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노선의 관계는?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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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설교와 노선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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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총공회/문답/93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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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설교..... (설교와 노선- 관)


목사님
궁금해서 여쭈어봅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있어서 여러 목사님에 설교를 집에서도 얼마든지
들을수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총공회소속목사님들에 설교를 자주보고 듣습니다.

제가 질문을 드리고 싶은것은
얼마전에 잠실동교회 목사님 설교를 여러번 들었고
그리고 달산교회 목사님 설교도 다섯번 정도 들었습니다.
아주 설교를 잘하셔서 은혜를 받았는데요.

이영인 목사님 이분들에 설교내용이 백영희 목사님에 교훈과 설교록을
근거해서 하는 설교인지 아니면 본인들이 깨달아서 하는 설교인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어려서 그분들이 하는 설교가 공회설교인지 아니면
일반 깨달음에 설교인지 몰라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답변) 백목사님 설교로 본 공회 목회자 - 이 노선 향방을 중심으로


1.백목사님 설교 노선의 3가지 면

①백목사님 설교의 가치면

공회 출신 목회자들은
평생 백목사님께 배운 백목사님 설교 영향을 떠나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백목사님 설교 자료는
첫째, 다른 설교자료와 비교할 때 설교 자료 자체가 탁월하게 좋고
둘째, 판에 박은 다른 설교들과 달리 설교에 생명이 있고 아주 독창적이며
셋째, 처음 배울 때는 어려워도 한번 익혀두면 평생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②백목사님 설교 영향을 받는다 할 때

우선, 그 설교 내용 자체에 얼마나 충실하냐는 면이 있고
둘째, 설교를 진행하는 외형도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한 면이 있으나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설교를 그렇게 할 수 있는 설교자의 신앙생활 면을 두고 살필 수 있습니다.

첫 요소인 설교 내용은
목회자들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고 평생 그 영향을 떠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표현은 둘러 가거나 변형을 시켜도 백목사님 설교 내용은 기독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면들이 있어 지금 이 노선을 아무리 오래 떠나 있는 분이라 해도 또 자기 자신은 부인을 하려고 해도 설교 내용 속에 이 노선 설교가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둘째 요소인 설교 외형 문제는
체질적으로 점잖은 분들은 따라 하기도 쉽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본인에게 좋기 때문에 잘 유지되고 있는데, 교인들의 호응과 감정유도를 통해 목회자가 정치적인 목회를 염두에 두는 경우는 외형이 지켜지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설교 내용은 밥으로 그 외형문제는 흔히 밥그릇으로 비유하면서 밥만 담으면 되지 그 그릇의 모양이나 크기나 무늬야 먹는 사람 입맛에 맞추어도 되지 않느냐는 논리가 많이 나오는데, 밥을 어떤 그릇이든 그릇에 담는다면 그래도 이해하고 기다려 줄 수는 있지만 밥을 변기나 쓰레기통 안에 담는다면 설교 문제가 비록 외형 문제라 해도 이는 노선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요소는 가장 지키기 어려운데
백목사님 설교의 가치를 인정하는 목회자가 그 설교 내용과 외형 문제에 앞서 그 설교 내용을 가지고 본인이 먼저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그렇게 살았느냐는 문제입니다. 백목사님처럼 하나님과 성경을 실제 생활에서 모시고 살지 않으면서 그 설교 내용만 전하거나 그 설교 하는 외부 모습만 지킨다면 크게 말해서 설교의 껍데기만 잡은 사람이지 알맹이는 놓친 사람입니다.


2.이 노선 설교와 공회 목회자들의 현황

①완전 변질형 - 잠실동교회

평소 이 말씀으로 사는 생활도 완전히 청산하고
설교 내용도 이제 이 내용을 부러 잊으려 하여 실제 그렇게 되고
설교하는 모습도 전혀 흔적없이 바뀌어 심지어 강단 디자인까지 다 없앤 경우가 있습니다.

