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를 `사단의 회`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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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총공회를 `사단의 회`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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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총공회/문답/7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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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총공회를 `사단의 회`라고 90년도에 설교하신 이재순 목사님의 말씀에 대한 질문


백목사님 순교후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서부교회에 부임한 이재순 목사님께서 1990년도 주일 오전 예배시(정확한 일자는 잘 기억이 안남) 계시록 3장 9절에 있는 말씀(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을 하시면서 그당시 총공회를 `사단의 회`라고 하셨습니다. 교회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저로서는 의문이 생겼으나 자세히 알아 보지 않았으며 지금도 왜 그렇게 말씀 하셨는지 궁금하여 질문을 드리오니니 혹 아신다면 알려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바로 하면 성령의 회, 잘못 가면 사탄의 회라고 한다면, 당시는 명백한 사탄의 회



1.현재 총공회 역사 전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 신앙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공회 관련 기록은 거의 완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곧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총공회 역사의 통촬을 확실하게 체계화하겠습니다. 물론 총공회 관련 자료 중 대구공회에서 공회 분리 때 따로 보관하고 오늘까지 그 공개를 거부하는 문서 몇 건이 있고 또 각 공회가 공회 분리후 걸어온 걸음에 대하여는 철저히 내부 중요 문건을 덮어버리고 있지만 '총공회 통사' 구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평양정권은 모든 정보나 자료를 체제 유지를 위해 철저히 사용해야 할 형편에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대외용과 대내용을 구별하고 있으나 한국현대사를 기록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정도입니다. 가룰래야 가룰 수 없고, 또한 가루어서도 안되는 우리의 어제가 있었다면 이는 하나님의 과거 섭리였으므로 사실대로 내놓고 우리 신앙노선으로 자세한 연구 검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각 공회의 잘못이 있었으면 세상과 달리 먼저 내놓고 회개할 일입니다. 이곳은 가루고 있는 공회를 향해 비판과 심판 목적에서 공개를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제로 지나갔던 사안들을 꼭 되돌아보라시는 하나님의 요구가 있고 그 요구는 앞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정리하겠다는 것입니다.


2.우선 질문이 계셨으니, '사탄의 회'라 했던 1990년경 이재순목사님의 발언을 살피겠습니다.

①우선 이재순목사님의발언은 1989.10.17. 제20회 총공회를 두고 했던 말입니다.

화요일 저녁 7시, 백목사님 사후 첫 총공회가 임시회로 개최되었습니다. 총공회장 선출투표는 총 157명(목사님 43, 장로님 41, 조사 72, 집사 1) 중에서 대구공회측에서 밀었던 백태영목사님이 89표, 부산공회측에서 밀었던 서부교회 이재순목사님이 59표였습니다. 총공회장은 사회만 해야하고 회의가 마치면 즉시 '서류결재를 위한 총공회대표 이름 사용'만 하는 것이라는 것이 부산공회의 입장이었습니다. 대구공회는 총공회장은 백영희목사님 생전 백영희목사님이 가진 모든 권한을 이어받고 행사하는 자리라고 주장하여 왔었습니다. 따라서 총공회장에 선출된 백태영목사님은 그날 그자리에서부터 생전 백영희목사님처럼 한다고 모든 처리를 시작하게 됩니다.

회의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행정노선에 있어 '총공회 노소원위원회는 집행기구냐 심의기구냐'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었고, 교리적으로는 재독설교 예배가 성경적이냐 성경위배냐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②대구공회에서 제기한 '총공회 집행기구 설치건'

원래 총공회는 1988년과 89년에 걸쳐 대단히 심각하고 집중적으로 그리고 또 오랜 검토와 시행을 통해 '총공회 노소원위원회 운영체제'를 확립해 두고 있었습니다. 총공회의 공회적 운영은 '노소원위원회'가 전담한다는 것입니다. 총공회적 사안에 대한 의논 결정 집행 일체를 일괄 담당하는 기관이었습니다. 총공회장은 총공회 회의 때 사회만 하는 것으로 그치고 회의가 끝나면 총공회 대표 직인이 필요할 때 명의만 자동으로 '총공회장'으로 남게 되는 것이며 실제 총공회 운영의 총괄은 이 5개 분과 45인으로 된 노소원위원회가 담당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노소원위원회의 업무를 설명하면서 백목사님은 '심의 (尋意)'라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한자 뜻까지 들어 '찾을 심, 뜻 의'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심의이니 노소원위원회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뜻만 찾아 결정을 하고 나면 시행은 누가 하느냐고 집행기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국회가 결정하면 정부가 시행하듯 노소원을 뜻을 찾는 의논기구로만 이해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백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을 노소원이 찾아 결론을 내렸다면 그 결론대로 시행 집행하는 것이 당연하니 노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이 확정되었으면 시행과 집행은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다시 설명을 해 준 것입니다.

즉, 총공회는 노소원위원회에서 모든 공회사안을 결정하고 집행하되 그 위원회는 하나님 뜻만을 찾아 그대로 실행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여 '심의(尋意)기관'이라고 누누히 강조했던 것입니다. 오해를 피하고자 세상이 말하는 '심의(審議)' 즉, 의논만 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었습니다.

