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곡 공회 찬송가만 불러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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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0 00:00
출처: /총공회/문답/51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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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질문입니다.
201곡 공회찬송가로는 그 수가 너무적고
통일이나,새찬송가에서 성경적이고
공회복음에 맞는곡들을 선정하여
공회 찬송가와 같이 부르는것은 잘못인가요.
꼭 201곡 공회 찬송가만 불러야 하나요.
백목사님이 살아 계셨으면
찬송가를 수정,보완 했을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답변) 찬송가 문제는 불변 원칙이 아니고 가변가능한 당시 원칙
1.찬송가 문제를 두고
공회 내의 2가지 노선은
새찬송가 중심으로 요약한 201곡 공회찬송가를 절대 지켜야 한다는 보수측과
타 교단의 통일찬송가을 사용하여 찬송 문제로 마찰이 없어야 한다는 수정측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수측은
201곡 찬송가를 공회성 보수를 심사하는 원칙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생애 마지막 수 년간 찬송가 문제를 그렇게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수정측은
공회 찬송가 201곡 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순수파 수정 노선이 있고
타 교단의 비판을 염려해서 마찰을 피하려는 환란회피 수정 노선이 있습니다.
2.공회 찬송가 201곡
공회 찬송가를 만들던 1987년 당시 공회 찬송가에 대한 공회의 원칙은
①탈선거부 원칙
한국교계가 찬송가 통일을 통해 교계적 타락 탈선에 몰려가고 있어 이를 거부했습니다.
첫째, 찬송가 곡 선택과 가사 변경 등을 교계가 타협으로 진행하여 신앙노선을 말살했고
둘째, 통일찬송가를 만드는 과정에 막대한 이권 야합이 있어 아주 가증한 사업이었으며
셋째, 찬송가 통일을 앞세워 무조건적 통일운동을 획책하던 교계 탈선에 맞선 것입니다.
②임시예배용 원칙
공회 노선은 교훈, 교리, 순교, 경건, 전도, 기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교계 최고 수준을 보유하고 있지만 '찬송'이라는 분야는 초보 상태입니다. 교회 발전 역사에 있어 공회는 거의 모든 면으로 역사 교회를 이어 당대 발전할 수 있는 최고치의 진보를 이루었지만, 찬송가 분야만큼은 과거 찬송을 선별해서 사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찬송가에 대한 실력과 수준이 없어서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1980년대 한국교회가 찬송가를 통일하면서 엄청난 탈선 현상을 보일 때 공회는 대안을 제시하거나 보다 나은 찬송가를 제공하는 대신에 기존 찬송가 중에서 최소한 예배용으로 지키고 필요한 곡들만 선정하여 임시 예배용을 만들어 사용하는 데 그쳤습니다.
성탄절에나 찬양대 등이 사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 생각하여 확정한 것이 아니고 예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임시 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시간 외에 개인적으로나 교회의 특별 행사에서 '공회찬송가 노선'을 고려하여 201곡 외의 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은 각 교회가 신앙수준과 필요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③새찬송가 원칙
찬송가를 공회 노선의 수준과 실력에서 최대한 조심하고 엄선한 것이 201곡이라고 한다면, 공회 노선에서 찬송가 문제로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최저선은 '새찬송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새찬송가'라는 의미는 찬송가에 있어서는 굉장히 넓은 범위까지 허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새찬송가 안에는 우리가 평생 한번도 부르지 않았던 곡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찬송가의 음악적 수준은 비록 우리로서는 접근하지 못했으나 일반 세상에서도 명곡으로 대우한 곡들이 많습니다.
새찬송가 전체를 좋은 찬송가 모음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찬송가에 수록된 곡들은 찬송가로 인정하게 된 이유는 그래도 그 찬송가 제작에는 경건과 구별 그리고 신앙노선의 최소치 기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통일찬송가부터는 팔을 걷어붙이고 장사꾼들과 교회를 정치화 세상화 하는 세력들이 주도를 했으므로 비록 통일찬송가 내에 좋은 곡들이 다수 있다 해도 통일찬송가라는 이름으로는 전면 거부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통일찬송가의 개별 곡과 가사에 대하여서는 따로 평가할 마음이 있습니다.
