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선에서 살아갈 마지막 모습 중 하나

남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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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에는 이 홈에 올려진 글 중에 이곳에서 따로 소개하고 싶은 글도 포함됩니다. 

이 노선에서 살아갈 마지막 모습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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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년 장례 때 박윤철목사님은 91세였고 신현자사모님은 84세였습니다.
모시겠다는 5남매 자녀를 두고 지금 거창 창동교회 주변에 혼자 사십니다.
오랜 기간 목회하셨던 지방에서 부르시는 날까지 기도와 말씀을 재독하기 원하신답니다.

이번 집회에 86세인데도 건강하게 끝까지 예배를 잘 보셨고
집회 테이프를 따로 구해서 집회 후 계속 재독하기 원하신다 하여 따로 찾아뵈었습니다.



08.8.14. 아직도 한 낮의 더위가 만만치 않은데
86세에 혼자 사시면서도 새댁 살림처럼 깨끗하게 정리 된 내부를 보며 정신이 새로워졌고
책상 앞에 앉자 시편 18편을 손수 꼬박꼬박 받아적은 글이 가지런하게 힘있게 맞습니다.
그 옆에는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독 테이프의 설교가 힘있게 방안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만 묘사한다면, 86세 혼자 사시는 작은 집의 노 사모님입니다.
공회는 그의 부부 노년 전체를 목회자로 파송 시켰지만 아무 노후 대책도 주지 못했습니다.
신앙 면에서는, 영육간의 모든 의무 책임을 다 벗고 오직 그 분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님과 자신 오직 둘만 동행하는 곳입니다.




1923년 평북 양시마을 성결교회 목사님 자녀로 출생하시고
1940년 결혼하여 만주에서 살다가
1945년 해방 후 소련군정 치하를 거쳐
1948년 부산의 동광성결교회에서 은행직원 가족이 되었고
1954년 서부교회로 말씀을 찾아 온 가족이 이 노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배 말씀이 깊고 자기를 돌아보면 너무 사무쳐서 돌아오는 길을 울고 온 세월이 오래였고
59년 남편의 서울 전근이 있어 수 년을 혼자 생활하며 더욱 말씀 생활에 몰입할 수 있었고
4년후 서울로 합류한 생활에도 늘 부산에서 받은 말씀의 힘으로 서울 생활을 하다가
1974년 경북 의성군 도리원에서 54세 박목사님을 따라 사모로 출발하게 됩니다.

어제까지 상업은행 본사 기술조사과장이라는 잘 나가는 직장을 가진 가정이
총공회의 가장 엄하던 시기에 목회자로서 가장 어려운 목회지로 파송을 받게 되면
목회자보다는 사모의 고난이 말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당시 공회의 시골교회 형편이 다 비슷했으나 도리원의 형편은 어렵기 그지 없었습니다.
헛간 하나 송판으로 여기 저기 막아서 지내던 사택에서 집회 강사 대접을 한다고 일하다가
남 몰래 살짝 삐인 허리가 평생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고개를 밀고 육체를 찌릅니다.

세상에서는 할 말을 얼마든지 하고 살 분이지만 이 노선 신앙에 접한 이후로는
말이 없는 교인이 되었고 목회를 출발한 후에는 늘 죄인에 죄인이 되어 굽혀 살았습니다.
사모님은 일제 때 일본 도요하시에서 여학교를 나온 이 시대 초기의 선각 지성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신앙의 본질을 깨치게 했고 이후로는 바보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아무 노후 보장과 대책이 없는 이 노선에서
목사님조차 가족을 위해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생각에 이 노선 목회자들의 사모님들이 목사님들을 달래어 다 뒤를 준비하고 있는데
사모님이 아예 그럴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으므로 현재 생활은 자초한 형편입니다.




그러나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가겠다는 이 한 각오로
86세의 연세에 주님 부르실 때까지 말씀 새기며 기도하며 주님 모시고 가겠다는 의지가
너무 결연했습니다.

박목사님은 좋은 분입니다. 넉넉하여 누구든 다 품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노선의 까끌까끌하고 뾰족한 끝날을 유지하기 어려운 분입니다.
넓어질 수 있는 고비마다 사택 안에 외치는 파수꾼이 있었습니다. 사모의 길입니다.

부부가 함께 교회와 공회를 상대로 오늘의 생활 대책을 보장받고 뒤로는 훗날을 대비하는데
이 노선 설교 테이프 외에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이 앞서 가셨고 한 분은 뒤를 따릅니다.
그리고 이 86세의 사모님 입에서 감사와 회개 그리고 끝까지 충성을 다지는 모습을 통해
오늘 교회기 구입한 차량에 교회가 지출하는 기름값으로 고유가 걱정도 없이 유람하는 우리
우리 젊은 이 시대 목회자의 우리 모습을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편안함이 넉넉함이 그리고 넘치는 모든 것이 이것이 과연 충성을 위한 것일까?
전도인의 본성을 잃고 말세 세상 풍족함에 빠져 세상 종교인이 되어 버린 우리가 아닌가?
충성에 앞서 대우 조건을 살피는 목회자
충성을 하되 훗날이 걱정되어 신분보장이 가능한 교회인지를 살피는 목회자
교인에게는 하늘의 복을 받으라고 연보를 강조하고 자기는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목회자...
노후 앞날 물샐틈 없이 대비하려고 각종 보험과 사회제도로 가득하게 무장을 하지 않는가?

이런 저런 것 알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고
오직 86세로 주신 오늘을 오늘의 현실로만 받아 앞으로 달려갈 길에 눈빛을 밝히는 여종.

그 의지를 책상 앞에 담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이 말씀이 사모님의 보험이요 의료진이요 앞날이며 노후 보장 대책이었습니다.

집회 전체 테이프를 받아 또 수도 없이 반복하며 새기겠다는 웃음 속에서
오늘 우리 목회자들의 나태함과 넘치도록 대우 받는 환경을 두고 한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호랑이에게는 맹수성이라는 것이 있듯이
공회인에게는 공회성이라는, 말세를 도파 나갈 신앙 본성이 있습니다.
돌아볼 기회를 가지며 잠깐의 모습에서 큰 은혜를 받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돌아보실 기회로 삼았으면.
아직은 우리에게 이 노선의 과거 바른 모습이 더러 남아 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촬영 기록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그 이후라야 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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