1989.10.17. 제20회 총공회의 첫 중요 의제는, 총공회는 의논하는 심의(審議)기구만 있고 집행기구가 없으니 집행기구를 만들자고 대구공회측이 제의를 하고 부산공회는 이를 반대하며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총공회의 수준을 볼 수 있고 또 앞날의 총공회 분란의 성격을 볼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어제 'A'를 결의한 다음, 다음날 회의에서는 어제 결의한 것이 'A'였다 'B'였다 하는 것으로 싸움이 생기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안에서는 거의가 다 'B'로 결의했다고 기억하고 확인해버리는 목사님들이 더 많고 그렇게 기억하는 장로님 조사님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싸울 필요도 없고 싸울 이유도 없으며 싸워서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난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초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했는지 심사를 하게 되면 회의는 일단 무난하겠지만 인본주의가 목회를 휩쓸기 때문에 탈이니, 이런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벌어질 줄 알면서도 인본주의를 막기 위해 공회는 초보적 회의운영과 기억력도 미달되는 분들을 목회 주도세력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날 회의의 절반을 이 문제 하나를 가지고 대구공회는 집행기구도 없는 총공회가 있냐고 펄펄 뛰고, 부산공회는 노소원위원회가 심의(審議)와 집행을 동시에 맡은 '심의(尋意)기구라고 설명하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부산공회는 비록 인본주의 지식주의지만 일단 기본학력과 사고력이 정상적이어서 '총공회 위원회'가 집행기관이라고 인식하고 발언했으며 대구공회는 초등학교 학급회의도 제대로 거쳐본 분들이 없어 '말장난'만 남발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발언이 오고가봐야 해결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시점에 답변자는 1989년 3월 19회 총공회 때 녹음기록을 읽었습니다. 그때 전부 집행기관이라는 점을 재삼 재사 확실히 하고 결의하였으며 재질문까지 있었으나 그 재질문조차도 다 재답변을 통해 끝난 일이었다는 점을 일일이 지적하자 사회자는 그 기록 정말이냐 라는 말과 함께 회의자체를 사회자 혼자 운전해서 사회자가 원하는 곳에다 전부 하차시켜버렸습니다.

그후 이날 백태영목사님의 단독회의로 끝내버린 내용에 의하여 대구공회와 서울공회는 '총공회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오늘까지 공회운영을 해 오고 있는데 역사를 알고 사실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당시 상황은 오늘의 대구공회와 서울공회가 입에 백개라도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혹 한 마디를 하려면 그 당시는 전적 잘못되었지만 어쨌던 대구공회의 현재 제도와 운영이 좋은 것은 분명하다고 분리하여 주장하고 이 문제는 별건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③손오용목사님과 이원일목사님이 앞장 선 '재독설교를 정죄한' 교리문제

앞에 안건이 뒤도 닦지 않고 일어선 사람처럼 못내 꺼림칙하게 되었던 당시 회의는 또 하나 더 남아있던 재독설교 정죄건으로 이어지며 단순간에 회의분위기를 바꿔놓고 있었습니다. 평소 신사참배와 같은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며 반대해온 대구공회측에서 이 문제를 정식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부산공회측은 설교의 한 방법으로 택할 수 있으므로 정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고 각 교회가 은혜와 형편에 따라 자유할 문제라고 적극 반대하고 나서게 됩니다.

앞서 행정노선의 문제였던 '총공회위원회 성격'에 대한 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건도 양측은 그 입장이 정반대였습니다. 손오용목사님이 '재독예배는 성경위배'라고 깃발을 들고 가장 선두에 섰고 이원일목사님이 교계 어느 교단장님이 불러서 갔는데 이단문제가 들어갈 것이라고 하여 시급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이어 미리 준비한 대구공회측은 이를 금지해 달라는 청원서를 회의 도중 돌리게 되고 이 청원서는 제목만 103자에 이르고 B4용지 4장에 이르는 논문인데 사회를 보던 총공회장 백태영목사님은 제목만 읽은 다음 사회자의 의견과 주장으로 발언자를 눌러가며 30여분만에 결국 다수결로 처리해 버리고 말아버립니다.

교리문제기 때문에 단 하루저녁이라도 생각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답변자의 최종 주장과 이런 요청은 받아주어야 한다는 서영호목사님의 지원발언이 있었으나 사회자는 교리 문제는 몇달을 연구해도 알쏭달쏭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니까 이제 먼저 해놓은 결의를 두고 다음에 연구해서 이의를 제기하라고 끝을 내버립니다.


④당시 서부교회 이재순목사님이 '사탄의 회'라며 발언을 하고 나섰습니다.