3.공회찬송가에 대한 공회 노선의 진심
①'임시'예배용이라는 표현의 진정한 의미
대개 공회찬송가 201곡과 통일찬송가를 놓고 비교할 때는 공회찬송가는 생긴 모양이 천박하고 그 곡도 너무 케케묵은 것이어서 신앙어린 분들이나 타 교회를 거쳐 본 사람들은 고개를 젓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회찬송가 201곡의 과정을 설명한다는 것은 내용도 복잡하고 길지만 일반인들이 찬송가 관련 내막을 실감하기도 어렵고 더구나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1980년대 통일찬송가가 교계에 쏟아져 나오면서 통일찬송가는 교계를 선풍적으로 휩쓰는 당시 교계 대세였습니다. 이 통일 운동을 비판하면 이단으로 매도되고 찬송가 저작권 문제로 법적 소추를 당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공회노선은 복잡한 모든 과정을 제일 간단하게 축약할 수 있는 표현으로 '임시예배용'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백목사님의 탁월한 순발 대응력이며, 그분의 신앙 내면을 아는 이들에게는 매사 표현 하나도 주시는 것을 찾아 전하려 하는 그분의 신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임시예배용'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임시예배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을 놓고 공회 내에서 통일찬송가를 선호하는 수정노선에 계신 분들의 해석은 자의적 해석일 뿐입니다. '임시'라는 표현을 자기들 수정노선의 수정을 위한 근거인 줄 알았으나, 그 '임시'라는 표현의 전제는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어야 바꾼다는, 아주 무서운 표현입니다. 사실 공회의 가장 근본 신앙이기도 합니다.
바꾸되, 무엇이든 더 낫고 좋게 바뀌는 것은 서슴치 않지만
바꾸되, 바꿀 필요나 절박한 이유가 없고 심지어 개악이 되면 바꾸는 것은 거부입니다.
마치 성경 번역에 오류가 많아도 첫 번역보다 더 잘 번역할 수 없는 것이 교계의 분위기이므로 사실상 새로운 번역을 일체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찬송가 문제도 더 나은 개선을 기대한다는 것은 이전 신앙과 오늘 신앙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신앙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 오실 때까지 더 나은 찬송을 가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나 갈수록 더욱 타락하는 것이 교회이므로 이 정도 수준의 찬송가라도 붙들고 주님을 맞겠다는 결연한 사실적 의지를 담은 것이 '임시예배용'입니다.
②임시'예배용'이라는 표현의 진정한 의미
공회 201곡은 '예배용'으로 사용할 찬송가이므로 찬양대나 성탄절 같은 특별 행사 또는 개인적으로 사용할 찬송은 일반 찬송가 중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보수측 노선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상식입니다.
'예배용'이라는 이 표현은, 신앙의 최고 목표치가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우선 신앙이 어려서 교계 복음성가나 새찬송가 중에서 공회 찬송 201곡에 들지 않은 찬송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점점 자라면, 또는 신앙이 점점 자라기를 원한다면, 공회 201곡 찬송은 공회 노선에서 소개하는 신앙으로 발전하는데 필요한 주요 양식이 될 수 있지만 그 외에 곡들은 신앙 발전에 사이다나 튀김류 같은 과자처럼 먹어도 되지만 자제하면 할수록 먼 훗날 더욱 좋을 것이라는 권면이 들어 있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예배'시간은 믿는 사람답게 행동하고, 예배가 끝나고 일상생활에서는 세상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면 예배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예배 전후의 행동도 예배를 고려해서 경건하게 되며, 신앙이 더욱 자라게 되면 예배시간에만 교인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 외의 모든 평상 생활이 예배 때 교인노릇한 것처럼 그렇게 되어져 갑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교회의 공식 대예배 때는 '예배용찬송'을 부르고 야외 예배나 특별행사 때는 한판 놀기 좋은 찬송가를 사용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는 유행가 같은 찬송을 부르다고 세상생활을 하면서는 아예 세상 노래들을 부르게 됩니다. 신앙이 점점 퇴보하게 되면 세상 노래가 복음성가로 들어가고, 복음성가가 예배 찬송가 틈에 들어가고, 나중에는 예배시간에서조차 예배찬송가가 퇴출됩니다. 반대로 신앙이 점점 자라게 되면 예배찬송가가 예배시간이 아닌 교회의 여러 특별행사나 개별 모임에까지 안방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신앙이 더욱 자라게 되면 예배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과 입 속에도 예배찬송이 뒤를 따라가며 주인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이 더욱 자라게 되면 세상 직장이나 가정생활에서도 예배찬송이 그 사람을 독점하여 세상 노래는 귀에 들리는 일조차 없게 만들게 됩니다.
