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교회목사님의 겸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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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5 00:00
출처: /총공회/문답/43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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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서영호목사님의 교수직 겸직에 관하여
서부교회의 강단을 지키는 서영호 목사님의
첫번째 잘못된 점은 신임투표 불복 및 신임투표제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며
두번째 잘못된 점은 교수직을 겸직하면서 목회를 하고 계신데 이 점과 여러사항에 대해 질문을 드립니다.
1. 목회자가 교수직을 겸직함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요 ?
2. 백목사님께서 외국에 유학을 보내셨을 때는 어떤 면에서 중점을 두고 유학을 보내었고 이들이 총공회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나요 ?
3. 서목사님이 재직하고 있는 신학대학은 어떤 곳이며 총공회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곳입니까 ?
4. 서목사님의 교수재직은 언제부터이며 그것이 개인신앙차원에서 무엇이 유익이며 목회자 측면에서는 어떤 면이 무익한 것인지요 ?
5. 서목사님의 교수직 활동으로 인해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는 다른 분들이 강단에 서시던데 이에 은혜면에서 장단점이 있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생각은 ?
6. 찬송가 94장을 예배 또는 준비찬송때 최근 제가 알기로는 한번도 부르지 않던데 이러한 것이 의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
7. 부산공회2라 지칭하는 여러분의 목사님들을 보면서 다른 목회자들도 그러하겠지만 참 설교를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재독집회보다는 자기가 준비한 설교가 더 적시적이고 좋은 것 같이 느껴지고 또한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니 내가 준비한 설교를 전해주고 싶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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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듯 성령의 충만한 하나님의 말씀이면 오지 말래도 새벽기도에 나오고 전도하지 말래도 전도하게 됩니다. 덧붙여 백목사님을 통해 증거하신 말씀을 배우고 더 은혜를 받아 말세지말에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증거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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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백목사님의 순교를 부인하는 것은 아닌지요 ?
그냥 괴인에게 칼에 찔려 죽었다고 생각이 되고 오호라 내가 나설때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
아니면 행함으로 나타내시길 바랍니다.
(답변) 한 소속의 겸직과 두 소속의 겸직
1.백목사님은 한 사람에게 한 가지만 전문 시키는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사찰도 반사를 하게 하고, 장로도 설교를 하게 하며, 목회자가 교회 운전기사도 하게 합니다. 시골 작은 교회 목회자와 대도시 거대 교회 목회자를 수시로 맞바꾸게 하여 경험도 다양하게 쌓게 합니다. 이번 질문을 두고 가장 두드러진 백목사님의 인사방향 중의 하나는, 목회자가 목회를 중단하고 연구나 기타 다른 업무 하나에 종사하는 것은 최대한 금지하고 있습니다.
교수를 하는 사람이 목회를 하지 않으면 죽은 강의와 연구를 하게 되고 자기 자신이 하나의 책보따리 밖에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일반 교단들은 강의하는 교수들이 담임 목회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공회는 반드시 목회와 강의를 겸직하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영호목사님이 강의만 하지 않고 지금까지 목회를 겸직하고 있음은 공회 노선이 주는 특별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분과 비슷한 경력으로 교수직을 가진 분들이 목회와 교수직을 다 함께 전념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마 있다면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사연이 많을 것입니다. 서목사님은 공회 내에 계셨기 때문에 서부교회와 총공회양성원의 교회사교수직을 겸직해 왔습니다. 그것은 아주 잘 하신 것입니다.
2.서목사님의 해외 유학과 백목사님의 지시
서목사님이 유학에 뜻을 가지고 먼저 일을 추진했기 때문에 백목사님은 마지못해 추인을 한 정도라는 분들도 있고, 백목사님이 지시를 하게 되자 절대로 유학을 가기 싫은데도 백목사님의 지시라면 평생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는 분이어서 오직 순종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가게 되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서목사님 지지측에서 늘 즐겨 사용하는 말이고, 첫번째 내용은 서목사님 반대측에서 주로 나오는 표현입니다. 답변자는 백목사님과 서목사님 두 분을 빼놓고는 이 사실을 가장 잘 아는 분에게 첫번째 말이 맞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답변자도 그 주장이 맞다고 알고 있습니다.
