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희 신앙노선의 신학교관?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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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백영희 신앙노선의 신학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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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총공회/문답/79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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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더 탈선한 곳에만 보낸다


초기화면/총공회/발언/ 991 992 994번 내용 중

'미국 카버넌트 신학교는 가도 한국의 신학대학은 가지 않는 것'

이게 무슨 뜻 입니까?
미국 신학교가 한국 신학교보다는 더 속화가 되었을 건데



(답변) 개혁과 보수와 존중 - 신학과정을 중심으로


1.백영희 신앙노선은

성경의 원칙과 성령의 인도만을 따르는 엄한 신본주의이므로
교계가 세월 속에 도입한 여러 제도들을 제도나 관습이라 하여 무조건 답습하지 않고
세밀히 엄히 연구 평가하여 '폐지' '개선' '발전' '유지' '방치' '억제' 등으로 분류 조처했습니다.


2.전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백영희 신앙노선은
루터와 칼빈이 정립한 교회가 세월 속에 속화된 것을 다시 개혁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비교한다면
루터와 칼빈은 기독교가 기독교이기 위해 필요한 개혁을 단행했고
백목사님은 바로 선 교회가 세월 속에 변질된 것을 원래 교회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교회가 정상적으로 발전을 했을 때 가져야 할 모습으로 건설하는 면에 주력했습니다.


3.이 노선이 개혁한 내용을 살펴본다면

교회헌법이나 다수결제도와 같이 교회를 구조적으로 변질시키는 제도는 전면 '폐지'하였고
신학교 주일학교 부흥회 각종 회의 등은 그 실제 내용을 고쳐 사용하도록 '개선'조처했고
교리 주해 설교 등은 정통교리나 해석에 비하여 엄청나게 '발전'을 시켰으며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책과 전도회나 안수 축도 제도는 '유지'를 시키고 있으며
성미 월정 사진촬영 등은 유지나 개선보다는 '방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찬양대
교인의 세상공부나 목회자의 신학공부 등은 '억제'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4.목회자의 신학 과정은

폐지하지는 않았으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면 '억제'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 같습니다.
내키지 않지만 마지 못해 끌려 가듯 하는 정도, 시골에서 처삼촌 벌초같은 심정입니다.

그 위험과 폐단과 단점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폐지가 거론될 정도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없애버린다면 역사 전통의 선배들이 넘겨준 몇 가지 소중한 깨달음을 필요로 하는 수준의 목회자가 섣불리 세계신학이나 일반교계를 자기 아는 몇 가지 한자 실력 가지고 척척 논단하다가 바로 이단 논리를 펼치거나 아니면 귀한 이 복음까지 도매금으로 그 목회자 수준의 막말처럼 대하게 하여 귀한 복음 전파에 큰 훼방거리가 될까 해서 최소한의 상식으로 잠깐 살피게 한 정도입니다.

이 노선의 체질로 볼 때
교회의 공통성 사회성 역사성을 참고하지 않았다면
신학은 전면 폐지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것이나
신학과정 자체가 죄 되는 정도는 아니고 또 조심하면 다룰 수 있는 대상인데
일반 교회들로서는 너무나도 크게 생각하고 있어

신학과정을 최소화하므로
신학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위험한 사상과 단점들에 노출되지 않게 하고
역사 교회 전체 선배들의 깨달음을 간단히 참고하여 더욱 발전에 주력하며
일반 교회의 거센 비판을 피하여 그들로 죄짓지 않도록 하는 유익을 찿은 것입니다.


5.이런 취지 때문에

성경만 읽고 배우고 목회로 실제 교회를 잘 이끌 수 있다면
공회는 목사로 세우는데 전혀 주저할 것이 없고
또 목회자의 실제 실력이 중요하지 '목사'라는 자격증에 대하여는 하나의 형식으로만 생각하므로
공회는 '목사' 제도를 유지하되 목사 양성과정으로 신학을 최소화한 양성원 체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 양성원 제도가 있기 이전인 1975년까지는
공회 목회자 중에서 목사로 평생을 목회해야 할 인물로 인정한 이들에게
자체 신학과정이 없으므로 외부 신학과정을 밟게 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고려신학교를 택하여
백목사님을 비롯하여 이재순 최재현목사님 등이 고려신학교를 다녔고
1960년대에는 주로 대한신학교를 택하여
백태영 백영익 신도범 등 거의 모든 초기 목회자들이 그 신학교를 다녔으며
특별한 여건이 있는 경우
전성수목사님처럼 피어선신학교를 다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6.역사적 배경

1946년 고려신학교가 출발하던 첫 강좌 때에도 백목사님은 고민이 많았고
그후 1950년 고려신학교를 다시 입학할 때에도 역시 따르는 후배를 두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고신과 나뉘게 되었을 때
이 노선은 극단적으로 공연한 외형 형식을 대거 없애버릴 때이므로
신학과정 역시 그렇게 될 우선 순위에 있는 대상이었으나
위에서 설명한 내용 때문에 최소화로 억제하면서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어
고신과 단절 된 상황에서 그 대안으로 서울의 김치선목사님이 운영하던 대한신학교에 목회자들을 위탁하여 과정을 밟게 했습니다.