문제가 되는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탄의 회라, 사탄의 회. 여기는 목사님이 순교한 이 자리야, 여기가.
사탄의 회라, 사탄의 회. 자칭 유대인인데 사탄의 회라. 나는 가면
그만이야. 내일 가요, 나는. 절대로 여기 안 있을거라. 서부교회 마음
대로 해요. 있으라면 있고 가라면 가고. 내가 이삿짐을 안 가져왔어요,
아직도. 무슨 소리 하고 있어? 총공회장이 뭐인데? 당장 지금 앉아서
그런 소리 하고 있어? 서부교회는 이만오천이야. 일주일에 이만오천의
인구가 예배를 보는데 무슨 소리 하고 있어? 순전히 사탄의 회라, 이게.
총공회장 할라고, 총공회장 할라고!"


이재순목사님의 발언이 있었고 또한 격분한 서부교회 청년들이 들고 일어섰으며 서부교회 부목인 강행수목사님, 주일학교 부장이었던 서문행장로님, 총무 장영목조사님 등이 강단으로 올라가서 목청껏 항의를 하게 됩니다. 황급히 사회석에서 내려온 백태영목사님을 이재순목사님이 가로막아 서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새끼!' '사탄의 회'라고 욕을 했고 또 주먹을 휘둘렀다는 것이 대구공회측과 백태영목사님의 주장입니다. 그후 이 일을 가지고 대구공회는 '거룩한 공회를 욕했다' 하여 명예훼손죄로 형사고발을 하게 되었고 다른 수십건의 민형사고소 고발로 향후 10여년 총공회 소송사건들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3.1989년 총공회는 완전히 미쳤다고 보는 것이 이곳의 냉정한 평가입니다.

당시 총공회장으로 총공회 모든 회의를 주도하고 자기 뜻대로 모든 회의를 몰아간 백태영목사님은 사탄에 붙들린 상태였고, 그분을 앞세워 총공회 신앙노선을 수정하려고 노력했던 오늘 대구공회의 주축 목회자와 교인들은 역시 사탄에 붙들려 했던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상황과 자료를 아무리 분석하고 살펴봐도 결론은 그렇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해석이며 이것이 총공회 신앙노선적 발표일 것입니다.

물론 그날은 그랬지만 또 다른 날 다른 사건에서는 부산공회가 그렇게 사탄에 붙들려 소송에 응하고 나선 경우도 있고 또 다른 날에는 대구공회가 옳고 바른 길을 먼저 깨달아 나서고 반대측이 사탄의 사람으로 역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루에도 490번 이런 현상은 바뀔 수 있고 변할 수 있으며 이쪽으로 저쪽으로 오갈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1989.10.17. 제20회 총공회 하나만으로 분석한다면 백태영목사님과 대구공회측은 그날 서부교회 이재순목사님이 공개 발표한대로 과연 '사탄의 회'였다는 것을 이곳도 단정하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 이재순목사님이 대구공회에서 제거된 후 서부공회 안에서 과거 백태영목사님과 같이 교권을 잡게 되자 백태영목사님과 꼭같이 교권을 사용하여 그분 역시 부산공회(2)나 부산공회(3)으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도 함께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4.거의 모든 사안에서 과거 문제가 일단 제기되면, 대구공회는 거의 잘못이 증명됩니다.

과거 1989년 공회의 주요 요직을 확보하고 또 숫자에 있어 2/3이상을 가지고 만사를 힘으로 밀어붙이던 시절은 이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옳은 것같고 저쪽 말을 들으면 저쪽 말이 옳은 것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혼돈을 했습니다. 이제는 교권도 폭력도 소송도 삐라도 전혀 통하지 않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고요히 차분히 냉정하게 과연 그 당시 어떤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려면 아무 이해관계없이 사실을 사실대로 밝힐 수 있는 때입니다.

당시는 단 하루밤도 그냥 둘 수 없다며 부산공회와 서부교회를 그렇게 폭격해버린 백태영목사님과 대구공회는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때 결정이 옳았느냐는 문제도 발표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때 형제를 구해주겠다고 의분으로 달려와서 결정했던 형제애도 없어졌고, 그때 발언한 발언도 없어졌습니다. 교계가 이제 곧 이단으로 정죄하고 들어올 것이니 총공회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을 벌였는데 오늘까지 재독을 하고 있지만 이단소리는 커녕 교계는 오히려 비디오이용 예배와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 방면에는 총공회가 한발 먼저가는 선진목회를 선보였다고 평가가 나오는 정도입니다.

오늘 대구공회가 그토록 조심하듯 '어린 신앙 상처받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라'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보다 어린 사람이 놀랄까' '옳은 것도 어린 사람 오해하지 않는 정도에서 발언하고 만일 기미만 보이면 삭제한다'고 이토록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대구공회측이 '비디오재독은 우상죄'라 하여 총공회에서 정죄하고 또 서부교회 예배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막대기를 맞추어 의자를 두드리며 조직적으로 예배를 방해한 것과 주일오전 예배 후 나오는 교인들 머리위로 뿌렸던 삐라 등등에 대하여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의 대구공회는 그날의 대구공회가 뿌리되어 자란 것인데 뿌리를 자르면 오늘의 대구공회는 1989년으로 돌아가서 분해조립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고, 그날이 옳다면 오늘의 대구공회는 진리를 외치지 않는 인본 타협주의라고 정죄를 받아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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