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 투표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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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0 00:00
출처: /총공회/문답/79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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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무투표는 성경의 어느구절을 근거로?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5월집회기간이 끝나고... 조금 숨돌릴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문의드립니다.
첫째, 총공회의 시무투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둘째, 어떤 근거에 의하여 시작된 것입니까? (시무투표는 성경법에 맞는 제도입니까?)
셋째, 장로들에 대한 신임투표(아니면 시무투표)가 있었습니까?
넷째, 시무투표와 신임투표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다섯째, 시무투표의 득표율은 몇%인지?
여셧째, 시무투표에서 불신임을 얻게 되면 그 목사님의 신변은 어떻게 되는지?
시무투표에서 불신임한 교회에서 목회자 청빙은 그 교회가 하는지 아니면 총공회에서 파송하게 되는지,
일곱번째, 장로교 다른 교단에서도 시무투표와 유사한 제도가 있습니까?
여덟번째, 제가 알기로는 시무투표의 시발은 서부교회가 고신에 속해 있을때 고신본부에서 백목사님을 서울로 이동명령을 하였는데 그때 서부교회 독자적으로 목사님에 대한 신임을 물어 결과는 서부교회가 백목사님을 원해서 이동하지 않고 백목사님이 상회불복종으로 제명되고 서부교회는 고신에서 탈퇴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시무투표는 고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지?
죄송합니다. 많은 질문을 드려서..... 꼭 알고 싶습니다.
(답변) 공회 시무투표제도
1.총공회 시무투표 역사
①1970년부터 제도적으로 확립되었습니다.
1970년 시무투표를 제도로 채택하였으며
격년마다 투표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실제 1회 투표는 1972년에 있었습니다.
②시무투표 제도는 꾸준하게 보완되었습니다.
시무투표가 과거와 무조건 같은 모습으로 적용된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투표 일자, 투표 방법, 투표결과에 대한 반영 방법, 반영비율 등
시무투표;는 꾸준하게 보완되었습니다.
백목사님 행정 방향은 엄격한 법조문에 의한 경직성 적용보다는
항상 현실의 다양한 변화와 당시의 신앙 유익 등을 고려하여 시행하면서 조금씩 개선하는 식입니다.
③1988년에 이르러 20여년 경험을 통해 확정되었습니다.
물론 확정되었다 해도
현실 변화와 신앙유익에 꼭 필요하다면 언제든 수정 변경 보충할 수 있는 것이 공회 근본 노선이지만
원칙적 방향은 거의 고정될 정도로 확정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매2년 주기
주일 출석 전교인을 대상으로
비밀투표를 통하여
4분의 3의 지지를 기준으로
미달되면 그 순간부터 그 교회 담임목회직이 무조건 박탈되는 것입니다.
④더 중요한 것은
공회 노선은 시무투표에 앞서
'개교회자유'라는 원칙이 더 큰 원칙이므로
이 제도를 거부하겠다는 교회가 있으면 당연히 강제할 수 없습니다.
이 제도 자체를 어떤 식으로 적용하느냐는 그 일체가 각 개교회 자유입니다.
다만 이 제도가 후퇴된다면 공회성의 후퇴일 것이고 이 제도가 거부된다면 공회노선의 거부일 것이며 이 제도가 충실하게 지켜진다면 충실한 이 노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각 개교회가 노선 충실을 위해 일시 또는 부분적인 변경 적용은 가능할 것입니다. 교회 내 특별 상황이 있어 시무투표 일시가 며칠 변경된다든지, 시무투표 주관자가 관례와 달라진다든지, 투표용지나 표시 방법의 변화 등은 항상 변동 가능합니다.
⑤1989년부터는 장로직도 시무투표의 대상
백목사님 돌아가시던 마지막 해 총공회에서
시무투표를 목회자에게 오랜 세월 적용하여 가진 경험을 가지고
장로님들에게도 적용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⑥시무투표와 신임투표
신임투표는 대개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지지도를 위주로 붙인 이름이고
시무투표는 목회자의 시무를 계속하도록 하겠느냐는 결과를 중심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처음부터 교역자에 대한 교인의 신임여부 투표는 교역자 이동에 참고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시무를 위한 신임투표'가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현재 두가지 이름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투표 결과 신임이 되지 않으면 시무는 자연스럽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⑦시무투표의 기준은 75%입니다.