3.유학의 사명과 결과
서목사님이 유학갈 때 목사님께서 강조하고 주의시킨 일은 이미 설교록과 그분 최후까지 설교한 여러 설교시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일반 신학에 대하여 또 해외 유학에 대하여 가진 생각과 노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입니다. 신학은 구경으로 족하고 단지 간판 하나 붙여가지고 와서 이 노선의 순수한 것을 가르칠 때 행여 외부에서 무식해서 그런 못난 것을 가르친다는 말을 좀 누그러뜨리는 효과 정도를 기대하는 차원입니다. 또 이왕 구경하러 갔으면 우리 것과 그곳의 일반 신학을 비교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더 좋은지, 좋으면 왜 좋은지 등을 비교한다면 유학이라는 불행한 길을 택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다소 감소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불행하게도 서목사님은 해외 유학 기간 도중에 일반 노선을 접하다가 그 노선에 충실한 분이 되었다는 것이 답변자의 평가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정말 고마운 것은 그분은 답변자나 우리 공회의 일반 목회자들과 달리 그 출신이 고매하고 인격과 살아온 길이 고고하여 모든 결정과 발언을 할 때 신중한 편이라는 점입니다. 자신이 공회 출신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이 노선에 소속하지 않아야 할 신학을 배웠고 그런 신학을 옳다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노선을 버리지 않고 송목사님처럼 탈출하지 않았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조금만 조급해도 단번에 팽개치고 도망가는 정도인데 서목사님은 우리와는 아주 차원이 다른 인격자입니다.
그런 동시에 그분은 해외 유학생활에서 익히고 배운 일반신학을 마음 속으로 옳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귀국 후 양성원에서 강의를 할 때 백목사님이 아무리 비판하고 아무리 금지해도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반 노선의 신학을 양성원 안에서 가르쳤습니다. 이 역시 양심과 소신을 갖춘 보기 드문 목회자라 할 것입니다. 대개 눈치를 보다가 안 되면 재빨리 튀어나가고 하는데 우직하리 만큼 곧게 자기가 갈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 홈의 답변자는 사정없이 비판하지만 공회의 거의 모든 교역자들은 서목사님의 그런 양심적이며 학문적인 자세를 흠모하여 목사님 생전에 목사님이 엄청나게 책망을 했지만 서목사님은 여전히 공회 거의 모든 목회자에게 존경을 받았고 그분이 어느 공회로 가느냐에 따라 공회 분열 시에 공회 세력에 판도가 바뀔 정도였습니다. 김영채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부산공회와 대구공회의 분열을 두고 정확하게 중도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서목사님이 서부교회로 청빙되는 모습에 감동하여 바로 부산공회로 가입을 신청했다고 교역자회의 때 고백한 정도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홈과 공회의 보수노선 입장에서 보면 서목사님은 이스라엘에 음풍과 이방 우상들을 대거 수입하여 보급한 공회 사상 가장 큰 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고, 총공회 내부의 대부분 개혁파들은 서목사님에 대하여 절대적인 지지와 흠모를 아끼지 않으며 서목사님이야말로 진정 백목사님을 구시대로 밀어내고 총공회의 신세대를 열어갈 지도자로 생각한다고 하겠습니다.
4.현재 서목사님의 재직하고 있는 신학대학원
현재는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라는 정식 명칭의 대학원 역사신학 교수입니다. 이곳에 전임 교수로 발령 나기 전에도 일반 교계 신학교에서 강의를 한 경력들이 있습니다. 계신대는 김현봉목사님 계열에서 수정노선의 대표였던 이병규목사님이 서울의 창광교회를 중심으로 만든 교단의 소속 신학교입니다. 마치 총공회에는 '총공회양성원'이 있듯이, 이병규목사님의 교단에는 '계약신대원'이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목회는 총공회 중심인 서부교회에서 하고, 목회자를 기르는 것은 계약신학교에서 계신교단 노선의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병규목사님은 피난 시절 부산의 고려신학교에서 백목사님을 알게 됩니다. 김현봉 백영희 이병규, 이 3분을 따르는 분들은 서로 3분 중에 자신이 따르는 분이 신앙에 가장 앞선다고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신앙연륜 등을 봤을 때 김현봉 백영희 이병규목사님 순서로 잡는 것이 맞습니다. 또 각자 자신의 길을 뚜렷하게 개척한 분들입니다. 이병규목사님이 김현봉목사님 밑에 계셨다고 하지만 이목사님은 머리를 깎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김목사님을 선배로 알고 배울 것은 배우되 자신대로의 길을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규목사님측에서는 백목사님의 이목사님이 백목사님을 안수한 안수위원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백목사님은 안수나 목사 이름을 일반 진영처럼 서열과 선후배를 따지는 기수로 보지 않는 분입니다.