그분들로서는 그것이 옳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들은 개혁적이며 복음의 넓고 예수님의 사랑까지 실천하는 것이라 할 것이나
이 노선 기준에서는 구약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원래 가나안에 살던 이방 민족에게 완전히 뒤섞여 이스라엘의 본 모습을 잊었다고 비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역시 출신은 속일 수 없는 면을 한번씩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일반인으로서는 거의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계약신학교 교수님 한분이 답변자에게 전화를 하면서 '잠실동교회는 백목사님 노선을 떠난 정도가 아니고 아주 반대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라고 하는데 이 노선 외부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때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②절충형 - 대구공회

질문하신 대구달산교회의 경우, 담임목회자가 백목사님에 대한 개인적 존경이 또렷하고 그 설교의 가치성을 확실하게 아는 분입니다. 따라서 이 노선의 설교에 대하여 어떤 면으로든지 그 영향을 벗을 수는 없는데, 다만 백목사님 사후 이 노선의 내용은 좋으나 이 노선의 외부 모습은 시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면을 강조하고 지나 온 세월이 이미 18년이므로 세월 속에 자연 퇴색도 있고 초기 본인들의 의지와 달리 시대의 변화를 너무 많이 추구하여 원래 생각보다 많이 변한 모습이 많을 것입니다.

부산공회의 엄한 기준에서 본다면 가차없이 비판을 해야 하겠지만
먼 훗날 역사적 시야까지 고려해서 본다면 대구공회 목회자들의 설교는 백목사님 설교 영향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부산공회2라고 표현하는 서목사님 측 목회자들의 대부분도 대구공회와 유사한 걸음을 걷고 있으므로 이 홈에서는 대구공회와 부공2를 크게 묶어 하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③충실형 - 부산공회1, 3

그 내용 그대로 옮기지 못한다 해도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하지 못한다 해도
부공1과 부공3의 경우는 설교에 대한 기본 인식 자체가 현 우리 시대가 참고할 수 있는 설교 자료 중에서는 이 설교와 비교할 자료가 전혀 없다고 보고 있으며 이 설교 내용은 전달하는 사람과 원 설교자의 수준차이가 너무 극심하여 전하는 이가 어떤 면으로든지 손을 대면 댈수록 현장 적응에 필요한 면보다 근본 진리의 정확성과 은혜면 자체가 손상된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백목사님 설교 충실형이라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설교의 밑바탕이 되는 평소 목회자들의 자체 신앙생활도 비슷하게 가고 있습니다.


3.한 가지 고려하실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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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사님 사후 수년 간
대구공회와 서울공회는 무엇이든 바꾸면 다 좋은 것이라 해서 그 시기에 그 교회들은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세상 표현으로 좀 험하게 소개한다면 불륜 패륜 변태 등 모든 면으로 다 망가져 봤습니다. 그렇게 좋은 시절인 봄과 여름 초가을을 다 보내고 10여 년 세월이 흐르게 되어 이제 대구공회가 철없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보내고 30대 안팎이 되었는지..., 찬바람에 철이 들고 이제는 과거 총공회 원래 좋았던 장점을 되찾고 있다는 여러 좋은 조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설교록이 다시 강조가 되고
집회 강사들도 백목사님 생전 설교 충실형에 가까운 분들이 선두에 나서고
총공회라는 이름과 노선의 강조도 대두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이번 질문자, 그리고 비슷한 심정을 가진 분들께서 고려하셨으면 하는 것은

대구공회는 자신들이 뭐라고 말을 해도
이 노선의 탕자입니다.
이 노선을 분명히 떠났던 분들입니다.
떠날 당시 그분들이 주장하고 행동한 모든 것이 다 그분들의 머리 속에 기억되어 있고 그분들 밑에 어린 교인들이 두 눈으로 지켜봤고 또한 이 홈에서는 문서나 음성자료 동영상자료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비록 더럽혀진 몸을 가지고 이방풍속에 물든 생활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들이 이 노선의 원래 장점에 대하여 눈을 우르르 이전을 회고하고 그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다면 그분들은 누가복음 15장의 12절 아들이 아니고 17절에서 19절의 아들 단계로 접어든 것입니다. 만일 19절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20절 전반절의 실행으로 나간다면

질문자와 이 홈 답변자 그리고 우리와 심정을 같이 하는 모든 이들은
그동안 누가복음 15장 25절 전반절로 살아온 것은 31절에서 표현한 것과 같은 엄청난 복이요 자랑할 일이지만
만일 공회 내 다른 분들이 공회 원래 신앙노선의 장점에 다시 눈을 뜨고 돌이키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그들의 살아나는 장점에 더욱 환영을 하고 힘을 돋아주지 않고 그들의 어두운 면을 밝혀내서 우리가 우등함을 드러내려 차별하는 심리를 가진다면

우리 부산공회1과 3은 누가복음 15장 28절로 30절의 불쌍한 의인, 실패한 교인, 구원운동에 앞장서 왔으나 그 깊은 중심으로는 구원운동의 훼방자가 되는 것입니다.