공회에서 목사로 바로 안수할 수 있는 실력과 자질을 인정한 목회자들 중에서
교계의 눈총 또는 일반 교회를 상대로 한 최소한의 배려 혹 불필요한 마찰의 최소화 등을 고려하여
신학과정을 밟게 한 다음에 목사 안수를 했으며 이것은 양성원이 출발하던 1975년까지 계속된 사실입니다.


백목사님 자신의 초기 신앙시절 진주성경학교와 고신 시절의 강좌
그리고 서울 남산에 있는 대한신학교로 목회자들을 보내고 안수 과정을 갖추게 하는 동안
백목사님은 이 노선이 꼭 원하는 과정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어 양성원 설립을 구상하게 되고
그 양성원의 운영에 필요하여 '양성원식 교수'양성을 위해 해외 신학교 유학을 생각하게 됩니다.

본인들이 원하여 해외로 나가게 된 2명의 목회자들 외에
필요한 인원을 좀더 보충할 계획이었습니다.

해외에 내보내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긍정적으로는, 역사 전통의 선배와 현 세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깨달음이 있는가 라는 점입니다. 실은 파악할 정도는 파악했지만 그래도 기본 자세가 배우고 알아보는 연구의 자세가 복음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또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공회식 양성원은 일반 교계나 사회에서 아주 무시할 규모와 내용으로 운영될 것이므로 그런 외부 비판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수들에게 세계 수준의 신학과정을 거치게 하여 공연한 논란을 사전에 막기 위함입니다.

이 노선의 신앙을 바로 배우고 가졌다면 백목사님의 원래 뜻대로 다 되어졌을 것이고 또 이 노선의 평균만 된다해도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므로 교수요원들 외에 일반 목회자들까지 미국을 1-2년씩 거쳐오게 하고 또 가능하면 대한신학교와 같은 차원에서 미국의 신학과정을 밟게 하므로 세상학벌과 신학의 간판이 우상이 되던 1970년대 한국교계를 향해 진실한 노선의 실력있는 목회자들이 그들의 우상된 간판을 보기좋게 짓밟고 덕이 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신용인 김응도 전성수 정재성 등 많은 목회자들이 일반 교인들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후 미대사관 비자 관계 때문에 극소수만 해외 경력을 쌓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생각하면 마치 교수요원들만 해외 경력을 쌓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7.윗글 질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답변드린다면

카브난트는 미국내 정통보수 교회의 좋은 신학교입니다.
그러나 카브난트와 같은 작은 규모지만 정통 보수신앙을 유지하는 신학교는 더러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신학교라도 더 이상 키울 수 있는 실력이 없어 그 정도 규모로 있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고 카브난트 역시 그러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대형교단과 통합하여 몸집을 키울 기회를 잡자 서슴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신학교로만 유지하는 곳들이 연세대학교만큼 키울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거부할 곳은 없습니다. 현 한국의 대학 시장의 여건을 볼 때 키워서 부도 나는 것보다 차라리 순수성을 기치로 내걸고 원래 간판과 세상에 관심이 없는 듯 앉아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다 낫습니다. 만일 정말 그런 마음이 없다면 대학교라는 인허가조차 받지 않아야 하는데 현재 그런 곳은 석원태목사님 신학교 정도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양성원 설립 이전에는 고려신학교 대한신학교 피어선신학교 등에 목회자들을 내보냈고
양성원 설립 이후에는 국내 신학교는 전면 금지하고 미국 카브난트에만 보내게 된 것은
국내에서 배울 바에는 양성원에서 배우는 것과 차이가 없고
미국을 좋아하는 세상과 교계를 향해 우리의 역량이 그렇게 무지하지 않음을 보이고
그 중에서도 카브난트로 정하여 내보낸 것은
카브난트가 있는 세인트루이스시에는 유학 온 목회자들을 이 노선에서 관리 감독을 할 수 있는 세인트루이스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만 아니라면 카브난트 정도의 신학교는 미국 도처에 더러 있습니다.

최재현 서영호 송용조 목사님처럼 백목사님의 의사와 무관하게 해외 공부를 하게 된 이들은 자신들이 공부에 대한 애착으로 미국을 향했고 그때는 세인트루이스교회도 없었기 때문에 약간 다른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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