교인들 중에서 목회자를 눈 앞에 두고 차마 반대표를 던지지 못하는 여러 형편의 교인들을 고려했습니다. 반대표시가 25% 정도 나온다면 실제 그 목회자는 그 교회에서 교인 전체 지지의 50%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정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⑧투표 결과 75% 미만이 된다면
해당 목회자는 결과 발표 즉시 그 교회 담임목회자가 아닙니다.
투표일이 대개 주일이기 때문에 바로 그날 이사할 수는 없고 당장에 오후 예배나 월요일 새벽예배가 있으므로 몇 번 더 예배를 인도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교회의 요청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후임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가 월요일 이사를 요구하면 바로 떠나야 합니다.
다만 불신임을 받아 담임목회직이 박탈된 경우라 해도 온 교회가 새 목회자를 결정할 때 불신임 받은 그 목회자를 다시 결정한다면 바로 후임으로 다시 목회를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떤 결정을 해도 목회자는 퇴직금이나 사표 이후의 생활 등을 두고 교회를 상대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혹독한 교단에서 목회자가 목회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타교단으로 가면 됩니다.
2.타교단의 사례
①감리교나 기장측 교회의 예외적 사례
2002년 기장측 향린교회가
목사직과 장로직에 대하여 6년 임기제를 시행하고 연임시 신임투표를 통과하도록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다시피 향린교회라는 이름과 기장측이라는 교단은 신앙체가 아니라 사회운동을 하는 운동권교회입니다. 현재 그들의 모습은 교회라 할 수 없어 교회답게 운영되는 곳도 없기 때문에 세상 진보정치가 차원의 그런 발상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한 교회만의 단독 결정이었을 뿐입니다.
1990년대 후반 어느 감리교회로 기억되는 곳에서
한 교회가 한번 시무투표를 한 적이 있다 해서 일반 세상신문에 혁명적 발상이라며 극구 칭찬을 받은 소식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그 교단의 교단적 제도가 아니라 어느 한 교회 한 목회자의 개별적 조처였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의 경우
만일 교회가 3년마다 시무투표를 할 수 있다면 교회 내에 혁명적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수측 노선에서 순수 신앙적 생각으로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의 발언은 현실 교회를 모르고 신학교에서 이론만 가지고 강의하는 마음 편한 학자였기 때문에 발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에게는 그냥 헛말로 넘어갔습니다.
②고신 시절 서부교회의 시무투표
1959년 백목사님이 고신에서 제거되던 당시
고신이 별별 죄목을 씌워 제명을 하려 들 때 교인들이 담임목회자에게 차마 눈 앞에서 어떻게 반대를 하겠느냐는 말들이 있었고 백목사님 역시 교인들의 진심이 자기를 따르겠다면 목자로서 책임이 무겁지만 만일 교인들이 속으로 원치않는다면 굳이 장로교법이나 교회법을 무리하게 적용시켜 현직을 지키려는 다른 목회자들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교인들의 실제 마음을 비밀투표로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신의 법이나 제도에 의한 것이 아니고
백목사님의 교회 내 교인들의 진심을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으므로
고신의 시무투표 제도라고 말할 수는 없고 단지 고신 시절 백목사님의 교회 내 행정 행위 중 하나일 뿐입니다. 만일 고신 시절 이런 행동 하나가 고신의 제도적 재산이 될 수 있다면, 우선 고신이 극구 반대하고 거부할 것입니다. 만일 고신에 시무투표제가 적용된다면 당장에 고신은 공중분해가 될 것이고 그 최대피해자는 고신 거의 전부 지도자들이 될 것입니다.
③교계와 시무투표
이론적으로 좋은 제도가 있다 해도
현직 모든 목회자나 기득권을 가진 지도부가 강력하게 저항한다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해방 후 신사참배의 잘못은 절대 진리로 인정이 되었지만
해방 후 오늘까지 신사참배 앞장선 지지자들이 한국교계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독점하였고
그들을 잇는 그 직계 후계자들에 의하여 오늘까지 내려왔으며
당시 범죄한 당사자들과 1세대 관련인들이
다 죽고 일부 은퇴한 상태에서 '선언적'으로 그때 우리가 잘못했다고 최근 고백하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고백해 봐야 손해갈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노종들의 멋진 장식품처럼 보이니까 쇼를 하고들 있는 정도입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최저생계비로만 산다면
주님도 기쁘하실 것이고 성경에도 맞을 것이고 온 한국교회 교인들이 전부 환영할 것이고 불신자들까지도 갈채를 보내겠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마찬가지로 현직에 대한 평가와 책임을 주기적으로 물어 실력없고 무능하고 문제있는 목회자들을 아무 조건 없이 내쫓는다면 아마 한국교회 거의 모든 목회자는 반대할 것이고, 혹시 찬성하는 목회자들이 있다면 현재 갈 곳이 없어 임시직이라도 갈망하는 이들일 것입니다.