4.질문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원 노선을 지켜 온 우리가 삼가할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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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역사 6천년을 통해
흑암의 시대에서도 그 시대를 초월하는 신앙노선에 섰던 복된 분들이 있습니다.
어렵게 작게 출발했으나 그 노선이 크게 빛을 발하고 나면 거두어 가시는 때를 주십니다.
바로 그럴 때 시대에 따라 주위 환경에 따라 거의 전부가 다 변질되는데
아가서 4장의 몰약과 유향의 작은 산을 지켜 흑암 속에서 이 노선의 빛을 붙든 이들이 몇 명 있게 됩니다. 바로 이들이 그들을 덮친 천하의 흑암을 이기고 다음 세대에 또 다시 바른 노선을 높히 치켜들 수 있도록 밤중을 밝히는 종들이니 바벨론 포로 된 중에서도 개별적으로 신앙을 지키던 바로 그런 이들입니다. 이들의 충성을 보시고 그루터기를 남겨두셨다가 또 다시 좋은 시절을 주시면 복음의 밝은 날이 돋게 됩니다.


5.누가복음 15장과 오늘 공회인의 여러 형태

질문하신 글은
바로 흑암의 시대 밤중을 통과하면서도 기름 준비를 하였으므로 내재의 빛을 가지고 계시는 시대의 의인입니다. 이런 귀한 입장에 세워 주신 것을 한없이 감사하되 다만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들은 원래 우리 노선에 함께 있다가 주변으로 또는 먼 외국으로 방향 감각을 잊고 사라져간 동지들을 상대할 때, 그들의 탈선이 공회 노선과 어린 교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하여서는 단호하게 맞서고 이 노선을 지켜야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 속에서 돌아오는 걸음이 있는지 항상 엿보고 있어야 하고, 만일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누가복음 15장 20절에서 아버지가 아직도 상거가 먼데 나간 아들 돌아올 방향만 쳐다 보고 있도록 하지말고 우리가 아버지 대신 그런 노력 자세를 가지고 둘째의 회귀를 맞아야 복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할 것이며
돌아온 둘째가 얼마나 마음 속으로 크게 존경하고 의지하고 따를 것이며
이웃이 봐도 누가 봐도 옳고 바른 일일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며 피흘려 죽기까지 싸워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1989년 이후 수년 세월이 바로 그런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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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우리는
우리 각자 자기 혼자 책임지고 걸어갈 자기 개인 구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공회와 시대적 흐름을 읽는 눈이 없으면
어느날 자기의 모든 의와 충성이 자기가 속한 공회나 교회나 교역자의 정치적 술수에 이용만 되는 불쌍한 꼬리가 되기 쉽습니다. 꼬리와 머리는 결국 머리 가는 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 대구공회 2006년 8월 집회와 최근 집회 강사 결정과 집회 말씀들을 대구공회 홈페이지를 보며 큰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공회 1과 3의 기준에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넓은 면에서 본다면 과거 이 노선 설교의 핵심을 향해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과
기다리던 첫째 아들이 한 아버지 집에서 다시 살게 된다면!!!

하늘이 춤을 추고 천군 천사 나팔 불며 앞서간 성도들이 일제히 하늘에서 자리를 박차고 환호하여 온 우주와 영계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로 바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홈은 가장 말단에 앉아 앞선 종들의 수고를 지지하며 고요히 산속에서 기도생활만 전념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 노선에는 이 홈이 한 일보다 더 유능하게 더 효력있게 더 뜨겁게 일할 분들이 많습니다. 모두들 스스로 포기를 해서 할 수 없이 이 홈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오던 둘째 아들이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중도에 주저앉고
집에 있던 첫째 아들은 아버지 집을 독차지 하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아버지는 탄식하며 한숨짓고 있다면
온 영계와 우주의 아쉬움과 비탄은 너무 클 것으로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공회 교인들!

과거는 이미 우리에게 주신 사실이며 하나님의 섭리역사이니
교훈으로 잘 새겨 기억하셨으면.

동시에 우리의 현재 가져야 할 자세와 걸어갈 길은
하나님의 지엄하신 긴급 명령이니
각자 그 길을 가려 하면 자기 내면 투쟁을 통해 자기 옛사람의 유혹과 방해를 싸워 이겨야 할 것이니 자기 원수는 자기 안에 있고 그 투쟁은 자기만 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새겨 보셨으면.

우리 다 함께
말세 최고의 복음을 받았으니
말세 최고의 복된 길을 실제 걸어가게 되었으면.
소망을 희망으로 버려두지 말고 현실의 복으로 만드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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