성경과 신앙으로는 백목사님이 이목사님에 앞서 있으나, 신학적으로는 이병규목사님이 앞서 공부했고 졸업했으며 또한 신학박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교계적 활동은 많이 했습니다. 김현봉목사님 생전에 이병규목사님 측으로서는 김목사님 밑에 이목사님이 후임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을 했으나 백목사님이 김목사님의 후임이 될 것이라는 정도가 됩니다. 이후 김목사님께 백목사님의 험담이 많이 들어가고 김목사님이 백목사님을 비판하게 되자 백목사님은 조용히 김목사님과 관계를 정리하게 됩니다. 이후 이목사님은 김목사님의 후임을 일시 맡게 되나 심각한 내분에 휩싸이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신학대학원은, 역사적으로 본다면 한때 총공회 노선과 제일 가까왔고 형제로 함께 한 적이 있었고 그후 완전히 나뉘었습니다. 우리 노선을 기준으로 이 노선과 함께 하다가 이 노선을 이탈한 대표적인 분들을 살펴 본다면, 이인제목사님이 백목사님 신앙노선을 따르다가 노선에서 이탈한 첫 경우이고, 이병규목사님이 두번째이며, 백영익목사님이 세번째, 김석준목사님이 네번째, 신도범목사님이 다섯번째, 송용조목사님이 여섯번째였습니다. 목사님 사후로 말한다면 백태영목사님이 일곱번째, 지금 서영호목사님이 여덟번째로 그 길을 걷는 것인지 아니면 경계선에서 두 노선을 저울질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부교회 부임으로 이제 공회 내부로 기울여지는지, 아직 지켜봐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
노선 이탈은 처음 나뉠 때는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기 어렵고 특히 외모는 흡사하기 때문에 대개 세상 인연 등으로 뭉쳐 나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세월 속에 교회역사는 그 분화 과정에서 어느 노선이 옳고 그른지를 분명히 열매를 가지고 보이고 있습니다. 이인재목사님의 훗날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고, 이병규목사님은 오늘날 일반 교계에 완전히 편입이 되었고, 김석준 신도범 송용조 백태영목사님 등 모든 분들이 왜 이전에 백목사님과 한 길을 갔었는지, 그 당시의 신앙과 노선을 완전히 등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홈으로서는 서부교회 담임목회자가 계신측 교단에 소속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송용조목사님 밑에서 제사장으로 떡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미 그곳 교수 겸직 순간 내용적으로는 공회를 탈퇴했다는 선언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심 판단과 객관적 표현 사이에는 조심해야 할 기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5.서목사님의 교수재직 시기와 개인신앙차원의 유익과 목회자로 무익한 면
교수재직 시기
계약신학대학원의 설립 초기 핵심 교수로 시작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한 것은 '계신대' 홈페이지와 이 홈의 /공회내부소식/에서 참고할 수 있습니다.
개인신앙의 유익
개인의 개별 영감 인도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조심할 문제 중 하나입니다. 다말을 유다에게로 인도한 것이나 룻을 보아스에게로 인도한 것은 그들의 정욕이 아니라 성령이었습니다. 분명히 일반인에게는 범죄 행위인데도 성령은 그렇게 개별 인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가지 구약 사례를 두고 평가할 때, 일반적으로 그런 짓을 하면 분명히 범죄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그것이 죄냐고 다시 묻는다면 성급히 판단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다만 이 홈에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고신 목회자가 총신에 가서 교수를 한다면 기생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목사님이 서부교회 목회자로서 계신대 교수를 한다면 이 홈은 마찬가지로 극단적으로 표현하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할 때 답변자 표현을 주의깊게 읽으셨으면 합니다. 일반 경우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서목사님이 혹 개별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십계명을 범하게 되는 일이 전혀 없다 할 수 없으니, 늘 그럴 가능성은 두면서 일반론적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 술집에 들어갔으면, 그 목사 이름을 거명하면 나쁜 놈이라고 우리는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 속에는 항상 한가지 사실이 유보되어 있습니다. 혹시 구약의 룻과 다말처럼 하나님께서 그런 인도를 하시는 것은 아닌지...
목회자로서의 유익
이 노선은 목회자의 변절과 양다리 걸치기 그런 행위는 불신자급으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 내에서 이 구역 저 구역을 기웃거려도 신앙의 창기라고 목회자가 책망을 해야 하는데 하물며 목회자 자신이 자신의 생명과 평생과 목회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할 신앙노선을 두고....
