 시키지는 않습니다. 이 현실에서는 이런 문제를 가르치고 저 현실에서는 저런 어려움을 이해시키면서 계속 길러가시는 것입니다. 학생이 매일 아침 첫 시간 수업만 끝나고 집으로 가버리면 그다음 시간에 배울 것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교 1학년 들어가서 첫 시험에는 1등을 하고 그다음 집에 가서 3년을 놀아버린다면 나머지 공부는 어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각자 각자에게 꼭 필요한 과정과 내용을 가지고 훈련을 시키되 그 사람 평생을 통해 가르치고 훈련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도에 포기를 해버리면 그 모든 것을 다 배울 수가 없습니다. 국어는 100점인데 영어는 0점 맞는 학생처럼 되어 버립니다.
③현실이 중요한 것은?
현실이란 단 한번으로 지나가는데, 그 현실에서는 그 현실이 아니고는 다시는 준비할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기 때문입니다. 답변자가 고3학년 때 이차삼각함수를 배우는 주간에 결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 수학을 잘 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대충 돌아가는 감은 잡는 정도인데 이차삼각함수는 감조차도 잡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오늘까지도 이차삼각함수는 답변자에게 아프리카 어느 부족과 같습니다.
두번 다시 반복할 수 없는 딱 한번의 기회,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평생은 현실의 연속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오늘 안 되면 또 내일 새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나 오늘과 내일은 나 보기에는 같아도 실은 하나님께서는 어제 가르칠 것이 따로 있고 오늘 가르칠 것이 따로 있어 한번 그 현실을 흘려보내고 나면 그 면으로는 죽는 날까지 다시 기회가 없어집니다.
④어려운 현실을 만날 때마다?
입맛을 다셔야 합니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 미친 학생들이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입맛을 다시고 애터지게 기다리듯이! 그 이상하지요? 늘 하던 게임만 하면 쉬울 터인데. 새로 나온 게임을 배우려면 시간도 걸리고 돈도 들어가고 땀도 흘려야 하고 잠도 자지 못하는데?
군인이 신무기를 지급받으면 그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해서 수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만일 익히고 나면 적을 단번에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신무기 개발에 국력을 다 기울입니다. 임진왜란의 패전이 일본의 조총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무기를 익히느라고 고생한 댓가로 이 나라에 와서 가져 간 것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현실을 주시면, 또 눈물도 흘려야 하고 고통의 수개월 또는 수년을 보내야 하고 춥기도 하고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이런 저런 어려움을 많이 겪어볼수록 그 사람의 실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곳에서 답변하는 사람이 과거 겪어본 어려움을 그 당시에 더 많이 더 강하게 겪어보았다면 오늘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더 필요한 말씀을 더 드렸을 것입니다.
4./초기화면/연구실/남단에서2/ 자료 중 '알라스카의 사슴'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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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번,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이유 - 알라스카의 사슴과 늑대 이야기 0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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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10:16,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본문입니다.
이리는 맹수 중에서도 양을 가장 즐겨 먹는 원수입니다. 성도를 유독 그냥 두지 못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에 섞여 그들과 어울리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면 갑자기 모든 환경은 돌변합니다.
양과 이리는 지을 때부터 양과 이리입니다. 양이 이리 되고 이리가 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이 가르치는 양과 이리는, 태어날 때부터 양이 따로 없고 태어날 때부터 이리가 따로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양이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면 이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리였다가 양이 되어, 이리떼 이빨 속에 그 평생을 살았던 분입니다. 사울은 양이었다가 이리로 돌변한 다음, 다윗같은 귀한 양을 삼키기 위해 남은 평생 진력했던 예가 됩니다.
2.왜 양을 이리 가운데 두셨는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①이 본문과 관련하여 우리가 늘 입에 달고 있는 해석들이 있습니다.
"양을 사랑해서 이리 속으로 보낸 것이다."
"마치 여러가지 시험을 통과시켜 온전한 인격을 만드려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 어려움 속에 던져 놓았다 해서 이리에게 먹어라고 던진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목자의 보호가 있다."
②그렇지만, 막상 당한 사람에게는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고민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들은 전부 진리입니다. 성경입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문제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그렇게 깨닫고 느끼느냐는 것입니다. 공연히 교회의 말장난 같다고 느끼기도 하고 또 말은 맞는 것 같지만 과연 실제 그렇겠느냐고 속으로 의심이 생긴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설교를 들을 때 복있는 사람은 귀가 확 열리면서 이전에 보지 못한 세계를 깨달아 기쁨과 감사로 충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과 말씀으로 깨닫는 사람이 가장 복있는 교인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이렇게 복된 귀를 가지지 못하여, 마치 제자들처럼 눈으로 봐야 비로소 느끼고 알게 됩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낙오되는 것보다는 보고라도 믿는 것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보지 않고 믿기를 노력해야 하겠고, 그런 신앙이 되지 않으면 보고라도 믿기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보고라도 믿겠다고 떼를 쓰면 한 두번은 귀엽게 봐 주시고 그렇게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습관이 되면 광야 40년 이스라엘의 길을 밟게 됩니다.
3.양이 이리 가운데 있어야 하는 예를 오늘 아침에 눈으로 보았습니다.
혹, 양이 왜 이리 가운데 있어야 하는지를 성경만 보고 믿는다면 가장 좋겠는데, 만일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여기 보고라도 믿을 수 있는 자료가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팔레스타인에 양과 이리가 있다면, 미국에는 사슴과 늑대가 있습니다. 양과 사슴이 그렇게 닮은 먹이감이고, 이리와 늑대가 그렇게 비슷한 맹수들입니다. 다음 자료를 '보고'라도 믿으신다면, 이 자료를 일컬어 우리는 '자연계시'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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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전 사슴과 늑대가 알래스카의 자연보호지역에서 함께 살았다.
그런데 당국은 사슴의 안전을 위해 늑대를 모조리 없애버렸다.
그후 절대적인 안전을 구가하던 사슴은 그 수가 10년 동안에 4,000 마리에서
무려 4만2000마리로 늘었다. 그러나 사슴의 편안하고 게으른 삶은 예기치 못
한 결과를 낳았다. 운동량의 감소는 체질의 약화를 가져와 생명을 재촉했다.
결국 4,000마리도 남지 않았다.
이 위기를 타개하려고 다시 늑대를 투입시켰다. 사슴은 늑대에게 희생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고, 사슴은 다시 건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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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타락이라는 것은 일반 교리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저진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일부러 타락을 시켰다고 단정하는 교리가 아직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되게 인간을 만들었으나 인간이 실수로 타락을 했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멀리 관람석에서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를 귀하게 만드시려고, 일부러 타락을 시켰습니다.
크게 말하면, 우리 택자들이 재세 기간 동안 마주치고 겪는 모든 어려움 모든 고통 모든 수고는 바로 이 자연계시를 통해 보여주는 그 원칙 때문입니다. 자녀를 기어코라도 바로 기르고 잘 기르기 위해 부모가 순간도 그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열정에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슴과 이리의 현상, 부모의 자녀 교육을 향한 열정, 이런 모습은 우연히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시려고 자연과 사회를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우리에게 참고하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