공회찬송가의 용도를 '임시예배용'이라 한 것은 신앙어린 이들과 외부의 비판을 아주 간단한 표현 하나로 잠재우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변명용 표현이 아니고 실은 우리 공회 노선의 교인들에게, 신앙인으로서 예배 때 가장 최소한 지켜야 할 201곡을 제시하면서 이 곡을 종자로 삼아 예배 시간 외에도 세상 생활에서도 이 201곡의 찬송가 수준의 사람으로 자라가고 그 찬송가가 의미하는 찬송신앙이 전생애를 다 차지하게 하라는 적극적인 지도이념이 들어 있습니다.
4.찬송가 문제에 관하여서는
정해진 고정 원칙은 없습니다.
공회 노선은 일제 때부터 신편찬송가를 사용했고
고신에서 나온 뒤 새찬송가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1980년대 초반 통일찬송가가 막 나오기 시작할 때, 동일 원칙선에서 통일찬송가도 함께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찬송가 시절까지는 교계가 찬송가를 바꿀 때 그 바뀌는 가사 내용과 가감하는 곡들을 두고 남들이 볼 때 마찰이나 갈등처럼 보여도 거부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0년 통일찬송가부터는 교계 전체와 마찰을 하고 그로 인해 어떤 손해를 봐도 통일찬송가라는 개념과 그 내용 자체를 거부해야 할 수준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문제가 가져올 파장이 보통이 아니므로 신중하게 대처하고 또한 교계의 시도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통일찬송가'를 공회 전체적으로 같이 사용해 본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단하게 된 것은, 통일찬송가는 공회 노선차원에서 금지하고 반대할 정도라고 결론을 짓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공회 노선이 정말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공회 201곡은 임시예배용에서 출발했으나 우리 시대에서는 고정예배용이 되어야 사실상 바른 공회 노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공회 노선이 정상적으로 자라간다면 임시예배용에서 전 교인의 전 생활에서 공회 201곡으로 찬송생활에 부족을 느낄 수 없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찬양대나 일반 교회 행사에서 공회 201곡 이외의 찬송가를 사용하는 것은 어린 신앙들을 위해 '이유식'과 같은 차원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새찬송가 수준에서 그렇게 임시 변통을 하는 것이 아니고 새찬송가보다 더 넓고 잘못된 통일찬송가나, 혹은 통일찬송가보다도 더 넓은 다른 종류의 찬송을 사용한다면, 그리고 그런 사용이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면, 그것은 '예배때만 공회찬송가를 사용하면 그 외에는 자유'라는 그 사상 자체가 신앙의 타락 탈선입니다.
공회찬송가를 최신식 건강식이나 전통 곰국 정도로 보셔서 최대한 상용 하시고
새찬송가는 오염이나 동맥경화 위험 등을 알지 못하던 시절 먹던 일반 음식 정도로 보셔서 신중하게 고르면 대용식이 될 수 있고
통일찬송가는 햄버거나 피자 정도로 보셔서 한 달에 한번이나 드셨으면 하고
CCM이라고 보통 부르는 요즘 남녀짝짓기용 취한 노래는 그 모양이라도 버렸으면 합니다.
5.백목사님이 생존하였더라면
현 공회 201곡을 크게 바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회찬송가는 처음 200곡으로 시작했다가 겨우 1곡이 추가 된 정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시용'이라는 증거입니다. 동시에 그 임시용이 의미하는 바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뀌거나 가감할 때 그 추가 된 한 곡이 어떤 찬송인지를 보시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1곡을 선택하고 결정할 때는 목사님 입에서 외부를 향해 '임시용'이라고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대단한 검토와 정밀 분석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백목사님을 능가하는 신앙지도자가 나와서 201곡을 다시 우리 시대에 맞도록 발전된 모습을 제시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현재 시대의 급박함이나 우리의 모든 현실을 돌아볼 때 이 상태로 주님을 맞지 않겠나 하는 짐작이 앞서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