아무리 개인사라 해도 우리가 한번씩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서부교인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고, 몰래 그곳으로 다니고 있으며
양쪽에서 월급을 다 받고 있는 등, 여러 면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만
이제 서부교회 교인들은 예전 교인들이 아니므로, 바뀐 교인들이 바뀐 목회자를 모시고 새시대의 은혜로 잘 믿어나가는데, 중국집 주인이 과거 중국집 하던 가게가 한식당으로 바꾸어 손님이 좋아라 하는데 이 말 저 말 하는 것은 참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 서부교회는 답변자로서 한편으로는 과거 공회의 중심지역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현 서부교회 내부 2층은 타진영 상대하듯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도 과거 서부교회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걸어온 우리 역사와 우리 재산이 있기 때문에 연관지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6.서목사님의 교수직 활동으로 다른 분이 강단에 설 때 받는 은혜
서목사님 설교가 더 훌륭해도 가끔 더 못한 설교를 들으면 좋은 설교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제 애미는 시시하고 시집 온 새 며느리는 산뜻해 보이는 심리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한 강단에 다른 목회자가 설교를 하게 되면 교인들은 비교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은혜면은 어떤 형태로도 담임목회자에게 전해집니다. 그리고 경쟁심이 촉발되어 서로 노력하는 점은 좋습니다. 한편으로 잠재적인 위협으로 느낄 만큼 반응이 좋으면 일반 교회에서는 더 크지고 분열 문제가 나기 전에 조용히 잠재우기도 합니다. 1989년 9월 교역자회 때 서목사님 표현에 '전도사는 장로교 헌법에 의하면 사람도 아니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부목들도 그렇습니다. 잘 활용하면 교인들에게 간식도 제공하고 또 자신도 더 노력할 수 있는 기회도 되고, 교인들로서는 백목사님 밑에 더 익었던 분들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보충할 기회도 될 것입니다.
7.찬송가 94장의 예배 사용 횟수
이런 면을 가지고 따진다면, 따지는 분들이 목회를 나가서 평생 94장만 부르면 될 듯 합니다. 답변자도 94장 찬송을 잘 부르지 않습니다. 은혜가 덜해서가 아니고 그 순교가 덜해서도 아닙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그 찬송을 부른 횟수를 한번 헤아려 보셨으면 합니다. 가신 목사님에 대한 사모와 예배 찬송의 선전이 잘못 혼합되면 마치, 계시록만 평생 읽고 연구하는 교파처럼, 또 출애굽기만 평생 설교하는 목사님처럼 그리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백목사님의 이름과 그 목회와 그 노선과 그 교훈 자체가 싫은 사람들이 이제 답변자가 설명한 논리를 앞세워 94장을 고의로 누락한다면, 그런 죄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러 목사님 묘지를 피하고 일부러 목사님에 대한 고신측의 50년 전 비방한 거짓말을 자꾸 되뇌인다면 나쁜ㄴㄴ들입니다.
지금 여러 상황으로 고의적으로 피한다고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외부로 내놓을 때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그 표현이 나가는 순간 반대측에서는 백목사님이 우상이라고 비판할 때 이쪽에서도 말을 못해야 합니다.
8.부산공회(2)의 설교와 재독 횟수
재독문제를 두고는 질문이라기 보다 질문자께서 원하는 말씀을 '발언'했다고 생각하여 그냥 읽기만 했습니다. 참고로, 재독을 가장 강하게 주장한다는 부산공회(1), 그 중에서도 가장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재순목사님도 서부교회 부임한 직후 재독을 자주하자는 각 부서 책임자 직원들에 맞서 최대한 설교를 하겠다고 투쟁했습니다. 핵심직원들의 도움이 아쉬우면 재독숫자를 늘렸고 그렇지 않으면 설교를 늘렸습니다. 결국 핵심직원들 전부가 1990년 11월 시무투표 때 불신임으로 의견을 맞추게 됩니다. 지금 부산공회(1)을 무작정 따르는 일반 교인들은 전혀 뜻밖의 사실이겠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재독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던 몇몇 다른 분들도 지금 재독의 숫자를 현저하게 줄였다고 듣고 있습니다.
평소 교회에서 재독을 몇 번 하는지, 또 집회를 어떻게 하는지, 이런 문제는 목회자가 혼자 결정해야 할 사안입니다. 짐작은 할 수 있고 건의는 할 수 있지만 그 성격이 목회자 단독이 결정할 수 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교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소리 할 것 없이 평소에는 지켜보다가 2년 후 시무투표 때, 그때 불신임으로 자기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하면 됩니다. 불신임 투표는 아다시피 4분의 1만 표시하면 목회자를 단번에 평신도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동원을 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면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 공회노선입니다. 교인들에게 이렇게까지 절대 권력을 허락한 교단이 없습니다. 대신 평소에는 특별하게 밖으로 표시나는 잘못이 아니면 최대한 참으라는 권고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