3.시무투표의 성경적 근거
특별하게 시무투표를 할 수 있는 성구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방향과 신앙 유익을 위해 너무나도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즉, 성구 하나에 근거를 두지 않고 성경 전체의 방향과 뜻을 살펴 시행하고 있습니다.
①한번 담임목회자면 항상 담임목회자의 자격이 있는가?
고전10:12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목회자도 크게 시험들어 교회의 유익은 커녕 교회를 다 파괴할 수 있으므로
목회자가 목회자로 바로 걸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의 경우 사울왕의 경우를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마20:16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그 교회 목회자는 대개 그 교회 제일 앞세워 나갈 자로 세우지만
어느 순간 뒷선 자가 되어 그 교회 전체의 짐덩이가 될지 모릅니다.
마18:22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
하루 몇번이나 죄를 지어도 용서하리이까 하고 물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의 직분은 어느 한 사람에게 한번 직분을 맡기면 평생 그 직을 가지는 것이 원칙이나
신약은 어느 한 사람에게 평생 자격증으로 주어지는 제도는 없습니다.
사도 유다조차도 잘못된 길을 걸었을 때 그 사도직이 취소되었습니다.
하물며 그 외 모든 직분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롬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목회자의 몸도 의에 드려 의의 병기로도 사용될 수 있고 불의의 병기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한번 목회자로 나선 사람이라 해도 그가 계속 목회자로 바로 살아가는지
한번 담임을 맡았다 해도 계속 그가 담임을 맡을 수 있는 상태인지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②왜 교인이 담임목회자를 평가하는가?
눅6:41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목회자의 신앙이 교인보다 더 탁월하다 해도
목회자 자신의 단점을 보는 것은 목회자보다 교인들이 낫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에게 목회자 평가를 부탁하면
서로 봐주는 부정과 편파가 있을 것이므로 정상적 평가가 어려울 것이므로
목회자의 평가를 '말하자면' 목회자의 원수가 되는 교인에게 맡겨 날카롭게 비판하자는 것입니다.
요10:4-5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또한 교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긴 자기 목자를 찾는 지혜와 본능을 주셨으므로
담임목회자가 그 교회의 목회자 노릇을 하지 않고 변질되고 타락된다면
정상적인 교인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③목회자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약3:1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때 목회자가 자기 부족과 불충을 알게 되면 고칠 기회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전 교인들에게 우선 심판을 받으며 모의고사를 치르고 자신을 살피자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억울하게 평가하면 마5장 말씀대로 하늘의 상이 클 것이니 참으면 되고
교인들이 자기 잘못을 잘 지적해 준다면 고쳐서 목회자가 먼저 복을 받자는 것입니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결국 목회자들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자기가 책임졌던 모든 교인들 하나하나와 하나님 앞에 함께 서서 그들에 대한 잘잘못을 함께 책임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미리 책임지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④목회자의 근본 의미
레4장에서
일반 평민의 범죄와 족장의 범죄와 제사장의 범죄는 그 죄의 무게가 전혀 달랐습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자이니 누구보다 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요10장에서
목회자는 양떼보다 앞서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돈과 명예와 부귀에 있어 앞서 누리고 가라는 것이 아니고
복음에 대한 수고와 모범과 회개와 건설에 앞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 교인들이 감당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책임을 졌으니
시무투표와 같은 제도를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 공회노선에서는 목회자 근본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회 노선의 상식이므로
간단하게 쉽게 적어보았습니다. 필요하면 보충 질문으로 자세하게 살폈으면 합니다.
번호를 붙이며 설명하는 것은
그 번호 순서대로 이 노선의 공식 입장이며 근거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 아니라
질문에 대하여 답변자가 평소 이 노선에 대한 상식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글에서
읽는 사람의 내용 파악에 도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